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빈 운동장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떠난 빈자리엔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면 비로소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네는 빈자리로 기다리고 있었다

 

열려있는 교문에 이끌려 한 소녀가 운동장에 들어왔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그네에 앉았다 소녀는 무심히 앉았지만 기다리며 늘어진 줄만큼 그네는 출렁였다 운동장에 차오르는 어둠에 발이 젖어서일까 땅을 차던 소녀는 신발 끝으로 밀어 조금 물러났다

 

발끝 쐐기를 풀자 그네는 출렁이며 직선 같은 짧은 호()에 소녀의 무게를 허공으로 실었다 조그만 출렁임에 소녀의 눈에 물기가 출렁 넘쳐 한 방울 굴러 떨어졌다 소녀는 고개를 묻었다 그네도 호의 가장 낮은 한 점에 동작을 멈추고 말았지만 소녀의 가슴에서 오는 파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그네 줄은 진동을 멈추었다

 

소녀는 다시 발끝으로 그네를 뒤로 밀었다 이번에는 까치발 끝이 닿는 힘껏 밀어 추진력을 모았다 그네 줄은 팽팽한 반동으로 소녀를 밀어 올렸다 소녀는 한 손을 빼 줄을 잡았다 소녀는 그네의 활공에 고개를 들더니 두 손 다 줄을 잡았다 소녀는 땅을 차던 발끝을  가슴으로 힘껏 잡아당겨 그네에 힘을 실었다 그네는 예각을 벌리며 호를 긋더니 이내 둔각으로 솟아올랐다 소녀가 가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밤의 무게를 벗어나 비상했던 소녀는 그네에서 폴짝 뛰어 내려 손수건을 꺼냈다 안경을 벗고 마른 눈물자국을 꼼꼼하게 지웠다 무심한 별빛을 바라보더니 옷매무새를 만진 후 거리로 나섰다

 

그네는 소녀가 떨구고 간 눈물의 무게 때문에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어와 눈물을 날려 보낸 후에야 비로소 가벼워 질 수 있었다 텅 빈 운동장에는 심해처럼 어둠이 엉기고 빈 그네는 수초처럼 혼자 몸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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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 2017-04-0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면서 다시 읽어보고 있습니다.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