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 청춘을 매혹시킨 열 명의 여성 작가들
이화경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43.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라는 제목에 이끌려서, 그리고 ‘청춘을 매혹시킨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이라는 문구에 끌려서, 그리고 거기에 수전 손택과 제인오스틴,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이 적혀 있기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취향저격인 책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작가(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시몬 드 보부아르, 잉게보르크 바흐만,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프랑수아즈 사강, 실비아 플라스, 제인 오스틴)의 삶과 그와 관련된 작품 구절들이 등장하는데 치고 싶은 밑줄이 너무나 많아서 다 적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읽고 싶은 책들이 또 늘어났다. 좋은 책은 읽고 싶은 책들을 수없이 양산한다. 너무 치명적이다.

책을 다시 펼치지 않고 읽은 내용들을 되짚어 본다. 책을 읽는동안 수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책을 덮음과 동시에 그 생각들이 생각의 무덤에 매장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철학자와 철학자들의 만남, 작가와 철학자의 만남, 예술가와 작가의 만남 등 감성 많은 그들의 연애 이야기가 꽤 솔깃했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의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부러움을 느꼈다가 그 감수성으로 인해 서로 다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애써 상기시켰던 듯 하다.
인생을 하나의 시작과 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좋을지 혹은 수없이 열린 결말로 언제고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끊임없이 사랑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생을 보면 그런 열릴 결말들은 오히려 자유를 속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많은 시작과 끝이 각각의 시작을 가벼이 여기게 만들지는 않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번의 인생 안에서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아 수없이 방황하고 부딪치는 일이 더 현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은 결국엔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고독하게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건지도 모르겠다.

수전 손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인간은 결국 사랑 안에서는 고독할 수밖에 없기에 공동체적 사랑에 기대는 것이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의 우물 안에 들어갈 여유조차 없는 이들에게 생각을 할 생계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이의 고통에 잠시 침입하여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고 함께 고통 받는 것. 어쩌면 그런 고통의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연인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고독함을 회복할 방도인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책이었다. 책을 덮으며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고민들이 오히려 회오리치게 된 것 같다. 이북으로 읽었는데, 책을 구매해야 겠다.



********좋았던 구절.....쓰다가 지쳐서 중간에 그만 둠

* 감정의 엄살과 어리광과 광기가 없는 연애편지를,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나의 온갖 리비도와 나르시시즘을 닿을 수 없는(닿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은) 대상에게 융단 폭격하는 게 연애편지의 기본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때문에 살고 죽는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는 절절한 심정을 토해내지 않으면, 연애편지가 아니다. 그리하여 연애편지에 적힌 언어는 한낱 문자가 아니라, 롤랑 바르트식으로 말하면 ‘살갗’이다.

*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유였다. 잘못된 자유, 망가질 자유, 고생할 자유, 첫 번째 사랑이 잘못되면 두 번째 사랑을 하고, 두 번째도 아니다 싶으면 끝장내고 세 번째 사람을 선택해서 행복할 자유. 실패하면 툴툴 털고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달려갈 자유.

* 오렐리앙, 난 당신 없이 살아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당신과 결별할 용기를 냈지만, 당신을 슬픔에 빠뜨리고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 용기는 나지 않았어요.

* 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너만을 택하는 데 있다. 이유나 까닭이나 조건을 무시하는 것, ‘그래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이 진짜이다.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은 낭만주의자들이 믿는 사랑이다. 침 발라 돈을 세는 일이 전부인 세속적인 우리가 사랑할 때 말고 언제 생판 모르는 남의 입술에 침을 발라보는 낭만주의자가 되겠는가. 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사랑할 때 빼고 언제 남의 형편을 먼저 고려해주는 소설 속 로맨틱한 주인공이 되겠는가. 사랑에 눈멀 때 말고 언제 화합 망상에 흠뻑 빠져들 수 있겠는가. 쿨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랑에 미칠 때가 아니면 언제 뜨거운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

* “문학은 언어와 서사를 통해서 기준을 제시하고 깊은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자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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