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에너지와 공정성에 대하여 이반 일리치 전집
이반 일리히 지음, 신수열 옮김 / 사월의책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인 이반 일리치는 '과도한 에너지 소비가 물리적 환경을 파괴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적 관계를 필연적으로 퇴보'시킨다고 분명히 말한다. 에너지가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논점이다.

 

"에너지 사용에 상한선을 두는 것이야말로 높은 수준의 공평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를 이룩할 수 있는 길이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득의 상한선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이 있었다. 즉,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독점력을 소유하고 있어도 상한선 이상의 소득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에너지의 분배와 관련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중요한 점을 한 가지 더 언급하는데 바로 에너지와 공평성을 동시에 증대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계 이상이 되면 에너지 사용량을 늘리기 위하여 공평성을 대가로 지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1인당 소비 에너지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어떤 사회의 정치체제나 문화적 환경도 필연적으로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임계점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관료체제가 정한 추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이 법적으로 보장되었던 개인의 구체적인 주도권을 빼앗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 임계점이야말로 사회 질서가 버텨낼 수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에너지 사용의 한계치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자는 이를 속도의 한계치로 환산한다. 나아가 어떤 대중 수송수단이든 시속 25킬로미터를 넘어서자마자 곧 공평성이 저하되고 시간과 공간의 부족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즉, 동력으로 움직이는 수송수단이 교통을 독점하는 것이다.

 

"빠른 속도 자체야말로 수송이 사회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이다. 적절한 정치 체제와 바람직한 사회관계를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으려면 우선 속도에 제한을 가해야만 한다. 참여 민주주의는 저에너지 기술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면 오직 자전거의 속도로만 생산적인 사회관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혹자는 아니, 교통의 발달로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더 멀리 빠른 속도로 통근하기를 강요받고 이로 인한 피로가 엄청나다고 지적한다. 1시간씩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다. 도로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소수 사람들은 속도 증가에 따른 한계효용을 누리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로 인해 더 많은 한계비효용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즉, 속도가 임계점을 넘어가면 소수는 빠른 속도의 혜택을 누리지만 반대로 다수는 시간 손실을 강요당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할 시간이 우열이 발생하게 된다. 가난한 나라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대로가 생긴다고 해도 그 대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소수인 것이다. KTX만 해도 그렇다. 그 비용을 넉넉히 지불할 수 있는 사람만 자주 애용하지만 세금은 모든 국민이 함께 충당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빠른 속도를 허용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있어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전체가 보유한 시간 예산 가운데 더 많은 몫을 떼어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데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동차, 배, 비행기 같은 수송수단을 자본집약적 교통 방식이라고 분류하며 반대개념으로 자력 이동을 이야기한다. 자력 이동은 모든 인간이 타고난 것으로 이동자의 독립적인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보행이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바로 자력 이동이다.

 

특히 자전거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교통수단이자 운반수단이다. 동시에 더 적은 힘으로 빠른 속도의 이동이 가능하다. 무리하게 도로를 낼 필요도 없다.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곳에선 그저 자전거를 끌고 가면 된다. 이렇게 속도의 한계치를 정하자는 것이다. 자전거는 공간도 거의 차지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보행자보다 3~4배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자전거는 인간의 신진대사 에너지를 이동 시의 저항에 맞춰 바꿔주는 완벽한 변환 장치다."

 

저자는 "교통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라는 주장은 결코 입증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자전거를 이용하면 스스로를 제한하게 된다. 이러한 제한은 생활공간과 생활시간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즉, 우리가 서 있고 걷고 생활하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

 

"최고 속도에 제한이 없을 경우, 수송수단의 공유나 통제에 있어 아무리 기술적 개선이 이뤄져도 불평등한 착취를 중단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