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말 그 해 겨울. 합격자 명단을 같이 보았던 아버지와의 추억. 아버지가 사 주신 소고기 메뉴.

시험이 끝나고 터벅터벅 교문을 걸어나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웃으면서 나를 불렀다. 아버지였다. 만나자는 약속도, 기다리겠다는 약속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에서 우연처럼 만났다. 그 많은 수험생과 그 많은 학부모들과 그 넓은 대학 캠퍼스의 교문 앞에서 어긋나지도 않고 엇갈리지도 않고. 나중에 생각하니 신기했다. 휴대폰은커녕 호출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그 앞에 언제부터 서 있던 것일까. 시험은 어려웠고, 고사장을 빠져나오는 내 미래는 비관으로 가득했지만 교문 앞에 서 있던 아버지를 본 순간, 그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날마다 보는 아버지가 그보다 더 반가웠던 적이 있을까.(201-202/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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