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복남아, 내가 유식하게 한 말씀 해보랴? 있잖냐, 인생이란 좆이나 탱고다 그런 말씀이야.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한평생 살다 꺼져가기는 다 마찬가지다 그거야.
그러니까 너도 너무 속 썩이고 고민하고 그러지 마. 되는 일 없이괜히 골치만 아퍼. 알아들어?" - P75

"내가 죽을 때 자식들한테 남길 유언이 꼭 한마디 있네. 그게 뭔고 하니, 나라를 또다시 뺏기게 되더라도 절대로 독립운동하지 말아라. 눈치껏 요령껏 사는 게 최상수다, 하고 말할 작정이야."  - P82

"이거 한참 잘 나가는데 김 빼고 그러지 말어. 그러니까 말야, 그런 사실을 날마다 지구본 빙빙 돌리면서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히알고 있는 케네디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뭐겠어. 공산주의의 마수로부터 남한을 철통같이 지켜내는 일이라 그거야. 그럼 그 위대한 소임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가 누구냐! 그건 바로 별넷에 빛나는 4성장군 박정희다 그런 말씀이야 아까 누가 케네디한테 실망했다고 하던데, 제발 그런 순진한 소리 하지 마 그건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 대통령 케네디한테 무슨 기대를 했었다는뜻인데,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내에서만 민주정치를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을 뿐이지 국외인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민주정치를하든 독재정치를 하든 아무 관심도 없어. 그런데, 미국은 자기네와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의 지배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불변의 조건이 한 가지 있어. 그게 뭐냐! 바로 투철한 반공주의야. 혁명공약 제1항에 반공주의를 내세운 박정희를 결국 케네디가 미국으로 초청해 백악관에서 손 어루만진 건 당연한 결과야 우린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해. 거기서 우리의 앞길에 대한 해답도 나오는 거니까." - P101

"그래, 이제 와서 친일파고 뭐고 따져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러게 말야. 따져봤자 말짱 헛것 아냐 다 그 사람들이 잡고 있으니 몰아낼 수가 있나, 처벌할 수가 있나."
"그래 글쎄. 떠드는 놈들 입만 아프다니까.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촌놈들이 하는 짓이야."
"맞아, 세상 물정 모르는 촌놈들이 괜히 촌스럽게 구는 거야. 다지나가버린 것 따져서 뭘 해."
"그럼, 그럼, 제놈들이 그 시절에 살았으면 별수 있었을 것 같애?
막말로 그 시절에 친일은 아무나 할 수 있었는 줄 알아? 무식하고못나면 친일도 못했다구. 더 왈가왈부할 것 없어."
친일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십중팔구 이런 사람들 앞에서 친일파를 비판한 사람은 꼼짝없이 ‘촌놈‘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우를 당할 때면 남재구는 가슴 한구석에 숨어 있던 생각이 음험하게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는 걸 느끼곤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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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네 방 책상이랑 침대랑 어디에 놓는 게 좋을지 봐."
미르는 여기 오기까지 모든 걸 마음대로 했던 엄마가 침대량 책상 놓을 자리를 보라고 하는 게 어이없었다. 자기 인생인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런 것뿐이라는 사실도억울했다.  - P12

‘나는 미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소희는 비밀일기장에 적었다.

소희는 미르의 가면을 자신의 검사용 일기장 같은 거라고생각했다. 비밀 일기장을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것처럼그 아이도 남한테 혼자만의 얼굴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 P12

나는 미르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 애가 보여 준 게 아니었다고 해도 혼자만의 얼굴을 본 사람이 가져야 하는아주 작은 예의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남의 일기장을 봐 놓고 남들에게 그 내용을 떠들고 다니는 짓이나마찬가지다. - P75

소장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미르에게 좀 더 잘했어야 했다. 그 애가 오길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먼저다가갔어야 했다. 아이들이 뭐라고 뒷소리를 하든 내가먼저 마음을 열었어야 했다. 아무래도 내가 미르보다더 마음 부자인 것 같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자기가 가진 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기 전에는 내가 그 애보다 훨씬 더 부자다. - P94

바우는 미르가 날카롭게 구는 이유를 이해했다. 자신이말하지 않는 것으로 엄마 잃은 슬픔을 나타냈듯이 미르는가시를 세운 모습으로 아빠와 헤어진 슬픔을 표현하는 거라고 바우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보면 엉겅퀴꽃이 생각났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 같지만 만져 보면 부드러운 엉겅퀴꽃.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여린 마음을 들키기 싫어 가시 돋친 모습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 P137

엄마, 이 꽃 이름이 뭔 줄 아세요? 하늘말나리예요. 진홍빛 하늘말나리는 꽃도 예쁘지만 잎도 예쁘게 났어요.
빙 둘러 난 게 바퀴 모양 같아요. 백합이나 원추리 같은다른 백합과 꽃들은 꽃이 땅을 내려다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서 핀대요. 그 모습이 뭔가 소원을비는 것 같아요. - P146

"이제 오해 풀렸지? 엄마가 지금까지 내 자식이고 아직어리니까 너를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앞으론 조심할게. 그리고 네가 엄마를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 한 인간으로 이해해 줄 때가 오길 기다릴게."
엄마 말은 미르의 가슴에 출렁, 하고 떨어져 물무늬를 만들었다.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 한 인간? 우리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 한 인간이라고?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의 끈을가위로 싹둑 자르는 느낌이 들어 서운했지만, 엄마가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는 건 마음에 들었다. - P184

"다른 나리꽃들은 땅을 보면서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보면서 피어."

"하늘말나리, 소희를 닮은 꽃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

"너희들도 하늘말나리야!"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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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패배하고.]
그런 일이 열 번.
[패배했으며.]
백번
[또 패배했다.]
천 번도 넘게 반복되었다.
[그런데 너는 또다시 우리에게 그 전장에 서라고 하는구나.]
마치 유중혁의 회귀가 그러했던 것처럼.
[너희는 언제까지 과거의 망령을 불러낼 것이냐? 대체 언제까지 죽은 신화의 껍데기를 뒤집고, 능욕할 것이냐?]
이 거신들은 유중혁과는 다른 의미에서 ‘회귀자‘였고.
마침내 그 ‘회귀‘에 지쳐버린 존재였다.
[아이야, 우리는 해방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다.] - P106

완벽한 설화.
누군가는 ‘단 하나의 설화‘를 그런 이름으로 부른다. 이제껏존재하지 않던 설화를 쌓아 만든,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이야기.
"저는 그냥 동료들과 함께 끝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누구도잃지 않고, 모두 함께 말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껏 그런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사실이다. 희생 없는 신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스타 스트림의 개연성은 항상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움직이지. ‘운명‘이 너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그리고 [운명]이라면 이미 극복한 적도 있습니다." - P137

「하지만 김독자는 유 중 혁이 아니 지.」유중혁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녀석이 회귀자이기 때문이었다.
나와는 다른 회귀자 몇 번이나 삶을 반복할 수 있는 존재,
하지만 내 삶은 이번 한 번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이 삶은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실수하면누군가가 죽는다. 그래서 나는 실수하지 않았다. 흐름을 비틀고, 뒤틀린 개연성을 감수하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잘 왔다고생각했다.
브리아레오스는 말했다.
-진짜 ‘운명‘은 피할 수도 없고, 그것을 피해 간다면 개연성은 반드시 왜곡된다. 그리고 뒤틀린 개연성은 반드시 누군가가 대신 해소해야만 하지 - P348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만 ‘이야기의 결말‘을 볼 수있다면, 저는 차라리 결말을 보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죽여야 하는 것.
"목숨을 두고 선택지 따위가 존재한다면 애초에 그건 잘못된 이야기인 겁니다."
내 대답을 두고 ‘양산형 제작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길이 없는 길‘이라고.
[제4의 벽‘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선택이 아니다.
처음부터 내게 길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마왕, ‘구원의 마왕‘이 ‘제4의 벽‘을 바라봅니다.]
7나는 유중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관한 한 그 녀석과 내 대답은 똑같다.
"저는 그 ‘이야기‘를 부술 겁니다. 그러니까 유상아 씨는 죽지 않습니다. 제 어머니도요."
새카만 어둠으로 덮인 막다른 벽이 눈앞에 있었다.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을 것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벽.
나는 천천히 그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 P353

"니르바나."
니르바나는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특성‘이 있지만 ‘완벽한 불사의 특성‘은 단둘뿐이라는 것을.
하나는 회귀자 유중혁,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네 배후성, ‘만다라의 수호자‘는 지금 어디 있지?"
최초의 환생자.
이제 이 이야기의 세 번째 주인공을 만나러 갈 때가 왔다.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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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회차의 유중혁은 내가 알던 원작의 유중혁이었다.
어머니가 교도소에 갇혔을 때도 내가 왕따를 당했을 때도수능을 보고, 군대에 가고, 다시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내가줄곧 지켜보던 그 유중이었다. 냉혹하고 계산적이며 포기하지 않는 유중혁.
어린 나는 그런 유중혁을 보며 살아왔다. 살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놈을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저 유중혁이 이곳에서 죽으면 내가 알던 멸살법은 영원히 사라진다.
유중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죽고 싶다."
너무나 분명하고, 명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분명한 목소리가 내게만 들려왔다.
「살고 싶다.」 - P192

「네가 보여준 ‘세계‘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해.]
「그렇군.」
「너는 내가 죽어야만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러면 늦는다.」
「이곳에 있으면, 너는 그 세계를 구할 수 없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특성 개화의 계기를 맞이합니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새로운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나는 그 세계의 ■ ■ 이 궁금해졌다.」

「만약, 한 사람의 존재가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면 어떨까.」수만 명의 한수영이 말하고 있었다.
「하나의 존재가 두 개의 분신으로 나누어진다면, 둘 중 어느 쪽을
‘진짜‘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눈부신 광휘 속에서 둘로 분열한 유중혁이 서로 마주 보고있었다.

「하나의 존재가 둘이 되었다.」하지만, 그 존재의 배후성은 하나뿐이다.」

「나는 죽는다.」
「나는 회귀한다.」
「이 이야기는 이곳에서 끝난다.」「그럼에도 다시 한번, 그 모든 것은 처음부터 시작된다.」

[화신 ‘유중혁‘이 사망했습니다.]
[화신 ‘유중혁‘의 배후성이 자신의 화신을 바라봅니다.][성흔, ‘회귀 Lv.???‘가 발동합니다.][화신 ‘유중혁‘이 배후성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내 유년을 지켜준 인물이,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 회차에서는.」
유중혁의 모습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해당 인물은 ‘등장인물‘이 아닙니다.]

눈부신 빛이 재처럼 허공에 날리고, 창백한 현실의 광경이드러났다. 그 속에서 유중혁만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향해 걸어갔다. - P197

「내가 너였다면 좋았을 것을.」
「이 세계에는 김독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에게도.」시나리오를 끝까지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야.」

[제4의 벽]이 말했다.
「너도 이 걸원했잖아.」
「주인공이 되고 싶었잖아.」
「너는 유중혁이다.」

나는 유중혁이 아니야.

김독자는 유중혁이다.」

내가 되고 싶은 건 주인공이 아니라고.

「그럼 너는 무얼 위해 시나리오를 수행하는거지?」

무엇을 위해 시나리오를 수행하는가.
별을 향해 손을 뻗는 유중혁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24그런 걸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뭐 하러 목숨 걸고 시나리오를 깨왔겠어. - P379

[역시 그대였군요. ‘최후의 벽의 파편‘이 선택한 존재가]

[선악을 가르는 벽이 깜짝 놀라 당신을 바라봅니다.]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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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소리 말어라. 그게 세상인 게야. 강원도에서 옥중출마자가 당선된 걸 봐라.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 P59

가난이란 굶주림과 헐벗음의 끝없는 수렁이었다. 굶주림은 속으로 사무치는슬픔이었고, 헐벗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창피스러움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버린 다음 식구들은 전부 점심을 굶어야 했다.

"서러움 중에 큰 서러움이 배는 서러움인데……" - P185

홍성기가 그러는 것은 아직 고등학생이라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사리 분별을 못하는 탓인지, 대학을 다니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평생 그러기가 쉬웠다. 친일파들이 계속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는 그런 태도로 얼마든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덕으로 남들보다 먼저출세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홍성기나 장경식이 친일파 편을 드는 것은 그나마 자기네 아버지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 아이들의 태도였다. 언쟁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거 다 지나간 옛날얘기 아니냐. ‘이제 와서 따져서 뭐 하자는 거나 ‘우리도 그때 살았으면 벌수 있었겠냐. ‘어쩔 수 없어서 그랬을것 아니냐‘ 이런 반응들을 보였다. 그런데 그건 그들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아이들은 마치 제 생각인 것처럼 그대로 되뇌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친일과 세상에서 친일파들이 좋도록 꾸며낸 말에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어떤 아이는 ‘그런 걸 따지는 건 촌놈 짓이라고도 했다. 그 ‘촌놈 짓‘이란 ‘촌스러운 짓일 수도 있었고, ‘촌놈들이나 하는 짓일 수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친일파들을 공박하고 나선유일표나 이상재의 고향이 지방이었다. 어쨌거나 촌놈이란 좋지 않은 욕이었다. - P190

"너, 수학이나 과학 과목들은 어쩔 수 없다 치고, 음악이나 미술 과목 교과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니? 온통 서양 음악에 서양 미술인 거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음악이 없고 우리 미술이 없는 거냐? 우리 것은 무조건 무시해 버리고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 사족을 못 쓰고 가르쳐대는 이런 식의 교육이 앞으로 몇십년 계속돼 봐라, 우리 꼴이 뭐가 되겠는지, 모두 서양 것이면 무조건 높고 귀하게 보고, 우리 것이면 무조건 천하고 나쁘게 보는 얼간이들이 돼 있을 테니까. 조선시대에만 사대주의가 있었던 게 아니야. 해방 이후의 이런 작태는 신사대주의다."
그래서 그런지 오빠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퍽 고급한 문화생활로치부되고 있는 르네상스니 세시봉이니 하는 음악감상실에 드나드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오빠의 말은 되새겨볼수록 맞고, 그럴수록 박영자는 안타깝기만 했다. 일개 대학생이 깨닫고 있는 그런 일을 어째서 교과서를 만드는 유식한 사람들이 모를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했을때였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 유치하고 촌스러운 것을 배워 무엇하느냐고 비웃었다. 우리의 것은 이미 친구들의 의식 속에 유치하고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고, 그런 말을 하는 자신까지 유치하고 촌스럽게 취급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설복시킬 도리가 없었다.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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