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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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회사는 죽음을 판다
우리는 흡연하지 않습니다. 그저 팔 뿐이지요. 우리는 그 권리를 젊은이, 가난한 사람, 흑인 그리고 멍청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둡니다.(Wedon‘t smoke the sh--, we just sell it.... We reserve that ‘right‘ for theyoung, the poor, the black and the stupid.)‘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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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배기성 지음 / 왕의서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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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서 배기성의 동영상이 추천 되었지만 나는 클릭하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학자들의 역사 강좌만 듣고 싶었다. 그런데, 팟캐스트 '매불쑈'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다. 피맷힌 목소리에 울분을 쏟아내는 그의 강의를 들으며 그에게 빠져들었다. 

  '역사 독립군'!! 그에게 보내는 찬사는 그치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매불쑈'에 나오지 않자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왜? 갑자기 출연을 하지 않는 것일까? 다시 돌아온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파리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책을 쓰다가 쓰러진 것이다. 이 사회를 위해서, 건전한 역사 의식을 시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그는 더 살아야한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책을 읽어줄 것과, 자신의 팟캐스트를 구독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래, 그의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결심했다.

  그의 책은 '매불쇼'를 열심히 들은 독자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다. 좀 길이가 길다 싶으면 2부로 나누어서 서술했다. 독자에 대한 배려인듯 싶다. 

  배기성의 책을 다 읽고 그의 책을 내려 놓았다. 책을 읽는 동안 '매불쇼'에서 열강하던 그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매불쇼'를 떠올리며 그의 강의에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가볍지만, 그가 말한 역사의 무게는 너무도 무거웠다. 친일파가 승리하고, 독재자가 찬양받는 현실 속에서 역사 독립군 배기성의 책은 가볍지만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의 책이 가볍게 느껴지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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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장자수업 2 -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 강신주의 장자수업 2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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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가 자신의 전공으로 돌아왔다. '장자'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다시 대중앞에 섰다. '강신주의 장자수업 1,2'는 그가 탐구한 장자에 대한 집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10여년전, 나는 강신주가 쓴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라는 책을 읽었다. '강신주의 장자수업'을 읽으며 10여년 전의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와 달라진 강신주의 생각을 떠올렸다. 강신주! 그는 어떤 성숙한 모습으로 장자를 다시 초대했을까?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라는 부제가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20여년전,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을 쓸 때는 세상과 맞서며 자신의 카리스마를 내뿜었던 강신주가, 이제는 쇠약해져서 세상으로부터 밀쳐진 이들을 위한 찬가를 부르고 있다. 피튀기는 경쟁 사회에서 탈출하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강신주가 이상향으로 제시하는 것은 유목민의 삶이다. 정착민 vs 유목민의 삶을 끊임없이  제시하며 장자를 유목민적 사유를 가진 책으로 소개한다. 정착민을 대표하는 사상가 공자, 유목민의 대표 사상가 장자의 대립구도 속에서 강신주는 장자의 글을 빌어서 공자를 비판한다. 지배자의 논리를 대변하는 공자를 비판하며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유목민의 삶을 찬양한다. 아마도, 경쟁에서 승리하라 강요하는 현대사회에서 밀쳐진 현대인들에게 강신주는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떠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라는 책에서 강신주가 말했던 강조점이 달랐다. '수영이야기' 즉, 46번째 주제 '두 세계가 만나는 곳에서'라는 글은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에서는 차이를 뛰어 넘어 소통과 자유의 연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소재였다. 

 

  "섯부르게 나의 '성심'으로 나의 '아비투스'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하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판단중지하고 망의 단계에 접어들어야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유영의 단계에 접어들어야한다. 거친 물결에 자신의 몸을 맞기듯이, 행글라이드에 몸을 싣고 세찬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듯이 우리는 차이에 자신을 싣고 포월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자유로운 연대의 단계로까지 나아가야한다."-'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서평에서...


  그러나, '강신주의 장자수업'에서 '수영 이야기'는 '소통과 자유의 연대'를 말하는 소재로 쓰이기 보다는 유목민적 삶의 태도와 정착민적 삶의 태도를 극명히 대비시키는 소재로 사용되었다. '장자'의 같은 우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강신주가 현대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달라졌다. 이제는 자유인으로 유목민처럼 떠나라고 말한다. 강신주는 우리가 자유인이 되길 권한다. 

  '에태타'는 대단한 추남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 그의 마음을 얻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추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외모마져도 자신을 상품성을 돋보이는 도구로 사용한다. 수많은 성형외과 수술이 이어지고, 어떻게든 예쁘고 젊게 보이고 싶어한다. 세계 언론이 50대 여성이 20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며 한국의 한여성이 받은 성형수술을 심도 있게 소개한 기사가 있다. 그러나, 그 성형수술의 주인공인 K 여사를 자유인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신주에게는 그녀보다 에태타가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며 많은 값으로 팔려나가길 바라는 우리에게 강신주는 자유로운 에태타가 되라 말하고 있다. 피튀기며 밀쳐지지 않으려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지 말고, 자유로운 그곳으로 떠나라 말한다. 


  "없음은 아직 마주하지 않은 다자들의 있음으로, 삶은 마주침이 지속되는 다자들의 있음으로, 그리고 죽음은 마주침이 와해된 다자들의 있음으로 긍정했던 것입니다." -76쪽


  강신주는 '장자'의 입을 빌어 죽음까지 포월하라 말한다. 자유롭게 떠나라! 심지어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도 없이 삶을 긍정하며, 죽음도 긍정하는 평온한 자유를 만끽하라 말한다. 그렇다. 우리의 있고 없음을 고뇌하기 보다는 내가 없음에도 존재하는 우리의 삶을 예찬하자. 이 세상을 마음껏 여행한 유목민이 미련없이 떠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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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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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단행되었고, 미국은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세계가 혼돈의 회오리 속에 빨려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현실이 변해야한다. 그러나 불길을 피해 살기 위해서 찾아든 곳은 물이있는 비좁은 화장실이었다. 탈출구를 찾아 헤메지만 좁은 터널을 달리듯이 탈출구는 멀기만할뿐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능력이라는 만능키를 가지기 위해서 옆을 볼 수 없는 경주마처럼 달리는 우리에게 그것이 착각임을 자각하게한다. 'The Tyranny of Merit', 능력의 폭정이라는 원제목처럼 능력이라는 만능키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능력의 노예가 되어 신음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탈출구는 존재할까? 마이클 샌델이 제시한 탈출구는 혹시 폐쇄된 화장실이아닐까?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행해지고,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를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진단한다.


  "수십년 동안 불평등이 커지고 상류층에게는 혜택을,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력감을 안겨준 세계화가 진행된데 대한 분노의 판결이었다." -41쪽


 그렇다. 미국사회에서 좌측에서는 버니센더스 열풍이 불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분노의 물결이 미국을 휩쓸며 신자유주의의 성지인 미국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물결이 도도하게 넘실넘실 춤을 추었다. 우측에서는 트럼프가 노동자의 언어를 사용하며 기존 미디어의 문법을 벗어난 선거를 했다. 인종차별, 여성혐오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좌측의 변화 물결은 민주당 당내 경선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힐러리와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기성 미디어들은 힐러리의 당선을 외쳤지만, 현실은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변화를 수용한 공화당은 승리했고, 혁명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한 민주당은 패배했다. 

  많은 언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어리석은 썬밸트의 레드넥(백인 노동자)들의 반란으로 보도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백인 노동자들은 트럼프에 열광하는 것일까? 버클리 캘리포니아 국립대학 사회학과 교수 엘리 러셀 혹실드는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이방인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우수은 이야기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그들도 이방이었다. 인디언이라 불리는 미국의 토착민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갖혀서 레디메이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빼앗고 자신의 땅에 내쫓겨서 폐인처럼 살도록 한자가 누구였던가? 지금, 수많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주인이 되기 위해서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리고 백인 노동자를 '자기 땅의 이방인'으로 내몰고 있다. 

  백인 노동자들은 어쩌다가 자기 땅의 이방인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의 폭정 때문이라 주장한다.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 위해서 엘리트 가정은 지옥같은 교육을 시킨다. 우리와 다른점이 있다면, 미국은 엘리트층이 입시지옥을 겪는다면, 우리는 거의 모든 가정이 입시지옥을 겪고 있다는 차이만이 존재한다. 

  기부금입학, 운동 특기생 전형, 동문 특혜 등등의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엘리트들은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을 이룬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에게 엘리트 사회의 부를 세습한다. 엘리트 카르텔은 너무도 견고했다. 2008년 대선 유세에서 버락 오바마는 경영자나 기술관료의 언어에서 벗어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써브프라임 금융위기 속에서 그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엘리트들의 제안을 수용했다. 월가에서는 정부로부터 받은 구제금으로 금융엘리트들에게 보너스를 주어 공분을 사기도했다. 

  어떤이는 말한다. 엘리트들이기 때문에 현대와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그러나, 엘리트들에게 가장 현명한 결정은 사회적 약자에게 이로운 결정이 아니라, 자신들이 사회적 부와 명예를 세습할 수 있는 결정이다. 그러한 예는 우리 사회에서도 흔하게 보이지 않는가! 

  능력에 따라 지위와 부를 분배해야한다는 소위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의 주장에 대해서 100% 공감할 수는 없다. 

  첫째, 모든 재능은 평등한 가치를 가지는가? 노력에 비례해서 같은 대우를 받아야하는가?  마이클 샌델은 모든 재능은 같은 가치를 가지며, 노력에 비례해서 같은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재능 덕분에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노력했지만 시장이 반기는 재능은 없는 탓에 뒤떨어져버린 사람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 52쪽


  재능 중에서 사회에서 필요로하는 재능이 있고, 필요치 않은 재능이 있다. 물론, 농구 재능처럼 고대 사회에서는 별로 필요치 않은 재능이었으나, 현대에는 유용한 재능이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모든 재능에 사회가 같은 대우를 해줄 수 없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으로 사회에서 요구하지 않는 재능에게 사회에서 필요로하는 재능과 같은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무리한 이상일 뿐이다.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은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 재능을 자신의 여가 생활에 사용하면서 만족하면 될뿐이다. 

  노력을 했다고 해서 그에 비례해서 대우를 해줘야할까? 우리 주변에서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라는 말을 많이한다. 열심히 책상 위에 앉아서 서류를 만지작 거리지만, 실제로 만들어내는 보고서는 형편없는 사람과 단시간내에 탁월한 보고서를 완성하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보이는 사람중에서 누가 좋은 대우를 받아야할까? 노력은 아름답지만 댓가는 노력에 비래하지 않는다. 

 둘째, 대학 합격자를 제비뽑기로 뽑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인가? 마이클 샌델은 명문대 학위가 사회적 경제적 지위 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들어서 대학 합격자를 제비뽑기로 뽑자고 제안한다.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1차로 선정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제비를 뽑자는 제안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학 학격자는 오만에서 벗어나 겸손해질 것이며, 불합격한자는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운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그럴까?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영혼까지 끌어 모아 스펙을 채우고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경험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능력주의적 오만"에 바람을 뺄 수 있을까? 한국의 현실에 적용시킨다면 장수생들을 배출하는 최악의 입시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 간판이 사회적 성공을 보장해주는 한국 사회에서 제비 뽑기에서 탈락한 학생은 자신이 운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다음해에 다시 도전할 것이 분명하다. 사법고시에 인생을 바치다가 끝내는 폐인이 되는 사례처럼, 명문대 입시 폐인이 늘어만 갈 것이다. 대학 입시 횟수 제한을 둔다면 이 또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사회적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서울대를 포함한 모든 국립대를 통폐합하여 하나의 대학으로 만드는 방법이 가장 현실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샌델! 그는 철학자일뿐 행정가는 아니다. 그의 제안은 능력주의의 폭정에서 벗어날 방안을 찾아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것에 의미를 두어야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저출산의 위기에 봉착했다. 국가 소멸의 위기로 치닫는 이유중에는 자신이 겪었던 입시지옥, 취업지옥을 자녀들에게 대물림 시키고 싶지 않아서라는 입장도 있다. 능력주의의 폭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소멸의 위기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극우의 물결이 불어닥치는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는 그 위험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 물결을 헤처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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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 돌아온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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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워싱턴회의에서 나치 약탈 문화재를 확인하고 원소유자를 찾기 위해 문화재의 관련 기록과 정보가 공개되어야한다는 워싱턴 원칙이 성립되었다. 미국 박물관 협회가 제시한 '과거 내력 공개'라는 가이드라인에 주요 유럽 국가들은 처음에는 거부의사를 밝혔다. 저자는 그 이유가 '미국이 정한 기준을 유럽 문화계에 부과하는 데 대한 유럽 국가들의 저항감' 때문이라 지적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유럽의 박물관들이 제국주의 강도들의 장물아비가 되어 약소국의 문화재를 소유하면서 누린 영광을 빼앗기기 싫었던 마음이 더욱 컸을 것이다. 우와한 척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탐욕스러운 장물아비의 파렴치함이 도사리고 있다. 이 책은 탐욕스러운 장물아비가 된 강대국의 박물관과 인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각국 혹은 시민들의 치열한 투쟁을 담고 있다.

저자 김경임과는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책으로 만난적이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을 읽으며 그녀의 전문성과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녀를 믿고 '약탈문화재의 세계사1'을 펼쳐 들었다. 역사나, 김경임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잃어버린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 벌이는 각국의 치열한 투쟁이다. 인도는 '춤추는 시바상'으로 불리는 '나타라자 청동상'을 밀반출 당하자 이를 되찾기 위해서 미국의 박물관과 소송을 벌였다. 여기에 인도의 외교력을 더하여 자국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피나는 투쟁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86년 나타라자상은 27년 만에 고향 타민라두에 귀환 했다. 터키는 리디어 보물을 반환받기 위해서 정부차원에서 치열한 노력을 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재판을 불사하며 강경외교로 압박하여 거만한 강대국의 박물관을 굴복시켰다.

약소국이 강대국 박물관과 소송도 불사하며 벌이는 문화재 반환 노력은 한편의 드라마이다. 그러나 그 드라마를 마냥 편안하게 읽을 수만은 없었다. 자국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확인하는 순간, 혜문 스님의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혜문 스님이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 뜨거운 열정으로 강대국의 닫힌문을 두드릴때, 정부와 학계는 빼앗긴 문화재가 돌아올 수 없는 근거를 변명처럼 말했다. 그때 나는 '~때문에 안된다.'라는 변명보다는 '~임에도 불구하고'라는 강한 의지가 담긴 말을 듣고 싶었다.

이 책에 소개된 국가들은 '~때문에' 문화재를 되찾을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경우 경찰 카라비에리의 문화재 특공대를 만들고 문화재 관련 범죄를 전문적으로 수사했다. 카라비에리의 문화재 특공대의 수사 결과는 정부차원의 문화재 환수 노력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유명 박물관이 앞다투어 구입하던 이탈리아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환수된 것도 이탈리아 경찰 카라비에리의 문화재 특공대와 정부차원의 노력 덕분이다. 어쩌면 미국의 유명 박물관은 이탈리아의 경찰 카라비에리 덕분에 장물아비에서 일류문화 수호자로 변신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 김경임은 '서산 부석사 관음상 문제'를 마지막 쳅터에 소개했다. 그녀가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를 저술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문화재의 귀환을 이야기하면 효용가치가 사라진 민족주의 담론을 꺼내든다며 비아냥 거리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소위 문화재 전문가라는 유명인은 대중 강연에서 '빼앗긴 문화재를 세계 각국 박물관에서 되찾겠다고 자랑스럽게 나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한다. 우리 문화재가 우리 나라에만 있다면 어떻게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겠는가? 그런 폐쇄적 민족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야한다.'라고 주장하기도했다. 그의 영향력과 경력을 생각해볼 때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에게 이탈리아 루텔리 장관의 말을 해주고 싶다. "문화재 반환! 그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다. 인류 보편의 담론이다."

'서산 부석사 관음상'은 어디로 가야할까? 혜문 스님은 일본에 돌려주자는 입장이시다. 도둑들이 일본 신사에서 훔처온 것을 우리가 돌려주지 않는다면 어찌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외국인들에게 호소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에 반해서 김경임은 서산 부석사 관음상은 왜구의 약탈에 의해서 대마도에 건너갔다고 주장하며 반환의 부당성을 설파한다. '약탈문화재의 세계사'에서 줄기차게 제시되는 문화재를 합법적으로 입수했다고 증명하는 책임은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다는 원칙을 우리에게 소환한다. '불법 문화재의 원소유국 반환'이라는 대원칙을 염두에 둔다면 '서산 부석사 관음상'은 서산 부석사에 되돌아가야한다. 혜문 스님과 김경임이라는 두 거물의 서로 다른 의견이 사뭇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 처절한 투쟁을 하는 세계 시민과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통쾌함과 깊은 감동을 느낀다. 그러나, 마냥 행복해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문화재가 많이 있다. 운디드니에서 학살당한 인디언의 '고스트 댄스 셔츠'가 시체에서 벗겨져 박물관을 전전하다가 시민들의 노력으로 인디언의 품으로 돌아왔듯이, 전세계를 헤매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도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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