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그림책 작가로,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상상력이 풍부한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자란 그는, 이미 네다섯 살 때에 장차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하퍼콜린스 사의 유명한 어린이 책 편집자인 어쉴러 노드스트롬의 눈에 들어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간결하지만 치밀한 그림과 풍부한 상상력이 어우러진 판타지를 창조하는 작가입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그림책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64년에『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칼데콧 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로라 잉걸스 와일더 상, 1970년 안데르상 상 등을 받았습니다. 작품으로『깊은 밤 부엌에서』『꼬마 곰』『꼬마 곰에게 뽀뽀를』『꼬마 곰의 방문』『사랑하는 밀리』『창문 밖 저 건너 Outside Over There』『돼지의 호수 Swine lake』『케니의 창문 Kenny's window』등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모리스 센닥 

 

모리스 센닥은 아주 유명하고 중요한 그림책 작가입니다. 혹시, 나한테만 그런 건 아닌가요? 지금부터 칠 년쯤 전에, 모리스 센닥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고 있을 때, 오로지 모리스 센닥 한 사람에 관한 연구가 엄청 두툼한 책으로 나와 있는 걸 보고는 무척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 뒤에야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게 되었지요.

솔직히, 그 책을 처음 보고, 재미는 있었지만 그다지 황홀해지거나 (맥클로스키의『기적의 시간』처럼) , 무릎을 탁 치면서 웃음을 터뜨리게 되거나 (토니 로스의 『오스카만 야단맞아』처럼), 코끝이 찡해지거나 (욜런과 쇤헤르의 『부엉이와 보름달』처럼), 가슴이 묵직해지면서 생각에 잠기게 되거나 (스타이그의 『아모스와 보리스』처럼) 하지는 않았습니다. 유연하면서도 힘있는 인물들의 동작, 촘촘하지만 답답하지 않고 다채롭지만 어지럽지 않은 묘사, 여백이 많음에도 꽉 찬 듯한 화면 등이 뭔지 대가 같다고 느꼈을 뿐,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매혹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책을 냈을 때 센닥의 나이는 ‘겨우’ 서른 다섯 살이었습니다. 서른 다섯에 대가를 느끼게 하다니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책은 자꾸만 들춰보게 됐습니다. 보면 볼수록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림책에 관한 이론 글에도 이 책은 자주 언급됐습니다. 그림책 분야의 일을 하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 입에도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급기야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꽤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림책 공부를 할 때는 정말 할말 많은 교재 노릇을 노상 톡톡히 해 주었습니다. 이 책은 칼데콧 상을 받았고, 북아메리카 지역의 어린이문학 연구자들 학회인 ChLA(Children's Literature Association)가 선정한 그림책 분야 ‘시금석’ 열 다섯 권 중 하나로 뽑혔습니다. 월터 크레인, 랜돌프 칼데콧, 케이트 그린어웨이 등 19세기 그림책 선구자들부터 현대 작가들까지 망라한 목록에 들어갔으니, 굉장하지요. 물론, 영국과 미국 쪽의 그림책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요. 센닥은 어린이문학계의 노벨 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안데르센 상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참 신기한 건, 그렇게 대단한 작가이면서 정작 유명한 작품, 독자들에게 두루 사랑받는 작품은 딱 하나, 『괴물들이 사는 나라』뿐인 것 같다는 점입니다. 물론 『깊은 밤 부엌에서』도 있고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도 있기는 하지만,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은 글쓴이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온전한 센닥의 창작으로 보기가 어렵고요 (그리고 약간 지루하고 어렵다는 평도 들려 옵니다), 『깊은 밤 부엌에서』는 활달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지만 60년대 미국의 생활과 대중 문화 코드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 외에 그림 형제의 전래동화나 마더 구스 전래동요를 텍스트로 삼은 책, 미나릭 같은 어린이 책 작가에서 아이작 싱어 같은 노벨 상 수상 소설가의 글에 일러스트를 맡은 책들도 있고, 동네 꼬마들이 천진난만하게 노는 이야기를 쓰고 그린 책도 있지만, “센닥은, ‘괴물들’ 그거 하나야!” 하는 단호한 소리가 나올 정도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 버닝햄이나 레오 리오니 같은 경우와는 아주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나는 그 이유가, 센닥이 이 작품에 자기 자신을 너무나 온전히, 노골적으로, 있는 힘껏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맥스의 심리, 그의 환상, 괴물들의 캐릭터는 어린 시절 작가 자신, 주위 인물들에게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의 책에 나오는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어느 정도 작가 자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비평가들의 지적에 센닥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일종의 자기 캐리커쳐라는 것이었습니다. 센닥의 인물들은 삼등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짜리몽땅’한 걸로 유명한데, 그는 그들이 “머리를 두들겨 맞고 또 맞고 해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자평했습니다. 못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망치로 두들기는 장면이 연상되는, 좀 험악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는 센닥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십니까, 나는 옛날 어린 아이였던 내가 지금의 나로 자라났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가장 생동감 있고 graphic, 창조적이고 plastic, 육체적인 phisical 방식으로 말입니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 엄청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아이와 커뮤니케이션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아이와의 연락이 끊어지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의 자기를 지키기 위해 이토록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그림책 작가의 강변은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 아이를 자기 안에 가둬 놓고 자기의 일부분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독립적인 거리를 두면서 생생하고 창조적이고 육체적인 존재로 간주하면서, 어른으로서의 자신과 대등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정말 놀랍고 새롭습니다. 바로 그런 자세가, 막연히 관념적으로 어린이를 그리는 책, 단순한 회고담을 펼치는 책들과 센닥의 책을 구별해 주면서, 그의 책을 어린이 책 분야를 넘어서는 독특한 경지의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일 것입니다.

센닥은 1928년 뉴욕 브룩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폴란드 사람이었는데, 센닥이라는 이름은 히브리 어로 ‘대부’ 혹은 ‘스폰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와 유대 전래 동화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아이작 싱어가 다시 쓴 유대 민담에 그린 일러스트는 무섭고, 우습고, 유쾌하고, 슬픈 이야기의 분위기를 정말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센닥은 주로 침대에 누워 책을 읽거나 공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좀 큰 다음에는 『오페라의 유령』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의 영화를 보러 다니기 좋아했다는군요. 어린 시절부터 센닥의 마음 속에는 공포, 특히 ‘잡아먹히는’ 공포에 대한 강박관념이 꽤 컸던 것 같습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친척들의 ‘깨물어 먹고 싶다’는 비유적 표현에도, 엄마가 밥을 조금만 늦게 내오면 진짜로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또, 아시다시피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게 맥스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대사지요. 나중에 그림 형제의 전래동화 몇 편을 골라 책으로 만들면서 붙인 제목도, 그림 동화 중에서 가장 잔인한, 그래서 웬만한 번역본에서는 아예 빼 버리는 『노간주 나무』였습니다. 그건 새엄마가 의붓아들의 목을 댕강 잘라 죽이고, 친딸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죽은 의붓아들을 요리해서 남편 그러니까 아이 아버지에게 먹이는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뭔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그만큼 심각하고 진지하게, 비중 있게 받아들인다는 말이 되겠지요. 센닥은 그 공포에 항복하지 않고 그것을 진지한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밀고나갔던 것 같습니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도 ‘두려움fear’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게 범상하게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그건 그냥 단순히 무서움을 느낀다는 감정 토로가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센닥의 책은 잡아먹힘의 모티프가 그렇게 많으면서도 정작 독자들에게는 공포를 넘어서는 즐거움과 안도의 절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습니다. 맥스가 엄마를 잡아먹겠다고 협박하는 말이나, 괴물들이 맥스를 잡아먹겠다고 협박하는 말이, 진짜 잡아먹겠다는 게 전혀 아니라 오히려 지극한 사랑에서 나온 경쾌한 유머로 들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맥스의 방에 따뜻한 저녁밥이 차려져 있다는 대목에서는 정말로 마음 훈훈해지는 안도감을 한껏 즐길 수 있습니다.

『깊은 밤 부엌에서』에도, 밀가루 반죽 통에 빠진 미키를 예의 그 삼등신인 어른 요리사들이 신나게 휘젓는 장면이 나옵니다. 휘젓기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맛있는 ‘미키 케익’을 만들려고 오븐에 넣어 굽기까지 합니다. 오븐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고, 빵이 갈색으로 구워지면서 냄새까지 솔솔 납니다. 이제 곧 미키는 커다란 요리사 아저씨들 입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미키가 오븐에서 톡 튀어나옵니다. 별이 반짝이는 신비한 보라색 밤하늘을 배경으로 반죽 옷을 입은 미키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오븐에서 튀어나오는 장면은, 난처한 표정의 요리사 아저씨들, milk와 mickey를 이용한 말놀이 대사와 어울려 한껏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어린 아이다운 공포와 활기가 뒤섞인, 그리고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센닥의 책들은 아주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캐릭터, 문장, 편집과 디자인 등 모든 요소에서 20세기 그림책의 한 표본을 보여 주는 책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센닥에 대해 조금 알고 나니, 그 책을 보면 볼수록 어린 시절의 자신에 깊은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거기서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한 예술가의 강력한 힘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마냥 행복하고 자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한 집안, 병약한 몸, 끔찍히 싫은 학교……. 우울하고 두려운 날들이 많았겠지요. 그러나 센닥은 그런 어린 자신을 너무나 소중히 간직하면서 그것을 자기 예술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위대한 어린이 책 작가들의 위대한 점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이 어쨌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자기 발견과 자기 발전의 훌륭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는 데에 말입니다.
(출처 오픈키드 김서정 | 200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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