때로 어떤 책들은 그냥 제목이나 겉표지만을 보고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이 내게 그랬다.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송은정 지음 / 효형출판 /

 2018년 1월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란 제목이 결연했고,

책표지의 자화상 같은 그림이 나랑 비슷했다.

비슷하다니, 어쩜 모순같은 말일수도 있겠다.

책속의 여자는 선이 가녀리고 길쭉한데,

나는 자평하자면 동글동글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암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느낌이 이 책을 집어들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 속의 내용이나 행동들도,

나였어도 그렇게 속을 끓이고,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것들이 많았다.

나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사람이다. 아껴 쓰지 않으면 금세 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넘치는 에너지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유형의 사람과 만난 뒤에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고 커튼을 쳐야 한다. 아, 하고 탄식하며 바닥에 드러눕고 만다. 상대의 활기에 맞장구라도 치려면 내가 가진 하루 치 에너지를 몽땅 끌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133쪽)

 

매키지 않는 약속은 잡지 않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놀 줄 아는 나를 자랑스러워하게 됐다. 여분의 시간 동인 나는 햇볕 아래 식물처럼 가만히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 힘으로 다시 친구를 만나고, 밥을 지어 먹고, 일을 한다.(135쪽)

 

그런데 관점을 살짝 비틀어서 보면,

독립서점을 열어 잘 운영하고 있는 분투기도 아니고,

책방 문을 닫기까지의 과정에 어떤 꿀팁이 있는 것도 아닌,

느낌을 따라 써내려간 일기 형식의 책인데,

얇고 가벼운 이 책을 이 가격에 사서 읽을 것인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실패할 것이 분명한 서점이었는데,

이걸 보고 '이렇게 하면 실패하니 따라하시지 마시오'하는 안내서라고도 할 수 없고 말이다.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일을 벌였다. 물론 모아둔 돈을 죄다 탕진하긴 했지만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액수였다. 나는나는 실패한 것일까. 이 일에 모든 것을 걸지 않겠다는 처음의 다짐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책방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망해도 괜찮다'라는 마음가짐 덕분이었다. 혹여 망하더라도 인생에  책방을 죽기 살기로 하고 싶지 않았다.(167쪽) 

 

나는 어찌 꾸역꾸역 읽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권할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그건 장담하기 힘들다.

 

글이 단정하고 깔끔하다. 작가로서의 앞날을 기대해보는 수밖에.

 

 

신간 마실을 다니다 보니,

그런 의미에서,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책이 있다.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원부연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8년 8월

 

내가 이런 책에 관심을 가지면,

주변에서 한마디씩 한다.

장사를 할 마음이 있느냐?

혹시 장사를 책으로 배우려는 것이냐?

진짜 장사를 할 사람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일상에서의 탈출구로 그려보고 엿보고 꿈꾸기 위한 것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선선한 바람도 불어주고,

흥미로운 책들도 많은데,

책을 읽으면 쉬이 피로해지는 내 눈이 말썽이다.

 

사람들은 책을 좀 골라 읽으라는데,

그때 그때 기분에 맞추어 나름 골라읽는 책들이다.

속도가 붙지않아 아둥바둥하려 할때마다,

그냥 편하게 숨고르기 하며 한 템포 쉬어가는 거다.

 

이제 시작이다.

눈 말고도 많은 것들이 저마다의 템포를 가지고 있고,

그 템포들은 자기네 끼리 묘한 조화를 이루며 더뎌지고 있다.

120세 수명의 시대라는 말이 축복이라기보다 끔찍하게 들린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8-08-30 15:11   좋아요 1 | URL
저 좀전에 그냥 양철나무꾼님 서재 왔다갔는데, 제가 돌아가자마자 양철나무꾼님 새로운 글이 똭- 올라오네요.
인용하신 부분을 보니 작가의 문체가 참 정갈하네요.

소개하신 부분만으로는 에세이 정도로 분류될 것 같은데,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또한 호불호도 가장 쉽게 갈릴 수 있는 장르인 것 같아요.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나랑 맞아야 어느 정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 같고, 사실 그 에세이에서 무엇을 얻을 것이냐 하면 딱히 얻을 건 없을것 같고..

그래서 저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소설을 써보고 싶은데, 그건 정말이지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아요.

(쓰고 보니 댓글이 어째 산으로 가버렸네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8-08-30 15:4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는 내내 작가의 깔끔한 문체가 와닿았어요.
관계에서, 보대낌에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도 저랑 비슷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구요.

근데, 제가 제대로 빈정을 상한건 이 부분이었어요.
‘혹여 망하더라도 인생에 책방을 죽기 살기로 하고 싶지 않았다‘
저는 남편이 (구멍 가게 수준이어도 명색이) ‘사업‘을 한번, 두번도 아니고 무려 세번을 말아먹어봐서,
저 부분에서 완전 빈정 상했어요.
죽기 살기로 해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나 부분도 있거든요~--;

저는 다락방 님과 님의 글들을 아주 좋아하지만,
(이렇게 뜬금없는 애정고백이라니~--;)
어떤 부분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는 아줌마의 입장에서 쉽게 공감하기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님이 소설을 쓰시면 감정 이입하여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용히 재촉하지 않고 응원하는 숨은 독자 한명 추가합니다.
(아잇, 부끄러워라, 후다닥=3=3=3)

무해한모리군 2018-08-30 15:55   좋아요 1 | URL
온가족이 매달려 사업하다 미끌한 저희 가족이 보기에도 참 속편한 소리같기는 하네요.
그런데 문장을 보면 저랑 참 다른 사람일거 같아서 읽어보고 싶네요.

저도 요즘 눈이 말썽이라 무슨 전자파 막아준다는 안경을 거금 4만원을 주고 샀는데 왠걸 더 어지럽기만 하고 효과가 없네요.
쉬엄쉬엄 나무한번 보고 책보고 사람한번 보고 일하고 그래야할까봐요.

양철나무꾼 2018-08-30 16:52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좋은 건 이렇게 다양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걸 알게 되기 때문이예요.
이 책의 저자 분은 참으로 운이 좋게도 500만원의 보증금으로, 그것도 이대 건너편에 빈 점포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운이 좋게도 책방 운영 능력보다 뛰어난 글쓰기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구요.
이렇게 실패한 경험이라도 글을 쓰는데는 완전 좋은 경험이겠죠.

님도 눈 때문에 고생이시군요.
쉬엄쉬엄 나무 한번 보고 책 보고, 사람 한번 보고 일하고...
참 멋지고 예쁘게 들려 따라 되뇌봅니다.^^

2018-08-3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8-30 17:01   좋아요 1 | URL
저는 남편이 있으니까 가장은 아니지만,
가장의 무게를, 위압감과 중압감 따위를 알 것도 같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작게 하는 책방들의 고충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손해를 보게 될 것을 알면서도 이런 모험을 하는게,
도박이나 로또에 목숨 거는 것처럼 여겨지는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누군 남의 밑에서 월급 따박따박 받는게 제일 편하다고도 하고,
누군 돈을 벌려면 자기 사업을 해야 한다고도 하고...

저는 제 능력이 요만큼이니 요만큼으로 안분지족할밖예요~--;

박균호 2018-08-30 16:02   좋아요 1 | URL
제가 보기에도 그냥 속편한 소리같은데요 ^^
혹여 망하더라도 인생에 책방을 죽기 살기로 하고 싶지 않았다 ---> 뭐 이런 생각은 혼자 하는거야 누가 말리겠냐마는 이런 글을 돈주고 산 사람은 억울해서 어쩌냐는 ㅠ

양철나무꾼 2018-08-30 17:08   좋아요 1 | URL
20대가 바라보는 세상과 30대가 바라보는 세상,
그 이후의 연령대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 다른것 같습니다.
게다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게를 싣는 곳도 다 제각각이구요.
이 책의 작가 분은 책방 문을 닫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하는게 대견했어요.

그나저나,
님은 폭염에, 폭우에, 굴하지 않고 용왕매진하고 계신거죠?^^

박균호 2018-08-30 23:5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네 용왕매진해서 11월에 나올 딸에게 들려주는 고전 이야기 원고를 오늘 완성했답니다 ^^

양철나무꾼 2018-08-31 09:30   좋아요 1 | URL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하고싶은 취미활동 하시면서 가을을 만끽하시길~!^^

북프리쿠키 2018-09-02 18:58   좋아요 2 | URL
늘 잘 계시는거죠^^
양철나무꾼님의 글은 소신이 명확하면서도 다른 생각들을 끌어안는 포용력이 있어 좋아요~
항상 잘 읽고 배우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8-09-04 16:13   좋아요 0 | URL
늘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의 연속입니다.
북푸리쿠키 님이 써주신 댓글이 완전 좋아요.
솔직히 지금은 소신이 명확하지도 다른 생각을 끌어안는 포용력도 부족하지만,
언젠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눠주시는 님께 오히려 제가 배우고 있습니다, 꾸벅~(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