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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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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이상(異常)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서 위험한 수준인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흔히 현대인들은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말할 때의 그 정신병이 꼭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 아니듯 이상한 생각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갈수록 평범한 사고방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 같으면 정신이상으로 여긴다. 생명을 해하거나 법규를 어기는 것과 같이 잘못된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라면 응당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남이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이상을 덮어놓고 무서운 광기로 몰아붙이는 것은 끊임없이 환자와 병원만 늘리는 일이다.

 

프로이트 분석연구 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 대리언 리더는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정신의학의 관심이 20세기에 들어 "의미를 탐구하지 않고 현상만 연구하는"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겉보기 증상을 기반으로 하는 진단 패러다임이 세워지면서 정신병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점점 사소한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 - 편집증이라는 진단범주의 운명, 약리학이 정신보건계에 끼친 영향, 진단절차의 급격한 변화로 언급된다. 망상은 정신병의 1차 증상이 아님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프로이트의 말을 빌린다. “자아가 바깥세상과 교류할 때 처음부터 비어 있는 곳과 찢겨진 곳이 나타나는데, 망상은 이런 곳을 가리고 메우는 천 조각처럼 사용된다.” 그러니까 망상은 환자가 스스로 정신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다. 정신병자는 상징적 욕망에 확실히 이름을 붙이지 못하지만 편집증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명명한다는 점에서 망상의 유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생각의 내용보다 주체가 그것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더욱 중요하다.

 

인간은 의미의 세계에 거주한다. 그 의미를 형성하는 사건들은 상징적으로 매개된다. 다르게 말하면, 한 사람을 구성하는 역사는 끊임없이 타자의 욕망과 거리를 재는 행위를 거듭하면서 나아간다. 그런데 그 체계가 어떤 원인에 의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때로 정신병이 촉발될 수 있다. 어제까지 멀쩡한 사람도 갑자기 광기를 드러낼 수 있다. 다만 인간은 그 과정에서 망상을 구축함으로써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상할지 몰라도 개인의 내면 속에서 그것은 구멍을 메우는 일이고 단추를 잠그는 일이다. 모든 정신병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법을 찾는 이들에겐 듣고 싶지 않은 말이겠지만, 저자는 "평범한 삶이란 우리가 실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실재를 길들이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고 말한다. 고로 우리는 개인의 체험 안에서 의미가 구축되는 양상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내러티브를 연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異常)한 나라의 이상(理想)적 깃발을 무작정 뽑으려고만 한다면, 세상은 점점 더 광기에 사로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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