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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일생 - 책 파는 일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하여
야마시타 겐지 지음, 김승복 옮김 / 유유 / 2019년 2월
평점 :
제주 여행을 앞두고 이번에는 제주의 독립서점에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최근에 신간을 낸 작가이자 뮤지션이기도 한 요조의 책방이 제주에 있다는 것도 얼마 전 알게 된 참이다. 어느 곳에 가보면 좋을까 하고 찾아보니, 예상외로 제주도 곳곳에 꽤 많은 동네책방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최근 독립출판사나 독립서점 같은, 출판계의 인디 문화가 많은 주목을 받는 듯하다. 출판계라는 거친 땅에서 제힘을 다해 작은 꽃처럼 피어나더니 새로운 트렌드를 멋지게 만들어냈다.
한 일간지에 따르면 지난해 독립서점을 이용한 고객 수가 2014년에 비해 4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한다. 반면 같은 기간 대형서점 이용자는 1.3% 감소했단다. 이러한 독립서점 트렌드는 앞서 이야기 한 요조를 비롯해 몇몇 유명인들의 독립서점 개점 붐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꿔 봤을 책방지기라는 일, 하지만 그걸로 먹고살 수 있나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때에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서점의 일생》이다.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꽤 거창하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서점의 ’일생‘이라니….’서점 산업의 모든 것‘ 쯤 되는 내용이려나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서점의 일생이라기보다는 책방지기의 삶을 산 저자의 인생 이야기에 가까웠다. 어릴 적 동네 책방에 대한 추억 이야기로 시작해서 평범치 않았던 학생과 청년 시절을 거쳐,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고향에 돌아와 책방을 열기까지 마치 성장 소설을 읽는 것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여곡절 끝에 책방지기가 된 저자는 책방 운영에 대해 괜한 환상을 심어주지 않는다. 책방을 꾸려가는 반짝반짝한 재미, 하지만 그 이면의 현실적인 어려움 또한 낱낱이 보여준다.
‘가게를 지속한다는 것은 결승점이 없는 마라톤과 같다. 달릴수록 쾌감을 느낄 때처럼 기분 좋을 때도 있고, 괴롭고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색다른 마케팅과 콘텐츠로 서점 가케쇼보는 나름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지만, 경영 6년 차에 접어들면서부터 성장세를 멈추고 자금 운용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독자라면 누구나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가케쇼보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겪지 않았어도 충분히 알 수 있을법한 작은 책방의 어려움들을 보란 듯이 헤쳐나가 지금까지도 굳건히 버티고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2004년 2월 13일에 시작한 가케쇼보는 결국 11년을 꽉 채우고 2015년 2월 13일에 문을 닫는다.
저자 야마시타 겐지는 여전히 책방지기다. 가케쇼보는 문을 닫았지만, 곧이어 ’호호호좌‘라는 이름의, ’책이 아주 많은 선물 가게‘에서 지금도 책을 팔고 있다. 역시 도쿄 진보초에서 한국어책을 파는 북카페 책거리를 운영하는 이 책의 역자는, 저자가 이미 경험한 아픔과 기쁨들을 본인도 직접 겪으면서 이 책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또 한국의 많은 책방지기들에게도 이 책이 분명 힘이 될 거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저 번역가가 아닌 같은 책방지기의 마음으로 옮겨서 그런지, 왠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우리나라의 책방지기들을 힘껏 응원하고픈 마음과 함께, 부디 지금의 독립책방 트렌드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하나의 탄탄한 문화로 자리 잡아 오래오래 남았으면 하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