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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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희비가 반복되며 돌아가는 긴 역사의 한 부분을 보다 높은 곳에서 관망해 보는 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과거의 역사를 끊임없이 캐물으며 논하는 일은 현재가 나아갈 바를 정확히 지시해 줄 수는 없으나,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서는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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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미래는 무한히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고리에서 알고리즘을 발견하고 그 알고리즘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이 역사를 기록하게 했으니 철이 지나 먼지가 쌓인 안내서라 할지라도 그것은 지금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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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남한산성은 그런 면에서 인조 14년과 2017년을 연결시켜, 현재가 겪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판단할 수 있도록하는 안내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최명길이 옳았느냐, 김상헌이 옳았느냐를 따져 물을 수 있는 매력적인 그들의 말은 남한산성이 처한 고립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백미이다.
최명길은 인조에게 치욕을 견디어 백성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길을 말하고, 김상헌은 조선이 먼저 숙여 오랑캐의 아가리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길이야말로 죽음의 길이라 말한다.
당시의 조선과 주변국의 정세가 어떠했는지, 그래서 남한산성의 최후가 어떻게 됐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내가 그 둘을 판가름하기에는 공평하지 못하다.
단지 지금의 대한민국에 또 다른 최명길이, 김상헌이 없겠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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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 하나 하나를 편들거나 내치고 싶은 마음 이전에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을 파고드는 감정 하나가 있다.
1636년의 혹독했던 남한산성을 향한 ‘ 측은지심 ‘ 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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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무엇을 향한 측은지심이냐를 꼬집어 본다면 첫째 인조, 둘째 명길과 상헌, 셋째 조정의 벼슬아치들, 넷째 백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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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가 임금이었던들, 남한산성에서 시간과 더불어 말라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을까. 광해가 일궈 놓은 명청과의 외교를 무너뜨리고 병자호란이 끝나고 나서도 더욱 청을 배척하고 명만을 바라보는 인조의 짧은 헤아림은 잠시 놔두더라도, 어쨌든 그는 살고자 했음으로 명길의 말처럼 삼전도의 굴욕을 받아들였다. 명분을 내세워 당당할 것이 없었는데도 당당히 싸울 것을 말하는 쪽으로 향하지 않은 것에 측은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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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자 하는 길은 서로 등을 맞대는 길이었고, 치욕을 대하는 둘의 생각 또한 물과 기름만큼이나 구분되는 것이었으나 스러지는 나라를 처절하게 붙잡아 보려는 명길과 상헌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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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을 향한 절개외에는 어떤 것도 배척하는 것을 절대적인 우선 순위에 두는 벼슬아치들은 어떤한가.
말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용골대의 진영에 발을 들여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 명길, 그런 그의 목을 치라는 말이 전부인 조정의 벼슬아치들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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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백성, 백성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면 수확하며 주어진 목숨만큼 살아내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지 않았을까. 전쟁하지 않고 살아가길 원하는 이들의 평화로움을 망치는 자들은 어리석은 백성이 아니지 않던가. 존재자체가 한 낱 이었을 백성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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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마치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에서도 얼었던 얼음이 풀리듯, 유유히 시작되는 백성들의 한결같은 움직임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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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작가는 인조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조는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 들였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어 내었다고.
그러나 나는 임금에게 거는 기대가 큰 백성인가보다.
리더를 자처했으니 범인보다는 더욱 지혜로워야 하며,
독수리보다 더욱 멀리 보는 혜안, 보이지도 않는 국가를 말하기 보다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워야 할 백성들을 향한 거침없는 마음을 가진 자.
그러한 자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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