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고통 -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느 과학자의 분투기
캐런 메싱 지음, 김인아 외 옮김 / 동녘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보이지 않는 고통>은 사회역학 분야의 고전과도 같은 책이다. 저자 캐런 메싱은 생물학 교수로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을 때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에 귀를 기울이며 묵묵히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여성노동과 건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고통하는 노동자들을 면밀히 조사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공감 격차'의 문제라고 말하며 노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미 140편의 꽤 많은 논문을 출판했지만 이 연구들이 실제로 노동자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든 것 같지는 않다고 냉정히 평가한다. 또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며 우울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논문 대신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작업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영향을 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보여주기를, 그리고 적시생산방식, 오래 서서 하는 작업, 지속적인 인력 감축과 같은 경영 방식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면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비용에 눈뜨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직업보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여러 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이해했다. 그런데, 우파가 기득권을 잡으며 사업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구들이 지원을 받으며 직업보건에 대한 연구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우리의 후학들은 대학과 저임금 노동자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뛰어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러한 간극을 '공감 격차'라고 부르는 것이다. 

저자는 방사선에 노출된 노동자들과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연구하고 그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러나 저자가 함께 도울 사람을 찾기 위하여 대학교수, 의학 연구자들과 접촉하지만 아무도 수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었다. 아무도 노동자들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다. 단순히 수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박사는 공장 측이 소송을 걸 수도 있다고 연구를 중지해야 된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제련공장 노동자들의 유전자가 손상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교수에게 보냈지만 정상이라는 회신을 받기도 한다. 연구를 진행하다가 노동조합과 경영진이 적당히 합의를 해서 결국 저자는 쫓겨나고 만다.  

저자는 방사선사들의 건강, 더불어 그들의 자녀에게까지 미치는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고 선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공청회에서 지게 된다. 당시 판사는 방사선사 업무가 "태양광에 노출되는 것보다 더 위험하지 않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 당시만 해도 방사선의 유해함에 대한 연구와 인식이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과학자들이 노동자들의 분노와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일부 과학자들은 조사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너무 가까워지면 '객관성'을 잃는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노동자들과 깊이 교류하지 않으면 그들이 겪는 보이지 않는 고통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결국,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공론화할 방법과 매개체가 없다. 

저자는 공감 격차가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한다. 산재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판사들이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면 작업 관련성 질환에 대한 보상 요청을 기각하게 된다. 사업주들과 직원들 간에 공감 격차가 발생하면 비효율을 발생시키고 그 사업장이 병원이면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간호사와 방사선사들이 방사선에 노출되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스트레스, 유해 화학물질 노출 여부 등도 함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가 임신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있는 임신이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것도 숙제였다. 이처럼 산업 재해와 피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는 밝혀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은 환자 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다. 그 환자가 전염병을 앓고 있어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으리라 믿는다. 저자는 이들을 위하여 감염을 피하는 법을 다루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저자는 여성들이 무거운 쓰레기를 옮기다든지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지적한다. 일의 특성에 따라 남성과 여성에게 적절한 일의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병원에 건의한다. 그러나 이렇게 저자가 지적하여 개선된 것은 잠깐뿐이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만다. 

"외롭고 아픈 노인 환자와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바로 청소노동자다. 청소노동자들은 병실에서 환자들과 함께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훈련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청소 노동자들이 그런 훈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저자는 서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장시간 서 있는 것은 건강에 당연히 안 좋다. 그런데도 왜 백화점, 마트 등에서 일하는 이들은 굳이 서서 일해야 하는가? 당연히 이들은 허리와 다리의 통증을 호소한다.  

서서 일하는 것의 문제를 과학적, 의학적으로 밝혀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누가 봐도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데 입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서 있거나 일부러 걸으라는 처방을 내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앉을 수 없어서 계속 서 있어야 하는 것은 중노동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마침내 동료 및 학생들로 구성된 우리 연구진은 '서 있기'에 대한 개념을 정의했고 서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앉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이 요통과 무릎 아래쪽 다리에 통증을 호소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도 결코 쉽지 않았다.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직원을 촬영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앉아서 일하는 것에 대해 기대할 수도 있고 서서 일하는 것이 나쁘다고 판정되면 회사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서 일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앉아 있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 보인다는 인식으로 인해서이다. 이렇게 서서 일하는 이들에 대하여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장갑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생산한 장갑 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 개수 임금제였다. 중간에 하나라도 절차가 잘못되면 작업량이 증가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수량에 쫓겨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며 쉴 틈 없이 장갑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들을 연구한 결과가 노동조합에 전해지고 나서야 개수 임금제가 프랑스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 이러한 개수 임금제 형식의 일이 생겨났다. 바로 배달 앱을 통한 배달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라고 하여 법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아서 엄청난 압박을 받는 처지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배달하려다가 사고가 나는 것도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이다. 프랑스에서 사라진 개수 임금제가 수수료 지급이라는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프랑스에서 개수 임금제하에서 몸이 안 좋아 일을 못하면 임금을 못 받았던 것처럼 배달 노동자들도 동일하다. 물론 프랑스는 한 사람이 빠지면 나머지 노동자들이 그 생산량을 채워야 하긴 했다.  

더불어 팁 제도가 봉급제를 개수임금제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하여 노동자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팁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아서였다. 팁 제도는 동시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을 하위계층으로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성과급 제도도 유사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팀워크를 깨뜨린다. 

"입법 행위를 통해 팁 제도를 더 높은 임금제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전문가들이 서비스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조합에 팁 제도가 건강 수준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들쑥날쑥한 근무 일정이 가정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특히, 돌보야 할 자녀가 있는 맞벌이의 경우 변동이 심한 근무 일정은 큰 문제이다. 근무 일정을 조정하려면 직원들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관리자들은 대체자를 구하려고 밤이든 새벽이든 전화해서 쉬고 있는 직원들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문제는 직원이 거절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거절하게 되면 다음에 자신이 근무 일정을 바꾸어야 할 때 바꾸기 힘들다. 근무 일정이 주말 2-3일 전에 나오면 주말 계획도 미리 세울 수 없다. 이러한 근무 일정 편성은 삶의 질을 확 떨어뜨린다. 

저자는 인간공학 연구에 있어서 숫자를 이용한다고 해서 연구를 더 객관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숫자들이 문제를 드러내는데 도움이 되지만 숫자를 다루는 사람이 작업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저자는 노동자 건강권을 주제로 연구하는 과학자는 매우 적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단 기업 경영에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주제이다. 이런 연구를 지원하는 기금이 별로 없다. 새로운 연구 주제는 기성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특히, 기업은 자신들에게 분리하다고 생각되면 변호사를 고용하여 소송을 걸 수도 있다. 혹은 친기업 성향의 과학자들을 섭외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저자는 공감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고 고백한다. "공감에는 매우 무거운 책임이 따를 수 있다"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이렇게 공감하는 과학자들을 통하여 노동자들과 다른 이들 사이의 공감 격차를 줄여 나가고 공감 격차를 넘어설 수 있다. 이를 위하여 대학-지역사회의 협약, 지역사회 기반 연구 개발, 학술지 발간, 지역사회 협력자들의 전폭적 지원, 마지막으로 일반 시민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의 필요에 집중하는 직업보건 연구를 북돋는 것이 결국 대중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기 바란다. 또한 과학자들 역시 지역사회 연구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과학이 다른 어떤 연구로도 가능하지 않았던 귀한 결과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지식과 노력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고용주, 관리자, 학계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노동자들에게 귀 기울이고, 노동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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