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정의다
래그나 레드비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영림카디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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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이게 이 책의 골자다. 무난한 애기 같은데 옮긴이 해설이 심상찮다.

   

       “용기가 있으면 읽어보라”(옮긴이 해설중)

 

과연 서문을 몇 장 넘기고 나면 감정의 파도가 순류,역류를 반복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이라는 진부하면서도 가슴뛰게 하는 명제를 누군가에게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키는 논리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래그나 레드비어드”라는 익명의 저자가(영화로 치면 알란 스미시?) 묘사하는 세계는 철저한 적자생존의 세계다. (그 근거는 명확치 않다. 저자는 그게 “자연적”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강자가 약자를 포식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평등이니 우애니, 희생이니 하는 것은 기독교(책에는 “형틀에 매달린 유태인 노예”라는 표현이 나온다. )가 만들어낸 헛소리며 사기극이다. 그리고, 강자를 결정하는 것은 혈통이다. 전사는 전사의 피에서 밖에 나올 수 없는데, 흑인이나 중국인, 유태인 등은 글러먹은 노예근성에 찌든 민족이다. 그들은 당연히 금빛 머리털을 가진 강자들의 희생물로 존재해야 한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이 책에 딱 들어맞는다. 여성혐오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책에 나오는 문장을 메갈에다 올리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저자가 말하는 힘이라는 것도 단순해서 칼, 무기, 육체적인 힘 같은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남자들이라면 초등학교 때 한번쯤 겪었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같은 상황이 저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이상적이기까지 하다.

이쯤되면 “19세기에 웬 일베?”라고 하면서 책을 던져버리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사회비판이 그대로 현재의 모습과 중첩된다는 것이다.

 

“헌정수립 이후 백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인의 10퍼센트가 전체 재화의 92퍼센트를 절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자를 위한 법 따로 있고, 빈자를 위한 법 따로 있다“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있는 속담이다.... 실제로 ‘저울의 추’는 투표함 속의 수천만 표보다 물리적 과단성을 갖춘 말없는 실세 열 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현실 아닌가?”

 

“힘들고, 지속적인, 규율에 맞춰 강요된 노동은 용기를 파괴하고, 생기를 고갈시키며, 성격을 버려 놓는다.... 딱하여라, 벌벌 떠는 저 가련한 자들! 자기가 흘리는 땀으로, 아니 심장이 쏟아내는 피로 자신의 손을 씻는구나! 타고나기를 노예인 자들이여, 나면서부터 실성한 자들이여!”

(강신주 선생님이나 고미숙 선생님이 평소 말하는 “정규직노예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희가 자유인이라고? 꿈깨라,이 개돼지들아!”(실제로 책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많이 나오니 관심있으시면 직접 읽어보시길. 비아냥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강신주 선생님도 철학강의 중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향욱씨의 발언에 사람들이 그렇게 화를 낸 이유는 자신들이 개돼지라는 것을 들켰기 때문이라고.(벙커1 철학강의 홉스vs클라스트르 편. 동영상으로 시청 가능하다.진지하게 한 애기는 아니니 또 너무 흥분하지 마시길) 여기서 이 “19세기의 일베”는 묘하게도 반역과 혁명의 기운을 부채질한다.

 

“너에게 대적하는 자들과 맞서라. 너와 싸우려는 자들과 전쟁하라.... 굴종하며 사느니 깨끗이 죽는게 낫지 않겠나?... 삶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지는가? 세상에는 죽음보다 더 나쁜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수치스러운 삶이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 오늘의 강자는 내일의 강자에 의해 반드시 쓰러져야 한다. 수치스럽게 살지 말고 싸워라! 만약 그러다 실패하면? 그럼 죽으면 된다!. 죽음은 탄생만큼 사랑스러운 것이다. 삶은 어둠 속에서 잠깐 반짝이는 불빛에 지나지 않는다. 그깟 삶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도덕이니 정의니 신이니 법이니 하는 것은 너를 지배하는 자들이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편의에 불과하다. 자연에서 정의는 상대를 제압하는 힘이다! 옳고 그름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 내면의 결정에 따라라!

읽고 나면 일종의 프로파간다같다는 느낌도 든다.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보다는 비유와 뉘앙스를 사용하며 마음껏 내지르기 때문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이라는 도덕교과서에 나올만한 애기를 도덕교과서를 깔아뭉개며 주장하는 셈이다. 저자는 타성에 젖은 구제불능의 노예들을 깨우기 위해 독도 잘 쓰면 약이라는 생각을 한 걸까. 그래서, 나치를 연상케하는 인종주의와 곰팡내나는 낡은 여성혐오를 흩뿌려 놓은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느낌에 저자는 인종주의자에다 여성혐오자이다. 하지만, 코브라의 독도 쓰기 나름이라고 나같이 스테로이드 부족 남성들에게는 이 이야기는 꽤 신선하게 다가올 듯 싶다. 물론 쫄파메일이 알파메일에게 져서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긴 하지만 말이다.

 

추신: 강신주 선생님이 강의 중에 한 말-“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의 문제는 ,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는 죽는다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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