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는 손보미 님이다. 이 분의 책은 처음 접해 보았다. 

책 제목이 특이하다. 랄프 로렌이 설마. 맞다. 우리가 모두 아는 패션 브랜드, 그 랄프 로렌이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었던 브랜드이다. 내가 어렸을 때, 넉넉하지 못해서 혹시라도 누군가 입고, 지나가거나 학교에 누군가 입고 오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디어 랄프 로렌. 여기에서 디어는 영문 편지 보낼 때 받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 쓰는 언어이다. 결국, 랄프 로렌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인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주인공이 좋아했던 여자아이는 랄프 로렌사의 제품을 수집하는 마니아이다. 각종 옷, 신발, 액세서리를 모으기 위해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편지를 보내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집념을 가진 소녀이다. 그런데, 이 소녀를 좋아하는 주인공은 소녀에게 해서 안되는 말을 한다. 그 이후 둘의 관계는 멀어진다. 내가 어렸을 때 랄프 로렌에 느꼈던 그 감정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랄프 로렌 옷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 책의 주인공을 이해 못한 것이다. 그러니, 소녀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 사는 세상이 다르니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책을 읽다 보니 웬일인지 어디에서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전에 주제 사라마구의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에서 등기 사무소의 말단 직원인 주제씨는 우연히 접한 한 여자의 과거를 집요하게 조사한다. 대체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정말 정열적으로 한다. 너무 진지해서 나중에 무언가 이렇게 빠져서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디어 랄프 로렌’의 주인공도 대학원에서 쫓겨난 후 학생 때 좋아했던 여자아이의 소원이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을 우연히 기억하고, 그 이후 1년 동안 랄프 로렌의 과거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들을 쫓아다닌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쫓겨났으니 허무한 마음에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미루고, 현실을 잠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랄프 로렌에 대한 조사에 탐닉했다고 보면, 주제씨와 다르게 명확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책의 결말로 갈수록 명확한 사실을 알고 싶었지만, 이를테면, 랄프 로렌의 숨겨진 진실, 주인공의 신상 변화 등을 기대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랄프 로렌이 왜 자신의 과거를 그리 숨겼는지, 랄프 로렌을 도와주었던 조셉 플랭크의 과거가 어땠는지, 왜 그들이 결별했는지 그냥 알 수 없음으로 끝난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과거를 명확하게 알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를 알면서도 파고든다. 마치 결과는 중요하지 않고, 무언가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계속 파고들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그리고, 1년 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1년 동안 무의미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끝내고, 돌아가는 결말이 내가 지적 소양이 부족한 건지, 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건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누군가의 인생을 조사한다는 것은 만만하지 않은 작업인 거 같다. 그들만의 생각이 있고, 사연이 있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고, 이 모든 것을 파악하기에는 불가능하다. 누군가 나를 조사하겠지 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때 그랬지. 그런데, 뭐. 그냥 그런 거지 하고 담담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치열했던 고민이 있고, 열정이 있고, 갈등과 기쁨, 슬픔 등이 있었지만, 지나면 그냥 그때 일로 남고 마니. 뭔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난 뭔가 하나에 집중적으로 잘 빠지지 못하기 때문에 주제씨나 이 책의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도 느꼈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아마 그들처럼 행동을 못할 것이다. 뭔가 현실적인 답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무나 할 수 없다.


2017.06.08 Ex Libris HJK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06-0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문장에 공감합니다.

정말 소설 속의 주인공도 아무나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긴 평범한 주인공이라면 소설이 맨숭
맨숭하지 않을까요. 무언가 다른 변별
점이 있어야 하니 말이죠.

아타락시아 2017-06-09 21:1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책 읽다 보면 주인공들이 정말 이해가 안될 때도 있는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