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닐 세스의 이론을 읽으며 내내 다마지오를 생각했다. 아마 두 사람의 연구 기초 자료들 중 겹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검증해 보지는 않았다. 나는 과학도가 아니라 재미로 과학분야 독서를 하는 사람이므로.)

고통을 느끼고 생존반응을 하는 것이 유기체의 의식 활동의 선행조건인 동시에, 어쩌면 의식이라는 것의 실체 자체가 아닐까 하는 끝판 결론이 유사하다.

지능과 범용인공지능, 의식과 지각에 대한 견해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 결국 스스로 자기 생존을 위한 자체 프로세스를 구축하지 않으면 인공지능은 신기한 계산을 잘하고 어리숙한 사람을 속여 먹기 좋은 기계일 뿐, 유기체와 비슷한 의식을 가진 존재는 되지 못한다.

흐름출판이 이 분야에 관심이 많나 보다. 표지 느낌이 비슷해 뒤져보니 같은 출판사였다.

eBook] 느끼고 아는 존재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은이), 고현석 (옮긴이), 박문호 (감수)   흐름출판   2021-09-13


http://aladin.kr/p/j4CDN

동물기계 이론의 관점은 거의 모든 면에서 이 이야기와 다르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 경험과 정신적 삶 전체는 우리의 지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를 유지하려는 생물학적 유기체라는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것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것은 - P335

아니다. 의식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나의 동물기계 관점은 의식기계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지각적 컴퓨터가 곧 등장한다며 두려움을 부추기고 우리의 꿈에 스며드는 과장된 기술 경이라는 서사를 약화한다. 동물기계 관점에서의식을 이해하면 우리는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자연 속에 머물게 된다.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 P336

자유에너지 원리에 따르면, 생명계가 열역학 제2법칙을 벗어나려면 생명계가 있으리라 예측되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 베이즈 모델에 따라 나는 여기서 ‘예측expect‘이라는 말을 심리적 의미가 아닌 통계적 의미로 사용했다. 너무 간단해서 하찮을 정도의아이디어다. 물속의 물고기는 통계적으로 물고기가 있으리라 예측된 상태에 있다. 보통 물고기는 대부분 물속에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죽어 퍼져버리지 않는 한, 통계적으로 물고기가 물 밖에 있다고는 예측하기는 어렵다. 내 체온이 약 37도라는, 통계적으로 예측된 상태는 내가 죽어서 퍼져버리지 않고 계속 생존하는상태와 일치한다. - P253

우리는 인지하는 컴퓨터가 아니라, 느끼는 기계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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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페이지를 읽을 때 이반 일리치의 <젠더>가 떠올랐다.
<그림자 노동>을 읽고 그를 숭앙하다시피 한 터라 <젠더>는 좀 실망스러웠다.
무엇이 실망스러웠나 설명하고 싶어도 나의 언어가 부족했는데
델피는 그런 내 마음의 기저를 대신 설명해주는 듯했다.
그렇지만 다음 권을 살 것 같지는 않다. 책의 볼륨이 너무했다 싶을 정도이다. 박스를 뜯자마자 서서 다 읽을 정도이다.
게일 루빈 전집이 <일탈>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두께로 합본되어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안 되는데 비교하게 된다. 현실문화는 책 팔아서 남는 거나 있었는지 원.

페미니즘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개념(예를 들면 젠더) 중 일부를 빌려야만 하기 때문에, 이 대표자들은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젠더가 ‘섹스‘와 동의어로 (개념이 아닌 용어로) 쓰이는 경우에도, ‘젠더‘라는 단어가 발화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담론에서 싫든 좋든,
가장 일반적인 차원에서 가장 전복적인 차원ㅡ‘젠더‘를 사회 분열의 주요 쟁점으로 만드는ㅡ에 이르기까지 젠더에 대한 모든 함의를 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이들은 페미니즘의 - P65

영역으로 끌려 나온다. 그들이 페미니즘과그 영역이 존재할 만한 장소가 없거나 말할가치가 없다는 듯 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된다. - P66

역사가들이 추구하는특정한 설명은 사실 그다지 역사적이지 않다. 각각의 시기가 기능한 조건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설명은 모순적이게도 몰역사적이다. 이 경우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날짜의 기록일 뿐이다. 역사는 잘 다루어져야만 귀중한데, 바로 각각의 시기가 현재의 시기와 같은 방식으로 분석되었을 때 그렇다. 과거에대한 학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연구는 공시적인 분석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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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과 이야기 -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관하여
비비언 고닉 지음, 이영아 옮김 / 마농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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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치 있는 작품이 출간 이후 맹비난을 받거나, 잠깐 반짝하고 사라질 작품이 극찬을 받는 이유는 읽는 사람들의 잘잘못 때문이 아니라, 때를 잘 만났거나 잘못 만났기때문이다. 아무리 좋거나 훌륭해도 당장은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돌처럼 가라앉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단명할 것이뻔한데도 지금, 바로 지금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호평을 받는 책도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내면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 얻어야 비로소 풍요로워진다. - P189

장차 예술가가 될 대학원생들에게기교는 밥벌이 수단이다. 나는 이 점이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왜냐하면 기술에 집중하는 것은 현대 문학에 독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전적 산문 쓰기에 관한 훌륭한 소책자 진실처럼 명료하고 단순하게 Clear and Simple as the Truth』가 내 이런생각을 잘 대변해준다.
...
글쓰기는 기술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기술은 가시적으로 필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글쓰기는 기술의 결과물도 아니고, 기술을 사용하는 활동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글쓰기는대화를 닮았다. 대화에 서툰 사람은 설사 언변이 아주좋더라도 대화를 독백과 구분하지 못하기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무리 언변을 갈고 닦아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대화에 아주 능한 사람은 말주변은 떨어질지 몰라도 대화란 서로 주고받는 활동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대화도 글쓰기도 화술을 익힌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근본적인 개념의 문제를 등한시하고글쓰기 기술만 가르치려 들다간 실패할 수밖에 없다. - P187

하지만 회고록은 증언도 우화도 분석적 기록도 아니다. 회고록이란, 삶이라는 원료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 경험을 구체화하고, 사건을 변형하고, 지혜를 전달하는 자아라는 개념에의해 통제되는 일관된 서사적 산문이다. 회고록 속의 진실은실제 사건의 나열로 얻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당면한 경험을마주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을 독자가 믿게 될 때 진실이얻어진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일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글을 짓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프리쳇*은 - P107

회고록에 대해 "중요한 건 필력이다. 인생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칭찬받을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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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죽음
에밀 졸라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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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19세기 후반의 결혼에 관련된 사회상이 드러난 짧은 단편들의 모음이다. 당시 풍습을 알기에 요긴하다. 결혼 풍습 자체와 그 관례를 둘러싼 인간 욕망과 대처법이 지금과 별다르지 않다.
세태를 그대로 드러내며 범상한 삶을 사는 인물을 거의 냉소에 가깝게 관찰하는 이런 작법이 20세기에는 우리 문학에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인물들을 상위에서 굽어보는 듯한 작가의 관찰 태도가 지금 보면 약간 낡은 듯 보이는 서술이다. 그때는 그걸 ‘객관적‘이라 여긴 듯하다. 담담하게 말을 아끼면서도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날 수도 있는데 나는 이민진의 <파친코>에서 그걸 느꼈다. 졸라의 단편에는 그런 것이 없다.

테레즈 라캥의 씨앗이 된 짧은 단편 <어떤 사랑>을 발견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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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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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과 희극을 나누는 기준은 고귀한 사람들을 다루느냐, 평범하고 잡스런 사람들을 다루느냐로 나뉜다. 고귀한 사람들이 몰락하는 이야기인지 잡스런 사람들이 우당탕탕 법석을 떨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야기인지가 비극과 희극을 가른다.

본질적으로 이 분류는 관객(독자)이 이야기 속의 중심 등장인물을 연민하게 만드느냐, 비웃게 만드느냐의 방법론일 뿐이다.

범주를 만드는 행위는 항상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만든다. 희비극이라는 용어가 봉준호의 <기생충> 이후에 여기저기서 들려왔었던 때가 있었다. 이건 비극인가 희극인가?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명으로 포섭할 수 없는 감상이 ‘희비극‘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었던 것 같다.

<맡겨진 소녀>를 다 읽고 멍하니 앉아서 한 생각이 ‘이건 비극인가, 희극인가? 그런데 희비극은 아닌 것 같고...‘ 였는데,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이 지나치게 현대적이지도, 너무 고전적이지도 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딘가 많이 애매했는데, 약간 가벼운 듯했지만, 한편으로는 클래식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나서는 <맡겨진 소녀>를 읽고 내가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처럼...>은 비교적 그 성격이 분명해 보였다. 고귀한 사람이 고난에 처하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귀족도 비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도 아니었지만, 도덕적으로 뛰어난 품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품성은 그를 낳고 키운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았다. 주인공을 양육한 인물들이 잡스럽고 천박했다면 결코 그는 고귀한 품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물려받은 품성에 더해 스스로 단련해온 도덕성으로 하나의 영웅적 행위를 한다. 자신들처럼 작고 힘없는 사람들이 감히 맞서지 못하는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행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처럼...>은 품성이 고귀한 단 한 사람(영웅)이 탄생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스스로를 고난에 빠뜨릴 선의를 기꺼이 선택함으로써 소시민은 작은 영웅이 되었다.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주인공의 선택으로 죽음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해피엔딩일지 몰라도 이야기 전체를 희극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희극적 요소가 있다고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만약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맡겨진 소녀>에 비해 좀 더 묵직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그래서일 것이다.

<맡겨진 소녀>는 그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주인공 소녀는 잡스럽고 천박한 품성의 아버지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잠시 고귀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맡겨진다.

소녀는 자신의 비천한 품성(언어 습관과 생활 습관)을 가지고 그곳에 도착하지만, 고귀한 사람들은 소녀를 비범한 방식으로 양육하여 품성을 교정해 준다.
그 과정에서 동네의 잡스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극에 등장하는 광대나 이간질쟁이들처럼 군다. 말하자면 거대한 악은 아니고 매우 잡스런 악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통 비극에서처럼 소녀를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는다. 이간질로 소녀가 해를 입는다면 그건 임시 양육자들이 소녀를 외면하게 되는 일뿐일 텐데, 키건은 그런 스토리를 만들지 않았다.

키건이 스토리에서 의도하는 것은 중심인물의 갈등이 아니다. 고귀한 품성의 사람들과 잡스런 사람들을 비교해 보여주는 것이다. 쓸데없이 말이 많고 타인에 대해 애정 없는 관심만 난무하는 우리 주변의 잡스런 인물들이 얼마나 한심한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다스런 이웃 아주머니나 소녀의 아버지가 등장할 때는 헛웃음을 웃게 되었다. 아무말이나 해대는 그 사람들은 <이처럼...>에 등장하는 그저 겁많고 하루하루 평탄하게 살기를 바라는, 자기 가족이 최우선인 소시민들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맡겨진 소녀>의 잡스런 인물들은 짜증과 비웃음을 유발했다.

그에 비해 할 말, 해야 할 말 이외에는 하지 않는 묵직하고 고귀한 인물들(소녀의 임시 양육자들, 소녀)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란 게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나자 약간 애틋한 마음이 들면서 희망이 싹을 틔우는 느낌이었다. 어딘가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고귀한 품성의 사람들이 운명의 장난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귀한 품성을 더럽히지 않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덧붙여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의 심지가 너무 부러웠다.
키건의 두 스토리 모두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지점이 감탄스러웠다. 자극적인, 소위 멱살잡이를 하는 스토리를 만드려는 의지와는 완전히 등지고 있다. 뚝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아래는 키건이 얼마나 최소한의 언어로 원하는 효과를 냈는지를 보여주는 두 부분이다. 뒤까지 읽고 나서야 앞 장으로 도로 가서 내가 잘못 읽었나, 정말 명확한 묘사가 없었던가 확인하게 되었다.

이보다 더 주옥 같은 문장이 있었는데, 스포일러 요소가 있어서 올리지 못하겠다.

나는 이 새로운 곳에서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겪어본 적있는 기분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킨셀라 아주머니는 나중에 침대 시트를 벗길 때에야 알아차린다.
"세상에." 아주머니가 말한다.
"네?"
"이거 좀 볼래?" 아주머니가 말한다.
"네?"
지금 당장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고 집으로 돌려보내 - P35

지는 것으로 끝내고 싶다.
"매트리스가 낡아서 말이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이렇게 습기가 차지 뭐니. 항상 이런다니까. 널 여기다가 재우다니,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이었을까?"
우리는 매트리스를 끌고 계단을 내려가서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으로 나간다. 개가 다가와서 킁킁 냄새를 맡더니 뒷다리를 들려고 한다.
"저리 가!" 아주머니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외친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킨셀라 아저씨가 밭에서 돌아온다.
"매트리스 때문에." 아주머니가 말한다. "빌어먹을 매트리스에 습기가 차서. 지방이 원체 습하다고 내가 말 안 했4?"
"그랬지." 아저씨가 말한다. "그래도 어쩌자고 이걸 혼자서 끌고 내려와."
"혼자 아니었어." 아주머니가 말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잖아."
우리는 매트리스를 세제와 뜨거운 물로 문질러 씻은 다음 그대로 두고 햇볕에 말린다. - P36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차라리 빨리 가고 싶다. 얼른 끝내고 싶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축축한 밭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들, 언덕들을 내다본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푸르러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침대에 오줌을 싸고 뭔가 깨뜨릴까 봐 걱정했던 그때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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