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피해자
천지무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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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시대를 살아가는 딸을 둔 아버지로서, 그리고 중년의 남자로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추잡한 남성 위주의 가학적 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의 모습들이 수없이 많은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역겨움과 함께 책임감을 느낍니다.. 단순하게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순 없겠지만 일반적인 사실적 관점에서 빌어먹을 권위적 남성들이 보여주는 여성적 차별의 시선과 행위들은 처벌받아 마땅하리라 여깁니다.. 몇몇 가해자의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수없이 많이 드러난 권력 위에 군림한 남성적 횡포는 굳이 떠들어대지 않아도 우리가 이미 인식하고 느끼고 체험하고 경험하고 겪어본 일들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성의 90% 이상이 한번 이상은 느껴본 차별적 모욕이라는 점에 대해서 저 스스로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는 감정으로 대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우치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뒤늦은 감이 있는 현재의 미투운동의 실천의 방법론은 단순한 시대적 유행이라 치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당연히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들이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되길 바라는 그들의 아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시대의 남성의 반성과 인식이 뒤따라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하나 현재처럼 번져가는 미투운동의 언론적 보도들이 하나의 사회적 문제의 차원을 넘어서는 자극적이고 소모적인 황색 저널리즘의 소재로 악용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사회적 지위와 공인적 영역에서 밝혀지는 수많은 빌어먹을 남성들의 범죄행위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런 저널리즘의 쏠림으로 인해 대다수의 일반인 여성분들의 수모와 상처가 묻혀버리지 않게 되길 바라며 이를 행한 대다수의 남성들의 차별적 시선들도 충분히 드러나 인식의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2. 우리의 아이들은 절대 이러한 비이성적이고 권력적 횡포의 대상이 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를 펼치며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자존감 높은 삶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늘 할 말이 없으면 던져놓은 제 이야기로 아이들이 있습니다.. 많죠, 그렇다보니 하루에도 열 두번씩 아이들의 관계적 행동에 대해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싫다는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귀찮게 하거나 짜증나게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고 폭행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누군가가 정확한 거부의 반응과 인식을 보여주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처럼 상대방에 이기적인 행위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가르침과 조언과 옳고 그름을 알려주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쉽게 변하진 않죠, 세상은, 사회는 늘 강자와 약자의 소통과 권위와 복종의 상관관계속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쏟아내며 살아가는 공동체이니까요, 특히나 학생과 선생 특히 성인의 영역속의 대학이라는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권위적 굴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터져나오는 일부 권위적 빌어먹을 교수들의 행위들은 여태껏 우린 이런 미투운동이 터져나오기 이전부터 소설이나 영화나 수많은 드라마적 소재로 사용되어져왔으니까요, 여태껏 몰랐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더러워서 피하는 똥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던 것이죠, 이번에 제가 읽은 이야기는 그냥 치부하고 넘어간 상황이 극단적 살인의 영역까지 이어지는 대단히 파괴적인 연쇄살인의 모양새로 독자에게 추리를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대만 작품인데요, "네 번째 피해자"라는 독특한 방식의 서술적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3.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설치예술가 팡멍위는 얼마 전 여성 3명을 살인한 혐의로 구속됩니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연쇄살인과 관련하여 3명의 여성의 시신을 비롯한 사건의 내막에 대해서 일체 함구를 하고 있죠, 여전히 살인사건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어떻게해서든 그에게서 단서를 찾아내려하나 갑자기 팡멍위는 구치소에서 건전지를 삼켜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잠시 의식이 돌아온 사이 자신이 저지른 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남깁니다.. 그가 저지른 세건의 살인사건 외 또 다른 네 번째 피해자가 있다는 의도로 그는 네잔의 물을 떠놓고 제를 올린 것이죠, 언론과 경찰은 이미 발생한 세건의 살인사건의 단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네 번째 피해자의 단서가 나온 상황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이 네 번째 피해자와 관련해서는 팡멍위가 체포될 당시 극적으로 구출된 네 번째 피해자인 저우위제에게 단서가 향하게 되죠, 현재 이 팡멍위 사건으로 시사뉴스를 진행중인 인기 아나운서 쉬하이인은 이러한 팡멍위와 관련된 사건으로 인한 특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네 번째 피해자인 저우위제와 함께 자신이 직접 사건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방송국인 탕런글로벌에서의 경쟁자인 좡징과의 승진 다툼에서 이기고 싶은 욕심이 크죠, 그리고 방송국 사장의 제보자로부터 얻은 단서로 팡멍위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한 단서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살인사건의 내막이 드러나고 쉬하이인은 자신이 만들어낼 역할에 대한 특종에 대한 독점에만 침착되어가는데,,,


    4. 이 작품은 일반적인 스릴러소설이나 추리소설적 방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이나 탐정들이 그 사건의 단서를 찾거나 더이상 살인이 벌어지지 않게 살인자를 찾아 대결하는 일반적인 장르적 구성과는 다릅니다..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마가 살인과 관련된 일체의 내용을 함구한 체 숨져버리는거죠, 유일하게 자신이 택한 네 번째 피해자를 살해하지 못한 상황만이 남은 체 사건은 오리무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찰이나 탐정의 영역이 아닌 언론의 보도적 행태를 중심으로 사회적 정의나 범죄적 진실의 목적보다는 언론의 무차별적인 무감각한 자극적 사회적 이슈로 사건을 파헤치는 것을 중점적으로 이어나갑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쉬하이인은 이러한 언론의 자극적 이슈에 매몰된 무감각적 양심의 대표적 인물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정의보다는 자신의 영욕과 언론적 시청률을 위해 가장 중심이 되는 네 번째 피해자를 자신의 울타리속에 가둬두기도 하죠, 이 소설은 이어지는 동안 옳고 그름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는 그대로의 자극적 저널리즘의 사회적 딜레마를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이 또한 대단히 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독자들은 매우 긴박감 넘치는 사건의 내막을 쫓아가는 상황속에서 펼쳐지는 방송국 내부의 알력과 사회적 이슈에 집착하는 언론인들의 행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소설의 이야기 중간중간 챕터의 연결처럼 이어져나오는 수많은 언론의 대표적 보도와 루머와 대중의 자극적 대응들은 이러한 언론의 무자비한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죠, 작가는 이야기를 끊지않고 이야기의 중간중간 수없이 많은 사회적 매체들의 흐름을 끼워놓았습니다.. 아마도 이야기의 맥을 끊기보다는 함께 숨쉬는 언론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5.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대단히 속도감 넘치고 긴박한 이야기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하는 범죄사실보다는 언론의 모습에 좀 더 치중하는 상황이 펼쳐지죠, 그래서 독자들은 이 작품의 본질적 장르의 영역에 대한 즐거움은 조금 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초중반에 이어지는 단서찾기와 상황의 연결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흥미진진함에도 언론인들의 아귀다툼속에서 범죄사실은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건의 정의를 찾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된 세명의 시신에 대한 단서와 그 내막을 끄집어내고 이를 연결하여 특종의 영예를 얻고싶어하는 커리어우먼의 심리는 무척이나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중후반부를 들어서면서 조금씩 새로운 심리적 딜레마와 상황의 혼란스러움에 대한 방법들이 제시되기 시작하죠, 저우위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건의 방향성이 제시되면서 여지껏 보여주었던 언론의 이야기보다는 범죄의 진실에 조금 더 다가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펼쳐지는 후반부의 상황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죠, 대단히 멋진 후반부와 결말의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독자로서 이런 비스므리한 상황이 펼쳐질거라는 예상은 대략하게되지만 실제적으로 보여지는 상황의 반전은 대단히 색달랐습니다.. 저로서는 깜짝 놀랬으니까요, 알면서도 속는 느낌,


    6. 일반적이지 않은 구성과 서사적 방법의 참신함은 이 작품을 읽는 즐거움중에 하나입니다..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언론에 대한 공감과 상황적 인식은 독자들이 이야기를 파악하는데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우리의 삶속에서 보여지는 언론의 행태가 그러하니까요, 아무리 무시하고 외면하려고해도 인간의 본능적 자극적 호기심은 이들이 여전히 우리의 삶속에서 거짓으로 포장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장르소설의 범죄적 이야기속에 색다른 서술의 시점과 함께 언론이라는 영역에 보여주는 추악한 모습과 그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든 대중의 심리를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즐겁고 재미지고 매력적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근래들어 장르소설의 영역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전 제가 알던 장르소설의 영역은 영미소설 위주와 우리와 성향적 연결이 잘 이루어지는 일본소설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북유럽과 세계 곳곳의 장르적 이야기의 독창성과 특히나 중국이나 대만등에서 등장한 새로운 장르적 영역의 발견을 독자로서 알게된 것이 무척이나 좋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확장에 찬성을 하면서도 여전히 우린 책과 관련된 문화적 인식은 경직되고 외면당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가지게 됩니다.. 책의 종류와 장르를 구분짓기 보다는 책을 읽어서 즐겁고 재미지고 그것으로도 삶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진다면 되는거 아닌가 싶은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가려 읽을려고하는 경향이, 없음말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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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3
신원섭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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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런 '짐승'같은 넘, 이런 '짐승'만도 못한 넘, 우린 이런 말 자주 씁니다.. 저만 그런가요, 여하튼 뉴스를 보거나 어떤 상황에서 정말 지랄맞은 인간들이 저지른 더러운 짓거리에 순간적으로다가 튀어나오는 말이죠, 사전적 의미로 '짐승'이 뭔 뜻일까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인간이 아닌 동물을 지칭하거나 인간으로서 인간답지 못한 행우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족속들을 일컬어 우린 짐승이라 부르곤 합니다.. 아니 전 그렇게 부릅니다.. 세상에는 인간으로 우리의 주변에서 버젓이 살아가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짐승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침범하고 해악을 끼치는 수많은 짐승같은 인간들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들 나름의 삶의 고리에서 살아가기도 하죠, 대체적으로 끼리끼리 어울리는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진 않으니 사회에서의 짐승같은 인간들과 섞일 일이 일반 민초의 서민들에게 얼마나 있겠습니까만 이 빌어먹을 '짐승'들은 호시탐탐 없는 사람의 약자의 인간들의 삶속에 침투하려고 군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짐승'의 탐욕스러운 이빨을 끊임없이 드러내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 '짐승'이란게 단순히 악하고 잔인하고 인간에게 해만 끼치는 존재로만 인식되진 않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약육강식에 적응된 삶속에서 스스로 언젠가는 먹혀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두려움에 휩싸여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회의 규범과 법질서와 규제의 틀이 인간의 짐승화를 막아주곤 있지만 늘 제가 이야기하는 인간의 욕망적 본성에 따른 적응력은 사회속에서 벌어진 규제의 틈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짐승으로 회귀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속에서의 인간의 삶은 속고 속이고 물고 뜯고 죽이고 되갚는 짐승의 세상과 딱히 다르지 않을테니까요,


    2. 전 이 작품을 온라인 소설 플랫폼인 '브릿G'라는 사이트를 통해 미리 접한 부분이 있습니다.. 연재를 하는 작품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인간의 숨겨진 추악한 본성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작품이어서 무척이나 생경하면서도 신선한 자극을 전해주었던 스릴러소설이었죠, 각 연차마다 각각의 인물의 시점을 토대로 벌어지는 상황의 연결고리가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작품에 대한 즐거움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단행본으로 출시되어 다시금 느껴보니 온라인에서 느꼈던 감성적 자극이 새롭게 다가오게 되는군요, 이 작품은 신원섭 작가의 "짐승"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극악의 행태적 비열함과 잔인함을 비롯한 해악적인 요소들이 끊임없이 드러나는 대단히 자극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허나 그런 자극성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실태의 인간성에 대한 고발은 이 작품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가 느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 인물들은 각각의 심리와 시선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짐승적 본성을 끄집어내게 됩니다.. 소설의 시작점에서 오동구라는 인물의 상황으로 한 여인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3. 미셸이라는 이름의 여인은 오동구에게 전화상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으니 좀 도와달라고 합니다.. 오동구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당황해하면서도 두말없이 그녀를 돕기로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알려주는 곳인 가양시 청삼동 성환연립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시점은 또다른 인물의 상황으로 바뀝니다.. 장근덕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자신의 집에서 숙취에 힘들어하며 깨어납니다.. 온갖 잡음과 오래된 건물의 조건을 모두 갖춘 성환연립의 101호에 사는 장근덕은 여전히 비루한 자신의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실적 낙오자같은 삶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마루에 어떤 여인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죠, 다가가서 살펴보았으나 그녀는 죽은 사람처럼 차가운 몸으로 바닥에는 눌러붙은 핏자국이 보였죠, 장근덕은 숙취의 환영이 보이나 세수도 해보지만 죽은 여인은 그대로 자신의 거실에 놓여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인 지, 장근덕은 자신이 그녀에게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는 지 조차 파악하지 못한 체 혼란스러울때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랍니다... 자,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속에는 이진수라는 인물의 전직 경찰과 도미애라는 여인과 도미옥이라는 여성이 등장하면서 초반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의 매듭을 묶거나 풀어나갑니다.. 특히 이진수라는 전직 경찰은 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인물적 역할을 맡고 있죠, 아무래도 경찰출신이나까요, 아님 말고,


    4. 각 챕터와 상황적 연결들이 꼬이고 얽히고 엮여서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토대로 시점적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오동구, 다음 챕터에서는 장근덕, 그리고 전반적인 흐름을 이어주는 중심 역할은 도미애와 도미옥, 무엇보다 사건에 대한 이해적 측면을 고려한 시선을 이어나가는 인물로는 이진수를 등장시키죠, 또한 작품은 상황적 연결속에서 시공간적 틈을 조금씩 벌여놓습니다.. 물론 이 상황적 인식을 중후반으로 가야지 정확하게 독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부분으로 작가님의 한수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반전적 상황을 고려한 연결패턴이었겠죠, 여하튼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 개연적 스토리를 인물들을 통해서 작가는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인 "짐승"이라는 존재적 의미에 대한 인물적 의도를 적절하게 표현해내고 있죠,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일종의 짐승적 감성과 본성에서 쉬이 벗어나질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약육강식과 속고 속이는 비열한 술수와 비인간적인 몰감정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죠, 말그대로 이 작품속에서는 짐승의 영역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작품이 과하게 폭력적이니,자극적이니,혐오스럽니등등 거부감을 표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 이야기를 담기 위해 제목부터 이 작품을 읽으려면 독자분들 조금 짐승같은 이야기를 감내하세요, 뭐 이런 느낌이 든다는겁니다.. 역시 아님 말고


    5. 그런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저로서는 미리 이런 일이 벌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읽어서인 지 그렇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비인간적이고 몰감정이 팽배한 이 작품에 대한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짐승적(?!) 공감을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각각의 인물들이 표출하는 심리적 비약과 극악한 상황적 압박의 본성은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뒤틀리고 루하고 저열한 인간의 밑바닥에 감춰진 짐승적 본성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작품으로 이 작품이 주는 장르적 감성은 상당히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금 더 풀어서 상황적 즐거움과 서사적 스토리에 대한 작가님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적 영역을 조금 더 드러내주셨어도 좋았겠다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아무래도 인물적 심리와 시점과 상황의 해소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빠른 진행을 하신 부분이니 제가 뭐라 할 순 없었도 조금 더 이야기의 연결을 끌어내셔서 도미옥의 드라마틱한 인물적 관계나 이진수의 상황적 영역에 대한 스토리를 이어나가셔도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했습니다.. 물론 전형적인 흐름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지만 제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재미난 장르소설도 전형적이지 않은 작품은 없다라는 생각을 하거덩요, 그 전형성속에 참신함과 독창적 세계관과 인물의 드라마틱한 상황적 연결을 우짜믄 좀 더 꼼꼼하니 넣어보나라는 프로적 기법이 독후적 인식의 좋고 나쁨을 조금 더 보태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1도 모르는 독자이니 아님 맙시다..


    6. 장르소설 그 중에서도 스릴러소설이 지향해야될 속도감 넘치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적 집중도를 보여주기에 이 작품 "짐승"이 그려내는 스토리는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아주 빠르게 진행되면서 긴장감과 상황에 따른 감정적 밀도가 아주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죠, 물론 인물들이 보여주는 추악한 본성적 방법론은 작가의 의도에 부합되는 '짐승'적 감성이 그런 장르소설의 재미를 제대로 만들어낸 부분도 있구요, 또한 인물의 입체적 표현들이 주는 전형성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그 전형성속에 현실감 넘치고 비현실로 인식하고픈 우리의 삶의 이면의 비루함을 제대로 담아내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간만에 만나는 매력적인 스릴러소설이라고 칭하고 싶구요, 오히려 조금 길게 이어졌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국내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속에서 드러내는 -제목에 부합하는- 인물적 감성은 뒤틀리고 이그러지니 심리를 토대로 현실적 인간의 속성에 대한 공감이 표현적 거부감을 이기더란 말입니다.. 아무래도 신원섭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다음 작품은 이보다 더 농밀하고 자극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스릴러의 감성과 속도감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즐거움 작품으로 만나게 되길, 그리고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이 추하진 않습디다.. 늘 돈이 추하게 인간을 오염시킬 뿐,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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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그림자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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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에 선한 범죄, 악한 범죄로 나눌 기준이 있나요, 정말 나쁜 인간 말종이 있는데 이넘이 연쇄살인을 밥먹듯이 해대며 사회를 혼란시키는데 아무도 그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법의 처벌을 받지 못한다고 퍼니셔같은 안티히어로가 이들을 처단하고 단죄한다면 그것은 선한 범죄로 인정해도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영학이 같은 정말 빌어먹을 인간에게 사형을 집행하고 더이상 우리가 사는 사회속에서 호흡하지 못하게 격리시키고 인간이 인간을 사형으로 처벌한다는 또다른 개념의 살인의 무게감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참 어려운 명제입니다..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고 이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하고 이 범죄를 저지른 인간은 자신의 죄값을 제대로 받든 그러지 않든 언젠가는 또다시 사회의 틈속으로 살며시 들어설 지도 모를 삶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피해의식은 어떻게 해야하나요, 한 어린 아이를 죽음의 나락까지 몰아넣고 평생을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든 악마같은 범죄자가 자신의 죄값이라고 십수년을 갇혀있다가 언젠가는 우리의 삶속에 버젓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우린 어떨까요, 하지만 만약 이 악마같은 인간이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회개와 반성과 후회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여지가 단 1%라도 있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요, 역시 참 어려운 명제입니다.. 답이 없죠, 인간의 본성은 늘 이런 개같은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들은 삶의 평화로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빌어먹을 폭력적 본성은 감성의 쓰레기통에 죽는 순간까지 분리수거를 해두고 있죠,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가 동계올림픽의 감동을 느끼는 동안에 세상은 여전히더러운 본성을 분리수거하지 못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권력적 폭력과 육체적 정신적 파괴와 죽음의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2. 같은 남자로서 권력을 가진 인간들이 저지르는 더러운 욕망의 행우지는 참말로 역겹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저지른 추행과 폭행과 차별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인지를 여전히 못하는 것 같아서 더 분노가 치밀기도 하구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가해적 폭행은 어느순간 심각한 죽음의 범죄와 사이코패스적 욕망으로 변질되어 이 세상을 오염시킬겁니다.. 저들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전형들이죠, 권력과 힘으로 이루어진 지위에서 누리는 권리적 폭행은 어느순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범죄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겠지만 이런 정화적 미투운동이 확산이 되어진다면 보다 투명한 세상의 평화로움이 조금씩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도 세상의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천재적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와 뛰어난 추리능력과 법의학의 정통성을 이어나가는 모삼과 무즈선의 대결이 펼쳐지는 사신 L과의 이야기의 두번째 작품을 만납니다.. 전작인 "사신의 술래잡기"에서 범죄의 그늘에 숨어서 드러나지 않았던 사신 L이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펼치며 모삼과 대치할까요, 이번에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신의 그림자"입니다..


    3. 시작과 동시에 모삼과 무즈선에게 택배가 배달됩니다.. 내용물은 표지에 보여지는 총기를 해체한 각각의 부품들이었죠, 역시나 L은 또다른 범죄의 현장을 제시하며 이들이 그곳에서 사건의 단서를 찾길 원합니다.. 여전히 게임은 진행중인 것이죠, 모삼과 무즈선은 일반적인 경찰용 권총인 64모형을 토대로 일반인의 총기소지가 금지된 중국에서 총기 관련 사건이 발생한 도시로 향하고 그곳에서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게 되죠, 여전히 모삼은 자신의 추리적 능력을 토대로 사건의 단서와 상황적 판단을 빠른시간내에 이루어내고 무즈선은 사체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사건 발생의 조그마한 단서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게 되면 또다른 사건을 L은 제시하고 끊임없이 모삼을 범죄의 고리에서 벗어나질 못하게 하죠, 늘 그렇듯 L이 제시한 사건의 내막속에는 악행보다는 상황적 아픔이 담긴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옳고 그른 범죄의 잣대를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는 대단히 고민스러운 범죄적 딜레마를 끊임없이 모삼과 무즈선에게 제시하고 자신은 범죄의 그림자속에 숨어서 모삼의 정신을 갉아먹으려합니다.. 무즈선은 그런 모삼과 사신 L의 대결속에서 중심을 잡고 있지만 여전히 모삼과 함께하는 시간동안의 힘듬으로 그도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하죠, 그러던중 모삼은 무즈선이 과거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과 무즈선에게서 듣지 못했던 과거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동안 지쳐있던 무즈선은 엄마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4. 뭔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펼치는 대결은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범죄추리와 프로파일링의 상황적 판단이 뛰어난 모삼과 자신의 동료 무즈선은 일반적인 인물들이 아니죠, 그리고 무엇보다 범죄를 조종하고 악마적인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천재인 연쇄살인마 L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 전작의 시작점인 모삼에게 저지르는 범죄의 양상에서 우린 익히 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감성과 영향력을 짐작했더랬습니다.. 후속작인 "사신의 그림자"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주창하는 범죄의 고리에서 모삼이나 어느 누구도 벗어나질 못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모삼에게 정신적 타격을 주려고 하죠, 모삼은 심각한 정신적 고립감과 피로를 느끼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있는 영역내에서의 범죄의 끈을 어떻게해서든 끊어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모삼과 L의 조종하는 범죄의 대결은 그들의 만남으로 이어지게 되겠죠, 후반부에 펼쳐지는 이러한 아주 대단한 대결적 양상은 이 작품이 그동안 숨은 체 세상속 범죄의 모양새를 조종하던 L의 참모습을 매력적으로 드러냅니다.. 그 사신이 드러내는 방법이 무척이나 극적이고 반전스럽다는 것은 안 비밀,


    5. 전작에서도 이야기했는 지는 모르지만 이 작품의 서술방식은 대결적 구도로 이어지는 큰 줄기속에서 일상의 삶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범죄의 양상을 현실적으로 파고드는데 있다는 생각이 듭디다.. 굳이 L이라는 인물로 조종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속에는 대단히 어지러운 가학적이고 비겁하고 악랄하고 애절하고 서럽고 극적인 범죄들이 수시로 벌어지니까요, 작가는 한 범죄적 인물을 통해서 그러한 삶의 현실적 부조리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것 같습니다.. 독자들은 작품의 극적 재미속에서 인간의 삶이 드러낸 파괴적인 본성과 어쩔 수 없이 처한 상황적 보복에 대한 한계성을 여실이 느끼게 되죠, 안타깝고 비겁하고 악랄하고 분노스러운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밝혀지고 우린 그런 상황의 이면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이렇게 부조화스러운 지 깨닫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늘 인간이 추구하고 바라는 세상은 평화롭고 더불어 행복한 삶의 주변이 되길 바라는 근원적인 욕망도 끝없이 드러내죠,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전작인 "사신의 술래잡기"에서 드러난 초반의 대결적 측면과 이번 작품 "사신의 그림자"에서 만나게 되는 후반부의 L과의 대결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사건에 대한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 해결 에피소드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소설적 재미가 그렇게 뛰어나진 않죠, 그 상황의 연결선상에서 이들의 관계만 대강 인지하고 넘기는 정도, 하지만 작가는 무엇보다 하나의 사건에서 등장하는 현실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소설적 재미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법의학적 지식과 함께 범죄적 상황의 판단에 따른 사회적 괴리감을 독자들이 알아주길 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그렇게 뛰어나진 않습니다..


    6. 하지만 후반부에서 맞닥뜨리는 모삼과 L의 만남은 앞선 내용들을 모두 잊어먹게 만들어주죠, 대단히 놀라운 극적 반전으로 이야기는 진행되면서 독자들은 한순간에 작품의 마무리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드디어 모삼과 사신이 대치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동안 여러 사건속에서 꽁꽁 숨겨졌던 L의 악마적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뭐 그럴줄 알았다라든지 설마 했는데 정말이라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마지막에 등장하는 L의 모습은 상당히 좋습니다.. 물론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과는 어울리진 않지만 여하튼 뜬금이 있든 없든 모삼과 L은 이번 작품에서 만나서 끝끝내 해결을 봅니다.. 그리고 끝을 맺죠, 생각보다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이 떠오르는 작품이긴 합니다만 앞에서 제시했던 작가가 보여주고자한 현실적 범죄의 문제점과 공감적 방법론은 무척이나 와닿는 내용이기도 하죠,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스릴러의 양상을 작가가 모르진 않았을진데 이런 상황적 범죄의 이야기를 연쇄적으로 풀어낸 작가의 방식을 존중해주기로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과 끝은 여느 스릴러소설의 즐거움을 안겨줬다는 점에 대해서도 일단 칭찬해주기로 합시다.. 마작가가 볼 일이 없긴 하겠지만 중국에 혹여라도 저같은 독자들이 있다면 인물적 대치가 주가 되는 작품에서는 가능하면 직접적 대결이 중심이 되는 스릴러로 끌고 가는 방법이 가장 좋은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준다꼬 전 생각합니다.. 막 숨어서 조종하고 이야기속에서 제대로 등장하지 않으면 독자는 감질맛나서 쉬이 지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초반과 마지막의 이야기의 진행방식이 무척이나 긴장감 돋고 긴박감이 넘치는 스릴러의 즐거움이 가득했으니 다음에는 중간을 조금 줄여주셈, 싫음 말고, 천진에 우리 친구 살고 있는데 부탁함 하까 싶기도 하구만,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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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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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무가 우거진 자연 휴양림에 가족이나 모임이 있는 경우에 한번씩 가곤 합니다.. 낮에 방문한 곳에서 좋은 공기와 풀내음들이 가득찬 곳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느낌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느낌이 좋더라구요, 그러다가 저녁 늦게 나무가지를 줍는답시고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한참을 숲 깊숙이 들어가버린 적이 있습니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아무생각없이 나무가지를 줍다보니 완전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버린 것이죠, 정말 깜짝 놀랬더랬습니다.. 뭐랄까요, 순간이동을 해버린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얼마전까지 아래의 불빛이 보였는데 딴곳으로 이동해버리고 세상이 조용해져버린 이상한 느낌이었죠, 그런데다가 컴컴한 곳에서는 축축한 내음과 함께 뭔가 을씨년스러운 감각들이 미친듯이 올라오더군요, 얼마전까지 무척이나 신선하고 몸이 반응하던 그 느낌이 한순간에 공포와 두려움이 음습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듯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한참을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 희한하게도, 아니 우습게도 예전에 봤던 백설공주 만화에서 백설공주가 사냥꾼에게 쫓겨서 홀로 숲으로 들어설때 주위에서 온갖 위협적인 눈들과 어둠이 한순간에 백설공주를 두려움을 끝으로 몰아가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숲이 보여준 두려움은 어느순간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친근한 다람쥐와 여러 동물들의 따뜻한 눈망울로 바뀌게 되죠,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숲은 언제나 우리에게 편안함과 신선함과 자연 그대로의 평화를 주는 곳이지만 언제나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과 감정적 공포가 스스로 숲을 병들게 하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질시켜버리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캄캄한 숲의 어둠이 이어폰을 벗고 편안하게 숨을 들이쉬고 멀리 바라보니 조금 전까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아래의 불빛이 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알게 되더라구요, 어느새 손에는 한참동안 모은 나무가지들이 큰 쇼핑백 가득 담겨있어서 흐뭇하게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2. 판타지소설은 잘 안읽어요, 아무래도 장편의 도를 넘어서는 시리즈로 길게 이어지는 경향이 짙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완결을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한 책들도 제법 있었구요, 아님 읽다가 지쳐서 끝까지 다 마무리 못한 경우도 있었죠, 특히나 과거 국내에서는 판타지소설의 활기가 대단한 적이 있어서 저도 책 대여점을 통해서 상당히 많이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크게 어필할 정도의 대단한 작품들이 없어서 그저 그런 허접함을 느낀 판타지 장르에 대한 불신이 깊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외국 판타지라도 다를까, 국내 판타지소설은 외국의 이름난 판타지 문학에서 차용한 여러 소재들을 이용한 일종의 모방적 소설의 형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유명한 외국의 판타지소설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더욱더 편하게 다가오는 시대적 즐거움이 컸던지라 굳이 작품으로 읽어나가지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구요, 저는 그렇다구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분들은 작품으로 이어지는 매력적인 판타지소설의 즐거움을 놓지 않으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유명하답시고 국내에서 제법 이름값을 하는 시리즈를 몇몇 사다놓고 여유가 있으면 읽으리라, 하면서 꿍쳐놓은 작품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손에 들었다 놓았던 작품이 테메레르 시리즈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제가 읽고 싶어 집에 가져다놓았는데 아들이 먼저 읽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아들도 2권 초반을 못 넘기고 역시나 자기 침대 머리맡에서 몇달동안 날 펴주세요,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죠, 여하튼 그래도 근래 판타지 소설의 대세는 역시나 드래곤이라는 판타지적 존재가 등장하다보니 저도 관심이 많이 가고 또 모아오던 시리즈인데 이 작품이 여즉 완결이 안되서 저는 완결이 되면 시작하리라 홀로 독서에 대한 합리화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동안의 대장정이 마무리를 하는 듯 하더라구요, 9편으로 국내에서도 십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독자들을 애태우던 작품이 끝이 나는 듯 하는데, 더불어 그 끝을 함께할 나오미 노빅 작가의 단행본이 출시가 되었습니다.. 이거 홍보같은 문구로 이 단락을 채우긴 하는데 제가 읽은 작품은 "업루티드"라는 단행본 판타지소설입니다.. 제목에서 판단해보건데 뭔가를 뿌리채 뽑아버릴 정도의 대단한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나 봅니다.. 어떤 내용이냐믄요,


    3. 마법과 인간이 공존하는 판타지의 세상속에서 십년에 한번씩 마법사 드래곤은 마을의 처녀를 공물로 데려갑니다.. 그가 데려가는 여인들은 모두 열일곱의 성년의 나이가 막 시작되는 처녀들로 이들 중 드래곤에 선택된 여인을 드래곤이 거주하는 탑에 갖혀 십년동안 지낸 후 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여인들은 자유로워 진 후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죠, 하지만 드래곤이라는 영주에게 갖힌 체 십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마을의 사람들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질 못하죠, 드래곤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당하거나 수모를 당하는 등 여성으로서의 온갖 고초를 겪은 여인으로 떠도는 소문으로 인해 그녀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질 못하고 늘 새인생을 찾거나 타락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십년채 되는 해에 아그니에슈카와 카시아는 드래곤의 공물이 될 나이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어려서부터 모든 것이 뛰어난 카시아는 동네 주민 모두 드래곤이 선택할 여인으로 인정하면서 자랐고 카시아 역시 자신이 드래곤에게 받쳐질 희생양이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인지하면서 살아왔죠, 그리고 아그니에슈카는 모든 면에서 덜렁거리고 한순간도 단정한 적이 없는 말괄량이 시골 아이 그대로입니다.. 누구도 아그니에슈카가 공물로 받쳐질거라는 생각은 하지않죠, 하지만 카시아와 니에슈카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카시아가 공물로 받쳐지는 순간까지 서로를 보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드래곤에게 선택되어지는 날 드래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아그니에슈카를 선택하고 자신의 탑으로 데려가버리죠, 꿈에도 생각지못했던 상황속에 놓인 니에슈카는 왜 자신이 드래곤에게 선택되었는 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자신을 하대하고 아무렇게 대하는 드래곤에게서 조금씩 마법의 주문을 배우게 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파악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아그니에슈카가 그동안 온갖 덜렁거림과 단정치못한 성격은 그녀에게 숨겨진 마녀의 능력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죠, 드래군은 조금씩 니에슈카에게 마법을 알려주려하지만 그가 그동안 알아온 마법은 니에슈카에게 별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드래군의 입장에서는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드의 오염과 팽창을 막기위해 탑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우드와 맞서왔는데 그동안 자신이 선택한 여인들과는 다른 니에슈카의 모습에 당황하게 되죠, 니에슈카는 일반 마법과는 다른 교과서적인 마법이 아닌 흥얼거리 듯 조화로운 야기의 마법에 자신의 재능을 투영하게 되죠, 야기라는 마녀는 과거 우드의 숲에서 유일하게 탈출한 인물로 소문이 난 유일무이한 존재이기도 하죠, 그런 존재의 마법서를 니에슈카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능력에 투영하게 되지만 수백년동안 내려운 마법의 능력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수천년동안 이곳에서 자연과 인간과 동물들을 오염시키고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인간의 땅을 침범하려는 우드에게는 이들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그니에슈카는 조금씩 깨닫게 되는데,,,


    4. 줄거리가 길어졌습니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야기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우드라는 비밀의 숲인 오염적 존재를 인간이 아닌 하나의 자연적 대상에 존재적 대결을 설정한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죠, 일반적인 착한 마법사와 악한 마법사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싸움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독창적인 세계관입니다.. 인간을 자연을 두려워합니다. 그것도 인간을 오염시켜버리는 숲의 존재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죠, 그리고 이 우드라는 자연적 존재는 수시로 인간의 세상을 위협하고 자신들의 악하고 습한 세계를 인간의 땅으로 팽창시키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군립하고 있죠, 인간들은 이 우드를 단지 그들이 자신의 영역으로 침범해오지 못하게 자체적 울타리를 치는 능력밖에 없죠, 그러면서도 인간의 악한 본능과 영악한 본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폭력적 행태는 변함없이 자신들의 세상속에서 끊임없이 드러내죠, 이 작품도 그러한 인간적 불평등의 영악한 본성들이 중세적 무식한 인간의 판단력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배신하게 우드가 조종하는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여기에서 오염이라하면 우드가 만들어내는 악한 기운속에 인간들이 악마의 근성으로 변해버리는 것이지만 언제나 인간은 스스로의 본성속에 조금씩은 이러한 악마적 근성을 숨겨두고 있으니 우드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스위치만 살짝 건드려주면 끝인거죠, 그렇기에 인간은 연약하고 우드는 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작가는 이러한 인간과 자연과 마법과 세상의 이치를 동화적 상상속에 녹여놓고 이야기를 대단히 재미지게 풀어갑니다.. 말 그대로 만화적 상상력으로 입체감 넘치는 영화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5. 인물의 심리와 주변 상황과 표현의 이미지가 무척이나 시각적이고 플롯이 단순하면서도 얽히고 섥힌 상황적 묘미가 뛰어나 영화로 제작이 된다면 무척이나 신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나갔습니다.. 판타지소설에서 대단히 전형적인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음에도 우드라는 존재적 가치의 영향력은 소설의 중후반을 넘어서면 너무나도 거대한 즐거움을 안겨주기에 그동안 저급하고 허접하다고 여기며 무시했던 저로서는 이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듯한 유치한 판타지소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린 것이죠, 무엇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입체감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물론 주인공인 니에슈카와 드래곤이라 불리우는 탑의 영주 살칸 마법사의 캐미도 무척이나 뛰어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흘러버리고 잊혀져버릴 지도 몰랐던 카시아의 새로운 발견과 그녀가 보여주는 상황적 입체감이 대단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카시아는 사실 몇마디 하지도 않아요, 표현이나 상황에서는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언제나 소설속에서 주변인의 모습으로 보여지고 표면에 드러나질 않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 카시아가 쏟아내는 포스적 기운이 워낙 대단해서 이 작품의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더란 말인거지요, 작가는 이러한 작으마한 상황에서 전체를 이어가는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독자들이 작품이 서사상에서 아무것도 놓치질 않게 마법의 양탄자를 안팎으로 씨줄 날줄 할 것 없이 꼼꼼하게 짜맞춰나가는 탑 꼭대기에 숨겨진 물레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죠, 절대 물레의 침에 찔려 잠들지 않게 말이죠,


    6. 전형적이고 대중적이며 단순한 판타지 소설의 이야기의 꼴을 띄고는 있지만 이 작품은 그 속에 상당히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과서적인 마무리와 흐름의 판단이지만 독자들은 많은 것을 느끼고 흐뭇하게 작품의 내용을 좋게 끝맺음하죠, 흔한 권선징악의 판타지적 소설의 마무리는 어느 작품에서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이렇게 끝난다고 했다고 뭔가 억수로 지랄같은 스포일러를 날렸다고 그 누구도 저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으리라 믿는 것도 그러한 것입니다.. 판타지만큼 권선징악의 구조를 잘 꿰맞추는 장르도 없죠,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진행되어 끝을 맺지는 않습니다.. 대중적이고 전형적이긴 하지만 뭔가 새로운 형태의 끝맺음을 가진 좋은 영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아이들에게 테메레르는 완결되는 올 중반기에 한꺼번에 읽고 이 작품 "업루티드"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판타지소설의 읽기에 가능한 모든 연령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대단히 자연스럽고 일반적이면서 대중적 재미가 가득하고 편안하면서도 유쾌한 작품적 즐거움과 누구나가 인식하고 이해하고 수긍할만한 좋은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내용들이 종합세트로 꾹꾹 눌러 담겨있는 알차고 깔끔한 1권짜리 판타지소설의 즐거움을 만끽해보라고 권하고 싶다는 것이죠, 뭐시 그리 대단하다꼬 판타지소설은 장대하고 대서사의 영역으로 시리즈를 끊임없이 이어간데요, 이렇게 깔끔하니 단행본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좋구만, 그리고 판타지소설답게 조금 두꺼운 700페이지 상당의 무게감이라고 해도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후욱하니 시작과 끝의 시간적 틈이 길게 이어지지 않을만큼의 집중적 가독성이 대단하니 겁내지말고 펼쳐봐, 영화 한편보는 값으로 기깔나는 책속으로 빠져봐, 설날 세배하면서도 언능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어, 물론 벌써 조금씩 잊혀지고 있긴 하지만,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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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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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체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정신병자들인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엄청난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정신 심리를 파악함으로서 이러한 범죄성향을 어느정도 치료가 가능할까요, 아니면 이들은 개선 여지가 없는 정신병자이자 극악의 범죄를 저지른 악한 존재이기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게 옳은 것일까요,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반 대중의 공통된 의견인건 사실이죠, 가능하면 사회와 격리시키고 심지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또다른 범죄의 모방까지 발생케 만든 그런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들은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들의 고통과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때문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올바른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자신에게 구형된 사형이라는 죄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습니다.. 현시대는 사형이라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경우가 드물죠, 97년 이후 현재까지 사형집행이 된 적이 없죠, 여전히 사형을 언도받은 많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은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금 감형이나 여러 절차를 거쳐 사회로 내보내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모를 일이죠, 또다시 그들이 범행을 저지르는 일을 할 지, 아님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지, 하지만 대체적으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증후가 다분한 연쇄살인범과 성범죄자들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와 격리된 공간속에서 그들의 삶이 존재한다면 우린 그저 무시하고 잊어버리면 될텐데 어느순간, 어느공간에 그들중 단 하나라도 우리의 삶속에 침범하게 된다면,


    2. 과거에도 이러한 범죄들이 우리의 삶속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침투했는 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시대는 아주 흔한 일처럼 여겨질 정도로 뉴스에서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곤 합니다.. 무서운 일이죠, 나에게서 한걸음 더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하기엔 그들의 모습은 너무 우리의 이웃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더라구요, 특히나 허구와 자극적인 소재와 폭력적 묘사로 일관되는 대중소설을 읽는, 그래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책을 읽는 저같은 사람을 상당히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상한 사회적 잣대속에서도 일반 대중은 TV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피가 터지고 폭력이 일상화처럼 보여지는 드라마나 영화에 환호를 하고 아이들과 즐겁게 앉아서 보곤 합니다.. 뭐가 옳고 그른진 제 스스로 판단할 순 없으나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또는 사회적 폭력과 범죄에 방관하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내비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더욱더 극악무도한 사회적 범죄가 더이상 충격적이지도 않게 뉴스에서도 수시로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이번에 읽은 소설을 평하려고하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 극악한 범죄자의 양상이 단순한 정신질환적이고 심리학적 성향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인가, 아님 사회가 그들의 범죄를 조장하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무엇보다 우리가 주변의 사람들과의 연결고리와 인연성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여하튼 이 작품은 대단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정신병적 연쇄살인을 펼치는 소재로 일관하는 시리즈중 3번째 편이긴 합니다만 장르적 취향으로는 충분히 재미진 스토리라고 생각되는군요, 마르틴 S. 슈나이더 시리즈의 3번째 작품 "죽음을 사랑한 소년"입니다..


    3. 프롤로그를 펼치면 오년 전 벌어진 사건에 대한 연쇄살인자의 수감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트 판 론이라는 이름의 연쇄살인자는 마르틴 S. 슈나이더로 인해 더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사회와 격리시켜버리죠, 그리고 범죄자는 마르틴에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꺼내고 편지를 전달하지만 마르틴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피터 판 론이 마르틴에게 한 이야기를 택시기사가 묻자 마르틴은 그자가 자신에게 우리 사이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답니다.. 프롤로그만 놓고보면 뭔가 이 5년전 사건의 가해자인 연쇄살인자가 다시금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해보입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알다시피 마르틴은 자비네와 한번씩 파트너쉽을 펼치며 몇몇 사건을 해결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앞선 두가지 사건에서 이들이 해결한 이야기를 우린 익히 경험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사건의 서막이 열리고 있습니다.. 아니 새롭다기보다는 과거의 사건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죠, 시작과 동시에 스위스의 베른에서 발생한 사건은 5년전 피터 판 론을 붙잡은 형사중 하나인 은퇴한 호로비츠가 프로파일링의 도움을 주고자 하죠, 하지만 그가 피해자를 보자마자 독일에 있는 슈나이더에게 호출을 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마르틴 S. 슈나이더가 오기전까지 현장을 보존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시간은 사건이 벌어진 10월 1일 이전인 9월 23일 경으로 되돌아갑니다.. 한나라는 이름의 심리학 전공자가 정신이상 범좌자만 모여있는 오스테버잔트로 발령받아 오게 됩니다.. 이곳은 5년 전 슈나이더가 피트를 격리시킨 곳이죠, 한나는 자신의 경력과 심리학자로서의 발돋움을 위해 이곳을 오게 되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전임자가 갑자스럽게 죽음을 당한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그녀 또한 큰 비밀을 감추고 있죠, 무엇보다 이곳은 피터 판 론이라는 이름의 연쇄살인자가 격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럼 우린 프롤로그와 현재의 사건과 일주일전의 한나의 부임지와 모든 것을 합쳐보면 하나의 교집합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피터 판 론입죠, 근데 글쎄올시다.. 피터는 현재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사회와 격리된 외딴섬에 있으니 그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존재하는 것이죠, 자, 이제 슈나이더와 자비네의 수사적 단서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4. 늘 그렇지만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미스터리 스릴러의 진행방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또한 대단한 속도감으로 독자들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가독성도 뛰어나죠, 이 작품의 시리즈가 거듭됨에 따라 이러한 서사적 재미의 업그레이드도 상당히 뛰어납니다.. 특히나 이번 편은 이러한 속도감 넘치는 상황적 연결감이 아주 좋아서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이야기의 주체적 역할을 담당하던 마르틴 슈나이더라는 프로파일러의 개인적 영역의 이야기가 지배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더욱더 독자들에게 작품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해줍니다.. 이 작품을 읽어보신 분들이시라면 주인공의 캐릭터가 주는 입체감이 아주 대단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고 계실테니까 말이죠, 또한 이 작품은 전작들과 인물적 연결은 이어지지만 전반적인 스토리의 상황적 구조속에서 단행본의 역할로서도 충분히 그 재미가 줄어들지 않으니 이 작품 자체만으로도 그 즐거움을 만끽하실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여하튼 작품의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능력만으로 따진다면 제가 읽어본 대단한 영미권의 뛰어난 스릴러 마스터들의 작품의 구성과 비교해서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과정만 놓고보면 영미권에서도 충분히 사랑받고 인정받으실 작가님이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작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대단히 알차고 꼼꼼한 구성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집중을 시켜주는 장점이 극대화된 작가님중 한분이 아니신가라꼬 전 생각해봅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작품을 읽고나면 느끼는 아쉬움중의 하나가 이렇게 매력적인 서사와 구성적 즐거움을 보여주심에도 마무리에 와서는 뭔가 급하게 답을 내려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까 소설 시리즈의 인물적 구성이 프로파일러와 대단한 공감적 직관이 뛰어난 형사의 조합이다보니 소설 전반에 걸쳐 이어지는 스토리상의 수많은 단서적 떡밥과 대결적 구도가 마지막의 몇단락 전까지 그 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꽁꽁 숨겨두거나 미스테리한 구성적 흥미를 돋궈주시는 것 까지는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이것을 마지막에 정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동안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는 것이지요, 이번 편에서도 이러한 아쉬움은 분명 남습니다만 위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이러한 아쉬움마저 감소시키는 업그레이드가 이어지고 있으니 만족했다고 해야겠죠, (단락 시작은 단점인 듯, 정리는 장점인 듯), 오히려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의 에필로그의 방법론은 대단히 대단히 충격적인 결말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읽어보시고 즐기시는 독자분들이시라면 저와 같은 이게 모야,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라는 궁금증이 증폭됨을 느끼실겝니다.. 깜짝 놀랬습니다.. 뭐 저는 그랬습니다..


    6. 이 소설은 스릴러소설의 장점을 대단히 많이 보여주는 대중소설입니다.. 즐겁고 집중도 잘되고 누구나 즐길만한 작품입죠, 물론 소재상이나 스토리의 구성상 매우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적 이미지가 등장하고 일반독자의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과장된 범죄적 성향을 드러내긴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대중적 흥미에 부합하는 서비스라고 여깁니다.. 작가는 이것이 현실을 대변하는 범죄적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비현실적인 상황적 범죄현장을 임의로 만들어내었다는 생각을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작품을 읽을때마다 하게 됩니다.. 스스로 과장된 범죄의 자극적 소재를 임의로 만들어내어 인간의 근원적이고 본능적이며 정신병적 질환의 범죄적 성향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뭐 전 그렇게 좋게(?)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싫으신 분들은 싫겠죠, 말그대로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스릴러는 잔혹합니다.. 이 점에 대한 부분만 인식하시고 난 피터지고 사지가 절단되고 온 몸이 찢어진 이야기가 나와도 이건 비현실적 상황을 임의로 만든 것이라는 영화적 상상으로 희석시키실 수 있으시다면 일반 독자분들도 즐길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런 작품 읽었다고 우리가 살인마가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거쥐, 쪼오기 같잖게 잘난 척 하는 양반들, 제발 좀 이런 책 읽은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시길 바라고 니나 멍청하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드라마나 영화보면서 입 벌리고 있지마시길,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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