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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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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언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윤리적 감각을 흔든다. 역사를 왜곡하고, ‘침묵하는 다수’라는 실체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결국 혐오 감정을 배설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자의 망언은 윤리적 해방감을 준다. 이 감정이 바로 극우의 정치적 자양분이다. (134쪽)
 
망언은 생각보다 자생력이 강하고 생산된 뒤로는 스스로 영역을 넓혀간다. 또한 이 망언들은 공통적으로 죽음을 모독한다. (137쪽)
 
원래 여가부가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마음에 안 들던 사람들 (…) 여경 무용론부터 여가부 무용론까지, 여성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219-220쪽)
 
여성부가 ‘특수한 집단만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말이야말로 여성을 보편적 시민으로 보지 않는 반인권적 시각이다. (223쪽)


‘여성가족부’를 폐지한 후 그 업무를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겠다는 뉴스가 떴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괴상한 명칭은 또 무엇이며…? 2016년 ‘가임기 지도’의 악몽까지 다시금 떠올랐다.
폐지해도 기존 기능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며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외려 반발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주말에는 여가부 폐지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금 이 시점에, 왜 또 다시, 여가부를 못 건드려서 안달일까.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20대 남성 지지율 회복하기? 대선 공약 지키기로 ‘보수’층 유권자에게 효능감 부여하기? 안보‧경제 위기 회피책? 혹시 일본군 ‘위안부’ 지원 문제가 크게 얽혀 있지는 않을까? 다양한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사회가 또 한 번 혼란에 휩싸였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다. 정치적으로 해석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식민 사관에 입각한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정치인은 또 어떠한가. 질문을 던진 기자들에게 “제발 공부들 좀 하”라며 나무라는 태도도 심각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망언’이 연일 조명되는 것과 그가 어떤 해명을 더할지 기다리는 청중이 존재한다는 것, 이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역시나 보수 언론에서는 양비론을 펼쳐 가며 사람들의 판단을 흐려 놓기까지 하니, 씁쓸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에 시끌시끌했던 뉴스를 끌어와 조잡한 리뷰를 남기지만, 책 안에는 더 다양한 ‘말’에 대한 비판과 관련 사건‧사고들이 실려 있다.
다만 이 책의 모든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퍽 불편한 독서였다. 그럼에도 읽기를 포기하지 않은 건, 저자가 머리말에서 제시한 ‘아름다움’의 의미만큼은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의 위계’에 대해 곱씹어 보기 좋은 책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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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돔 아래에서 - 송가을 정치부 가다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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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노동자 살리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극진보당이 딜을 하고 있다, 이 말씀이세요? 극.진.보.당이요?”
“예결위 소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잖아. 근데 한 자리도 없어. 거기서 우리는 목소리를 아예 못 내고 있다고.”
“대표님! 지금 밖에서 노동단체들 떨면서 시위하고 있는 거 모르세요?”
“우리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고 재선도 돼야, 노동자 살리는 목소리를 계속 낼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렇다고 법을 두고 딜을 해요? 기브 앤 테이크라고요?” (150-151쪽)
 
그간 윤장미는 극진보당에 호의적인 기사를 많이 썼다. 두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소수 정당이 살아남는 걸 응원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다양성은 지켜져야 하는 거라 생각했다. (…) 그런데 더는 믿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애초 출입처와 정치적 성향을 동기화하는 게 위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52쪽)


책에 등장한 ‘기자질’이라는 표현을 보고 ‘정치질’이라는 단어 또한 생각해 본다.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는 정말 ‘생물’일까?
 
전작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를 작년 이맘때쯤 읽었다. 구체적인 에피소드까지 다 떠오르진 않지만 아이스 카페모카를 입에 물고 열성적으로 취재하러 다니는 송가을의 모습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송가을이 사회부에서 정치부로 출입처를 옮기는 동안, 나는 이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정치 기사를 접하려는 독자가 됐다. 자칭 ‘중도’를 자처하며, 정치인들은 다 똑같지 않냐며 냉소주의로 일관했던 내가 늦게나마 각성을 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기자‧언론을 향한 나의 불신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검찰발 의혹 던져 놓고 ‘아니면 말고’ 식인 자극적인 헤드라인들을 어쩌면 좋을까. 심지어는 몇 시간 후 기사 제목을 멋대로 바꿔 버리기도 한다. 알다시피 사람들은 기사 전문을 잘 읽지 않는다.
‘계파’ 나누기와 지역주의를 부추기기는 물론, 젠더 문제의 민감성을 이용해 사람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 또한 심각하다. 커뮤니티에 게재된 내용이 정설인 양 그대로 베껴 쓰는 듯한 기사도 적지 않다. 그 아래 욕설과 유언비어가 낭자함에도 전혀 관리되지 않는 댓글창 또한 한숨이 나온다. 과연 네이버 클린봇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송가을이 속한 고도일보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특종 ‘한 방’ 때리길 노리고 있는, 야심 가득한 이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원래 입체적이라지만 저자의 실제 기자 생활이 반영되었단 걸 생각하면 좀 다르게 읽힌다.
‘기민호’라는 인물이 특히 현실적이었다. 다만 내가 송가을이라면 그에게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도록 했을 것 같다. 기민호의 섣부른 행동을 절대 용서할 수 없기에, 친구로는 남을지라도 그에게 다시 기자직을 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꾸미’ 문화도 흥미로웠다. 뜻 맞는 기자 네댓 명이 팀을 꾸려 취재하는 방식인데, 자칫 “에이스 기자놀음, 이너서클 문화”(44쪽)로 전락할 수 있다는 데서 이 또한 기자들의 욕망을 잘 보여 준다.
그 외에도 ‘1톱 3박(신문 지면에서 1면 톱 기사와 3면 박스 해설 기사를 동시에 쓰는 것, 대특종)’, ‘귀 대기’, ‘야마(핵심 내용)부터’ 보고하기 등 기자들이 자주 쓰는 은어 찾는 재미가 충만했다.
욕망과 딜이 난무하는 국회에서 러브 라인이 웬 말인가 싶기도 했지만 서사 진행에 크게 방해되진 않았다. 실제로 드라마화하면 어떤 배우가 이 역할들에 어울릴지 상상해 보게 된다.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정주행을 끝낸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박살난 국회의사당이 자꾸 어른거렸다. 다행히 『민트 돔 아래에서』 속 국회의사당은 온전한 상태다. “민트초코봉봉 아이스크림에서 초콜릿만 쏙 빼”(9쪽)낸 오묘한 색을 띠는 커다란 돔, 그 안에서 온갖 군상들의 치열한 모습을 목격하며 송가을은 어엿한 정치부 기자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후속작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까지…!
부디 송가을만큼은 내가 계속 응원할 수 있는 올곧은 기자로 남길 바란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비현실적인 캐릭터여도 상관없다. 현실이 너무 가혹하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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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검사들 -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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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엘리트 집단? 이 환상이 깨짐과 동시에 드라마 <비밀의 숲>을 내 인생드라마 목록에서 빼버렸다. 이제는 검사의 영웅담을 다루는 콘텐츠가 등장하면 의심부터 하게 된다나 혼자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별 문제 없겠지만, 불행히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검사검찰에 대한 불신을 입 밖으로 내기 시작했다.


검찰제도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 정치권력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본문을 다 읽고 이 내용이 적힌 곳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의 인권을 지켜야 하지만 오히려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쓰는 검사,

임금 체불 사업주의 비겁한 선택을 막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약식 공소장만 남발하는 검찰,

사회적 약자들이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청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패싱 당하는 현실

 

이 외에도 시민들이 스스로의 판단을 검열하게 만들도록 위축시키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우중충한 민원실 분위기부터 사람을 주눅들게 만든다고 하니, 오죽하면 저자가 검찰개혁은 민원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할까이런데도 과연 검찰이 인권보호의 가치를 지킨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검찰에게 자주 붙는 정치검찰꼬리표는 또 어떠한가. 시민들이 그 행태를 단순히 비꼬는 게 아니란 점을 깨달았으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비판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단어는 검찰개혁도 아니고 공정정의는 더더욱 아니다. 바로 부랴부랴’, ‘들쭉날쭉이다.

1212 군사쿠데타와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거로 불기소 처분을 한 바 있고,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고 나서야 부랴부랴입장을 바꿔 가해자들을 기소했다.

들쭉날쭉한 법의 잣대도 그렇다. 소위 힘 있는 자들은 죄를 지어도 처벌 받기를 요리조리 잘 피해 간다. 오죽하면 유권무죄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정의로운 검사가 왜 없겠는가 싶다가도바로 얼마 전, 검사 18명이 판사로 임용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섬뜩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저자의 말마따나 공익의 대표자인 그들에게 일개 시민인 내가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이 현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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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여자들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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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하는 사람의 서사는 전쟁에 나간 남성의 서사만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 질에서 나와 빛을 만나는 것이 말 그대로 가장 보편적인 경험이 아니기나 한 것처럼." (93쪽)
 
"가부장제의 비극은 인간의 경험을 둘로 쪼갠다는 것이다. […] 울지 마,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 마, 꽃 앞에 서서 감탄하지 마.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런 특성들은 전부 인간 삶의 모습이다. 동시에 우리가 남성에게 허락하지 않는 모습이다." (162-163쪽)


전작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가 경제학의 ‘남성적’ 측면을 비판한 책이라면 『지구를 구할 여자들』은 과학기술사에서 젠더 관념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파헤치는 책이다. 물론 이번 책에서 또한 경제학의 ‘남성성’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굴러가지 않는다.

흥미롭다 못해 충격적인 사례가 넘친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의 삶을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으로 구분하려 애쓴 결과, 편안함과 안정성을 골자로 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디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여행 가방에 바퀴를 달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기까지, 그리고 전기차가 지닌 안정성과 친환경성이 보편적 특징으로 인정받기까지 ‘젠더’ 문제가 심각하게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째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것이 ‘여성적’인 특징으로 제한되어야 했는가. 남성들은 왜 인간의 몸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그토록 받아들이기 두려워했는가.

청동기, 철기처럼 시대를 구분하는 명칭에 ‘남성적’ 서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분석 또한 색달랐다. “직물과 도기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청동과 철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 텐데도” 이것들은 ‘여성사’로 분류되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 채 밀려났다고 보는 것이다.
책의 해제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인류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용한 최초의 도구로 보통 창과 같은 무기를 먼저 생각하기 쉬운데, 소설가 어슐러 르 귄은 다르게 보았다. 채집한 것들을 담는 데 썼을 장바구니나 가방 같은 용기가 더 중요한 도구였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유익하지만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9장에서 ‘제2의 기계 시대’를 이야기할 때 저자가 기본소득을 잠깐 언급하는데, 이를 포퓰리즘으로 치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페미니즘과도 절대 무관하지 않다. 가사 노동, 돌봄 노동과 같이 일반 경제 이론에서 노동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활동, 즉 '보이지 않는 노동'의 종사자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내가 저자의 의도를 삐딱하게 이해한 걸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똑같다.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거짓 이분법을 극복하는 것. 현재 우리가 ‘여성적’인 것으로 코드화하고 있는 개념들이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자질임을 깨닫기까지 또 다시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우리는 “혁신과 젠더를 연결해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팬데믹, 기후 위기를 겪으며 인간 실존 문제에 정면으로 맞닥뜨린 이 시점에서, 과학기술사에 여성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 왜 중요한지 톡톡히 짚어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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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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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그림 속 권력 이야기'인 만큼 소제목에 쓰인 동사들도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권력이 빚어낸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부수고' '거부하고' '균열 내고' 그것에 부단히 '저항'하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드러난다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의도치 않게 시대를 증언"하며, "당대가 떠안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과연 오늘날에는 시원하게 끊어졌는지"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읽는 내내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함께 떠올랐다.


기대했던 대로 성차별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대리모 사업의 민낯, 사회가 모성애를 악용하는 방법, '성 상품화'의 실체를 가리는 '성 노동론' 등등. 현대에도 끊임없이 거론되는 문제들이지만 명화 속 시대상 읽기와 함께하니 느낌이 또 다르다.

에드가르 드가의 <무용수들, 분홍과 초록>, <기다림>은 첫인상과 지금의 느낌이 가장 다른 작품들이다. 발레리나 특유의 자태나 그 움직임을 묘사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19세기 프랑스 발레 업계의 이면을 들추어보도록 저자가 감상 포인트를 안내해준다.

 

"19세기 파리에서는 돈 많은 남성들이 발레 공연장을 많이 찾았다. 유독 발레라는 예술을 아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린 발레리나를 만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당시 발레리나는 주로 노동 계층에서 선발되었다. () 상류층 남성 눈에 비친 발레리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노동 계급 출신의 소녀일 따름이었으니, 고로 만만한 성적 사냥감이었으리라. 발레 문화의 주도권을 러시아에 내어주고 인기가 쇠하여가던 프랑스 발레 공연 업계는 신사들의 발걸음을 반색하며 환영했다. 이들은 거액의 찬조금을 내는 돈줄이었기 때문이다. 신사들은 그 대가로 무대 뒤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어린 무희들의 몸을 이리저리 각을 재며 탐색한 후 '후원을 해주겠다'며 은밀한 제안을 하곤 했다." (89-92)


NFT 아트 분야의 가격 경쟁, 예술계 후원 문화의 허점을 짚어낸 부분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인간의 욕망이 현대 미술시장에 끼칠 혼란을 염려하는 동시에, 과거 사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NFT가 도대체 뭐길래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지, 삼성의 꾸준한 잡음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왜 '이건희 컬렉션'에는 한없이 관대한지아직도 내 머리론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오늘날의 기업가들은 메세나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기부와 후원을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기업가들이 평소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주장에는 그렇게 불편해하면서도, 기부할 때는 납부해야 할 세금보다 더 큰 액수의 돈도 내놓는다는 점이다. () 부자들은 세금 납부를 통해 공적으로 사회적 의무를 하는 데에는 매력을 못 느낀다는 얘기다. 그들은 드물어서 아름다운, 그런 비현실적 미담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노동자 착취, 협력기업 쥐어짜기, 소비자 기만 등으로 지탄받는 거대 기업이 납세라는 '당연한 의무'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부와 후원이라는 '폼 나는 자선 행위'를 통해 사회적 찬사와 인정을 얻어내는 것이다." (252-253)


그림만 놓고 보면 '권력'이라는 키워드가 단박에 떠오르지 않아 신선하게 해석되는 작품이 많았다. '친절한 손'으로 살고 싶다는 저자 이유리의 뜻이 나에게는 성공적으로 와닿은 것 같다. 명화 속 시대별 사회상을 읽어내는 일이 왜 중요한지 깨우쳐준 셈이다. 이 느낌을 잊어버리기 전에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도 빠른 시일 내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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