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의 마음이 상처입은 독수리와 같다고 여긴다. 그림자와 빛으로 짜여져, 영웅적인 행동과 지독히도 비겁한 행동 둘 다를 할 수 있는 게 인간의 마음이요, 광대한 지평을 갈망하지만 끊임없이 온갖 장애물에, 대개의 경우 내면적인 장애물에 부딪히는 게 바로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 P38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 P94

인간의 자유는 그것이 사랑을 위해 쓰여질 때만이 위대하다. - P128

고통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신앙에 대한 설교일지라도 말이다.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어린 몸짓으로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그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 자비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경험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 P213

삶에 대해 몽상하지 말자. 삶을 만들어가자. 공허한 말에 만족하지 말고 사랑하자. 그리하여 시간의 어둠에서 빠져나갈 때, 모든 사랑의 원천에 다가서는 우리의 마음은 타는 듯 뜨거우리라.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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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신앙 - “내 상처를 보고 만져라.”
토마시 할리크 지음, 오민환 옮김 / 분도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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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이상적이고 낙관적이라 어려운 순간에도 희망을 보려 애써 왔습니다. 고통과 고난을 고스란히 견딜 수 있는 힘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슬픔과 불신 가운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아픔에 전심으로 동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의 깊은 상처를 애써 부정하며 긍정적 기억을 삶의 연료로 삼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예수님의 깊은 상흔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죄의 무게를 홀로 오롯이 감당하셨던 그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보다 부활을 삶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아직도 철이 없지만, 인생을 굽이굽이 지나다 보니 우리네 삶이 참으로 복잡다단함을 느끼게 됩니다. 영광과 승리, 성취와 기쁨만이 있지도 않고, 한없는 절망과 고통만 계속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며, 절망 중에 희망이 엿보였고, 고난은 또 다른 연대와 환대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추고 싶었던 상처와 고통이 나누어졌을 때,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들은 우리를 하나 되게 했습니다. 미처 알 수 없었던 그 사람의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나의 상처가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아픔이 되어, '함께'라는 소중한 힘을 얻게 됩니다.



체코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시 할리크(Tomas Halik)는 『상처 입은 신앙』을 통해, 상처 없는 신앙은 환상이며, 신앙의 위기와 의심이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라고 강조합니다. 그저 즐겁고 행복한 승리의 신앙은 우리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토마스(도마) 사도의 의심은 불신의 모습이 아니라, 참 신앙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라고 주장합니다. 어두운 밤을 통과하며 우리는 부단히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한 고통의 순간들은 우리의 상처가 됩니다. 그러한 고통의 증거를 만지는 사람이 참된 부활의 예수를 알아볼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분을 따라가다 보면 위기가 도래하고,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시작하여, 참 신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찌 어두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빛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확신으로 가득 찬 신앙은 다른 사람을 정죄할 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철저히 고통당하셨고, 상처 입으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에게 해주는 것이 나에게 해주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상처 입은 자들의 주님이 되어주십니다.



쓰라린 가슴을 부둥켜안고 이제 조금씩 주위를 둘러봅니다. 그동안 존재했지만,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아픔과 상처로 인해 절규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사명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상처로 인해 우리는 주님과 이웃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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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진정 그리스도교적인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분리되었으며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느냐, 아니면 그 반대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다음의 사실에서 결정된다. 즉,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이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낯선 자인가 아니면 그리스도교의 실존을 결정하는 주님인가 하는 사실에서 결정된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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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아버지 - 예수의 비유 설교
헬무트 틸리케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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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말과 글은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옵니다. 그 언어가 우리의 일상을 잘 묘사한다면, 더욱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삶과 잇대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더더욱 분명한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흩날리는 글, 탐욕을 부추기는 글, 현란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언어가 난무합니다. 그 가운데 진주를 찾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작가나 설교자를 찾습니다. 마음을 다하며 연구하고 분석한 텍스트를 아름답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위대한 설교자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신학계에 두각을 나타낸 틸리케는 실제로 반(反) 나치 고백교회 운동에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글과 말은 살아있고, 예리합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비유를 "하나님의 그림책"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이 책의 독일어 원제가 "하나님의 그림책"입니다. 틸리케는 비유가 어려운 비밀로 우리를 이끄는 힘이 있다 말합니다. 청중은 듣지만, 바로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밝히지 않고 감추며, 열지 않고 막습니다.



우리 안에만 머무는 이야기는 우리를 가두어 놓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도 없으며,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틸리케는 "피조물을 묘사한 그림책은 우리를 피조물의 내적인 자기 성찰 안에 감금"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를 아버지께로 안내합니다. 명확하게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세상에 빛을 비추어줍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분명한 이름을 얻게 됩니다. 닫혀있던 것이 열리게 되고, 비밀스럽던 것이 구체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우리는 이름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언어와 세상의 이미지를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철저하게 낮아지셔서 우리를 배려하십니다.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줍니다. 따뜻함을 줍니다. 어렵지 않고 쉽게 우리에게 확신을 선물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시끌벅적한 세상의 무대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인간의 연약함, 죄로 가득함을 만나게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였음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틸리케의 설교는 독특합니다. 기존에 알았다고 생각하는 본문을 새롭게 만나게 합니다. 너무도 자주 읽고, 설교를 통해 들었던 예수님의 비유가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면을 보여줍니다. 똑같은 본문이라 하여 그것이 동일한 메시지를 던져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내면의 상태에 따라, 혹은 관점의 차이에 따라 본문은 여러 말을 합니다. 틸리케를 따라 성경을 읽다 보면 매우 낯설게 본문을 보게 됩니다.



새롭게 만나게 되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실존과 맞닿습니다. 나의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동안 깊숙하게 감춰두었던 나만의 비밀을 꺼내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나의 겉모습이 아닌 참 자아, 진정한 존재와 대면할 수 있게 만듭니다.



틸리케의 설교는 묘한 매력과 힘이 있습니다. 말씀 앞에 우리를 서게 만듭니다. 허황되고 이상적인 무엇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실제적인 고민에 빠지게 만듭니다.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설교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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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신학
John Koening 지음, 김기영 옮김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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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같은 인생입니다. 붙들었다 생각할 때 이미 저만치 멀리 가 있습니다. 기쁨의 순간은 찰나입니다. 슬픔은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이 시간 이곳에 안주하고 싶을 때, 또 다른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떠밀려 움직이는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환대입니다. 그 어떤 것도 따지지 않는 활짝 열린 품입니다. 냉담한 세상에서 가장자리에 밀려난 우리지만,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예상치 못한 환대는 차가워진 마음에 불을 지펴줍니다.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줍니다.



실패의 공간, 눈물의 시간은 환대의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그곳에 함께 함이 있습니다. 잔잔한 웃음이 있습니다. 처절하게 홀로 울었던 시간은 이제 부둥켜안고 함께 울어주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고통과 아픔은 그저 좌절과 포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연대를 허락합니다.



점처럼 흩어진 시대. 각자의 삶이 공동의 대의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다 보니 타인의 아픔이나 상황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웃을 품어주고 안아주는 환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성경에서 줄곧 강조하는 환대가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존 퀴니그(John Koenig)는 신약성경에서 '환대'라는 주제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윤리에 있어 중요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의 사역, 바울의 선교, 누가-사도행전에 나오는 초기 공동체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환대'와 '나그네와의 교제'에 대해 강조합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하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그네인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안아주십니다.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나그네를 사랑해야 합니다. 맞아주어야 합니다. 따뜻하게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우리들에게 나그네를 환대하고 대접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매우 신비로운 일은 나그네를 영접하였을 때 빈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이라도 나그네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역동이 주워집니다.



교회의 가장 큰 세 축제는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모든 절기는 나그네로 오신 그분을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엠마오로 가는 길에 나타난 그분, 성령의 바람. 이 모두 신비로운 방문자요,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물해 주시는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맞이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하나님의 풍부하심은 우리의 품을 넓게 만들어줍니다. 그리하여 깨어지고 분리된 사회를 하나 되게 하며, 화해하게 합니다. 우리는 환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그곳에서 진정한 축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워진 우리는 나그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어떤 불평등과 소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온 나그네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로를 접대하고 환영할 때에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며,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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