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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육아 -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육아의 여백을 찾는
고지혜 지음 / 언폴드 / 2023년 7월
평점 :
비슷한 나이에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보니 공감할게 많을 것 같아서 읽었다.
[최소한의 육아 / 고지혜 / 언폴드]
저자는 아이를 가지려고 맘먹으면 바로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고, 서른 중반에 첫째 아이 정글이를 인공수정 3회, 시험관 3회를 거쳐 얻는다. 이후 둘째 정의는 무려 7번의 시험관을 거쳐 마흔이 넘어 출산한다.
인공수정(or 시험관)을 거친 분들은 백이면 백 공감할 것이다. 그 지독한 시간을 견디고 와준 이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렇지만 시술 기간 동안의 절박함과 절실함이 무색하게 임신기간도 육아도 행복하지만 않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힘든 건 힘든 거.
늦게 시작한 육아에 '엄마'라는 이름이 버거웠던 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단다. 아이가 한 끼 정도는 굶어도 괜찮다고, 성격 좋은 아이는 엄마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지친 어깨를 두드리며 '애썼어, 지금도 충분해'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을 바랐다고 한다. 부디 이 책이 읽는 이에게 그런 위로와 응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있다.
아직 임산부인 나는 저자가 응원하는 무게만큼 응원과 위로를 받지 못했지만 독서하는 동안 스며들었던 내용이 육아를 실제로 경험하는 순간에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 누구보다 현재 학령기 전 단계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분들이 읽었으면 싶더라.
파트가 3개로 나누어져 있지만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육아를 하면서 느낀 절망? 불행? 그리고 행복, 깨달음, 에피소드 등이 줄- 줄 이어진다. 마냥 쭉 읽게 된다. 저자의 표현과 취향이 내 마음에 쏙 든 만큼 많은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또한 경험의 부족으로 공감의 밀도가 덜했을 뿐 알게 모르게 미리 가불해서 받고 있던 육아 압박을 터트릴 수 있었다.
남들처럼 이 아닌 내 방식의 육아를 할 자신감이 최소 10그램 정도는 증량되었다.
★ 좋은 아이는 좋은 엄마가 만든다며 세상은 아이에게 이중 언어를 만들어주고 자손감을 높여줘야 한다고 조급하게 내몰았다. (p.5)
★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병원을 오간 덕에 정글이를 얻었지만 나의 젊음과 통장 잔고는 그 길 위에서 휘발되었다. (p.21)
★ 책의 맨들맨들한 질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검은 글씨, 아이의 부름에 읽다 만 페이지 귀퉁이를 접으며 지성인으로 인도되는 설렘, 다 읽은 후 살짝 부풀어 오른 책을 책장에 꽂을 때의 충만감. 종이책이어야만 느낄 수 있는 이 감정들을 아이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p.41)
★ 사표와 함께 상실한 것은 월급뿐만이 아니었다. 서로의 일과를 공유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던 동료들을 잃었다. 외로웠다. (p.55)
★ 경험은 노련함과 익숙함을 주었지만 평정심은 가져다주지 못했나 보다. (p.59)
★ 엄마표 육아는 거창한 게 아니었다. '가르쳐야겠다'라는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를 수평적 존재, 능동적 존재로 존중하고 공감하자 몸도 편해지고 나에게 여유가 생기니 아이도 더 예뻐 보였다. (p.67)
★
"이름이 뭐야?"
"정글이에요."
"성이 정씨예요."
내가 짧게 덧붙였다.
"다음에 또 오면 그 멋진 이름 불러줄게."
(p.80~81)
★ 행복은 이미 우리 옆에 바짝 와 있었지만 멀리서 행복을 찾느라 아이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p.124)
★ 막막함에 혼자 수많음 'If'를 던져본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는데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은 오늘도 끝이 없다. (p.132)
★ 내 몸은 과거의 사건 사고를 나이테처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가 출산 후에 그대로 출력했다. (p.133)
★ '너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이렇게 근사해졌어'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p.135)
★ "아니 다 알아듣지. 말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눈, 손가락, 피부로도 할 수 있거든." (p.150)
★
"Who is your best friend?"
"It's me."
(p.152)
★ 나는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서 산발적으로 떠다니던 지식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사랑한다. (p.157)
★ 몸에 밴 겸손이 근육보다 더 빛났다. (p.165)
★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을 내일의 이 단조로움이 막막해 짧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p.167)
★ "엄마! 가슴속에 하트가 너무 많아서 우유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p.168)
★ 그놈의 미러클 모닝 좀 안 하면 어떠랴. 평생을 소비자로 살아온 내가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의 강을 건너 생명을 만들어낸 생산자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진짜 미러클이다. (p.196)
★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내 시간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형벌처럼 느껴졌다. (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