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플로리안 아이그너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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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우연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연히 운이 좋아서 성공했는데도 성공의 법칙이나 인과관계를 발견하려고 한다. 우연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자는 우연에 대해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연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저자는 성공을 이야기하며 모든 성공을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쉽게 성공의 요인을 노력, 똑똑함, 부지런함과 연결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성공에 있어서 우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력을 비하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만, 우연을 받아들임으로 성공했을 때 겸손할 수 있고 실패했을 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언제든지 새로운 방향으로 휘몰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날씨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안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기상청이 체육대회하는 날 비가 내린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초기조건을 비롯하여 온도, 기압, 풍속 등 수많은 변수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이는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더불어 초기조건의 아무 미세한 차이가 큰 변화를 가지고 온다. 이를 나비효과라고 한다. 이런 시스템을 카오스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정확히 예측 가능한가?'라는 질문보다는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의미가 있다.

카오스 시스템에서는 초기의 차이가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가지고 온다. 당연히 예측 불가능하다. 저자는 행성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며 태양과 그 주변을 도는 하나의 행성 둘의 움직임은 정확히 계산이 가능하지만 세 번째 천체가 추가되면 그 계산은 기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다고 설명한다. 다행히 컴퓨터는 이 복잡한 계산을 몇 초 만에 풀어낸다. 이 행성의 개수가 늘어나면 계산 과정은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카오스 이론은 거의 완벽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거의 완벽한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심하게 말하면 거의 완벽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쓸모없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카오스 이론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알려준다. 즉,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미래를 엄청나게 바꿔 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 복잡해서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우연적인 일에도 방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컵을 깨뜨리면 산산조각이 나지만 이 반대로 산산조각 난 유리조각이 컵이 되는 일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바로, 모든 우연적인 일은 정돈된 것을 섞어버리고 분류된 것을 혼합한다는 점이다. 즉, 질서에서 무질서의 방향으로 우연은 작용한다. 루트비히 볼츠만은 이를 측정하려고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엔트로피는 닫힌 시스템에서 계속 증가한다.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이는 시간의 방향을 결정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곳에 미래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규칙적이었던 구조가 해체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엔트로피가 증가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결국 천문학적인 시간이 흐르면 엔트로피는 최대치에 이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우주의 열적 죽음'상태에 이른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저자는 양자 중첩 상태를 이야기한다. 바로 대상들이 여러 가지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동전을 던지면 앞면 혹은 뒷면이 나오는 것이 고전물리학인데 양자 물리학은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나오는 것을 허용하는 셈이다. 저자는 이상하게 들리지만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라늄 원자는 동시에 온전하면서 붕괴될 수 있고, 레이저 광선을 맞은 분자는 동시에 분열하고 온전할 수 있으며, 작은 구멍들이 있는 얇은 판에 전자를 쏘면 전자는 동시에 여러 길로 움직일 수 있고 여러 구멍들 사이로 동시에 빠져나갈 수 있다."

전자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도 의미가 없다. 화학 시간에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돈다고 배우지만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처럼 간단하지 않다. 저자는 원자핵을 구름처럼 감싸는 공간적 특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양자물리학은 우리에게 가능성만을 알려준다. 전자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알려준다. 덧붙이면 이는 측정을 부정확하게 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전자의 진실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진실이 정확한 위치가 아니라 전자가 위치할 가능성일 뿐이다. 이 양자물리학에 바로 우연의 방식이 적용된다. 즉, 양자물리학적인 시스템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측정 결과를 예측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우연인 것인가, 아니면 그냥 우연처럼 보이는 것인가?... 카오스 이론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 장기적인 예측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주 미세한 오류만으로도 우리의 예측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양자물리학을 통해 완벽하고 오류가 없는 지식으로도 때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배웠다. 실험 대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양자 실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카오스 이론과 양자물리학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부분과 전체에 대한 개념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전체의 일부분만을 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것도 전체를 정확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진화를 바라볼 때도 우연과 운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가장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최적의 개체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의 흐름이 예측 가능하고 논리적으로 보여도 때로는 우연으로 인해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기도 한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즉, 진화에 있어서 예측 가능한 수렴과 깜짝 놀라게 하는 우연 둘 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연과 위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람은 생각보다 어리석게 행동하고 생각한다. 통계적으로 충분히 판단 가능하고 위험한 일을 예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측하기 힘들다고 핑계를 댄다. 기후 변화의 재앙, 항생제의 남용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자는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위험을 아예 무시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위험과 불안과 관련해 조금 더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식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쯤은 주가 그래프의 반복되는 패턴을 소개하는 책이나 자료를 접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복잡계이고 우연이라는 요소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주식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패턴을 찾으려 할 뿐 아니라 맹신하는 과오를 범한다.

저자는 우연을 이야기하며 통계적 사고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성지순례를 통하여 병이 치유되었다는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병 중에는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성지순례 간 사람들 중에서 병이 치유된 확률과 성지순례 안 간 일반 사람들 중에서 병이 치유된 확률을 비교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일반인보다 성지순례자들의 자연적 소멸 비율이 더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떤 일정한 장소에 아픈 사람들이 충분히 많이 모이면 그들 중 몇 명은 불가해한 방법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통계적인 필연성이다."

우연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본 다음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연은 바로 우리의 친구이고 우리는 우연에 대해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막힌 우연들이 아니면 우리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우연이 먼저가 아니라 인간이 먼저다. 우연을 인지하는 인간이란 존재가 없다면 우연도 의미가 없다. 인간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해서 우연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다만, 꼬리를 무는 질문이 어떤 지점에서는 멈추어야 하는데 저자는 이 시점을 우연이라고 말한다.

"우연이 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우연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우연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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