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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이래 근대 정치는 기본적으로 좌파와 우파로 나뉜다.이 표현은 프랑스혁명기 국민의회의 좌석 배치에서 온 것이다. 당시 혁명파는 왼쪽에, 왕당파는 오른쪽에 모여 앉았다. 두 용어가 계속 쓰여온 이유는 두 가지 기본적이고 상반되는 세계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의 특징은 변화와 개혁을 선호하고, 자유와 평등을 약속하고, 진보와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다. 우파는 질서와 전통, 위계, 과거를 중시하는 기질의 파벌이다. 좌파 대 우파라고 하든, 파란색 대 빨간색이라고 하든, 자유주의자 대 보수주의자라고하든, 이 기본적인 분열은 인간의 두 가지 근본적인 기질, 아울러서로 배타적이면서도 공동으로 정치적 선택지들을 전부 포함하는두 가지 세계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막 아기를 낳은 부모가맨 먼저 받는 질문이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라면, 청소년기부터수리를 규정할 가능성이 높은 질문은 정치적 좌파와 우파 중 어느쪽에 속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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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기원 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마이클 스콧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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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가 선별하고 강조한 사건을 통해 서술되는 고대사는 역사가 자신과 그들이 속한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기로 결정했는지를 드러낸다(고대사학자 로빈 오즈번의 말처럼,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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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기원 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마이클 스콧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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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참주정이 태동하던 무렵이 불안하고 격동적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이 무렵 아테네가 대단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페이시스트라티즈Peisistratids* 시대에 은광이 개발되면서 아테네에 새로운 수입원이 생겼다.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나 여신을 위한 웅장한 석회암 신전이 건설되었고, 아고라에는 새로운 우물과 제단 같은 공공시설이 들어섰다.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축제City Dionysia festival 같은 성대한 시민 행사도 페이시스트라티즈 시대에 시작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페이시스트라티즈는 도시 미화라는 고결한 목적이 아니라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도시 시설을 보충하고 축제를 열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자들이 애용하는 책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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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기원 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마이클 스콧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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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는 이 시기를 ‘평원파’, ‘해안파’, ‘산악파’가 권력 투쟁을 벌인 ‘스타시스stasis(내란)’ 시대라 칭했다.17 해안파는 망명에서 돌아와 정치 중심에 선 클레이스테네스의 아버지가 이끌었다. 산악파(이들이 정확히 어느 지역의 어떤 집단을 지칭하는지는 확실치 않다)를 이끈 인물은 페이시스트라토스였다.

고대의 역사가들은 당시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 매우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아테네의 성군이었던 반면, 헤로도토스가 본 그는 냉혹한 폭력배이자 협잡꾼에 불과했다. 헤로도토스는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과거 킬론이 그랬듯이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전한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킬론처럼 몰락하지 않기 위해 반대파의 위협을 이유로 의회로부터 무장한 개인 경호대를 거느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뒤, 그들을 동원하여 아크로폴리스를 포위하고 아테네 정부의 핵심 기구를 장악하고 참주가 되었다.18

고대 그리스의 참주정하에서 반드시 민중이 고초를 겪었던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헤로도토스는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결과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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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슬람 전쟁사 - 살림지식총서 532 살림지식총서 532
진원숙 지음 / 살림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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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동맹 측의 부상병 중에는 스페인 출신 세르반테스(Miguel de Servante)도 있었다. 스물넷의 나이로 레판토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 세르반테스는 전쟁이 신성동맹 측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자 이 해전을 두고 ˝과거나 현재의 사람들이 보았고 미래의 사람들도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를 가장 고귀한 순간˝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전쟁 중에 가슴과 왼손에 부상을 입어 평생 왼손을 못 쓰게 되었으며 스페인으로 귀국하던 중 자칫 생명을 잃을 뻔했다. 귀국선이 난파하여 형 로드리고와 함께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으나 먼저 풀려난 형이 금화 500에스쿠도(esqudo)의 석방금을 지불해 감금 5년만인 1580년에 그는 겨우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하여 세르반테스는 훗날 명작 『돈키호테』를 집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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