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뱃멀미를 겪으면서 어른이 되더라

 

                                엄 영 훈

 

제주 가는 밤배였다

뱃전을 치는 밤바다는 물귀신의 옷자락으로 펄럭였다

처녀 귀신은 총각만 부른다는데

열일곱 소년은 마지막 목숨줄인 양 난간을 움켜쥔 채 떨고 있었다

흰 옷자락을 펄럭이며 겨울 바다가 유혹하고 있었다

엄마 뱃속 같을 아늑한 잠

장막 뒤의 아득한 열락으로

일렁이는 노래로 재촉하고 있었다

난간을 잡은 빨간 손이 곧 부서져 쏟아질 유리창처럼 떨 때

울컥 올라왔다

 

몸이 울컥울컥 토하고 있었다

맛나던 목포의 저녁이 시큼한 콧구멍으로 올라왔다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샛노란 위액 한 방울까지 다 쥐어짜도 질책은 멈추지를 않았다

제 육신에 담긴 소년을 척추를 접으며 토사물 위에 무릎 꿇렸다

뒤채는 바다와 흔들리는 여객선과 더 사나운 악몽에서

몸이 먼저 깨어나 샛노란 경고장을 날렸다

인생이란 항해는 본디 흔들리는 것이고

사납게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시선만은 멀리

저 멀리 수평선의 소실점을 바라보라고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봐야겠다*

 

기착지의 등대가 깜박이고 있다

고향 집도 식구가 돌아올 때까지 밤을 새워 졸고 있을 게다

미몽(迷夢)의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고 있었다

갓 벼려낸 호미의 색깔로

이빨 맞부딪치는 몸의 소리로

 

*남진우 <로트레아몽백작이 방황과 좌절에 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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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 2017-12-1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