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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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부분과 전체’ 이후로 아름다운 과학책을 하나 발견했다. 12월의 끝자락에 읽은 이 책은 분명 올해 내가 읽은 책 베스트가 될 것이다. 물리학에 대한 기본 소양이 부족해서 9장부터는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이 꽤나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는 책이었고, 분명 또 읽게될 책이 아닌가 싶다.

나는 요즘 드문드문 실재에 대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시간이나 공간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자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근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슬퍼지고 만다. 단순히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라고 마음을 편히 먹으면 그저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할 수도 있을텐데 어쩐지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 이런 사소한 일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것도 가치없게만 느껴진다. ㅠㅠ

‘현재’가 국소적인 범위에서만 존재한다는 개념은 꽤나 재미있다. 이미 시차가 존재하는 것이나, 상대성 원리에 의해 시간의 흐름이 속도에 따라 질량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닌데도 그 국소적인 범위를 아주 작게 잘라서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의 최소 단위에 대한 이야기나 광원뿔로 나타낸 시간의 도식은 새롭게 깨달아진 부분이다. 이렇게 일그러진 시간 속에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건들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나를 둘러싼 국소적인 환경에서 우리는 그런 이상한 것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생활할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면서도 한 편으론, 얼마나 무지했으면 새로 알게된 시간 개념을 이상하다고 느끼는 걸까 싶기도 하다.

책에 나온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학교에서 의미를 모른 채 배웠던 t에 대한 수식들이 시간은 확실하며 일관된 고정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그 오해에 의해 우리의 사고가 둔감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또 그런 거라면,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이나 과학 내용이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의문을 갖게 된다. 어쩌면 전달자의 문제일까? 교육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뜯어고쳐야 된다는 생각은 드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과학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확실한 것이 없이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이론이 태동하고 또 사실이라고 밝혔던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그 반증가능성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같은 일개 민간인들은 새로운 이론에 대해선 그냥 잠깐씩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지난 번 읽은 책에서 시사 상식에 대한 내용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워하면서 과학에 대해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비판하던 김상욱 교수의 문장이 문득 생각난다. 정치나 사회는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알아야한다는데 그렇다면 시간은 어떠한가. 공간은, 현재는, 미래는, 우리의 과거와 삶과 이 우주는.
과학을 어려워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과학을 몰라도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가 없다. 그 안에 모든 역사와 철학과 예술이 담겨 있는데 어째서...?! 뭐? 예술은 궁금해도 과학은 안 궁금하다고? 역사는 좋아해도 과학은 싫다고?
카를로 로벨리의 다른 책을 구입해두었는데 이 책을 너무 오래 읽는 바람에 아직 읽지 못했다. 조만간 철학과 소설을 건너 다시 로벨리에게 갈 생각이다.


p.41
어떤 구성이 다른 구성에 비해 좀 더 특별하다는 개념은 카드들의 어떤 측면만 봤을 때(예를 들면 색상만 보는 것) 의미가 있다. 모든 카드를 다 구별하면 구성은 전부 동등해진다. 어느 것이 더 특별하다거나, 어느 것은 덜 특별하지 않다. ‘특수성’의 개념은 세상을 대략적으로, 희미하게 바라볼 때만 만들어진다.

p.52
우리의 ‘현재’는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p.53
우주 곳곳에 잘 정의된 ‘지금’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환상이자 우리 경험의 부적절한 외삽이다. 비유하자면 무지개가 닿은 숲의 한 지점처럼, 직접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보러 가면 없는 것이다.

p.58
우리가 우주의 모든 시간과 그 사건들의 시간 관계를 표현하고 싶어도 그림 3-5와 같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단 하나의 보편적 기준으로는 불가능하다. 대신 그림 3-6처럼 모든 사건의 위와 아래에 미래와 과거 사건의 원뿔을 놓고 표현해야 한다.

p.77
아직도 간혹 라이프니츠라는 이름에 ‘t’를 붙인 기록 Leibnitz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당시 라이프니츠는 t, 즉 뉴턴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굳은 신념을 보여주려고 자신의 이름에서 ‘t‘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p.80
우리는 공기를 두고 어떤 때는 특별하게 취급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p.91
시간의 ‘양자화’는 시간 t의 거의 모든 값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정확한 시계로 시간 간격을 측정한다면, 측정된 시간은 오직 몇몇의 분리된 특정한 값만을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p.105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p.106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p.119
보통 ‘무엇이 존재하는지’, 혹은 ‘무엇이 실재인지’를 묻는 것은 동사와 형용사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묻는 것일 뿐이다.

p.141
단단한 대리석 탁자는 내가 원자 정도의 작은 크기가 된다면, 안개처럼 보일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세상 사물들이 ‘모두’ 뿌옇게 보일 것이다. 산이 사라지고 평원이 시작되는 곳은 정확히 어디일까? 어디서 사막이 끝나고 사바나가 시작될까? 우리는 세상을 커다란 조각으로 잘라놓았다. 우리는 세상이, 중요한 개념들이 상당한 규모로 ‘등장’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p.175
예를 들어 두 쓰나미 물결이 인접해 있는 두 섬에 동시에 밀려오면 우리는 미래가 아닌 ‘과거에’ 두 쓰나미의 원인이 된 한 가지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과거에서 미래로 ‘인과관계’의 마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두 사건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p.180
우리는 과정이자, 사건들이며, 구성물이고 공간과 시간 안에서 제한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라면, 우리의 정체성과 유일성의 기반은 무엇일까?

p.188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은 무척 아름답다. 그는 음악의 힘을 빌었다. 우리가 어떤 찬가를 들을 때, 하나의 소리는 이전과 이후의 소리들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다. 이처럼 음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의미가 있는데, 우리가 현재의 한순간만 포착한다면 어떻게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p.213
하지만 정작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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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강양구 외 지음 / 바틀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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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p.35
사람들은 정치와 신, 사랑에 대해 지루한 거짓말을 늘어놓지.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113쪽
(섬에 있는 서점- 루페)

p.41
자, 이 양자 기관총을 내 머리에 대고 있으면 나는 어떤 관찰을 하게 될까? 내 옆에서 구경하는 친구는 총알이 발사되는 ‘탕’소리와 불발되는 ‘짤깎’소리를 연이어 듣게 된다. 내가 죽은 다음에도 말이다. 짤깍-탕-짤깍-짤깍-짤깍-탕-짤칵.

p.71
가나다순 정렬이 한 가지뿐인 것은 맞지만, 왜 이것이 질서가 높다고 하는 걸까? (...) 그 언어의 알파벳으로 정리되어 있어도 우리 눈에는 뒤죽박죽으로 보이지 않을까.

p.73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p.79
대학 3학년이 되자 이성과 함께 낙조를 볼 기회가 생겼다. 태양이 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는 거라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을 센스도 갖추었다.

p.128
한때 방글라데시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동 노동 착취 공장 제품의 불매운동이 제기되자 공장에서는 아이들을 해고해버렸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거나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더 영세한 미등록 하청 의류공장이나 기타 업종으로 옮겨간 것으로 파악되었다. 문제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나만 만족할 수 있는 행동은 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p.136
도대체 타 분야에서는 저토록 훌륭한 지적 체계를 가진 이들이 유독 과학에 대해서만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욱 놀라운 건 그걸 당당하게 드러내면서도 부끄럽기는커녕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다. 역사를 모르고 정치에 무관심하며 예술을 즐기지 않으면 ‘교양 없다’고 손가락질하지만, 물리적 법칙을 모르고 화학 반응에 무관심하고 진화에 대해 부정해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는 것이다.

p.152
그녀들의 남편 혹은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대개 충분하고도 넘치는 자원을 가져다준다.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아예 떠올릴 수조차 없게 말이다.

p.213
흡충은 숙주인 개미가 밤마다 풀잎 끝에 매달리며 양에게 먹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만들고, 킬리피쉬가 밝은 색의 배 족이 드러나도록 몸을 뒤집어 최종 숙주의 눈에 띄어 잡아먹히게 만든다. 근육에 손상을 가하는 기생생물에 감염된 귀뚜라미는 움직임이 굼떠서 닭에게 잡아먹히며 기생생물의 이동수단 역할을 다하게 된다.

p.215
숙주는 진화 속도가 느려서 기생생물의 공격 전술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주는 효과적인 특성을 획득해야 했다. 바로 감염원에 역겨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p.231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히든피겨스 영화 홍보문구

p.235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버텨올 수 있었던 나름의 요령이라면, 되도록 여성이라는 티를 내지 않는 것(여기에는 힘들거나 약한 티를 내면 안 되는 조건이 포함된다), 되도록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등이었다.

p.249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정책에 사실상 실망하고 돌아서는 백인 노동자 계층에서도 노동자와 비노동자 사이에는 분명한 선을 그으려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일하지 않으면서 그저 복지 제도를 악용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제대로 된 지원 시스템의 부재에 대한 분노가 힐빌리들의 정치적인 성향을 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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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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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몇달 전, 이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기존의 형식을 깨고 관객에게 욕설을 부으며 깨달음을 얻게 하는 이 작품에 대해 익히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들어오긴 했다.
책으로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도서관에 있어 읽었다. 페터 한트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의 대표작인 이 책에 대한 기대치도 조금은 올랐다.
그렇게 앞쪽을 읽어나가는데 처음에는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으니 문학상으로 선정하면 많은 이슈거리를 가져올 수 있었겠구나, 하는 세속적인 판단을 혼자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지고 말았는데, 어느 순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무언가를 느꼈으면 한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 나와 너, 우리, 그들, 소통, 독선, 위선, 예절, 예술 등 그 모든 것에 대한 작품이다. 백 권 이상의 책을 읽으며 느껴야 할 깨달음을 나는 이 책 한 권으로 깨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없이 읽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겠지만 아주 천천히 그 문장들의 의미를 해독하다보면 저절로 아, 하고 느끼고 만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비슷한 문장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무언가를 자꾸 던져주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것은 문학작품이자 철학서이다.
이것은 타인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외치는 목소리다.
이것은 그따위로 살지 말라는, 내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나열을 할 뿐이고 그 중에 내게 해당하는 것을 취사 선택하여 상처받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욕은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최승호 시인의 ‘북어’처럼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런 식으로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가 쓴 소설을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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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쁨 - 책 읽고 싶어지는 책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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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유튜브를 보는 일이 극히 드문데, 언젠가 겨울서점이라는 유튜브를 친구가 추천하여 본 적이 있다. 저런 목소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맑고 또렷한 좋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영상을 가만히 보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나는 몇 번 보지 못하고 그 유튜브도 안녕이었는데, 그 유튜버가 책을 냈다하여 읽어보았다.

처음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이 있어 흥미로웠다. 책의 물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나 책에서 오는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공감되어 재밌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조금 불편해졌다. 이렇게 쉽게 리뷰를 남기는 나 또한 오만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작가의 확신이 불편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황희 정승의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라는 마음가짐을 좋아한다. 어렸을 땐 내 것이 다 옳고 내 깨달음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나고 나니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나 많더라... 겉으로 보기엔 저 사람이 참 어리석은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일 때도 있고 겉으로 보기에 존경스러웠던 사람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썩어빠져있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더라.

나는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지는 않지만 그걸 읽는 사람들이 다른 것을 읽는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때로는 더 깊은 사유를 가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나는 어렸을 때 책 읽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했고 책을 쓰는 자들은 자기들만의 축제에 갇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고 믿었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책을 읽게 될 줄 누가 알았으며, 또 이렇게 책을 읽는 내가 되었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때로는 놀이터에 앉아 그네를 타고 가까워지는 밤하늘을 보던 어린 시절의 내가 더 깊은 사유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을 여전히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들을 더 낮은 단계의 사람이라는 듯 서술함은 물론이고 어렵고 정갈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것만이 높은 경지에 있다는 듯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사실 오만함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이냐에 따라 오만함도 무언가를 깨닫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글로 보았을 때 그녀는 아직은, 그런 오만함을 보일 수 있는 경지는 아닌 듯 싶다. 그 점이 이 책의 매력을 깎아먹었다.

작가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당신은 당신이 읽은 것과 쓴 것의 총합이라고 믿는지. 멋지게 포장하여 말하려 쓴 문장은 내려놓고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전해주면 좋겠다. 중2병에 걸린 사람 혹은 정말 중2가 아니라면, 그 구절을 읽으면서 오그라든 손가락을 다시 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너무 가혹하게 리뷰를 쓴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악평을 하면서 별점 3개를 준다는 것은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활자를 적는 사람은 그만큼의 책임감과 무게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나 유튜버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책에 관해 말하는 사람이 낸 책이라면, 더 많이 정제되고 더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글을 썼어야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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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11-29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비평글 너무나 반갑네요. 대부분 좋은 점만 쓰느라 비평, 악평은 보기가 힘든데 간만에 시원한 글 읽었습니다.

봄밤 2019-11-30 00:37   좋아요 1 | URL
찐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악평을 보고 자극을 받아 더 좋은 책을 보여주겠죠^^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 수상 작가들이 뽑은 베스트 7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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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순서대로 보지 않고 읽고 싶은 순서대로 읽었다. 제일 먼저 읽은 건, 최근에 읽어보라며 추천을 받았던 황정은 작가의 ‘상류엔 맹금류’이다. 그 뒤로 호수, 건축이냐 혁명이냐, 절반 이상의 하루오, 폭우, 저녁의 구애, 물속 골리앗을 읽었다. 아니, 사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다 읽지 못했다. 읽던 중 내려놓았다.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따로 이야기하자면
마지막에 읽은 물속 골리앗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괜히 김애란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시작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읽다가 어느 순간엔 완전히 몰입하여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을 통해 뭘 말하려는 거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재밌으면 그만이다. 어떤 글도 재미를 넘을 수는 없다.
강화길 작가의 호수도 인상깊었다. 적절하게 줄타기를 하며 긴장감 넘치는 그 균형감이 실로 대단했다. 먼저 읽어서 그렇지 마지막에 읽었다면 가장 인상깊은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절하게 비유하며 이야기하는 능력이 진정한 이야기꾼이다 싶었다.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머지 작품들도 하나같이 좋았고 단편집으로서는 순도 99프로의 책이었던 것 같다. 다만 어디선가 본 듯하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글들이라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뿐 단편으로서는 이만한 글을 만나기 어렵지 않나 싶다. 재밌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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