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김현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을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 나이팅게일 선언문 -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나이팅게일 선언문을 소개한다. 간호사의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태움'으로 인하여 간호사들의 세계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지인들 중에 간호사가 많아서 평소에 간혹 들었는데 언론에서 공개하는 내용은 수위가 매우 높았다. 왜 유독 간호사들 사이에 가혹한 언어폭력 등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람 생명과 연관된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여러 생각이 떠오르는 가운데 책을 읽어 나갔다.

책도 바로 '태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대형병원 중환자실 신규 간호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태움'이 지목된 것이다. 저자는 언론의 보도로 간호사는 갑자기 나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며 병원 수익 극대화를 위해 대폭 줄여버린 인력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헌신하는 간호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음을 비판한다.

저자는 메르스의 한복판에 있었다. 당시, 메르스 환자들과 접촉한 의료진들도 함께 격리되었는데 저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저자는 메르스보다 더 두려웠던 것이 사람들의 차디찬 시선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와중에 쓴 일기가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된다. 병원의 위상을 높여준 것에 대하여 병원은 저자에게 승진을 제안한다. 그러나 저자는 간호사들의 처우에 대해 건의했고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일은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며 20년을 버텼지만 변화는 미미했다. 2017년 5월, 환자의 보호자가 후배 간호사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가는 등 난동이 벌어졌는데 병원 관계자들은 침묵한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저자는 병원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저자는 중환자실에서 12시간 동안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화장실도 참을 만큼 참으며 일을 해도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다. 이렇게 직원을 혹사시킨다고 병원 수익성이 좋아지고 제대로 돌아갈까? 오히려 피로에 지친 의료진들은 나가떨어지고 입사와 퇴사의 순환이 너무나 잦아 병원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이 지금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의 수가 적어질수록 환자의 입원 기간이 짧아지고 의료비가 내려간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 의해 입증된 바 있지만,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간호사들의 인건비를 깎는 것이 현실이다."

간호사들은 간호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수익 창출을 위해 모든 간호사는 아이디어를 한 건 이상 내라고 지시가 떨어지기도 했다. 카드회사에서 카드 실적 올리려고 전직원에게 신규 고객 지시를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간호사들은 의료용 가위 등의 물품이 없어지면 사비로 사야 한다고 한다. 이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수의 건강 강좌가 진행되고 있는데 빈자리가 너무 많으면 간호사들이 채워야 한다. 퇴근 시간이 넘었는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환자의 보호자들 중에는 의사들한테는 굽신거리면서 간호사들한테는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아야만 받은 돌봄을 그대로 환자에게 베풀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 누구의 보호도, 돌봄도 받지 못한 채 내 환자들에게 무한한 돌봄을 베푼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선의로 한 행동과 말로 인하여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는데 면회 온 할머니가 며칠을 병원에서 밤을 새운 듯했다. 그래서 저자는 쓰러지실 것 같아 조금이라도 집에 가서 쉬시길 권한다. 며칠 동안 할아버지의 상태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휠체어에 탄 할머니가 중환자실을 나가는 순간 할아버지의 심장이 멈추었다. 그러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아들, 딸들이 저자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저자가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처럼. 간호사들에게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후, 저자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꾸며 기계적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점차 편해지며 가족들의 슬픔도 덤덤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물론, 이런 태도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얼마 후, 사망한 젊은 남자와 그의 젊은 여자와 갓난 아기를 보며 자신의 가면이 옳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다양한 죽음을 경험한다.

위독한 아버지를 앞에 두고 자녀들이 유산으로 싸우는 장면도 목격해야 하는 것이 간호사라는 직업이다. 치매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아버지를 어떻게 돌보아야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땅문서가 어디에 있는지 다그친다. 결국, 아버지의 전 재산을 가져간 뒤로는 다시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탐욕이 인간을 잡아먹은 모습이다.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약해진 할아버지를 위해 곰탕을 끓인 여든 살 할머니가 곰탕을 베란다로 옮기다 미끄러지며 뜨거운 곰탕이 몸 위로 쏟아진 것이다. 결국, 할머니는 입원하셨다가 세상을 떠나신다.

한 젊은 여자는 출근길에 한눈파는 사이 버스 아래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왼쪽 다리와 골반뼈가 으스러지고 상처가 처참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료진에게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다고 회사에 전화하면 안 될지 묻는다. 저자는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고 말하며 '몸은 죽음에 가까이 왔는데 정신은 삶에 더 가까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패혈증이 진행되어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의료진은 때로는 거짓말도 해야 한다. 부부와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남편은 멀쩡했고 아내는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아기는 즉사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기가 괜찮은지 질문한 것이다. 절대 안정이 필요했고 의료진은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21년간 간호사로 살며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직업이 자랑스러웠고 감사했다고 고백한다. 열약하고 힘들었지만 환자들의 얼굴이 편하게 변하는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고 회상한다. 메르스 때 아무리 힘들어도 중환자실에 남았던 이유는 오로지 환자들 때문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간호사에게 희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보호해주고 환경과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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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데굴데굴 2019-01-17 16:30   좋아요 0 | URL
결국 병원의 수익성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최소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보호하는 병원만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경영되지 않았으면 하는데요. 이미 수많은 대형병원이 적자인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수익성을 고민하고 우선시하게 되는 풍조가 만연한 것 같습니다. 간호사의 인권이 보호되고 처우가 개선되도록 정책 마련이 시급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