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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ㅣ 에오스 클래식 EOS Classic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나경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안데르센 동화집 / 현대문학 / 이나경 역
안데르센 메르헨 / 문학과지성사 / 김서정 역
어른을 위한 동화 안데르센 동화전집 / 현대지성 / 윤후남 역
누구나 안데르센을 알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기억 속 안데르센은 디즈니로 남아 있고, 인어공주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사람마다 결말은 다른다.
몇 해 전 잠깐 다닌 대학원에서 안데르센을 읽었던 기억은 충격적이었다. 삼남매 중 책을 가장 안 읽던 막내, 한글을 떼지 못하고 입학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글 써서 먹고사는 나, 잘 생각해보니 내 기억 속 안데르센은 그림책 속 인어공주였던 것 같다. 말은 안 해도 나같은 사람 많을 거다.
이번 독서모임 주제를 정하면서 안데르센을 추천했다. 분명 나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언제 또 동화책을 읽겠나?
학교에서 읽은 책은 [안데르센메르헨] (문학과지성사, 김서정역) 으로 그림도 예뻤고, 번역도 좋았고, 그러나 비쌌다. 모임에서 읽자고 하기엔 조금 부담스울 것 같아 작은 사이즈의 [안데르센 동화집](현대문학, 이나경역)을 택했다. 24편의 안데르센 동화가 수록되어 있고, 내가 책을 선정한 단 하나의 조건은 ‘그림자’가 있느냐 없는냐 였기 때문에 당연히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었다. 아쉬운 점은 해제, 해설이 없어서 그 이상의 궁금한 점이나 편집자의 의도 같은 건 그러려니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완차 이북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안데르센 동화전집](현대지성, 윤후남역)을 선택했고, 2352ps나 되는 페이지에 수록된 168편을 다 읽지는 못했고 원래 선택한 책과 비교하면 몇편을 보았다.
몇 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책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이미 독서 패턴이 입력되어 있는 이노므 어른의 뇌는 동화를 순수하게 보지 못하고 편마다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습관이 스물스물 기어 나왔다. 그렇지만 안데르센 동화는 구조나 주제가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의도 자체가 읽기를 방해했다. 어떤 편은 줄거리가 중심이 되어 할머니 옛날 이야기 듣는 것처럼 읽기가 편하지만, 어떤 건 화려한 묘사로 감성을 불러 일으키고 작자의 생각이 아주 살짝 드러나기도 한다. 또 어떤 건 작가의 생각이나 불만, 억울함을 호소 하는 것도 많았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기존의 전설을 재구성하거나 스스로 창착하거나 평단의 불만족 스러운 비판에 반박하거나 이성에게 구애하거나 스폰서를 받기 위함 등등… 동화로 모든 걸 표현하고 해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편마다 교훈을 찾으려 한다거나 권선징악 등의 고전적 윤리를 추출하려고 하는 건 깝깝한 어른들의 쓸데없는 짓거리다.
그저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개인의 힐링, 좋은 기억의 소환이나 감정, 호기심, 묘사나 인물의 성격을 따라가는 공감 등의 효과를 누리는 게 좋겠다. 게다가 단편은 양면성이 있다. 쉽게 쉽게 읽기 편할 수도 있지만 편마다 짧고 굵은 집중력을 요한다. 장편은 읽다가 집중력이 흐려져서 조금 놓치더라도 큰 흐름 속에서 다시 페이스를 찾기도 하지만 단편은 휙 지나가면 끝이다. 그래서 또 어떤 편은 아예 기억 나지 않는 것도 있고, ‘이건 도저히 모르겠으니 다음에 다시 읽자’ 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공감이 되는 것도 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이번 독서토론도 매우 다이나믹 했다. ‘답이 나와 있는 동화’라는 편견은 뭘 모르는 말씀이다. 우린 너무나 다양한 생각과 평에 많이 놀랐고, 서로 배웠고, 즐거웠다. 각자 어려웠던 편, 충격적이었던 편을 이야기하고 서로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보기도 하였다.
특별히 [그림자]를 중점 토론 하였다. 다른 이유없다. 제안했던 내가 안데르센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거라서.
더운 남쪽 나라로 여행하던 학자는 호기심 때문에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하려 하지만 그림자를 잃게 되고, 결국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어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내용이다. 너무나 모던하고, 철학적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반전있는 소설이다. 저자가 안데르센이 아니고, 안데르센 동화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더 인정받았을 지도 모른다고 감히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본다.
처음에 읽었을 때도 충격적이었지만 다시 읽어도 마지막 장면에 툭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림자는 학자를 숙주로 그의 지식과 배경, 지식을 이용한다. 무엇보다 그림자는 학자의 나약함을 이용한다. 학자는 그런 존재임을 알면서도 조금씩 자신을 내어준다.
프리랜서가 된 지 10년 이 된 나는 학자의 나약함에 많은 공감이 갔다. 눈 앞에 닥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뚝심을 포기 한다던가, 잠시 집중해야 할 일을 내려 놓는다던가, 상대가 뻔한 소리로 나를 이용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혹시 모를 ‘다음’이라는 것을 기대하며 굴욕을 참는다. 또는 늘 인정받기에 목말라 있기때문에 몇마디 달콤한 칭찬에 결과가 보이는 일을 수락 한다거나, 혹은 ‘내 성격이 너무 까탈스러운 건 아닐까?’ 하며 오히려 착한 인간 컴플렉스 (부모님의 지긋지긋한 가스라이팅 결과)에 걸려들어 확고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갈대처럼 흔들린다. 그리고 가방 끈 긴 인간들, 성적 받느라 공부해 온 이들의 공통점인 비겁함…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림자]를 읽고 나면 한마디로 ‘정신 바짝 차리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결국 나를 잃고 환경 또는 주변인에게 이용 당한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살지 말고 나 자신을 찾자는 생각을 한다.
독서모임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느낌과 생각은 더욱 풍부해졌다. 특히 ‘그림자’에 대한 비평이 신선했다. 나는 늘 ‘내탓이오’하는 자격지심에 학자 입장에 공감 하였는데, 학자를 이용하는 그림자의 사악함을 비판하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진리(진실) 앞에 용감히 맞서지 못했던 학자와 학자를 대신해 건너편 집에 들어가지만 결국 그림자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본 자) 학자를 떠날 수 있었다는 의견은 너무나 신선했다. 이것은 내가 패배주의에 쩔어서 보지 못하던 부분을 알게 해준 것 같아 좋았다.
결말 이후 그림자는 어떻게 살게 될까?
다른 숙주를 찾아 그를 이용하면서 또 그렇게 살아가겠지…… 기생충처럼.
첨언>
우리나라 책은 원어 -> 영어 -> 한국어 번역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읽은 [안데르센 동화집]이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번역서로서의 안데르센은 독어를 해석한 [안데르센메르헨]이 가장 좋았다. 번역은 제 2의 창작, 번역가들의 문장력 또한 너무나 중요하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이 정도로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