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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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이후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 출간된 아르헨티나의 대표작가로 평가받는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신을 죽인 여자들은 신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 범죄 소설이다. 맹목적인 신에 대한 믿음 앞에 진실은 덮어 둘 수 있고 그로 인한 상처 또한 감내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과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진실을 원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30년 전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정확히 해두자면 30년 전에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밝혔다고 말해야겠다. (p.13)

 

토막 나고 불에 탄 채 발견된 아나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후 여전히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남겨진 가족들이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는 각자의 속내를 밝힌다.

 

나는 이처럼 하느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갖도록 교육받고 자랐다. 하지만 어떤 자들이 내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시신을 불태워 없애버리려고 하다가 결국 토막까지 내고 말았다. 내가 믿음을 버린대도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p.21)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강렬한 믿음을 가진 사르다 가족에게 불어닥친 막내딸의 죽음은 가족의 분열을 몰고 온다. 동생이 죽은 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한 둘째 리아는 그 후 가족을 떠다 지낸다. 동생이 왜 죽어야 했는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여전히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언니 카르멘과 형부 훌리안이 아들 마테오를 찾겠다며 30년 만에 그녀를 찾아온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나는 완전하면서도 철저하고 열정적으로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과격하게 믿기도 한다. 믿음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러면 삶에서 아무런 위안도 얻지 못할 것이다. (p.349)

 

"하느님은 순수한 자비이시며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살아 있는 동안 회개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행운입니다. (p.388)

 

리아의 절친이던 마르셀라는 리아가 사체로 발견되기 전 바로 옆에서 그녀의 죽음을 목격을 마지막으로 사고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로 리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30년간 홀로 딸의 죽음을 밝히려던 알프레도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의 바램대로 마르셀라와 법의학자의 도움으로 결국 리아의 처참한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되고 이를 사랑하는 마테오와 리아에게 편지를 남긴다. 마테오는 이 편지를 이모 리아에게 전달하기 위해 집을 나와 가족과 연락을 끊은 것이다.

 

리아의 죽음을 두고 누군가는 진실을 찾고 싶은 바람으로 처절한 고통 속에 3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또한 누군가는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기를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향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에서 과연 종교와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진실은 어디까지 진실일 수 있을까?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모든 상황을 신의 뜻이라 여기고 이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행동이 오히려 신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종교를 우리 삶에 어디까지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라 생각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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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1 - 제1부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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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단숨에 스타 작가로 만들어 놓은 개미를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그의 최신작들은 거의 다 읽었으나 오히려 초기작을 읽지 않았는데 드디어 이 개미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곤충학자 에드몽 웰스는 죽으면서 조카 조나탕에게 집을 유산으로 남긴다. 가족과 함께 삼촌네 집으로 이사를 오고 절대 지하실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삼촌의 경고 편지가 받았으나 우연한 일로 지하실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조나탕을 시작으로 지하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며 인간 세계와 개미 세계가 조우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조나탕이 만나는 개미 세계는 벨로캉이라는 거대 개미 왕국으로 아주 잘 갖추어진 그들만의 시스템이 존재하는 정교한 집단이다. 각자 맡은 바를 충실히 해내는 개미들의 완벽하고 평화로운 세계에 개미들이 죽어가며 이 왕국 안에 분열이 일어난다.

 

그의 최신작들처럼 인간과 다른 종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법이 등장한다. 개미에게서는 개미가 내뿜는 페로몬을 분석해서 인간의 언어로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개미가 이해할 수 있는 페로몬으로 만들어내는 리빙스터 박사 기계는 에드몽이 지하실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미집과 우리가 사는 지구가 차이가 있다면, 개미들은 유리 벽 안에 갇혀 있고 우리는 물리적인 힘, 즉 지구의 인력에 의해 갇혀 있다는 점뿐입니다. (p.239)

 

사회 계층 구조에서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유혹할 줄 알고 살인자들을 모을 줄 알며 정보를 왜곡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p.305)

 

어리석은지고! 설사 외계인이 존재한다 한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려고 할 때 그것이 그들에게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우리가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며 다가가면, 그들은 그것을 위협하는 몸짓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할복자살을 하는 일본인이나 카스트 제도를 가진 인도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들끼리도 서로 이해를 못 하고 있는 마당에...... 개미를 이해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품었다니! (p.415)

 

초반부 수시로 개미의 시점과 인간의 시점이 교차하며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지 감이 잡히지 않아 몰입이 힘들었지만, 지하실로 들어가면서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되었다. 방대한 개미 세계에 대한 묘사는 저자가 개미 생태를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 여실히 느끼게 된다. 평소 개미에 대한 신비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개미 세계를 만나고 보니 경이롭기도 하면서 인간만이 이 지구의 주인이 아님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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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클래식 라이브러리 8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순배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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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랜드 태생의 영국 극작가이자 시인 겸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

심미주의와 데카당스 운동에 앞장서며 빅토리아 시대의 인싸였지만 동성애자로 낙인찍힌 후 대중의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징역을 선고받고 출소 뒤 결국 건강 악화로 생을 마감한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화가 바질 홀워드가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에 반해 그의 초상화를 그린다. 바질 홀워드를 통해 도리언 그레이를 소개받은 헨리 워턴 경은 도리언에게 인생에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은 아름다움과 감각의 성취라고 말한다. 헨리의 영향으로 순수하던 청년 도리언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초상화가 자신 대신 노화되기를 바란다. 도리언의 바람대로 그가 죄와 방탕의 삶에 빠져들수록 그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지만, 초상화는 그의 도덕적 타락을 반영하면서 점점 더 기괴해진다. 결국 도리언은 초상화를 파괴하지만 자신이 죽게 되는 자멸의 결말을 맞이한다.

 

삶을 누리세요! 당신 안에 있는 놀라운 삶을 누리세요! 당신에게 있는 어느 것도 잃지 않도록 하세요. 항상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찾아가세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p.38)

 

나는 아름다움이 다하지 않는 모든 것을 질투합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모델로 그린 초상화를 질투합니다. 그것은 왜 내가 잃어야 하는 것을 계속 지니고 있지요? 지나가는 시간은 내게서 무엇인 가를 뺏어다가 그림에 그것을 내어 주는 거예요. , 만약 그 반대가 된다면! 만일 바뀌는 것은 이 그림이고, 나는 지금의 나로 항상 있을 수 있다면! (p.44)

 

달콤하든 씁쓸하든 쾌락주의의 목적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경험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쾌락주의는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저속한 사치와 마찬가지로, 감각을 약화하는 금욕주의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 한순간에 불과한 생의 순간들에 집중하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어야 한다. (p.151)

 

이번에 새롭게 아르테에서 펴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검열 과정에서 수정과 삭제를 거친 초판본이 아닌 검열이 가해지기 전의 무삭제 원고의 번역본이다.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 문제가 되었던 동성애적인 암시를 담고 있다는 부분들이 현재의 시점으로 본다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무삭제 원고의 번역본을 읽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예술이 윤리적, 교훈적 목적을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병적인 감수성, 탐미적 경향, 전통의 부정과 비도덕성을 특징으로 하는 데카당스를 잘 담아내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선의 작품들도 좋았는데 그의 유일한 장편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너무 재미있기에 작가의 글솜씨에 또 한 번 감탄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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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생긴 일
마거릿 케네디 지음,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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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마거릿 케네디의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자 저자의 아홉 번째 소설이자 기독교의 일곱 가지 대죄를 다채로운 등장인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여전히 불안했던 영국의 1947년 여름. 콘월 북부의 펜디잭만의 절벽의 붕괴로 그 아래 위치한 펜디잭 호텔이 무너져 사람들이 사망한다. 이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기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열된다.

 

팬디잭 호텔에는 스물네 명의 사람이 머문다.

주인 시달 부부와 세 아들

종업원 낸시벨, 미스 엘리스, 프레드

투숙객 페일리 부부, 렉스턴 씨 부녀, 기퍼드 경 부부와 네 자녀, 코브 부인과 세 딸, 소설가 애나와 비서 브루스

 

다양한 사람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고 이곳에 머문다. 부부관계는 순탄하지 않고, 젊은 청년들은 불투명한 미래와 사랑 때문에, 아이들 또한 나름의 아픔으로 고민한다. 기독교의 7가지 죄악인 교만, 시기, 나태, 분노, 정욕, 탐식, 탐욕은 이들의 행적을 통해 드러난다. 절벽의 붕괴로 인한 인사 사고를 분명 막을 수 있었으나 안일함과 개인적 욕심으로 피해를 키웠다. 결국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죄가 유독 커 보이긴 했다. 돈에 눈이 멀어 양심과 법을 어기고, 자식들에게 학대와 가까운 양육과 방임, 계급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인과 다툼을 서슴지 않고 분란을 일으키는 등 추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물네 명이 모두 명확한 선과 악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결국, 아이들의 동심을 위해 즉,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만 살아남았다는 것은 클리셰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세상을 구하려면 죄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곳곳의 희생양, 힘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이야말로 인류를 지탱하고 지켜주는 구세주들이라고.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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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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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스노볼 드라이브등의 저자 조예은의 신작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는 복수를 꿈꾸며 돈에 집착하는 소녀와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소년의 호러 청춘 로맨스물이다.

 

3년 전 야무시의 고급 아파트에 독극물을 섞어 만든 떡을 먹고 주민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당시 가정부로 일하던 화영의 엄마도 이 사건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화영은 평소 떡을 먹지 않는 엄마의 사망 원인에 의문을 품고 진범을 찾아 복수하려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머물 곳 없는 아이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아이들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영진에게 이용당해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 화영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쓰레기장에 버려졌던 해피 스마일 테디베어였다. 야무시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한정혁의 조카인 도하의 영혼이 테디베어에 들어갔던 것이다. 정혁의 아들 도현과 도하의 부모님도 3년 전 이 독극물 사건에 목숨을 잃었다.

 

불순하고 더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기준은 누가 정하나? 바로 당신? 그러는 당신들은 얼마나 깨끗해서? (p.44)

 

이곳에는 죽은 자들의 악의가 가득해 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는 게 아니라 진해지지. 이 이야기는 그래서 중요해.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해. 그 구덩이에서, 해소되지 못한 삿된 감정으로부터. (p.255)

 

3년 전 화영과 도하는 같은 학교에 다니며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화영은 복수를 위해 도하는 다시 자기 몸을 찾기 위해 서로 돕는다. 복수를 위해 가는 길은 험난하고 그냥 험난한 정도가 아니라 목숨이 위태롭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돈 앞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탐욕과 민낯 그리고 고급 아파트의 건설 과정에 숨겨진 비밀 속의 원한 가득한 혼령 등 화영과 도하의 앞날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고급 아파트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화영과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는 불완전한 우리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살벌한 현실 속 화영와 도하도 상처만 남진 않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분명 그들은 성숙해지고 세상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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