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제가 되었네요.
어제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날이었는데요, 이런 시기에 만난 소설이라 더욱 재미있고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어요.
《총리의 남편》에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인 '소마 린코'와 그녀의 남편이자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인 '소마 히요리'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 물론 소설이지요.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여성 총리가 탄생한 일은 없으니까요.
소수 정당인 직진당의 당수인 '소마 린코'에게 어느날 여당 거물인 정치 9단 '하라 구로'가 접근해 현재의 내각을 무너뜨리고 야당 연립정권을 수립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그 뒤 하라 구로는 소마 린코를 총리로 내세웠고, 결국 사상 최연소이자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됩니다.
소마 린코는 그 전까지의 총리들과는 달리 화려하고 실속없는 미사여구로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기보다는, 소신 표명을 하며 자신이 추구해 나갈 정책들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함께 힘을 합치자고 호소합니다.
소마 린코를 도와 그녀가 총리로 오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하라 구로', 속을 알 수 없는 정치 9단인 그는 총리가 자신의 생각보다 인기를 얻고 자신의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을 듯 하자 음흉한 속내를 몰래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는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소마 린코 대신 그녀의 남편인 히요리를 타깃으로 음모를 꾸미는데요, 순진하고 어수룩하며 착하디 착한 히요리는 아주 가뿐히 그 계략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라 구로의 뜻대로 일들이 돌아갈 듯 했으나... 히요리의 순수함은 그 정도를 넘어 큰 힘을 발휘해(?) 뜻밖에도 방향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소마 린코는 총리로서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정책들을 잘 추진해 갈 수 있을까요?
소마 히요리는 총리의 남편으로서 총리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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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총리의 남편인 소마 히요리의 시선으로 진행되는데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새 관찰일기를 쓰던 조류학자였던 히요리는 아내가 총리가 된 날부터 특별한 관찰일기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최초의 여성 총리인 '소마 린코'의 행적을 일기로 남기려는 거였죠.
어쩌면 소마 린코의 입을 통해 그녀의 행적이나 인격 등이 드러났다면 조금 재미가 덜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히요리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사건들은 은근히 흥미진진하고 두근거렸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순수한 내면을 지닌 히요리이다 보니, 그의 어수룩한 행동에 가끔은 한숨이 나오고 가끔은 안 돼를 외치게도 되는... 읽는 내내 무슨 스릴러 소설인 양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하하하.
그런데 참 이상하면서도 환영할만한 일인 건, 그의 그 어수룩하고 순진하고 순수한 모든 행동 안에 아내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인지, 그는 적군조차 아군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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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이 소설을 '코믹+판타지'로 여겼다고 해요. 여성 총리라니 웃기지도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이예요.
하지만 <총리의 남편>은 2020년에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고, 저널리스트인 모씨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외국의 여성 총리들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며 남성우위가 계속되는 일본 사회에 린코와 같은 총리가 있었다면 신종 코로나 대책을 어땠을까를 상상하고 싶어진다고 평가했다고 해요.
이 책을 출간하신 마포 김 사장님은 이런 현상들을 보며 이제 <총리의 남편>은 판타지가 아니라 리얼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평해 주셨지요.
그.런.데.
저는 여성 총리여서 판타지인 것이 아니라, 이런 정치인 또는 지도자가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 소설은 여전히 판타지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더라구요.
포퓰리즘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치인은 과연 어디에 있나요...라고 묻고 싶어졌구요.
소마 린코는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원하지 않는 정책인 증세를 과감히 내세우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현실에서는 인기를 잃을까 혹은 표를 잃을까 두려워 과감한 정책은 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당선된 후에 국민은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이 많지 않나라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만 했어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분명 좋은 분들도 계시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소마 린코가 펼친 정책들은 사실 현재의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정책들이 많아 보여서 더더욱 그녀의 행보가 인상깊었습니다.
굳이 '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도 없이 앞으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소마 린코 같은 훌륭한 정치인이 꼭 나타나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봅니다.
아이들이 바라보며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을 먹게 한다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 어려운 걸 소마 린코는 해 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힘과 의지가 되어 주지요.
역시 '소마 린코'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마무리까지 아주 완벽하게 좋았던 소설 《총리의 남편》!!!
책을 읽는 동안 소설 속에서나마 멋진 총리 '소마 린코'를 알게 되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