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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어젠다 2022 - 자유, 평등 그리고 공정
김낙회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저자들은 모두 전직 기획재정부 고위관료 출신이다. 흔히들 정부관료는 아카데미에서 연구하는 교수들과는 달리 현실감각과 이론을 겸비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정치인에 비해서 이념지향에 있어 중립적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표지에 "경제정책 전문가 5인"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저자들의 자부심은 이러한 세간의 평가를 반영하는 듯하다.
책을 집필하는 저자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이제 1년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다. 부디 현명한 경제정책으로 우리 경제가 다시 힘차게 도약하고 국민들도 미래에 대해 더 많은 희망을 품게 되기를 바란다. 여기에 이 책이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라고 적고 있다. 저자들은 대선주자에게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팔리고 다음 정권에서 중용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태도는 사실 바람직하다. 국민들에게 제시할 분명한 아이디어 없이 신문에 뻔한 칼럼을 쓴 평판으로 대선주자의 캠프에 얼정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책은 현재 우리 사회의 가치로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정"를 인식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경제정책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책방안의 핵심은 의미 있는 사회안전망으로 "부의 소득세 (negative income tax)"와 제도 개혁을 위해 "기준국가"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평등과 포용적 경제를 위한 정책으로 제시하는 NIT는 19세 이상 전국민 개인에게 최저소득으로 월 50만원, 18세 이하에게는 월 30만원을 보장하는 것이다. 대신에 1,200만원까지는 소득세율이 50%이고, 그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현행과 유사한 15-45%를 부과한다. 그리고 부양가족에 대한 지원 명분으로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인적공제를 폐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급되고 있는 기초연금, 생계급여, 주거급여, 아동보육 등을 중단한다.
저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NIT 제도 도입에 따라 지급되는 금액은 172.7조원이다. 그러나 공제제도의 폐지로 39.4조원, 근로소득공제 폐지로 36.2조원이 절감되어 순수하게 재원은 97.1조원이 필요하다. 나머지 필요재원을 위해서 NIT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정부지출을 과감하게 줄이거나 폐지하고, 부가가치세를 현행 10%에서 15%로 높이고, 문재인 정부 들어선 이후 높은 증가율을 보였던 지출을 되돌려 127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련된 127조원은 NIT에 소요되는 97.1조원에 비해 오히려 30조원이 많으므로 정부부채를 상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감한 정책제안이다. 그렇지만 NIT라는 멋진 이름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추가적인 세금이라고 해보았자 역진성이 높은 부가가치세라는 점에서 저소득층이 현재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을 다시 포장한 것일 뿐이다. 더욱이 현재 이전지출 지급대상이 아닌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어 저소득층이 수혜받는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저자들은 현재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중산층의 자녀와 자산을 많이 보유한 노인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NIT의 핵심 문제는 저자들이 우리 사회의 가치로 제시하는 "평등과 공정"에 합당한가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자집 아들이 부모에게 매월 용돈 100만원을 받으면 정부는 이에 더해 50만원을 지급해 준다. 그런데 가난한 집 아들이 힘들여 알바를 하여 매월 100만원을 벌면 정부는 소득이 있다면 땡전 한푼 주지 않는다. 현재 우리 사회는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을 책정하는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벌이고 있는데, 정작 NIT가 도입될 경우 알바를 하여 100만원을 벌면 세금으로 50만원을 내야한다. 과연 이러한 정부 보조금과 세금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고, 우리 국민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저자들이 이러한 역진성을 모르고 있을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다양한 세율 적용을 검토하면서 NIT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고 특히 기본소득제도와도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들은 정부에 있으면서 세제에 관한 논의를 오랫동안 담당한 덕분인지 구체적인 사항까지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구 기준 대신에 개인을 기준으로 해야하며, 소득에서 예금 등 자산소득을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전 세제 논의에서 보수 언론이 부각했던 부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여기에서도 돋보인다.
다음으로 규제개혁 실행방안으로 "기준국가제 도입"이다. 현재 보수 언론에서 우리 사회는 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힘든 국가라고 말해지고 있다. 규제란 대부분 국민의 일부에게는 이익을 다른 일부에게는 손실을 초래하므로 도입과 폐지 모두 어렵다. 또한 논의 과정에서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사회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타국의 사례를 살펴보기도 한다. 저자들은 타국의 사례를 단순 참고하지 말고 아애 "기준 국가"를 선정하여 이들 국가의 제도를 가능한 통째로 수입하자는 것이다. 타국으로 저자들은 미국과 스웨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개혁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국민의 갈등만 양산하고 무산되었던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이념이 양극화 되어 있어 좌파는 좌파대로, 우파는 우파대로 상대편의 언론과 정파들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들의 실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저자들은 규제란 각국의 역사, 문화, 이념적 배경을 토대로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규제개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반면에 입법을 통한 정당한 절차를 밟기에는 정치권의 무능과 포풀리즘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타국의 제도를 수입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모든 제도는 맥락이 있게 마련이다. 스웨덴의 노동법은 국민 일반의 높은 소득수준, 잘 정비된 사회보장제도, 국민들의 높은 도덕성과 연대의식에 기초한다. 강제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약자들을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면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다. 반복되는 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데도 높은 수익을 위해 현장의 안전장치 도입을 꺼리는 현실을 무시하고 선직국의 법규를 베끼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자들은 미국은 규제가 적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궁금하다. 집의 정문의 페이트 색깔, 정원의 나무 관리까지 서로 간섭하고, 바닷가에서 조개 하나 줍는 것도 규제하고 있다.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어 먹을 수 있는 불판을 설치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규제에 관한 견해에서 진짜 문제는 규제 베끼기가 아니다. 저자에게 묻고 싶은 것은 불안전하다고 해서 피흘려 성취해 온 민주주의를 버려야 하는가이다. 저자들은 초법적인 "규제개혁위원회"를 운영하자고 제안한다. 관리 대상으로 국회의 입법 전체를 다루고, 사법부 대신에 기업과 개인 등 비규제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심사 시정조치를 하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에게는 "국회는 '표'의 계산 없이 생산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우며, 사법부는 더디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구조"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신문에서 책에 관한 소개를 읽고서 기대가 높았다. 이유는 정부관료가 썼기 때문은 아니었다. 종전에 정부관료가 쓴 책을 읽고서 실망한 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가 높았던 이유는 저자가 5명이기 때문에 서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성숙하고 이념적 편향은 줄었으리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이디어는 난폭하고 보수 이데올로기는 확고하다. 아마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논의하고 술마셨기 때문에 진정한 토론은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