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 청춘을 매혹시킨 열 명의 여성 작가들
이화경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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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라는 제목에 이끌려서, 그리고 ‘청춘을 매혹시킨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이라는 문구에 끌려서, 그리고 거기에 수전 손택과 제인오스틴,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이 적혀 있기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취향저격인 책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작가(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시몬 드 보부아르, 잉게보르크 바흐만,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프랑수아즈 사강, 실비아 플라스, 제인 오스틴)의 삶과 그와 관련된 작품 구절들이 등장하는데 치고 싶은 밑줄이 너무나 많아서 다 적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읽고 싶은 책들이 또 늘어났다. 좋은 책은 읽고 싶은 책들을 수없이 양산한다. 너무 치명적이다.

책을 다시 펼치지 않고 읽은 내용들을 되짚어 본다. 책을 읽는동안 수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책을 덮음과 동시에 그 생각들이 생각의 무덤에 매장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철학자와 철학자들의 만남, 작가와 철학자의 만남, 예술가와 작가의 만남 등 감성 많은 그들의 연애 이야기가 꽤 솔깃했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의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부러움을 느꼈다가 그 감수성으로 인해 서로 다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애써 상기시켰던 듯 하다.
인생을 하나의 시작과 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좋을지 혹은 수없이 열린 결말로 언제고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끊임없이 사랑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생을 보면 그런 열릴 결말들은 오히려 자유를 속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많은 시작과 끝이 각각의 시작을 가벼이 여기게 만들지는 않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번의 인생 안에서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아 수없이 방황하고 부딪치는 일이 더 현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은 결국엔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고독하게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건지도 모르겠다.

수전 손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인간은 결국 사랑 안에서는 고독할 수밖에 없기에 공동체적 사랑에 기대는 것이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의 우물 안에 들어갈 여유조차 없는 이들에게 생각을 할 생계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이의 고통에 잠시 침입하여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고 함께 고통 받는 것. 어쩌면 그런 고통의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연인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고독함을 회복할 방도인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책이었다. 책을 덮으며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고민들이 오히려 회오리치게 된 것 같다. 이북으로 읽었는데, 책을 구매해야 겠다.



********좋았던 구절.....쓰다가 지쳐서 중간에 그만 둠

* 감정의 엄살과 어리광과 광기가 없는 연애편지를,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나의 온갖 리비도와 나르시시즘을 닿을 수 없는(닿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은) 대상에게 융단 폭격하는 게 연애편지의 기본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때문에 살고 죽는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는 절절한 심정을 토해내지 않으면, 연애편지가 아니다. 그리하여 연애편지에 적힌 언어는 한낱 문자가 아니라, 롤랑 바르트식으로 말하면 ‘살갗’이다.

*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유였다. 잘못된 자유, 망가질 자유, 고생할 자유, 첫 번째 사랑이 잘못되면 두 번째 사랑을 하고, 두 번째도 아니다 싶으면 끝장내고 세 번째 사람을 선택해서 행복할 자유. 실패하면 툴툴 털고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달려갈 자유.

* 오렐리앙, 난 당신 없이 살아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당신과 결별할 용기를 냈지만, 당신을 슬픔에 빠뜨리고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 용기는 나지 않았어요.

* 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너만을 택하는 데 있다. 이유나 까닭이나 조건을 무시하는 것, ‘그래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이 진짜이다.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은 낭만주의자들이 믿는 사랑이다. 침 발라 돈을 세는 일이 전부인 세속적인 우리가 사랑할 때 말고 언제 생판 모르는 남의 입술에 침을 발라보는 낭만주의자가 되겠는가. 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사랑할 때 빼고 언제 남의 형편을 먼저 고려해주는 소설 속 로맨틱한 주인공이 되겠는가. 사랑에 눈멀 때 말고 언제 화합 망상에 흠뻑 빠져들 수 있겠는가. 쿨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랑에 미칠 때가 아니면 언제 뜨거운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

* “문학은 언어와 서사를 통해서 기준을 제시하고 깊은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자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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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언어 - 상처받지 않고 외롭지 않게, 아나운서 정용실의 유연한 대화생활
정용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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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총 작가의 ‘읽기의 말들’을 너무나 즐겁게 읽었었고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잊어버리곤 이 책을 e북으로 읽었는데,
들으면서 이건 ‘듣기의 말들’로선 딱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의 작가인 정용실 아나운서는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얻은, 그리고 자신의 일상에서 얻은 대화의 노하우를 ‘듣기’라고 말한다. 듣기야말로 온 정신과 온 마음을 다하여 행해야 하는 능동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던 듯 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땐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걸 구태여 확인하려 하지 않아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받는 입장에서는 알고 있었음에도 그 ‘듣기’를 상대방에게 실천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영역의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대화하고 싶은 타이밍이 아니라 상대방이 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보는 것,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호흡과 단어, 표정을 살피는 것. 이 외에도 듣기에서 중요한 항목은 너무나 많음에도 이 두가지 만으로도 이미 지쳐 버리는 어려움.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말그릇과 유사한 느낌인데
말그릇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대화’에서 내가 해야하는 노력에 대한 것이라면,
이 책은 타인과의 대화에서 특히 ‘듣기’에서, 경청하는 방법에 가깝다.

일주일간 이 책을 읽으며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인들에게 이런 경청의 자세를 취해보았는데, 확실히 관계는 좋아졌으나 확실히 피로도가 쌓였다. 목요일엔 퇴근해서 집에 온 후 다음날까지 종일 잤다ㅎㅎ.. 모든 말을 흘려듣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늘 적용하기엔 어려울 듯 하다.

p.s. 작가로서 글을 쓰는 능력이나 특별함이 없어서 별은 세개를 준다. 감명 깊은 글귀를 따온 부분이나 유명인에 대한 내용을 쓴 부분이 작가로서는 좀 아쉬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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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음악을 듣는 것에 미쳐 살았다.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하루라도 노래를 듣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시절이었다. 하루종일 노래를 들었다. 야자 시간에는 이어폰 쓰는 것이 금지였는데, 소매쪽으로 이어폰을 빼내어 몰래 듣다 혼난 기억도 난다. 그렇게 혼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몰래 듣고 또 혼나고. 어휴. 그 당시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혼내 놓고 보면 또 그러고 있으니....

집에 가면 매일 Mp3의 곡 리스트를 업데이트했다. 홍대병의 증세가 심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인디 가수의 곡을 찾아 들었다. 그렇게 모은 곡이 3만곡이 넘었었다. 그 곡들을 한번 정리할 때마다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항상 기분에 따라 재분류하곤 했다) 그 당시 날 좋아하던 남자 아이가 새벽에 “자?”라고 물으면 나는 자주 “노래 정리해.”라고 답했던 듯 하다.(기억력은 믿을 게 못되지만.) 그리고 그게 낭만이라고 생각했던 풋내기 시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나 음악을 사랑했던 나인데, 분명 작년까지도 빌리조엘의 노래를 들으며 출근을 하다가 그 행복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해 죽을 것 같았건만! 올해 유난히 그 감정이 느껴지질 않았다. 음악의 힘이 죽어버린 걸까 ㅜㅜ
아니면 내 감성이 말라버린 걸까 ㅠㅠㅠ

그러다 비긴 어게인이라는 예능 프로에서 로이킴이 부르는 피아노맨을 듣다가 ‘아니야, 아니야.’ 하는 마음에 간만에 빌리조엘의 노래를 찾아 들었는데 어휴......ㅠㅠㅠㅠㅠ
그 벅찬 감동이란.....!
어쨌든 그래서 결론은, 음악에 대한 책 3권을 샀다 :)
당분간 메마른 내 감정을 적셔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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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은 없는데요… - 엉뚱한 손님들과 오늘도 평화로운 작은 책방
젠 캠벨 지음, 더 브러더스 매클라우드 그림, 노지양 옮김 / 현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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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찾아오는 황당한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
웬만한 개그 프로그램보다 재밌었다
책보며 피식거리며 웃게된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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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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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세네번을 읽고 간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이야기가 너무 잘 기억이 나서, 추리하는 마음으로 세세하게 읽어나갔는데 새삼 미스테리한 소설이다.

희미했던 기억이 어느 순간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가하면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잘못 기억했던 순간들이 있다. 언젠가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더 브레인이었던 것 같다) 사람에게 가짜 기억을 주입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실험으로 보여준 장면이 있었는데 어찌나 어이가 없을 정도였는지 꽤 충격 받았던 기억이 난다.

책의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으로, 오랜 시간을 ‘감을 못잡던’ 토니 웹스터가 잘못된 기억과 과거의 잘못을 알아가며 최종적으로는 모두를 상실한 채 무기력한 상태에서 결말이 나버림을 의미한 게 아닌가 싶다. 제목의 의도가 영 감이 안잡히긴 한다. 그렇다고 한국어 번역으로 만들어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제목도 영 맘에 들지 않는데 어쩐지 한번의 반전을 겪은 후 묘한 기분이 들 때마다 “저 예감도 또 틀리겠지.”라고 생각하게 된 탓이다. 그래서 두번째 반전의 장면에선 약간의 기괴함을 느끼긴 했어도 반전 자체가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인간의 기억이 늘 틀리는 것이라면 역사 또한 사실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역사 선생 ‘조 헌트 영감’과의 수업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사실상 책의 모든 내용이 바로 이 역사 수업 장면에서 함축되어 등장한다.

1)‘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라는 말이나 (이 문장으로 반스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2)롭슨의 이야기를 가지고 확실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핀의 말이나
3)1차 세계 대전에서 세르비아인 개인의 책임으로 전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말들이 그렇다.

이 일들은 소설 전체의 내용과 대응되는데

1)에이드리언의 죽음은 토니의 부정확한 기억이 사라가 보낸 유산(500파운드와 편지, 핀의 일기장)과 만나 적당한 확신으로 나타나지만
2)핀이 롭슨의 죽음에 대해 말했듯이 핀의 죽음 또한 어떤 일이 사실인지, 왜 핀이 죽었는지에 대해 적당한 확신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3)또 핀의 일기장 일부에서 나타난 수식에 의하면 저주의 편지를 보내고 사라를 만나볼 것을 권유한 토니에게 핀이 그 책임을 물으려 한다는 것 또한 그렇다. 핀의 죽음과 사라의 임신이 1차 세계대전이라면 토니는 세르비아인이다. 전쟁의 시작이 세르비아인의 암살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전쟁의 책임을 그 개인에게 전가할 수 있는가?

기억의 축적과 망각은 책임을 다른 개인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그런 점에서 내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자기 검열의 시간을 가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대로 우리의 예감이 늘 틀리기 때문에, 늘 우리는 감을 못잡기 때문에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승자의 기록인지 패자의 자기기만인지 그저 살아남은 이들의 회고인지를 엄격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으로 줄리언 반스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후에 읽은 죽음에 대한 에세이나 시대의 소음이란 책이 영 별로였어서 내가 작가를 잘못 본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여전히 구성이 뛰어나고 이상하게도 요새 시대의 소음에 대한 내용이 머릿 속을 맴돈다. 쇼스타코비치가 엘리베이터에서 캐리어를 가지고 ‘그들’을 기다리던 장면이 자꾸만 생각난다. 역시나 반스는 무거운 공기가 가라앉은 회색빛 정경 혹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 묘사의 달인인 것이 분명하다.

책에서 좋은 구절이 너무나 많아서 언젠가 필사를 시도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구절들보다
‘감을 못잡는 앤서니’ , ‘진정한 무지가 갖는 독창성마저 결여된 타입’ 따위의 재치있는 인물 묘사가 더 마음에 든다.
언젠가 더 나이가 들면 또 한 번 꺼내어 읽어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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