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밟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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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언젠가 읽었던 '사랑의 묘약'(<==링크)이 너무 좋았어서 찾아 읽게 되었는데,

'사랑의 묘약'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작가들이란 그게 그림이 됐건, 글이 됐건, 그밖의 다른 창작물의 형태가 됐건 간에,

'첫'이란 걸 훈장이나 멍에처럼 가지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비교하고 얽어매고 그리하여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피폐해지게 만들 수도 있을테니 조심 또 조심하여야 겠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그림자밟기'라는 제목부터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보는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사람의 다른 면을 보고 비출 수 있듯이,

그림자라는 것도 빛이 비추는 방향이나 각도, 또는 형태가 만들어내는 운동성 등에 따라 다른 크기와 농도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가족이 습기를 머금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면 그건 좀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가족을 먹여살리는 화가였다. 결코 시시한 재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감과 자제력을 상실하고 있었다.(23쪽)

 

이 그림자는 때로 그림의 음영으로 나타난다.

이 음영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즉각 초자연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ㆍㆍㆍㆍㆍㆍ드리하여 음영이 정말로 주체를 훔쳤고, 나머지 세상에서는 음영이 더욱 리얼해져 마침내 남은 것은 음영뿐인 것처럼 보였다.(184~185쪽)

빛의 형태로 얘기되어지기도 한다.

빛은 신기해. 만질 수도 없고 질량도 없지만 중력에 의해 구부러지거든. 마치 파도처럼 움직여. 또한 입자처럼 움직이지. 이 둘을 하나로 이해하는 건 사람의 머리로는 어려워. 그러니 너만 모르는 게 아냐. 외로워할 필요 없어. 딱딱한 물체에 빛이 부딪칠 때 그 물체를 뚫고 지나가는 건 빛이 아니라 빛의 에너지야. 넌 엄마랑 아빠가 이혼할 거라고 생각하니?ㆍㆍㆍㆍㆍㆍ하지만 엄마는 빛이고 아빠는 중성자별이야.(239쪽)

 

사실 나는 이 책이 좀 불편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잠식하고 그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둘은 화가와 모델 관계로 만났는데,

화가는 선정적이고 어두운 그림들을 그린다.

모델인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일 것이다.

아들인 플로리언이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을,

엄마인 아일린는 포르노를 보고 있는 줄로 착각할 정도로 선정적이다.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심했거든요. 삶이 침해받는 기분이었어요.(95쪽)

 

또 하나 불편하였던 것은 부모의 자격이 없지 싶어서 였다.

길도, 아이린도, 자기 부모에게 효자, 효녀 자식이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음은 물론,

그냥 부모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렇겠죠. 아마 안심하고 싶어서 그럴 거예요.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들을 멀찍이 떨어져서 안전하게 바라보고 싶은 것 아니겠어요? 전쟁, 살인, 유기, 납치 같은 일들이 자기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어서요. 홀로 남아서 스스로 살아가거나 남에게 상처 받는 일은 없을 거라 믿고 싶은 거예요.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플로리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제가 어머님의 일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168쪽)

플로리언의 선생님이 아이린에게 한 이 말은 많은 걸 짐작케 한다.

 

책의 곳곳에서 부부는 서로 다른,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 사랑을 하고 의지를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지 않는다면,

속으로만 사랑할 뿐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 그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사랑은 다른 과정을 거치고 다른 형태로 변해져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길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잠든 그녀의 구부러진 벽 같은 등에 살짝 등을 대고 누웠다. 습관이 위안을 주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잠든 아이린의 존재는 그를 안심시켰다.(43쪽) 

 

 

스포일러가 될까봐 결말을 얘기할 수 없지만, 나는 이 책의 결말도 맘에 들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감정적으로든, 현실에서의 삶의 형태로든,

더하거나 덜하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보면 잠식당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하게 그림자를 밟고 드리우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여기서 상관관계가 제대로 형성이 안되면,

관계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어서,

부모나 자식,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자라거나 어긋나고 틀어진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 하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연습하고 훈련하는게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용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그러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삶도 기꺼이 존중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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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15 18:23   좋아요 2 | URL
자기의 모습, 생각을 그대로 바라보려면 스스로를 긍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게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만들기 위한 ‘힘 기르기’, 즉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

양철나무꾼 2018-06-16 10:51   좋아요 1 | URL
이 책이랑, 님의 댓글이랑 좀 어긋난 내용일지 모르는데,
전 사랑 받아본 사람만이 자기 자신도,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예술적인 문제랑 결부되어 내용이 좀 복잡하게 흘러가는데 발설할 수는 없고~--;
상처받고 피 흘리고 넘어져 본 사람들은 상처받는게 견딜만하다고 여길 것이고,
상처받는게 두려워 사랑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소심하게 말씀드려봅니다.
페미니즘에 요즘 관심 많으신 cyrus님이라면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