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한 전개에 뭔가 있을 것처럼 하더니 그저 용 한 마리 나오는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보다 보면 용과 우당탕탕 하는 꼴이 어? 혹시 이렇게 진행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이 들고 여지없이 그렇게 진행이 된다.

제물로 바쳐진 일레븐이 동굴에 떨어져서 나올 때는 쉬라 같은 복장이 되어 칼을 휘두른다. 일레븐 나이가 들어가니 뭔가 눈 화장이 레이디 가가를 보는 것 같더니 영화 속에서 달리는 게 너무 무겁다.

뭐야 왜 뒤뚱뒤뚱 달리는 거야. 요즘 본 조비 아들하고 사귀는데 행복한 가 부다. 용 나오는 영화가 아주 많은데 이 영화는 거기에 끼지 못할 듯싶다.

이 영화를 보면 아직도 미국! 하는 분위기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구나 같은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잘나가는 십 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나라를 구하는 식의 이야기.

칼을 들고 휘두르는 게 어색하게 보이고 야광 벌레에게 혼잣말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무관한 예쁜 예쁜 말투다.

무엇보다 이렇게 흐르는 거 아니야? 했을 때 이렇게 이야기가 흐른다는 게

일레븐은 기묘한 이야기에서 일레븐일 때 눈물까지 흘리게 만들었는데 고질라 시리즈에 전혀 필요도 없는데 시간 잡아 묵기 식으로 나오고, 그냥 미국미국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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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선수 나이애드가 60살에 조오련처럼 바다를 건너는 평생 꿈을 위해 도전하는 이야기다.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100마일이 넘는 바다를 종단하는 도전을 하는데

이 영화 자체 이야기는 그다지 크게 흥미로운게없다. 그러나 두 주인공, 아네트 베냉과 조디 포스터,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두 사람의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12살의 조디 포스터의 연기를 봤는데 60세가 넘은 조디 포스터의 연기를 보고 있으니 현실과 영화를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영화 속 두 사람은 선수와 매니저, 연인이기도 하다. 도전, 이 도전이라는 말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한 개인의 능력을 끌어올려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을 도와주는 팀원을 위험에 들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는 누구나 든다. 그러나 모두가 늙는 것은 아니다. 늙어버리는 것과 나이 든 것은 다르다. 그걸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네트 베닝과 조디 포스터 두 사람의 연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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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세 편으로 이루어진 독립영화. 세 편 모두가 살뜰하게 재미있다. 요런 영화들이 한국 영화의 장점 같다.

영화를 통해 사랑을 알아가는 세 편의 영화 첫 영화는 마치 우디 알렌의 초기 작품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주인공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나서 영화 보러 가자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일하는 중국집으로 가서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내용이다. 우디 알렌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두 번째 독립영화는 영화학도, 종사자들이 보면 흠뻑 빠져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찍고자 하는 초짜 감독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영화를 하려는 게 아니다 너는 감독을 하고 싶은 거야. 이 대사는 영화뿐 아니라 작가, 화가에게 전부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프레임 속의 세계, 그게 현실인지 영화인지. 그리고 그 모습을 또 프레임 속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프레임 밖에서 보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속 사람들은 진짜 관계일까 영화 속 관계일까.

세 번째 영화는 구교환과 이옥섭 감독 두 사람의 우당탕탕 알콩달콩의 실제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구교환은 구교환으로 나오고 임성미가 이옥섭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연기를 너무 잘해.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주조연들이 전부 연기가 좋다. 박혁권이 나오는데 얼굴이 나오지 않아서 너무 웃겨.

여백이 기분 좋게 틈을 메꿔주는 것 같은 영화다. 서투른 자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멋지고 거짓 없이 사랑에 몸을 던지는지.

영화는 세 편인데 감독은 네 명.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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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독이 그렇듯이 존 카펜터 역시 초기 작품은 수작이다. 어쩜 이렇게 표현을 잘 했을까 싶다.

경찰서로 달려드는 갱단들은 그야말로 오직 신념 하나만 있는 좀비떼처럼 보인다. 창문을 넘고, 벽을 뚫고, 방해물을 지나 경찰서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좀비떼 같은 이 모습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오마주를 한 것 같다.

갱단들이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 없는 것도,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 모습도 좀비와 흡사하다. 좀비 영화에서 가장 쓸모없는 감정이 좀비로 변한 가족에게 향한 마음이다.

영화 초반에 한 여자아이가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잘 못 샀다며 다시 가는데 거기서 갱단을 만나는데 바로 아이에게 총을 쏴 버린다. 갱단은 좀비처럼 아이고 어른이고 가리지 않고 죽여 버린다. 존 카펜터 감독이 그냥 가감 없이 연출을 해 버렸는데 그래서 갱단의 존재가 더욱 좀비처럼 보였다.

고전 서부극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존 카펜터의 두 번째 작품이다. 갱단들은 대사도 없고 무표정으로 몰려다니며 경찰서에 닫힌 사람들을 죽이려 든다. 경찰서 건물의 모든 전화선을 끊어 놓고, 이사 문제로 전기는 새벽에 끊어지기로 되어 있는 엉망진창인 상황.

자본을 들이지 않고 이토록 기가 막히도록 잘 뽑아낸 연출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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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다. 지독한 공허. 트래비스는 전쟁 참전 후 공허가 몸속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와 허무를 채우고 불면을 쌓아 놓는다. 이 공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고 깊어져 몇 날 며칠을 잠들지 못한다.

영화는 트래비스가 잠을 못 자는 걸 보여주지 않지만 기가 막히게 불면으로 트래비스가 점점 변해가는 걸 보여준다.

트래비스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깊고 큰 공허는 저기 보이는 밤의 쓰레기 인간들도 있을 텐데 왜 나만 이렇게 힘이 들까.

공허는 많은 것들을 불러온다. 용기를 불러오기도 하고, 사랑을 불러오기도 하고, 망상을, 객기를 그리고 광기와 정의를 불러온다.

공허는 외로움을 불러온다. 상실과 결락이 동시에 비가 되어 택시 차창에 부딪힌다. 그럴 때 흐르는 재즈만이 트래비스의 씁쓸한 친구가 되어 준다.

공허가 불러온 사회에 대한 울분은 아이리스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으로 집중된다. 트래비스는 이제 공허가 전해주는 이 광기가 혈관을 타고 도는 게 느껴진다. 아이리스를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가온 베시를 무시하는 트래비스를 보면서 쓸쓸하고 고독한 소외된 자들을 떠올렸다. 76년작이고 트래비스는 영화 속에서 26살이다.

열패와 낙오 그리고 외로움과 세상 그 너머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과, 생각과 현실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트래비스가 이해된다면 내 처지가 트래비스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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