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박물관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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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대했던 책이 아닙니다. 책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날벼락 같은 메시지가 왔다. 독서 모임에서 책을 추천한 분이 김동식 소설 인생 박물관첫편을 읽고 실망스럽다며 보낸 메시지이다. 벌써 책을 구입했는데, 책을 바꿀 수는 없었다. 답글을 보내지 않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읽고 나서 선생님의 메시지에 답하리라....

김동식 작가는 전문 창작 교육을 받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다. 인터넷 사진 속의 얼굴도 노동자의 모습이 물씬 풍겼다. 글을 읽으면서 날것의 느낌을 많이 느꼈다. 김동식 작가는 무서운 이야기만 썼으나, 이번 단편소설집은 따뜻한 이야기들을 골라 묶었다. 김동식 작품의 따스함에 녹아 있는 날것의 모습을 살펴보자.

 

'인생 박물관'에 실려있는 소설의 특징은 소재면에서 SF나 판타지에 가까운 소설들이 많다는 점이다. '찰나를 사는 남자', '커튼 너머의 세상', '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등등 상당수의 작품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에서 소재를 찾기보다는 평행 우주론, 저승사자, 천사, 다중인격 등등의 판타지나 전설의 고향에서 볼 법한 소재들이었다. 날것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물론, 그 날것의 냄새가 싫지는 않았다. 지친 일상을 잠시나마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여기저기에서 헐리우드의 SF 영화의 냄새도 풍겼다. 헐리우드는 우리 영화처럼 현실을 그리지 못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흥행이 된다는 상업적 공식과 초거대 자본의 힘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히어로물을 많이 찍어낸다. 그렇게 생산된 헐리우드 영화는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면을 직면하지 못한다. 설령 어두운 면이 있다할지라도 히어로가 나타나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망상을 심어준다. 자본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헐리우드 영화의 씁쓸한 냄새가 김동식의 소설에서도 풍겼다.

물론, 김동식의 '인생 박물관'만으로 그의 소설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현실의 괴로움도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한다는 집착이 묻어났다. 작품에 등장하는 저승사자, 악마, 천사, 초현실적 설정이 불행한 현실을 해피엔딩으로 이끌었다. 그 속에서 씁쓸함도 밀려왔다. 그러한 '인생 박물관' 식의 고통해결이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메시아는 기다릴때만 힘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동식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나레이터가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내', '남자', '중년의 남성', '죄인 아무개 지구인' 등등의 호칭으로 인물들을 부른다. 또한 배경 묘사가 거의 없다. 철저히 인물의 대화로 소설을 이끌어간다. 그래서 상황 파악이 힘겹다. 작품 중에서 '작은 눈사람'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실망감이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원전의 어느 곳에서 어떤 문제로 투입되어 목숨을 걸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을 했어야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지 않았다. 소설에는 긴박감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너무도 거친 소설이다.

박완서 작가에게 어느 소설가가 평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는 소설을 읽다가 원고를 집어던졌다고 한다. '이름 없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라는 부분에서 박완서 작가는 분노했다. 어디 이름 없는 꽃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식물도감을 찾아보고 꽃의 이름을 찾아내어 소설에 적었어야했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박완서 작가는 했다. 김동식 작가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작은 눈사람'이라는 소설을 쓰려면 핵발전소에 대해서, 핵사고에 대해서 공부를 했어야했다. 철저한 자료조사 없이 글재주로 소설을 쓰면 그 허술함이 금방 드러난다. 이름 없는 꽃이 없듯이, 이름 없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작가라면 소설의 주인공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따스함을 보여야했다. 김동식은 날것의 냄새를 거칠음이 아니라, 신선함으로 느끼도록 세심한 노력을 해야한다.

 

책장을 덮었다. 날것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설을 읽고 허술한 묘사에 실망도했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보다는 따뜻한 연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김동식의 '인생 박물관'이 그 허기를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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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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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서 유전자의 신비를 우리에게 설명해준 리처드 도킨스가 종교에 도전장을 냈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과 '신, 만들어진 위험'이라는 책 중에서 어느 책을 읽을지 고민했다.  '신, 만들어진 위험'이 표지도 매력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쪽수가 '만들어진 신'의 절반인 350여쪽이었다. 매력적인 쪽수이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더 매력적이다. 

  

  우선,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자이다. 이과 남자가 문과 방면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가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명작을 쓴 원동력이었으리라... 구약에 대한 리처드 도킨스의 지식은 상당하다. 여러 신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섭렵하고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고 있다. 

  물론, 역사를 전공한 나는 구약의 '모세 5경'을 모세가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역사학자들이 사료비판을 통해서 밝혀냈음을 알고 있으며, 구약의 여러 신화가 메소포타미아의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 속에서 장점만 뽑아내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랬기에 리처드 도킨스가 성경이 고유한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화를 그들 나름의 이야기로 재창조했다는 지적이 새로울 것이 없었다. 

  진정 그의 탁월성이 돋보이는 것은 성경을 새로운 관점에서 읽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죄물로 신께 바치려는 장면을 이삭의 관점에서 다시 서술했다. 이삭을 얼마나 두려웠을까?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아버지와 신에 대한 불신에 가득차서평생을 고통받았을 것이다. 이삭의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읽으니, 성경의 잔인성에 몸서리가 쳐진다. 

  도킨스는 출애굽 이후, 유대인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를 비판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죽이라는 신의 명령을 리처드 도킨스는 히틀러의 레벤스라움과 비교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은 이미 3천여년 전에도 벌어졌던 것이다. 도킨스의 표현대로라면 이스라엘은 히틀러보다 나을 것이 없는 행위를 3천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박해하는 것은 그들의 경전인 구약의 가르침을 따른 결과인가?

  성경을 읽다보면, 여성비하적 표현과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표현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이 완전한 경전이라면 이러한 표현이 있으면 안된다. 그렇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했듯이, 이들 책들은 시대적 한계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니 그러한 표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성경을 무결점의 성스러운 서적으로 여기는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야한다. 

  1부에서 성경의 헛점을 지적한 도킨스는 2부에서 진화론의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신이 없이도 진화론으로 우리 자연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부모에 의해서 주입된 거짓 지식에 의해서 일평생을 특정한 종교인으로 살아야하는가? 


  "내가 만일 바이킹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오딘과 토르를 굳게 믿었을 것"

  "어째서 여러분이 태어난 나라에서 우연히 물려받은 신앙이 옳아야하는가?" (20쪽)


  그렇다. 만15세가 되기 전에 부모와 사회, 국가에 의해서 강제로 주입당한 신앙에 의해서 일평생을 신앙인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15세가 되어 스스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갖았을 때, 스스로 무신론자와 종교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하고, 종교를 선택한 자는 다시 세상의 여러 종교 중에서 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물론, 도킨스의 이러한 주장을 내가 적극 지지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초등학교 동급생과 초등학교 2학교 담임 교사에게 미움과 따돌림, 구타를 당했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은 수업시간에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믿으라고 설교했다. 

  도킨스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기독교인들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그런 사람들은 지옥 같은 장소가 없는 것을 천만 다행으로 알아야한다. 아이들에게 지옥에 간다고 협박하는 사람보다 더 지옥에 가도 싼사람은 없기 때문이다."(135쪽)


  협박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를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협박으로 우리를 종교의 노예로 만들려한다. 도킨스는 기독교인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맞서고 있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성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종교인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열정적인 저술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과학적 설명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나약한 존재이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신의 존재를 믿고 싶어한다. 인간은 그럴정도로 나약한 존재이다. 

  책을 덮으며, 신이 존재하지 않는 종교를 생각해보았다. 바로 불교이다. 부처는 '깨달은자'라는 뜻이다. 싯다르타는 먼저 깨달은 존재일 뿐이다. 우리도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깨달음의 철학이고 가장 우주적인 종교이다. 도킨스에게 불교에 대한 견해를 묻는다면 그는 어떻게 답할까? 철학자 강신주가 벙커1에서 말했듯이, '기독교를 믿고 계신 분이 있다면, 불교로 바꾸세요.'라고 말할까? 아니면, 불교 조차도 필요없다며 오직 과학만이 진리라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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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600년사 - 1299~1922
이희철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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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중심의 역사를 넘어서 우리의 눈으로 세계사를 바라보아야한다는 과제를 무겁게 느끼고 있다. 이슬람 지역에 대한 한국의 역사연구가 일천하다보니, 서구의 시각이 담긴 역사책을 번역해서 출간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눈으로 이슬람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고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이슬람의 역사를 바라보았다. 빈을 포위 공격하며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오스만제국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눈에는 야만적인 제국이자 하렘의 궁중 암투라는 도색적인 이미제와 유럽의 병자로서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로 오스만을 그렸다. 내가 읽었던 오스만에 대한 책들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책이 거의 없었다. 이희철이 쓴 '오스만 제국 600년사'는 나의 갈증을 해결해주었다. 


  이책은 6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 역사 속의 튀르크인, 2장 건국시기, 3장 세계 제국, 5장 격랑의 시대, 5장 변화와 외교의 시대, 6장 개혁과 근대화로 나누어 600년 오스만의 역사를 한국인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 짧은 전성기 후에 긴 쇠퇴기를 맞이했다는 면에서 중국의 역대 왕조를 연상케하는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비교적 긴호흡에서 차분히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메흐메드 2세에 대한 평가였다. 국방티비에서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전쟁사를 깊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임용한 박사님과 이세환기자님의 깊고 폭넓은 설명에 시간가는줄 몰랐다.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는 무라드 2세가 술탄직을 아들 메흐메드 2세에게 이양했다가 자신이 다시 술탄직에 오른 이유를 메흐메드 2세의 난폭성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 600년사'에서는 무라드 2세가 아들에게 술탄직을 양위했다는 소식을 듣자 유럽이 다시 십자군을 조직하여 오스만 제국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라 서술했다. 당시 정세로 보았을때, 저자 이희철의 설명이 더 합당해보인다. 

  그뿐이 아니다.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는 메흐메드 2세의 폭압성을 강조하며 수박이 사라지자 이를 시종이 먹었을 것으로 예상한 메흐메드 2세는 시종의 배를 갈라서 확인해 보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이렇게 폭압적인 지도자가 어떻게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고 두개 대륙과 대개의 바다를 지배하였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희철의 설명을 달랐다. 이희철은 메흐메드 2세를 '정복자'라고 부르면서도 법령 작업으로 국가체제를 새롭게 정비했으며, 르네상스 문화를 수용한 위대한 군주로 서술했다. '토크멘터리 전쟁사'가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메흐메드 2세를 악마로 묘사했다면, 이희철은 서구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우리의 눈으로 메흐메드 2세를 서술했다. 

  

  오스만에 대한 나의 지식이 일천하기에 저자 이희철의 '오스만제국 600년사'가 얼마나 정확한지, 얼마나 유럽의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쓰여졌는지 말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천한 나의 지식으로 보아도 이희철의 오스만 제국에 대한 애정과 지적 탐구욕은 바다처럼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계사를 가르치면서도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전후 맥락을 이해하며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한 책이 우리 주변에는 없었다. 이희철의 책이 그러한 갈증을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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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이야기 - 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타산지석 21
이희철 지음 / 리수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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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제국이 있다. 기록도 주변국에 의해서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는 그런 제국도 있다. 바로 유목민족들이 세운 제국이 기록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버린 신기루와 같은 제국들이다. 그래서 이희철의 '튀르크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이 책에는 흉노 제국에서부터 돌궐제국, 위구르 제국,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광대한 역사를 서술했다. 흉노, 돌궐, 위구르, 셀주크 제국은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제국이다. 그러하기에 이들 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 보고 싶었다. 그들은 어찌하여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서는 홀연히 사라졌을까?

 


  초원의 최강자 흉노 제국은 중국을 괴롭히며 세력을 과시한다. 중국 한나라는 화평을 위해서 공주를 흉노 선우의 아내로 바친다. 그녀들을 화번공주라한다. 매년 비단을 비롯한 수많은 물품이 한나라에서 흉노로 바쳐진다. 이러한 모습은 돌궐제국과 위구르제국으로 이어진다. 

  강대한 제국도 내부에서 시작된 균열에 의해서 순식간에 무너진다. 흉노제국은 한무제의 공격으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서흉노와 동흉노로 분열되더니, 동흉노는 다시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열되었다. 

  흉노의 뒤를 이어 제국을 건설한 돌궐제국도 제1 돌궐제국의 경우 서돌궐과 동돌궐로 분열하고 내부 부족의 반란으로 멸망했다. 물론, 수나라 장손성이 돌궐의 내부 분열을 획책한 면이 있다. 제2 돌궐 제국도 중국의 이간책과 유목부족의 이탈과 반란으로 세력이 약화되고 결국은 멸망의 길을 걷는다. 

  위구르 제국 또한 지배 씨족 간의 갈등으로 멸망의 길을 걷는다. 한번 제국이 세워지면 5백년 동안 지속되는 것이 우리 역사의 일반적인 모습인데 반해서 튀르크 계열의 유목제국은 흉노 제국을 제외하고서는 우리처럼 장기간 국가를 유지한 경우가 드물다. 물론 중국의 내부 분열책이 작동하기도 했지만, 외부의 분열책에 너무도 쉽게 분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목제국의 태생적 한계로 때문으로 보인다. 

  유목제국의 태생적 한계란 무엇일까? 유목민이 세운 제국이기에 이동할 수밖에 없다. 잦은 이동은 문화를 축적하기가 농경민족보다 어렵다. 더욱이 유목민족을 하나로 묶어줄 민족적 자각을 이루기가 너무도 힘들다. 부족단위로 이동하며 생활하기에 민족의식보다는 부족의식이 강하고, 국가의 이익보다는 부족의 이익이 더 중요시된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가 중국의 분열책에 쉽게 균열되는 이유이다. 

  그래서일까? 튀르크 계열의 유목민들은 돌궐문자와 위구르문제를 만들며 민족의 문화를 보존하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노력하기도했다. 특히, 위구르족은 정착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구르 제국은 멸망했다. 서쪽으로 이동하여 세운 셀주크 제국도 짧은 대제국 시기를 지나서 여러 셀주크국으로 분열한다. 

  이러한 유목제국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며 600년 대제국이 건설된다. 바로 오스만 제국이다.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가 당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돌궐계 유목민의 도움 때문이다. 탈라스전투의 승리로 이슬람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아아시아 내류으로 전파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고, 튀르크 세계에 이슬람교가 퍼진다. 슬람교를 받아들인 튀르크인들은 오스만 제국 시기에 화려한 제국의 꽃을 피운다. 서아시아에 정착한 튀르크족은 티무르제국의 공격으로 한때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한다. 이슬람교로 제국을 하나로 묶고, 탁월한 그들의 전투력으로 서아시아를 비롯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동유럽을 위협한다. 

  강대한 세계 제국 오스만이 쇠퇴한 원인은 무엇일까? 학자마다 다양한 원인을 제시하겠지만, 나는 제국의 전성기에 쇠퇴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말하고 싶다. 그 쇠퇴의 씨앗은 무엇일까?

  첫째, 제국의 강력한 군대 예니체리가 쇠퇴의 씨앗이었다. 씨앗을 뿌리면서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 알 수 없다. 햇빛과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며 탐스런 꽃을 피울 수도 있지만, 폭풍우와 가뭄에 꽃을 피울 수 없을 수도 있다. 더욱 심각한 일은 그 씨앗이 내가 원하는 꽃을 피울 수 없고 독초로 자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니체리라는 군대를 만들었을 때는 크리스트교를 믿는 청소년들을 개종시켜 술탄의 충실한 군대가 되길 기대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제국의 팽창이 중지되자 전리품이 사라지고 경제가 어려워지자 보수만으로는 살 수 없어 부업을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술탄이 즉위할 때마다 보수를 올려받기를 원했고 풍부한 보너스를 바랬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술탄을 죽이고 마음에 드는 새로운 술탄을 앉히기도했다. 예니체리라는 씨앗이 제국의 독초로자랄지 누가 알았겠는가!

  둘째, 오스만제국의 최대 전성기를 이끈 술레이만 대제의 황후 휘렘 술탄이 제국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휘렘 술탄은 자신의 아들을 술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 총리 이브라힘파샤를 처형하고 차기 술탄으로 지목된 무스타파를 죽였다. 아무리 탁월한 군주라할지라도 자신의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면 그는 탁월한 군주라할 수 없다.

  조선의 세종과 정조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과 정조의 가장 큰 차이는 세종 이후에 조선은 계속해서 발전하였지만, 정조 사후 조선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왕권에 걸림돌을 미리 제거한 태종이 세종에게 있었으나, 정조에게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할아버지 영조가 있을 뿐이다. 영조는 정조에게 정치적 족쇄를 채워 놓았고, 정조는 그 족쇄를 벗어 던지기 전에 세상을 하직했다. 그리고 조선은 쇠퇴해갔다. 

  술레이만대제는 앞선 탁월한 술탄의 기반위에 나라를 운영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제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면 후계자를 잘 세웠어야했다. 그는 그러지 못했고 제국은 쇠약해져갔다. 

  셋째, 무리한 원정으로 제국의 피로도가 높아졌다. 술레이만대제시기 제국은 최대 판도를 자랑했다. 급속한 팽창과 이로인한 피로도는 싸여만 갔다. 제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내부 산업을 활성화시켜야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이를 외부에서 수입했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내부의 산업을 발전시키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그러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제국의 팽창과 이렇게 얻은 부를 외국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해서 해결했다. 

  그리고 제국의 팽창이 멈추자 제국은 급속히 쇠퇴해갔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재정이 악화 되었다. 예니체리에게 충분한 급료와 보너스를 줄 수 없었다. 무리한 원정에서 오는 피로도를 낮추면서 경제적 내실을 다지는 전략을 선택했다면 오스만 제국의 쇠퇴는 늦춰졌을 것이다. 그러나 팽창에서 오는 이익을 생각하며 앞만 보며 달려온 제국은 팽창이 멈추자 쇠퇴의 길을 걷는다.

 


  "북방 유라시아의 주인공은 세계사에 커다란 영향을 남긴 '튀르크'족과 '몽골족'이었다. 튀르크족으로 북방 유라시아에서 최초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것은 흉노였다."(21쪽)


  몽골 다문화학생을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그 학생은 나에게 몽골에서는 흉노의 역사를 몽골의 역사로 배운다며 그것이 맞는지 물어보았다. 나로서는 몽골의 역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남긴 역사기록이 없기에 흉노를 몽골의 역사라 단언할 수 없었다. 이희철 자자의 '튀르크인 이야기'에서는 흉노의 역사를 튀르키예의 역사로 규정하며 역사서술을 하고있다. 그리고 현재 '예니 튀르크예 전략 연구원'에서는 튀르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오스만제국의 역사에 머물고 있는 그들의 역사를 흉노 제국과 돌궐제국으로 확장하며 자신의 뿌리를 재조명하고 있다. 어쩌면 흉노의 역사는 몽골의 역사이기도하면서 튀르키예의 역사일수도 있다. 튀르키예와 몽골의 흉노 역사에 대한 치열한 뿌리찾기를 바라보며, 역사는 기록하는자, 기억하는자의 것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떠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올바른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새로 정립하는 것은 제국 발전의 기초임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한다.



ps. 좋은 책이지만 옥의 티가 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E.H카의 말"(8쪽)

   =>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은 크로체가한 말이다. 수정해주길 바란다. 

   책에 지도한장 없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도가 수반되어야한다. 힘들겠지만, 튀르크인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지도를 첨부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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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월왕의 머리가 이미 한 왕조 복궐에 걸렸다. 선우가 한 왕조와전쟁을 하겠다면 한 나라의 천자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변경까지 출병하여 기다릴 것이다. 선우가 만약 전쟁을 원치 않는다면 응당 한왕조에 신하로 복속해야 할 것이다. 어찌 멀고 먼 곳까지 도망쳐 막북 추운 곳에 숨어 있는가?-무제가 흉노에게 전한 말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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