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의 신학
John Koening 지음, 김기영 옮김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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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같은 인생입니다. 붙들었다 생각할 때 이미 저만치 멀리 가 있습니다. 기쁨의 순간은 찰나입니다. 슬픔은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이 시간 이곳에 안주하고 싶을 때, 또 다른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떠밀려 움직이는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환대입니다. 그 어떤 것도 따지지 않는 활짝 열린 품입니다. 냉담한 세상에서 가장자리에 밀려난 우리지만,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예상치 못한 환대는 차가워진 마음에 불을 지펴줍니다.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줍니다.



실패의 공간, 눈물의 시간은 환대의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그곳에 함께 함이 있습니다. 잔잔한 웃음이 있습니다. 처절하게 홀로 울었던 시간은 이제 부둥켜안고 함께 울어주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고통과 아픔은 그저 좌절과 포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연대를 허락합니다.



점처럼 흩어진 시대. 각자의 삶이 공동의 대의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다 보니 타인의 아픔이나 상황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웃을 품어주고 안아주는 환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성경에서 줄곧 강조하는 환대가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존 퀴니그(John Koenig)는 신약성경에서 '환대'라는 주제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윤리에 있어 중요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의 사역, 바울의 선교, 누가-사도행전에 나오는 초기 공동체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환대'와 '나그네와의 교제'에 대해 강조합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하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그네인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안아주십니다.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나그네를 사랑해야 합니다. 맞아주어야 합니다. 따뜻하게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우리들에게 나그네를 환대하고 대접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매우 신비로운 일은 나그네를 영접하였을 때 빈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이라도 나그네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역동이 주워집니다.



교회의 가장 큰 세 축제는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모든 절기는 나그네로 오신 그분을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엠마오로 가는 길에 나타난 그분, 성령의 바람. 이 모두 신비로운 방문자요,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물해 주시는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맞이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하나님의 풍부하심은 우리의 품을 넓게 만들어줍니다. 그리하여 깨어지고 분리된 사회를 하나 되게 하며, 화해하게 합니다. 우리는 환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그곳에서 진정한 축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워진 우리는 나그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어떤 불평등과 소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온 나그네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로를 접대하고 환영할 때에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며,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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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사순절 - 부활절을 향한 여행
알렉산더 슈메만 지음, 박노양 옮김 / 정교회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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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순절은 어떤 의미인가요? 부활절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고, 그 흔적들을 더듬어보는 시간일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주, 깊이 예수님의 말씀과 삶에서의 고난과 순종, 겸손의 발걸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개신교에서의 사순절은 그 기간을 지키지 않는 교단이 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 있습니다. 거의 개인의 묵상이나 개인적인 절제 정도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교회나 교단 차원에서 이 시기를 적극적이며 보다 풍성하게 보내려고 하는 움직임은 잘 찾아보기 힘듭니다.



정교회는 다른 교회들에 비해 다양한 전례를 품고 있습니다. 교회가 분열되기 전부터의 예배 전통을 지금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에 교회 역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전통들이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순절은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절기입니다.



정교회 신학과 전례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인 알렉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 그는 이 책 『대 사순절』을 통해 사순절의 신학을 명확하고도 폭넓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 안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까지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정교회에서의 전례 전통은 직접 경험해 보아야 보다 분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전례 전통은 하나의 의식마다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슈메만은 대 사순절의 깊은 의미와 더불어 그 삶에 보다 의식적으로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합니다.



정교회에서의 전례 전통은 각 개인이 영적 여정을 해 나갈 때 홀로만 존재하지 않음을 깨우쳐 줍니다. 전례의 여러 형식들과 그 정신을 통해 특별한 기간은 보다 공동체적으로 각 개인에게 다가갑니다. 분명한 목적지를 알려주고, 그 과정을 충실하게 보내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슈메만은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절기인 부활절을 기대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길로 사순절을 정의합니다. 그리하여 사순절은 "부활절이 목적지인 하나의 영적인 여행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부활절과의 관계를 이해해야만 사순절을 깊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를 통해 만나게 되는 정교회의 사순절 절기는 가장 경건한 예배서를 통해 현재도 지속되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부활절로 인도되는 교회의 기간인 사순절 예배서(뜨리오디온)는 영적인 사다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점점 더 고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절 전례를 통해 올바른 것을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바른 목표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참된 갈망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 정의와 생명에 대한 갈망입니다. 자신에게 갇혀 있어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겸손을 배웁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겸손이 마치 영광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립시킵니다. 하지만 진정한 영광은 겸손일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은 어떤 외적 영광이나 자기 과시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완전하시기에 그분은 영광이시며 겸손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겸손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참회하게 됩니다. 진정한 뉘우침은 어떠한 만남으로부터 발생합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인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만난 뒤에 진정한 고백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바로잡아야 참된 회개가 가능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교제, 생명의 아름다움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사순절에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철저하게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이며 용서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이자 교회의 진정한 사명입니다. 사랑과 용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빛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순절에 금식이나 절제를 먼저 떠올립니다. 한편으로 맞지만 적확하지는 않습니다. 사순절의 목표는 외적인 강제 조항들을 우리에게 부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영적인 현실에 개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향한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절 전례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합니다.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며, 그 빛을 잠시 엿봅니다. 부활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현실 가운데 흩뿌려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힘겹고 어렵지만 또렷하게 하나님만을 향해 나아가며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의 사순절은 어떠한가요? 시비를 가리는 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풍성한 영적 전통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부활의 여정을 공동체가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한지를 경험하며,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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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전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본질 그 자체를 변화시켜 놓았다는 사실 위에 놓여 있다. 비극 중의 비극을 숭고한 승리로 전환시킴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하느님 나라로의 하나의 통과passage, 하나의 빠스까Pascha로 만드셨다.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으심으로", 그분은 우리를 그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하셨다. - P18

온갖 선전과 자기 긍정과 끝없는 자랑으로 양육된 현대인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진정으로 완전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은 동시에 자연스럽게도 겸손한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완전은 바로 그 완전성 때문에 선전이나 외적 영광이나 어떤 종류의 자기 과시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겸손하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완전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겸손은 바로 그분의 영광이요 모든 진정한 아름다움과 완전과 선의 원천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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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하는 삶 - 도로시 데이, 평화와 애덕의 83년
로버트 콜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낮은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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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모든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선합니다. 폭군의 통치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라고 표현하는 신학자(몰트만)도 있습니다. 어떠한 표현이든 하나님의 선한 다스림은 모든 영역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을 때 가장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샬롬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평화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없더라도, 부강한 나라는 여전히 약한 나라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속박합니다. 진정한 샬롬은 모든 관계의 화목을 전제로 합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친밀하게 어우러집니다.


결국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샬롬이 뒤따르게 됩니다. 복음을 믿는 공동체는 화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메시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평화, 화해, 정의, 환대의 삶을 사는 것이 곳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된 삶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한복판에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한 명이 도로시 데이(Dorothy Day)입니다.


도로시 데이의 삶을 직간접적 목격하여 기록한 이 책 『환대하는 삶』의 저자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그는 도로시 데이와의 만남을 서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와의 감동적인 만남을 통해 저자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자만심과 오만, 특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저자는 도로시 데이와의 영적 교감과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을 회고합니다. 도로시 데이의 젊은 시절은 자유 자체였습니다. 매우 급진적이었던 그녀는 어떤 면에서 방탕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이후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급진주의 신문 '가톨릭 일꾼'을 펴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녀는 대접하는 사람과 대접받는 사람의 구분을 없애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녀는 '환대의 집'을 엽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여, 작은 부분부터 평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녀는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되고자 했습니다. 평화를 빼앗긴 자들에게는 칼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아픔과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는 삶이었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몸을 통해 사랑을 드러내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드러내는 삶에서 극복하고 던져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공동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무심함인 것이죠. 자신만을 위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배려나 공감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도로시 데이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더 높아지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세상 가운데서 낮아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들과 부대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함께하며, 위로하며, 기꺼이 자신을 던졌습니다.


참으로 헌신적이었지만, 매우 진실한 사람이었던 도로시 데이. 그리하여 논쟁거리도 많지만, 우리는 그녀의 삶을 통해 베풀고 나누며, 샬롬을 위해 자신을 던진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던진 사람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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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에게 이상주의란 스스로 실체를 드러내는 덕인 동시에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주의는 우리 이웃 속에 보이는 고통을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한다면 전혀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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