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품격 (합본) - 3대가 풀어 쓴 한.일 역사이야기 역사의 품격
배준호 지음 / 책과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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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품격'이라는 말 자체가 품위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담고 있는 한국의 역사는 일본의 역사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으며, 한국은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의 어둠속에 파묻혔다.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한국은 왜? 패망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실패에 촛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으며,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에 성공했는가?라는 성공요인에 촛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책은 역사의 품격을 품위있게 논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독자성을 서술했을까? 아니면 일본은 성공할 수 밖에 없었으며, 한국은 패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결과론에 근거한 역사적 결말의 필연성을 강조할까?

 

1. 밖으로 향하는 일본, 움츠려드는 조선

  에도막부 이후의 일본사를 살펴보면, 안으려 역동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으며, 끊임없이 일본밖의 세계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했다는 사실에 감탄을 하게된다. 일찍이 가도라 불리는 길을 닦았으며, 표류해온 외국인들을 쇼군의 고문으로 삼았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문물을 전해받으려 노력했다. 중앙의 막부에서만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방의 번에서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서양세력에 대항하려했던 지방의 번들은 서양세력의 무력에 무릎 꿇고 그들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일본은 끊임 없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서양에게서 받아들이려했다.

  반면, 조선은 표류해온 서양인들을 중국에 인도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벨테브레이를 등용한 정도가 전부이다. 프랑스와 미국이 포함외교를 통해서 문호를 개방하라했으나,  조선은 그들의 엄청난 근대식 무기를 보고서도 저항을한다. 동학농민운동때는 기관총과 대포 앞에서도 용감하게 죽창을 들고 일본군에게 저항하기까지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밖의 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일본에 비해서, 조선은 이상을 중요시했으며, 밖의 세계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자신의 올곧은 정신세계를 지키려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이었다.

  일본과 조선의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본다. 9시 뉴스에서 외신의 비중은 너무도 작다. 우리는 세계 여러나라 소식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다.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세계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지리라는 과목은 비인끼 과목이다. 이들 과목은 문과 학생들 중에서 일부 학생들이 선택할 뿐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문제는 한국만의 힘으로는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아는 우리이지만, 우리는 세계 정세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다. 우리의 시야를 세계로 확대하고, 세계 질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민족의 비극을 빗겨가지 못할 수도 있다.

 

2.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이토가 말했다. "조선의 낙후한 정치가 문제다." 대한제국을 강탈한 원흉 이토!! 그가 조선의 정치가 낙후한 것이 조선 패망의 원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이면서 합리적인 대책을 세워 민중을 이끄는 리더십이 없었다. 성리학이라는 과거의 사유방식을 고수하며 새로운 근대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개화냐 척화냐라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다가 망국의 길을 걸었다. 이 책에서는 리더십이 부재한 조선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그 길로 백성을 이끌 정치 분야의 선구자가 없었던 거예요. 결단력과 행동력이 결여된 현실 타협주의자만 많았죠."

 

  개화기의 우리역사를 비하하고, 패배주의에 휩싸인 말이다. 우리도 김옥균과 같은 선구자가 있었지 않았는가? 물론 그가 이루려는 근대화를 우리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급진적이고 미숙한 혁명의 길은 잔혹한 실패로 이어진다. 결국 민족의 패망을 막지 못한다. 문제는 정치였다. 그러나 그러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민중들의 팔로우쉽이 뒤따라주어야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맹목적으로 리더를 추종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깨어있는 민중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리더를 앞세워 사회를 앞으로 추동해가는 열린사회를 열망한다. 개화기! 민중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분야의 대다수 리더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수의 김옥균과 같은 리더들이 근대사회로 조선을 이끌려했지만, 준비안된 우리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달라졌을까? 촛불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민중이 깨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촛불혁명이 발발했을 때에는 민중의, 시민의 위대성에 감탄했다. 그러나 지금! 국정농단을 일으킨 세력의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불안함이 밀려온다. 더 이상  우리는 퇴보해서는 안된다. 사회를 진보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정치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3. 냉혹한 반성인가! 식민사관의 패배주의에 물든 정신병자인가!

  균형있게 한국과 일본은 비교 설명하는 책을 기대했다. 책을 읽으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한국은 패배의 역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으며, 일본은 승리할 수 밖에 없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를 냉철하게 바라보아야해! 그래야 다시는 패방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 라는 절규를 하기도했다. 왜? 이러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가도와 지리전문가'편을 읽다보면, 일본의 내치가 생각보다 섬세하게 잘이뤄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섬나라이고 잦은 전쟁이 일어는데도 일본은 체계적으로 도로를 관리했다. 상대편의 군대가 도로를 이용해서 쉽게 쳐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서 도로를 잘 닦았다.

  반면, 조선은 도로보다는 수로에 치중했다. 조선에 수레가 없었던 이유를 산악지형이 많으며, 우마가 중국보다 건장하지 못했고, 외적이 침입하는 길로 이용된다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조선이 수레를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조선초에 명나라에게 조공품으로 수많은 말을 요구했으며, 수만마리의 말들이 명나라로 가면서 말의 씨가 말랐다한다. 그래서 말이 끄는 수레 대신 사람의 힘을 이용하는 가마가 발달했다. 고구려와 고려시대 까지만하더라도 말을 흔하게 사용했던 우리였다. 그것이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 사회로 바뀌었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수레의 사용만 놓고 본다면, 이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일본이 공세적으로 길을 닦았다면, 조선은 수세적으로 도로의 발달에 소극적이었다. 일본과의 '가도' 비교는 우리의 비루함을 발견하는 뼈아픈 시간이었다.

  일본의 외척정치의 절정기는 고대 헤이안시대였다. 아스카, 나라 헤이안 시대를 거쳐 가마쿠라막부 시대까지 외척정치가 행해진다. 보통 외척정치라하면 나라를 병들게하는 정치형태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외척정치를 한국보다 먼저 겪었다. 더 혹독하게...

  반면, 우리는 조선시대 말기에 외척정치를 혹독하게 겪었다. 일명 세도정치가 조선을 병들게 했다. 세도정치 이후에 서양세력의 충격이 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외부의 충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조선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나의 눈을 의심케하는 글이 이 책에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척정치를 타파하고 조선 정치에 새 바람을 불어 넣은 세력은 일본제국주의 등 주변 강대국이다."

 

  나의 눈을 의심했다. 한국의 진보적인 대학 교수라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다니!! 일본 제국주의가!! 배준호 교수는 친일적이고, 타율적인 식민사관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는 말인가? 물론, 책의 끝 부분에 자신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그러나, 외척정치를 타파하고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킨 세력이 일본 제국주의라면, 조선의 패망이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된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리모델링해야하는데, 일본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빼앗아갔다.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일본이 새롭게 한 것인가? 배준호 교수의 글이 심각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과거 세력을 철저하게 숙청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의 역사는 과거세력과 타협하면서 새역사를 만들어 갔다면, 일본은 과거세력을 철저하게 숙청하면서 새 시대를 열어갔다.

  "새시대의 지배 질서 확립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에 의해서 이전 정권 사람들을 다 죽인 것을 합리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면서, 무신정권이 문인들을 등용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정권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지 않았다. 물론, 일부를 적이기는 했다. 조선왕조에서 고려왕조의 왕손을 죽이거나, 무신정권에서 문신들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 비하면 커다란 숙청이 이뤄졌다 할 수 없다. 앞 정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해야하는 역사가 아닐까? 배준호 교수는 철저한 보복을한 일본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철저한 보복이 이뤄지지 않은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했다. 물론,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한다. 그러나 상대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피의 복수를 했던 말폐적 붕당정치를 비판한다면, 나라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세력을 포용했다는 역사는 부끄러워해야할 역사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배준호 교수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다. 부끄러워해야할 역사와 자랑스러워해야할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정치에 새바람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하는 그의 책을, 그의 강의를 대학생들이 읽고 들어야할 가치가 있을까?

 

  4. 옥의 티를 찾아라.

  배준호교수는 역사를 전공한 교수가 아니다. 경제학자이다. 그러다 보니 책에 오류가 많다. 몇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일본 외척정치의 절정기는 언제일까? 126쪽에는 중세시대로 적고 있고, 132쪽에는 고대 헤이안 시대에 절정기를 이뤘다고 서술하고 있다. 같은 책에서 서술이 모순을 보이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둘째, 조선이 프랑스로부터 개국 압력을 언제 받았을까? 병인양요 시기이다. 병인양요는 1866년 발발했다. 그런데, 210쪽에는 1846년이라 서술되어 있다. 1846년이면 세도정치 시기이다. 병인양요는 세도정치를 척결한 흥선대원군 시기에 발발했다.

  셋째, 유물론은 누가 말했는가? 마르크스이다. 성리학은 관념론이다. 그런데, 263족에는 "이 과정에서 유물론(율곡)이다 유심론(퇴계)이다 하면서 오랫동안 대립하죠."라고 서술했다. 율곡이 유물론자라니! 마르크스가 관속에서 뛰쳐나오겠다.

  넷째, 3.1운동에 대해서 일제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총칼로 폭압적 진압을 했다. 그런데 234쪽에는 "우리의 3.1 독립운동에 일제가 유화정책으로 대응한 것도"라고 서술하고 있다. 3.1운동의 결과 무단 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뀐 사실은 있으나, 일제가 3.1 운동의 대응으로 유화책을 펼치지는 않았다. 애국지사들이 저승에서 통곡하시지 않으실지 걱정된다.

  다섯째, 조선시대 양반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는가? 물론, 첩을 두는등 여성보다는 자유로웠다. 그러나 자신이 보는 춘화를 드러내놓고 보지는 못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양반들이 속으로는 성을 자유롭게 생각했을 지라도, 드러내놓고 성을 개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142쪽에는 양반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사에 대한 체계적 학습을 하셔야할 듯하다.

  여섯째, 조선후기 양민이 즐길 수 있는 오락이나 공연장이 없었는가? 애매한 말이다. 신대놀이, 판소리 등 조선후기 서민문화가 발달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없었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 역사학자의 한계가 보이는 부분들이 책 곳곳에서 엿보였다. 이러한 오류는 수정해주길 기대한다.

 

  김정호를 재발견한 것이 일제이며, 대동여지도를 일제는 청일전쟁시기에 유용하게 사용했고, '조선어독본'에 전기를 실은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읽으며, 우리의 보배를 우리가 몰랐다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적극적이며 진취적이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배도 바로 보지 못하는 한국사에 대한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대세력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일본을 '새시대의 지배질서 확립 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이라고 미화하고, '조선정치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 세력은 일본제국주의'라는 말을 읽었을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소토쿠 태자와 다이카 개신이 조작된 사실이라는 최신의 주장을 받아들인 배준호 교수가, 낡아빠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에 실망감이 커져갔다. 일본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는 패망의 길을 걷지 않도록 교훈을 얻어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조선은 승리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은 패망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다는 역사 인식을 갖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역사관은 패망의 역사를 되풀이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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