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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세계 편 (반양장) -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편 ㅣ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72p <공급과잉이 전쟁을 일으켰다!>
독일은 빠르게 산업화하는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산업화가 늦어지면서, 뒤늦게야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산업화에 따라 자본주의가 정착했고, 당연히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의 문제가 발생했다.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야만 했다. 즉, 식민지 국가를 건설해야 했다... 더 이상 차지할 만한 식민지가 없는 것이다. 이미 앞서 산업화한 열강들이 식민지를 모두 차지했기 때문이다...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독일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동맹국인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지역에 갔다가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빌미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 것이다...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산업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독일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전쟁 이외에 없었다.
75p <1차 세계대전의 결과>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에 협력한 이유는 단순했다. 성장하는 독일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독일을 저지해야만 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전국들은 전쟁의 책임을 물어 전쟁 범죄국인 독일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게 했다. 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의 경제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침체하고 말았다... 실제로 다수의 민간인은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전쟁은 일부 부르주아 혹은 일부 국가들에 막대한 부를 창출해준다. 자본주의는 전쟁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핵심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쟁이고 하나는 유행이다... 전쟁이 공급과잉의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듯, 유행은 필요를 뛰어넘는 막대한 소비를 창출해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한다.
86p <2차 세계대전의 명목>
유대인은 예수 살해라는 전 우주적 범죄를 저지른 민족으로 취급받았다. 자신의 국가를 갖지도 못했으며, 여려 국가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다른 민족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나라가 없으니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은 어쩔 수 없이 중세 기간 동안 가장 천시되던 상업과 대부업에 종사했다. 그런데 근대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상업과 대부업은 무역과 금융업이 되었고, 유대인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게 독일 민족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독일 민족의 성스러운 땅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성스러운 땅은 유대인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했다.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죽인 야비한 민족이며, 독일이 전쟁배상금으로 허덕일 때에도 금융 산업을 바탕으로 부유하게 살아가는 얄미운 놈들이다...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에 반대하며, 전쟁배상금을 물지 않게 하겠다고 민중을 선동했다. 그 결과 독일민족사회주의 정당인 나치당이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로 집권당이 되었다. 일단 집권은 하긴 했는데, 히틀러는 고민에 빠졌다. 민중들에게 전쟁배상금을 물지 않게 하겠다고 장담해놓았는데, 그렇다고 영국, 프랑스와 다시 협상하자고 하기도 힘들 것 같고, 방법이 없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전쟁을 해서 이기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참 고민하다가 히틀러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독일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생각난 것이다. 그들은 세계적 금융과 사업으로 부유하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전쟁을 하면 되는 것이다...
96p <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대립하는가>
일단 지금은 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하나의 세계에서 공존할 수 없는지 경제적 측면에서 밝히려고 한다... 공산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공산주의 체제가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거래하지 않는 것이 뭐가 그리 큰일인가? 공산주의가 거래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끼리 무역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자본주의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앞서 논한 대로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것이다... 시장 확보가 필수적인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시장의 축소를 의미한다. 시장의 축소는 수요의 감소를 의미하고, 수요량의 감소는 자본주의의 생산 중단, 즉 공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 가체가 자본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더해 이렇게 존재만으로 위협적인 공산주의가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영역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하나의 국가가 공산주의 사회로 변하는 것이 다른 공산주의 국가가 침입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 발생하는 일이란 점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본가들을 제거하고 그들 스스로가 생산수단을 공유하면 그것이 공산주의 혁명이다.
165p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분>
사회주의가 조금 더 온건한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하려 한다면, 공산주의는 더 급진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회 혁명을 꿈꾼다는 차이가 있음을 기억하면 되겠다. 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일반적으로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며, 공통적으로 정부의 개입에 의해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이 추진되는 사회라는 유사점이 있음을 기억해두자.
171p<한국 내 경제체제 이분법적인 시각>
어쩐 일인지 한국인들에게 경제체제는 두 가지밖에 없어 보인다. 양극단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라 할 때 그것이 암묵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신자유주의고, 공산주의라 할 때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북한의 왜곡된 파시즘 체제다. 경제체제는 종교가 아니고 선악의 문제도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효용과 이익의 문제인 것이다. 어떤 경제체제가 나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체제는 이념과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 체제를 비판하거나 다른 체제의 가능성을 말하는 이가 이단이 되어 종교재판을 받는 것은 합리적인 현대인들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231p <정치체제>
정치는 간단히 말해서, 우리 사회의 경제체제를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네 가지 경제체제 중 오늘날 논쟁의 중심에 선 것은 신자유주의와 휴기 자본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추구한다. 시장의 자유가 의미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세금과 복지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세금 인하는 직접적으로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이 된다. 반대로 후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추구한다. 세금과 복지 수준을 높이는 것이 목표이며, 그로 인해 노동자와 서민이 이익을 얻는다. 결론적으로 경제체제의 선택에 따라 자본가와 노동자 중 이익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집단이 발생한다.
252p <민주주의의 맹점>
아이러니하게도 독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만을 고려할 때 거의 필연적으로 보인다.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이라는 형식적 측면이 독재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측면과 동시에 내용적 측면이 보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형식적 다수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신이라는 내용적 측면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의 수렴 과정과 절차가 보장되고 각 구성원이 소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관용적 태도가 전제되어야만 이상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264p <완벽한 정치체제>
따라서 완벽한 경제체제가 없는 한 완벽한 정치체제도 없다. 경제체제는 어쩔 수 없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며, 그만큼 다른 집단의 이익을 희생시킨다. 자본가의 이익이 우선되면 노동자의 이익이 줄고, 반대로 노동자의 이익이 우선되면 자본가의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익을 모두 우선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301p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극단>
개인주의는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이 어떤 식으로든 우선한다는 사상을 말한다. 반면 집단주의는 개인보다는 국가나 사회가 더 우선한다는 사상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만, 극단화되었을 때 부정적인 측면을 일으킨다. 개인주의가 극단화되면 이기주의가 되고, 집단주의가 극단화되면 전체주의가 된다. 이기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전체의 손해를 감수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전제추의는 반대로 국가, 전체를 위해서는 개인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307p <전체주의란>
전체는 나의 이익을 위해 강력하게 행동하지만, 나에게는 책임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개인이 전체의 비윤리적 행위에 눈감게 한다.
327p <미디어의 편향>
우리가 경제와 정치에서 논한 사회의 이분화된 구조를 적용해보면, 기업의 이익은 시장의 자유를 의미하며 세금 감소와 복지 축소가 이에 동반되어야 했다. 즉 경제적 측면에서의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측면에서의 보수주의가 기업의 이익에 대한 대변이 된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미디어는 끊임없이 보수화되고,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 문제는 대중에게 있다 대중은 정직하고 순박해서, 미디어와 사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만이 진짜 사실이라 믿고, 그들이 자신을 속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329p <자연권과 그 한계>
근현대의 전체주의 폭력을 경험한 현대인은 개인을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연권을 찾았다. 자연권은 생명, 재산, 자유의 절대적 보호를 근간으로 한다. 그런데 자연권은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와 충돌할 가능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다수결 방식에 따라 다수의 노동자가 소수의 자본가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 자본가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에서 사회는 공산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실적 측면에서는 그 반대의 상황이 발생한다... 미디어가 광고로 유지된다는 태생적인 특성에 기인할 때, 미디어는 필연적으로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계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