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나 간호원들이 독일돈 벌어들이나, 군인이나 근로자들이 월남서미국돈 벌어들이나, 우리가 멀리 외국까지 나갈 것 없이 궁뎅이 운전으로 일본돈 착착 벌어들이나 뭐가 달라 그래.」
「두말하면 잔소리지. 애국자가 뭐 따로 있나. 우리도 앗싸한 애국자지.」 - P11

1972년 8월 3일 실시된 당일로 8.3조치‘로 불리기 시작한 ‘기업 사채 긴급 동결령‘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하룻밤 사이에 기업체 사장들이 돈벼락을 맞고 사채업자들이 날벼락을 맞은 때문만이 아니었다.
또, 독재정치를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로 둔갑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처럼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미명 아래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턱없이 확대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업들을 비호하고 나섰기 때문만도아니었다. 그 황당한 ‘한국적 자본주의‘의 행태로 사채업자들보다 더 참혹하게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 피해자들은 이상하게도 지지리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 P41

그런 그들은 한국 간호원들이 집안 식구들을 위해서 그렇게 혹독한노동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살지 않고 여자 혼자의 힘으로 집안 식구 모두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집안이 가난하면 식구들 모두가 그 책임을 지고 고생해야 옳지 왜 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며 그 짐을 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간호원들이 아름답게 생각하는자기희생을 서독 간호원들은 논리에 맞지 않는 가족들의 무책임이라고받아들였다. 그리고 사회복지제도가 전혀 없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서독 간호원들은 어떻게 그런 나라가 있을 수 있느냐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 사이에는 말로 이해될 수 없는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 P210

다음날 한인곤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옷을 챙겨 입었다. 옷을 한 가지씩 입으며 한인곤은 자꾸 눈물이 나려는 목메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 끌려와 옷이 벗겨진 이후로 처음 입는 옷이었다. 옷의 기능이 단순히추위를 막는 것이 아니고, 멋을 부리기 위한 것은 더구나 아닌 것을 그는 이번에 절실하게 깨달았다. 옷으로 수치를 가리고 위신을 보호한다는 것은 옷의 기능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옷을 벗겨버리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잔혹한 고문이었다. - P223

남재구의 판에 박은 듯한 달변에 한인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박정회 맹신자들이라는 말이 있었다. 자나깨나 경제건설을 주장하고, 정치행위의 모든 갈등이나 모순도 경제건설이라는 미명으로 합리화시켜버리는 것이 ‘박정희라는 것이고. 그 논리를 무작정 추종하며 때와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타당성을 역설해대는 자들을 맹신자라고 이름붙였다.
그런데 그 사회적 비아냥거림과 야유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내세우며출세의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숱한 게 정치판이기도 했다. 남자구도 영락없이 그런 부류들 중의 하나였다. - P226

「차아암∙∙∙∙∙∙ 저 한강을 건너올 땐 정말 청춘이었고 꿈도 컸었는데……………」
김선태는 중얼거림 끝에 또 긴 한숨을 매달았다. 그의 눈길은 저 멀리아득하게 흘러가고 있는 한강에 가 있었다.
「그야 어디 자네만 그런가. 나도 그랬고, 한강철교 건너온 젊은놈들이야다 청운의 꿈을 품었었지. 그래, 서울은 참 묘한 곳이야. 출세의 도시이기도 하고 절망의 도시이기도 해. 무작정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발휘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잔인한 도시이기도 하지. 조선 500년에서지금까지 출세해 보겠다고 서울로 밀려들었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저한강에 눈물을 떨구며 발길을 돌린 젊은이들이 그 얼마나 많겠는가. 그눈물을 다 모아놓으면 또 하나 한강이 될지도 모르지. 오랜만에 남산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니 감정이 묘해지는군. 이 사람아, 제사 지내나?」
「아, 예에.......」
김선태는 반쯤 남은 술을 털어넣고 얼른 잔을 건넸다.
「사실 인생이란 게 별게 아니긴 한데 고비고비 잘 풀리지 않으면 그것참 팍팍한 모래밭인 거라. 죽고 나면 다 헛것인데 산 목숨 하루하루는심각하고 절실하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숱한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제 나름으로 많은 말들을 했는데 정작 정답은없는게 인생이거든. 사는 것, 그것에 열중할 수밖에 없어.」 - P247

경제발전이란 서울 시내에 중구난방으로 솟아오르는 고층건물들로나타났고, 키높이 경쟁을 하는 것 같은 그 건물들은 ‘빌딩숲‘이라는 외국말과 한국말을 짜맞춰 이상야릇한 새 말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 말과 똑같은 연유로 탄생한 것이 ‘아파트‘이었다. - P2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9퍼센트의 나
「왜 49 퍼센트야?」
「너답지 않았어」
"아니, 이게 나다운 거야."
한심하고, 철없고, 결정적인 순간에 이기적인 ‘김독자‘다운 일
「2퍼센트.」
그 숫자는 내가 일행들을 더 잘 기억하고 있다는 증명이었고, 내가 아바타보다 일행들이 기억하는 ‘김독자‘에 가깝다는기만이었다.
누구도 이곳의 나를 알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일행들의 이야기가 끝이 나더라도.. 적어도 나는, 영원히 그들을 잊지않을 것이라는 맹세였다. - P10

「유중혁은 이 세계에서 ‘시나리오‘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누구보다 시나리오를 잘 클리어할 수 있었던 패왕은, 역설적이게도 시나리오가 끝나자 그 쓸모가 사라졌다.
시나리오가 끝난 세계에서 유중혁은 이제 무엇이 되는 것일까. - P94

스킬과 성흔이 존재하는 세계. 세계의 모든 것이 이야기의 구성품이던 세계. 그곳에서 치료란 곧 설화를 수선하는 것이었다.

김독자가 평생에 걸쳐 이룬 세계가 이제 그를 죽이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가 끝난 세계에 독자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 P153

"너희가 돌아가는 곳은 ‘과거‘가 아니다. 그냥 다른 세계선이지. 인간은 무슨 짓을 어떻게 해도 과거로 갈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은 너희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너희 기억 속에서 죽은 자들과는 다르니까. 그들은 너희와 함께 보낸 어떤시간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너희는 너희가 살았던 시간이 결코 돌아오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고통이 배어 있었다. 오직 혼자서 사라진 세계를 기억하며 살아온 인간의 말이었다.
"너희는 더욱 외로워질 것이고, 끝내는 혼자가 될 것이다.
누구도 그런 너희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너희의 고통을 이해하는 대신 너희를 회귀자라 부르며, 누군가의 미래를 도둑질했다고 욕할 것이다. 너희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살아 있는 채로 죽어갈 것이다."
그것이 회귀의 저주였다. - P182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 우주는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이교묘한 설화의 은하를 구축한 것은 누구인지 이 세상에 ‘시나리오‘라는 것을 만든 것은 누구인지 결과가 원인을 만들고원인이 결과를 낳는 이 모순덩어리의 세계를 완성한 것은, 대체 누구인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시작된 곳」
「tls123이 있는 우주.」
[당신은 ‘최초의 세계선에 진입했습니다.] - P247

"지금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 앞서 유중혁이 삶을 살았고 김독자가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런 내가 다시김독자가 읽을 소설을 쓴다는 게...."
"타임 패러독스, 인간들은 그걸 그렇게 부르죠. 하지만 그런식으로만 작동하는 우주도 있습니다. 미래가 과거보다 먼저쓰이고, 결과를 위해 원인이 만들어지는 우주. 당신은 이미 그런 우주를 알고 있을 텐데요?"
"이 우주가 하나의 소설이란 얘기냐?"
모니터의 활자들이 일렁였다. 누군가의 사랑을 원하는 활자들이 모니터 밖으로 하나둘씩 짝을 맞춰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문장들.
어떤 문장은 다른 문장을 위해 기꺼이 어둠이 되었고, 어떤문장은 그 문장을 통해 빛이 되었다. 어떤 문장은 다음 문장을위해 존재했고, 다음 문장은 다시 최초의 문장이 있었기에 의미를 획득했다.
"이 우주에는 앞과 뒤가 없습니다. ‘최초의 세계선‘이 가장마지막에 완성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주는 조금 전 만들어지기도 했고, 동시에 수억 년 동안존재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태초는, 종말이 찾아온뒤에야 태어나기도 합니다."
한수영이 멸살법을 썼기에 김독자가 그것을 읽었다.
김독자가 멸살법을 읽었기에 유중혁이 회귀를 시작했다.
유증혁이 회귀를 시작했기에 한수영이 멸살법을 쓸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썼으나 그녀의 손을 떠나 완성된 말들이었다.
누군가를 구하고, 파멸시키고, 살게 할 이야기.」
그녀는 세계를 만든 작가였지만, 무력한 신이었다. 단 한사람의 독자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신. 그저 이 아득한 이야기의 부속일 뿐인 신. - P278

나와는 이름도 얼굴도 다를 존재. 그럼에도 그 존재들은, 어딘가에서 태어나 우주를 상상할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며 감동하고, 세계선을 지켜볼 것이다.
한수영이 이야기를 썼고.
유중혁이 이 이야기를 살았으며.
내가 이 이야기를 읽었다.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시련을 겪었고,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 봉착했다.
성좌들을 만났다.
불가능한 시나리오들을 돌파했고,
마침내 지옥같던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다.
[당신의■■은 ‘영원‘입니다.] - P301

「"나는 유중혁이다."」
「하지만 한수영은 알지 못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이야기는, 이제 작가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당신에겐 ‘덮어쓰기‘의 권한이 없습니다!]「이미 완성된 세계가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결과가 원인을 삼키고 다시 원인이 결과를 삼키는 세계,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세계. 이야기가 스스로 이야기를 생산하는, 영원불멸의 완전한 서사.」
「tls123」
「너는 이 이야기를 바꿀 수 없어.」 - P332

「어떤 것은 감추려 할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그분을 지켜야 해.」
「그것이 신에게서 받은 마지막 부탁」
「"야."
"예"
"혹시나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말이야."
"그런 말씀 마시지요."
"날 정말로 ‘신‘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저 녀석을 꼭 지켜줘."」
「이 세계에 ‘시나리오‘를 열었고, 두 세계선을 하나로 이은 존재.」
「놀랄 필요 없어나도 방금 알았으니까」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너로 인해 완성되었어」
「왜 세계를 가르는 벽이 되었는지」
「어째서 내가 김독자를 지켜야 하는 지」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고」
「나 역시 당신을 기억하지 못했지」
「이 이야기는 이제 나의 것이야」
「너는 이제 신이 아니야」 - P338

[성좌, ‘구원의 마왕‘이 새로운 자신의■■에 도달했습니다.]
아주 작은 글귀처럼 반짝이는, 그의 작은 설화.
[성좌, ‘구원의 마왕‘의 종장입니다.]「그렇게 그들은, 누구도 쓰지 않은 에필로그에 도달했다.」 - P377

"이제 나는 회귀자가 아니다."
그의 특성에 이제 [회귀자]라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성흔도 사라졌다. [회귀]도, [집단 회귀]도 시간을 되돌릴 수있는 어떤 성흔도 없었다.

그는 이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단 하나의 독자가 사라지며,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회귀도 - P384

이 년의 시간. 날수로 쪼개면 약 칠백삼십 일.
지금의 대화는 그 칠백삼십 일을 필사적으로 살았기에 할수 있는 말들이었다. 학교에 다니고, 일하고, 이사 가고, 그날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지기 위해 일행들은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그날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오히려 그날을 향해 다가간사람도 있었다.
「김독자는 ‘멸살법‘이라는 이야기로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우리를살게 만든 건 무슨 이야기였을까.」 - P411

「‘가장 오래된 꿈‘이 된 김독자는, 우주 전체로 흩어졌다.」
「이 우주는 그런 ‘가장 오래된 꿈‘의 상상으로 유지된다.」「그렇다면 ‘가장 오래된 꿈‘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다른 세계선의 아저씨도 책을 좋아하겠죠?"」
「왜 성좌들은 자신의 설화를 널리 알리려는 것일까.」「어째서, 이 세계의 기반은 ‘이야기‘인가.」 - P440

-시나리오가 끝난 후의 세계에서, 그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회귀자 유중혁은 자유가 되었다.
하지만 비로소 얻은 자유 앞에서 유중혁은 자신이 결국 무엇을 얻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P472

【회귀자의 끝이 그리 쉬울 거라 생각하는가?]
【잊지 마라. 우리에겐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 P485

잠시 후, 방주가 있던 자리에 다섯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가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그건 모르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빨리 돌아가자. 오늘 학부모 참관 수업이니까. 누가독자랑 가기로 했지?】
【나나나나나!】
【네놈은 안 된다.】
은하 너머로 사라지는 방주를 보며, ‘은밀한 모략가가 말했다.
【다시는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유중혁.】 - P492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설화를 이용해 마지막 에피소드를 써보려고 했다. 너희가 그랬듯이 하지만."
"우리가 만든 이야기로 김독자가 살아 돌아온다 한들, 너는정말 그것이 김독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나?"
"영혼이 흩어지기 전에도 김독자는 ‘가장 오래된 꿈‘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나? 그 녀석은 왜 자신의 행복을상상하지 않았는지."
"‘가장 오래된 꿈‘이라고 해도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상상할수는 없어. 꿈의 대부분은 무의식이니까!"
"그렇다면 김독자의 무의식은 이 결말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나도 알아! 김독자가 그런 놈이란 거. 넌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네 이야기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너 같은 놈한테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어." - P528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 P5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종 차별은 피부 색깔이나 머리 색깔의 차이로 생기는 것만이아니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김치 냄새나 마늘 냄새도, 독일말이 서투른 것도 다 인종 차별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런것에서 비롯되는 차별은 그나마 괜찮았다.
"당신들도 예수를 믿을 줄 아느냐?"
교회에 나갔다가 들은 말이었고,
"아, 당신들도 베토벤, 모차르트를 이해할 수 있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명곡을 감상하다가 이런 말을 들어야했다. - P9

"주선녀 씨,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요. 나도 비슷한 과거가 있어서하는 말인데, 인생의 목표를 새롭게 바꿔봐요. 난 그 상처에서 벗어나려고 독일에 왔고, 여기 와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자기는자기자신이 구할 수밖에 없어요. 자기 주인은 자기자신이니까요." - P20

전태일은 그 사람의 양복과 자신의 작업복을 비교하며 쓰게 웃었다. 신발을 벗어야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으리으리하게 꾸며진 방송국 건물도 자신들이 일하는 공장과는 너무나 하늘과 땅 차이였다. 양복쟁이들만 모여서 일하는 방송국, 그곳은 천국이었다.
천국에 사는 사람이 지옥의 형편을 알 리 없고, 지옥에 관심이 있을 리도 없었다. 전태일은 마음을 닫으며 길을 건넜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왜 이리들 바쁜가. 이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것일까....? 사람들이 이렇게 불어나고 있는 서울은 과연 사람이살 만한 곳인가....? 천당과 지옥이 서로 등을 맞대고 동거하는곳, 서울은 끔찍스러운 곳이었다. - P33

"여기 생활실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닙니다. 폭동을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과 진상, 이곳의 생활실태와 문제점 같은 것들을 심층적으로 파헤쳐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건경제개발로 꿈꾼 천국이 만들어낸 지옥이고, 최소한 10만 명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문제니까요."

그러면 그들이 부정축재한 것은 얼마이며, 그 돈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러나박정희가 다시 대통령이 되면서 그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소문으로 떠도는 엄청난 부정축재는 기업들로부터뜯어낸 돈인 것은 너무나 뻔했다. 그럼 기업들은 권력의 힘이 무서워 그저 돈을 갖다 바치고 빈손이었을 것인가. 기업들이 받고 있는특혜설 또한 분분한 소문이 된 지 오래였다. 권력과 기업들의 밀거래그 정경유착은 경제개발이라는 단물을 빨아먹으며 부정하게자라나고 있는 속성수 거목이었다. 그 그늘이 만든 음지가 바로 이성남 같은 곳이 아닐 것인가……………. - P266

문제는 잘못된 ‘공업입국의 경제정책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국제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계속 신장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저임금 정책을 확정했고, 저임금을 유지시키려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고, 물가가 안정되려면 노동자들의 주식인 곡물가격을 통제해야 하고, 곡물가격이 억제되면 농민들이 몰락해 이농을 하게 되고, 이농한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고,
그러면 도시 노동력은 과잉이 되어 임금이 싸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이중효과를 나타냈다. 그런 이농현상으로 해마다 50만 명 이상이 도시로 몰려들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도시빈민 문제를 야기시켰다. - P278

・・・・・・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자기의 인생 목표를 자기스스로 정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꾸준히 노력한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에게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다. 그러므로 노력하는 고통도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성취의 행복과 기쁨도 오로지그 사람의 것이다. 여자라고 주저하거나 못할 것이 없다. 난 의사가된 작정이다.……. - P325

"어허, 말 중간에서 자르지 말고 잘 들어 오 상병은 마침 우리회사하고 거래 관계가 있어서 더러 얼굴을 대하니까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오상병 말이 말야, 박 병장이 박사 따가지고 귀국해 어느 대학에 교수가 된 건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용산에 갔다 보니까 박 병장이 미8군에서 나오더라는 거야. 잘못봤나 싶어 다시봐도 틀림없이 박 병장이었다는 거야. 그거 이상하지 않아?"
"글쎄......?"
"글쎄가 아니잖아. 교수라도 민간인일 뿐인데 어떻게 미8군에 드나드느냐 그거야. 오 상병도 그랬지만, 나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그거 수상하다니까. 최형 생각은 어때? 뭔가 수상하잖아?"
"수상하잖아......?"
"뭔가 짚이는 게 없어? 수상하잖아?" - P3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분명 작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살아가는 것은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한반도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을 응원합니다!][<에덴>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을 응원합니다!][<명계>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을 지지합니다!][이름 모를 행성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을 응원합니다!][수많은 성좌가 코인을 후원합니다!][절대다수의 성좌가 ‘구원의 마왕‘의 마지막 싸움을 지켜봅니다!]그 이야기를 지켜보는 이들이다.
[다수의 성좌가 ‘구원의 마왕‘이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 P23

인간은 한평생을 바쳐도 하나의 존재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수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현성이, 정희원이, 이지혜가. 다시 신유승과 이길영이 마지막으로 전함 위의 동료들이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들 중 김독자가 아닌 이는 없다. 이곳의 모두는 적어도 한 움큼씩은 김독자의 생에 대한 지분이 있다. - P68

「버려진 모든 세계선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녀가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던 세계. 오직, 독자의 눈으로만 상상할 수 있기에 [예상표절]로도 읽지 못했던 세계.
「이것이 김독자가 꿈꾸던 세계였다.」 - P97

처음부터 김독자는 희생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아마 김독자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이 세계의 결말에서, 모두 행복해질 방법을.
그가 혼자 희생할 때 일행들이 겪을 상처를 알았을 것이고,
모두 함께 싸우는 대가로 그들이 겪을 파멸을 읽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김독자는 이 시나리오를 택했다.
시나리오를 바꾸는 시나리오. 정해진 결말을 따르지 않는시나리오 모두 함께 종막에 도달할 수 있는 시나리오. - P111

동쪽에서 떠오르는 ‘살아 있는 불꽃.
서쪽 세계의 재앙 가라앉은 섬의 주인‘.
북쪽 우주의 지배자 위대한 심연의 군주‘.
남쪽 성간을 다스리는 ‘은빛 심장의 왕‘
그리고 무엇도 아닌 곳에서 기어오는 ‘위대한 모략. - P120

[바람, 모든 도깨비에겐 ‘단 하나의 설화‘를 선택할 순간이온다고 하셨지요.]
[아마도 나는 저 이야기를 사랑하게 된 모양입니다.]
그는 정확히 지상을 향해 낙하하는 망상의 파편을 가로막고 섰다.
지금껏 그가 기록해온 설화들이 울고 있었다.
이야기꾼을 지켜보는 성좌들이 그의 행동에 개연성을 실어주고 있었다.
후폭풍이 자신의 몸을 찢어발기는 고통 속에서 비형은 생각했다.
아마 그가 읽어온 설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을 달갑게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모두를 살리고 싶어하니까.
그럼에도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은 있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이야기는 없다.」이야기를 지키기 위해, 개연성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벽‘에도달할 ‘단 하나의 설화‘가 되기 위해. 이것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었다.
「도깨비 비형은 자신의 마침표를 정했다.」 - P144

「모두 알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작가라고 항상 이야기하는 게 즐거운 줄 아냐?"」
「그렇기에 이 선택은 ‘독자‘인 그만이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원하는 결말을 보고야 말겠다는 탐욕과 아집으로 가득찬 그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 P206

[개천이 시작됩니다!]
[오래된 성운의 늙은 별들이 아득한 잠에서 깨어납니다!]
[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방주에 현현합니다!][성좌, ‘흥무대왕‘이 방주에 현현합니다!][성좌, ‘매금지존‘이 방주에 현현합니다!]
[성좌, ‘천제의 풍신‘이 방주에 현현합니다!]
이 방주에서 유일하게 우리 편이 되어줄 별들.
[성좌, ‘고려제일검‘이 방주에 현현합니다!] - P217

「너를 구성하는 설화들은, 네가 보고 겪고 느낌으로써 존재한다.」
「그 녀석에게 네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라」
「김독자는 침착하게 숨을 가다듬었다.」
「네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존재조차 하지 못할 녀석들이다.」
「설화에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자‘가 되어야 한다.」
「설화를 사랑하되, 취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자.」
「그때야 설화는 비로소 실체 없는 공허에 맞설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저는 독자입니다."」
「사람들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오해를 받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 김독자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뭐야, 나라면 이렇게 안 했을 텐데.」
「바보, 씨커맨더는 이렇게 공략했어야지. 이때 필요한 아이템은-」「극장 던전은 연구소에서 앰플을 얻는게 공략의 핵심이고.」「여기서 반드시 간평의를 얻어야 돼. 사인참사검보다 더 중요해.」
「성들을 모두 죽이는 수밖에 없어. 여기서는 그래야 해」
「회귀하지 않고도 강해지려면」
「역시 최선의 루트는 이거지. 첫 번째 거대 설화‘는 마계에서 얻어야해」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윽고 문장이 끊겼다.
문장이 끊어진 곳에 작고 하얀 문이 있었다.

「그가 읽지 못한 모든 이야기의 ‘에필로그가 그 너머에 있었다.」

「고작 이 문의 손잡이를 돌리기 위해」

유중으로부터 시작된 그 모든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품어왔으나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의문이 떠올랐다.

「tls123은 멸살법의 에필로그를 어떻게 그리고 싶었을까.」

문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으며, 나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득한 설화들로 이루어진 길. 멀리서 바라보자 그 길의 중경은 기이하게 낯설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 P300

[유중혁. 지키고 싶던 것은 모두 지켰나?]
[거대 설화, ‘멸망을 기억하는 자들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서서히 잦아드는 스파크 속에서 어렴풋한 인형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유중혁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 네 인물이 서 있었다.
키가 큰 사내, 백발의 청년, 포니테일의 여성, 그리고-
[그는 단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다.]
눈부신 날개의 대천사.
도깨비 왕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멸망한 999회차의 설화가 대천사의 검극에서 겁화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으니까.] - P349

‘최후의 벽‘에 어떤 문장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그린 존이 벽면에 붙어 있다니...…생각해보면 그것을 ‘방‘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은 애초에 인간들뿐이었다.」문득 나는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닥 또한, 다른 방향에서는 또 하나의 벽이다.
달려온 벽 위에 우리의 족적이 남아 있었다. 족적 위로 우리가 쌓아온 설화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 P369

「만약 멸살법이 현실이라면 어떨까.」그것이 나의 생각인지, 아니면 ‘최후의 벽‘에 기록된 것인지, 혹은 그것도 아니라「내가 멸살법의 인물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그러고 보니 유중혁이 회귀한 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작가님한테 댓글로 물어봐야겠다.」
[당신은 ‘등장인물‘이 됐습니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힌트가 있었다.
「그 세계에서 나는 너무나 운이 좋았고.」
「그 세계의 모든 것이 내게 편의적이었으며」
「때로는 허술하기까지 했다.」
그 모든 것이 ‘가장 오래된 꿈의 가호 때문이었다면.
「모든 세계선의 태초, 원형의 세계선.」
오직 나만이,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 P429

아이는 얼굴을 파묻은 채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유중혁이다. 나는 유중혁이다. 나는....."
[너는 유중혁이 아니다.]
억겁의 회귀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잊었던 희귀자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유중혁이다." - P442

「별거 아닌 비극이었다. 고작해야 단 한 번의 생에서 일어난 비극」
[가엾은 아이.]
【나의 신이여, 너를 만나기 위해 아주 오랜 세월을 견뎌왔건만.]
999회차의 우리엘이 어린 나의 뺨에 손을 가져다댔다.
【너는, 이 우주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구나.】
[그래서 우리를 필요로 했던 건가? 너무나 가혹한 구조 요청이군.][자신의 상상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것인가.]
999회차 인물들이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999회차의 이지혜였다.
[나는 상관없어. 하지만 괜찮겠어? 당신은 이걸 위해여기까지 왔잖아.]누구를 향한 말인지는 명백했다.
‘은밀한 모략가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왜 나였을까 생각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999회차의 우리엘과 이현성이 무릎을 꿇어 아이의 몸을안아 들었다. 이지혜와 김남운이 아이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었다.
‘은밀한 모략가‘가 선언하듯 말했다."
"그만 눈을 떠라. 김독자
"정말, 정말로......."
그토록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이야기의 주인공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 꿈이 아니다." - P450

[해당 인물은 ‘등장인물‘이 아닙니다.]
나는 연이어 떠오르는 그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정의로운 군인.」
「가장 숭고한 대천사」
「불의를 참지 않는 장군.」
「세상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찬 악귀.」「<스타 스트림>이라는 시스템과 대적해온 회귀자.」 - P454

[성좌, ‘구원의 마왕이 자신의 ■■에 도달했습니다.]
[당신은 ‘가장 오래된 꿈‘이 됐습니다.]
스러지는 먼 불빛이 나를 기억하는 성좌들처럼 보였다.
그렇게, 나의 끝나지 않는 항해가 시작되었다.
[당신의■■은 ‘영원‘입니다.] - P4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회차를, 2회차를, 3회차를…………… 999회차를 거듭하면서 그때의 ‘김남운‘과 다른 선택을 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실리‘를 추구한 건 유중혁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몰라."
내가 멸살법을 처음 읽던 그때부터 유중혁은 줄곧 ‘스물여덟 살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어른인 유중혁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은 선택의 누적이고, 그 무수한 선택이 쌓여 한 사람분의 설화가 된다는 것을.
태초부터 악으로 조형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1회차와 2회차가 다르듯 998회차와 999회차가 다르다는것을.
그리고 그것이 그가 회귀를 반복하는 진짜 이유임을. - P334

"복 받았네. 저렇게 생각해주는 ‘동료‘도 있고."
‘동료‘라는 말에 김남운의 텅 빈 동공이 흔들렸다.
이쪽으로 오는 것은 이지혜뿐만이 아니었다.
등줄기가 후끈하다 싶더니, 내 뒷덜미를 위협하는 감각이있었다.
‘업화의 불꽃‘이었다.
[무슨 꿍꿍이지?]
조금 전까지 유중혁과 싸우던 999회차의 우리엘이 어느새등 뒤에 서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급하게 전장을 이탈한 까닭인지 그녀의 순백색 날개가 찢겨 있었다. 곳곳에 남은 깊은 상처들. 한눈에 보기에도 치명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원한과 증오, 숭패조차 도외시하고 김남운의 위기에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이계의 신격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동료들.
그런 그들이기에, 유중혁이 없는 999회차의 끝을 볼 수 있었으리라. - P335

-감독자 이다음은 뭔데?
내 오른쪽에 붙어 선 한수영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몰라
-뭐?
-내가 생각한 건 여기까지야.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듯 한수영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 지금・・・・・
-지금은 믿는 수밖에 없어.
무책임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안은 없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최선이었고, 올바른 결론으로 향한 최선의 길이었다.
나는 문득 1,863회차 한수영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만든 등장인물들을 믿었어. 그게 다야."」그녀의 심정을 나 또한 이해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읽었고, 나를 가르쳤던 그 인물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멸살법을 믿는다. 그것을 쓴 작가가 아니라 그 소설에나오는 등장인물들을 믿는다. - P346

유중혁은 한참이나 그 설화들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들을 용서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생을 통해 복수할 생각도 없다. 이번 생은 나의 지난 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더 이상 너희가 알던 세계가 아닌 것처럼.
-살아남았다 하여 너희에게 모든 것이 허락된다는 뜻은아니다. 오히려 너희에겐 책임이 있다. 살아남은 죄, 다른 이의 이야기를 짓밟고 생존한 죄. 다른 이의 설화를 비료로, 감히 줄기를 피우고 싹을 틔운 죄. 그러니 살아남았다면 그 죄에책임을 져라.
-모두를 살리겠다는 약속 같은 건 할 수 없다. 나는 그저내 시나리오를 살아갈 뿐이고, 너희의 시나리오를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뿐이다.
저곳이 유중혁의 자리였다.
-너희 모두의 시나리오가 끝날 때까지, 나 역시 죽거나 회귀하지 않겠다. - P3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