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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는데 오늘 저녁은 아빠 오시면 떡국 끓여 먹자.


어릴 때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 후 집에 오시면 엄마의 떡국 밥상이 가끔 차려졌다. 떡국은 새해에만 먹곤 했는데 이맘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엄마는 떡국을 끓였다. 떡국이라는 게 별거 아니지만 새해에만 먹던 음식이라 평일에 한 번씩 해 먹으면 괜히 설레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우산을 들고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우산을 들고 동생과 아버지를 마중 나가는 시간은 즐거웠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것도 없지만 어린이였던 우리는 즐거웠다.


집을 나서서 공터를 지나 골목을 내려가 도로를 건너 버스정류장까지 가는데 한 20분 정도 걸렸다. 그 시간이, 아버지 마중 나가는 그 길이 우리는 즐거웠다. 엄마는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고 해서, 동생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나는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는 떡국이 먹고 싶다. 뜨거운 떡국을 먹고 속을 데우고 싶다. 얼음이 잔뜩 들어간 아메리카노로 식어버린 속을 따뜻하게 온도를 높이고 싶다.


우리는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이 버스에서 아버지가 내리나 내기를 하며 기다렸다. 부웅 버스가 지나가면서 도로 가의 물이 우리 쪽으로 튈 때에는 꺄악 하며 뒤로 물러나는 것도 즐거웠다. 어린이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늘 오시던 시간에서 늦어지면 동생은 초조해했다. 오빠, 왜 아빠 안 와?라고 하면 저 멀리서 오는 버스를 보며 저 버스다!라고 내가 말했고, 앗! 저 버스다!라고 따라 하던 동생은 여고를 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위해 집을 떠나, 대학교를 서울의 뚝섬 근처로 가면서 집에서는 완전히 떨어졌다. 한 녀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조카를 낳아서 키우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간 집에서 떨어져 살았던 동생이 조카를 낳자마자 고향 집으로 와서 몸을 추슬렀다. 동생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 새로운 생명이 꽤나 신기했던지 조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하고 집에 와서 방문을 열어 보면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는 꼬물이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집에 와서 방문을 열면 비슷한 자세로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집에 와서 방문을 열면 비슷한 자세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폼으로 잠든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을 거의 매일 비슷한 모습이라 사진을 매일 담아서 액자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도 조카를 보고 하늘로 가셨다면 좀 어땠을까.


우리는 우산을 쓰고 한 손에는 아버지의 우산을 들고, 저 버스에서 아버지가 내릴까 고개를 자라처럼 빼서 기다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번에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더 이상 재미가 떨어진 우리는 비가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정류장에는 제과점과 슈퍼, 그리고 레코드 가게가 있어서 사각 스피커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자주 나왔다. 아마 레코드 가게의 주인이 바그너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트리스탄은 적국의 장군이고 이졸데는 적국의 공주였다.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상처를 치료해 주다가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같이 있지 못하고 떠났다가 트리스탄이 먼저 죽고 이졸데가 죽은 자신의 연인 트리스탄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슬픈 이야긴데 바그너가 너무나 장엄하고 웅장한 슬픔으로 표현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가장 잘 표현된 영화가 있다. '멜랑콜리아'가 바로 그 영화다. 우울하다면 이 영화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구가 멸망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의외로 덤덤한 저스틴. 그에 비해 극도의 공포와 긴장으로 몸이 분열될 것만 같은 언니 클레어.

멜랑콜리아의 마지막은 지구가 멸망하면서 끝이 난다. 영화는 저스틴의 우울로 인해 그간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지구의 멸망보다 더 힘들었기에 그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끝난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든다.


그에 비해 언니인 클레어는 유복하게 잘 살고, 자상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일상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갖추어서 생활을 하고 있다. 저스틴과는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며 언제나 착한 언니, 완벽한 언니, 엄마, 아내로서 살아간다.


하지만 멜랑콜리아라는 거대 행성이 지구와의 충돌이 야기되자 두 사람의 심정이 반전된다. 클레어의 심리가 완벽하게 무너지는 시점이 그때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만들어 준 단단한 껍데기가 박살 나게 된다. 그에 비해 저스틴은 멜랑콜리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 우울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삶이 망가져 있던 저스틴은 음식을 먹으며 활동을 하고 숲 속에 발가벗고 누워 비로소 자유를 느끼며 멜랑콜리아, 멸망을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의식을 가진다.


영화는 숨은 장면이 많고 무척이나 철학적이다. 바그너의 음악은 니체를 말하고, 저스틴의 방에 걸린 그림들은 저스틴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저스틴과 클레어 이외에 남편들과 저스틴이 우울에 깊게 빠지게 되는 경유는 모두가 저스틴과 가장 친밀한 것들에서 시작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내부를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도 하지만 나의 내부를 안쪽부터 칼로 베어내기도 한다. 우울이라는 내면은 행성 충돌로 인한 멸망의 외부보다 더 거대한 고통이다. 지구의 멸망으로 인해 나의 깊은 우울 또한 끝이 난다. 이토록 기뻐했던 적이 있었던가.


두 시간이 넘는 동안 바그너가 온 마음을 휘두르고 영상 내내 미술품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 영화 ‘멜랑콜리아’였다.


https://youtu.be/JCUdy1nUqrg


1장이 끝나갈 때 버스가 정차를 하고 아버지가 내렸다. 동생은 아빠 하며 아버지에게 갔고 아버지는 동생을 올려서 안았다. 아버지는 근육도 좋고 한 손으로 동생을 안아 올렸고 동생은 우산을 들었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동생을 아버지가 안고 있는 사진이 많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아버지에게 늘 안겨 있었다.


아빠, 오늘 엄마가 떡국햏따.


아버지에게 안겨 동생이 발음도 잘 안 되는 말을 했다. 오늘 저녁은 떡국이다. 따뜻한 떡국 한 그릇 먹으면 하릴없이 추억 속으로 젖어들 수 있다. 떡국에 계란 지단을 많이 올려 먹는 게 좋아서 엄마는 계란 지단을 많이 만들었다. 떡국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좋았다. 네 식구가 떡국에서 피어나는 연기에 흡착될 것 같았다. 양념간장을 조금 넣어서 휘휘 저어서 먹다 보면 아버지도 허허하며 이야기를 하고, 동생은 하염없이 어린이가 되어 재잘재잘거렸다.



아버지가 생각날 때 보는 웃긴 코믹 싱글벙글 영상 https://youtu.be/kcPVDWAT4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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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소설들은 재미는 있는데 어렵다. 아주 흥미로운데 ‘나’라고 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어서 따라가질 못한다. 사이언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테드 창의 소설은 그야말로 바이블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이 나온 지가 오래전이고 나 역시 오래전에 이 소설을 읽었는데 요즘의 쳇 GPT 같은 인공지능 펫, 디지언트라고 하는 인공지능이 겪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치밀하게 말하고 있다.


정말 테드 창은 소설을 통해 이미 10년, 15년 후의 현실세계를 직시하고 있었다니. 이 소설을 다 읽고 생각나는 것은 인공지능이 섹스와 부모에 관한 것을 받아들이는 관념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만 침팬지에게 뭔가를 느껴 컁컁 해버리는 것이 생각난다.


달리를 쏙 빼닮은 에드리언 브로디가 주연한 영화 ‘스플라이스’에서 실험하는 생명체 끼르르르 끼르르르르 밖에 할 줄 모르는 드렌에게 그만 그것을 느껴서 컁컁 해버리는 것과 흡사할지도 모른다. 나의 변태적 성향인지 그런 부분은 잘 기억하고 있다. 어제일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렇게 오래되고 오래된 영화와 소설 속 그런 장면과 묘사는 기억이 잘 난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옆에서 이 변태야,라고 하더라.


테드 창이 이번 쳇 GPT에 대해서 한 말을 언급하며 대단한 소설가라고 한 박태웅 의장의 말이 생각난다. 박태웅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실 무섭다. 이놈의 인공지능이 도대체 어디까지 사람을 홀릴 것인가에 대해서 너무 세세하게 이야기를 해줘서 듣다가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 들어간다. 박태웅도 브런치를 하고 있는데 들어가서 글을 읽어보면 다행이지만 하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들어가서 보면 미래 영화,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한 표식과 도표 같은 것들이 많아서 사이언스 인들은 좋아할 것 같다. https://brunch.co.kr/@brunchgpjz


그런데 나의 변태적 성향은 이런 것보다(붕가붕가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에는 용암처럼 뜨겁게 해서 식기 전에 먹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뜨거운 음식은 식도에 아주 좋지 않다. 그래서 뜨거운 음식은 식도암을 유발한다고 한다. 식도에 넘기기 전에 입 안에서 이 뜨거운 음식을 머금고 있는데 입천장이 홀라당 까지는 그 따가움을 느끼는 것이 꼭 짜릿하니 나쁘지 않다.


과연 나는 변태일까. 입천장에 까지면 혀로 입천장을 훑을 때 전해오는 약간의 고통이 나쁘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벗겨진 입천장의 피부를 발골하듯 혀로 돌돌 말아서 뱉어냈을 때 많이 까질수록 좋다. 좋다기보다 나쁘지 않다. 까진 입천장에 혀를 갖다 대면 따가운데 따가워서 좋다. 이런 고통을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니까 진짜 살아있다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건 어쩌면 매일 조깅을 하면서 다리에 고통을 주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헬스인들이 무거운 기구를 얼굴이 터져라 들어서 근육에 고통이 와야 아 살맛 나는 군, 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깅을 할 때 늘 비슷한 코스로 늘 비슷한 속도와 비슷한 거리를 비슷한 폼으로 달리지만 중간중간에 무리가 갈 정도로 몸을 푸는 경우가 있고 무리가 갈 정도로 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몸에 고통이 온다. 그게 나쁘지 않다는 거다. 나는 변태일까.


그렇게 뜨거운 음식을 먹고 까진 입천장이 얼마 만에 다 낫는지 보는 것도 묘미라면 묘미다. 예전에는 오전에 까진 입천장이 몇 시간 뒤면 거의 아물었는데 요즘은 하루가 지나야 아문다. 칼에 베이거나 손가락에 피가 나는 경우에도 예전에는 한 나절만에 아물었는데 요즘은 하루가 지나야 한다. 이러다가 이틀사흘나흘 걸리겠지. 그런 지켜보면서 느끼는 결락 같은 것도 삶의 묘미라면 묘미겠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기억나는 대사가 ‘연애는 방구고 결혼은 똥이야, 방구 존나 뀌다가 똥 마려울 때 결혼하는 거야’다. 이 대사 너무 멋진 거 같애. 나는 변태일까.


변태심리를 테스트하는 사이트가 있다. 뭐 그냥 심심풀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재미있는 물음이 많다. 피부 긁어서 부풀어 오른 부분 손톱으로 십자 자국을 내는지, 응가하고 나서 닦은 휴지를 눈으로 확인하는지, 손가락의 손거스러미 미묘하게 튀어나온 그거 확 잡아 뜯는 게 좋은지, 애인의 정수리 냄새, 하수구냄새나 수정액 냄새가 좋은지 물어본다. 아무튼 오케이가 많으면 변태에 가깝다.


예전에 집에 강아지들을 키울 때 씻기기 전에 꼬질꼬질 그 비린내를 흠흠 하며 계속 맡았었는데 나는 어떤 변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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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역시 핑크라고 카세트테이프에 박힌 나사가 아주 멋들어지게 보인다. 꼭 골든라이탄처럼 벌떡 일어나서 변신할 것만 같다. 미니카라면 트랜스포머 정도가 되겠지만 라이터나 카세트 같은 경우는 골든 라이탄에 가깝다. 뭔 소린지 모르겠는 사람은 그냥 패스.


나에게는 오래된 미니카도 있다


이 안에 변신하는 미니카도 한 대 있음


변진섭 앨범 중에 변진섭 2집이 제일 좋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좋은 노래가 없다. 변진섭은 정말 힘 안 들이고 아주 편안하게 고음과 바이브레이션을 낸다. 얼굴의 표정이 그대로, 주욱 이어지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해 목소리가 올라간다.


87년 MBC 신인가요제 1회 출신으로 은상을 타며 가수로 데뷔한 변진섭은 1집의 성공 이후 2집마저 1집처럼 골든디스크 대상을 받으며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황태자의 자리를 지키려는 찰나, 그만 신승훈이 나타나서 그 엄청난 인기를 독차지하는 걸 막는다.


변진섭과 신승훈은 상업적 광고 같은 걸 하지 않으며 노래를 불러서 어쩌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인기가 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티스트는 그냥 가수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요프로그램에 나타나지 않아도 변진섭이 부르는 노래는 늘 1, 2등을 다투었다. 그래서 거만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변진섭 하면 최진실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최진실은 섭섭이 오빠와 결혼할 계획이 있다고 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까웠다. 최진실이 무명이었을 때부터 알고 지내며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 바빠지고 나서는 뭐 그렇게 연락이 뜸해지면서 소원해졌다고 하는데... 변진섭은 최진실의 사망소식을 듣고 빈소에 와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여러 방송 카메라에 찍힌 모습이 생각난다.


요즘 변진섭의 큰아들이 아티스트 스위밍 선수를 하고 있어서 가끔 티브이에 나온다. 큰아들의 얼굴은 변진섭의 얼굴을 떼서 갖다 붙여 놓은 것 같다. 아주 닮았다. 변진섭이 막 그렇게 또 잘생긴 건 아니니까 아빠 얼굴 닮았다고 하면.


큰아들이 아티스트 스위밍 선수를 할 수 있었던 아무래도 변진섭의 아내의 영향이 컸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가 아티스트 스위밍 국가대표였고 또 90년대 중반에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부분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유전자가 큰아들에게 물려 간 것 같다. 유전자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결계 같은 것이 있다.


이 앨범의 ‘숙녀에게’는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2에서 다 같이 부르면서 한 번 더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가 너무 좋은 거 아니니.https://youtu.be/RfxidoaCGH0


변진섭 팬들은 앨범 속 모든 노래들을 몽땅 좋아하겠지만, 아니 꼭 팬이 아니더라도 이 앨범 속의 노래들은 전부 듣게 편안하니 좋다. 아무튼 이 앨범을 통해 노영심도 수면 위로 부상했다.


둘리 남매를 보는 듯한 닮은 두 사람이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며 ‘희망사항’을 부르면서 노영심은 변진섭을 닮은 얼굴로 티브이에서 많이 나왔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옛날 티브이를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보다가 노영심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이영애도 같이 나왔는데 노영심이 이영애에게 언니언니 하는 것이다. 이영애는 아니 왜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저를 언니라고 부르냐니까, 그럼 예쁜데 언니라고 불러야지 흥, 같은 뉘앙스로 똑 쏘면서 말했다. 노영심이 진행을 하는 음악회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노영심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노영심의 음악이 가장 돋보였던 건 개인적으로 드라마 ‘연애시대’의 음악이었다. 만약 연애시대에서 음악이 빠지거나 다른 음악가가 했다면 은호와 동진의 그 이상하고 이상한 연애에 몰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애시대는 너무나 재미있었던 드라마로 나는 그 드라마가 나오기 훨씬 전에 일본판 원작 소설을 읽었다. 거기에 주인공 하루와 신이치로보다 드라마의 동진과 은호가 더 좋았던, 원작을 뛰어넘은 건 아마도 처음이었지 싶다.


그런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연애시대 감독이 한지승 감독으로 노영심 남편이었다. 그리고 노영심이 드라마 음악을 했다. 그런 두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라마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드라마 제작이 열약한 환경인데 이미 시나리오가 7, 80%가 나와 있어서, 쪽대본으로 하루하루 쳐대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재미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노영심 부부도 후에 이혼을 했다. 고로 남녀관계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이 앨범에서 딱 한 곡을 골라라면 ‘이별을 받아드리리’로 하겠다.



https://youtu.be/SZ4CT7-23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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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은 실패하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아서 든든하게 먹곤 했다. 늘 가까이에 있어서 당연한 그런 음식이 미역국이다.


나는 좀 이상하지만 미역국은 아주 뜨겁게 먹거나, 밥을 말아먹을 때에는 국물이 거의 없이 뻑뻑하게 먹거나, 또 식어버린 또는 데우지 않은, 차가운 미역국을 후루룩 먹거나 식은 밥을 말아서 차갑게 먹는 걸 좋아한다. 나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주 뜨거울 때 입천장이 홀라당 다 벗겨질 정도로 미역을 입에 가득 넣고 후후 하며 먹는 맛이 좋다. 뜨거운 미역국을 먹고 나서 입천장에 벗겨지지 않으면 어쩐지 섭섭했다. 밥을 말아먹을 때에는 국물을 조금 남겨두고 밥을 가득 말아서 뻑뻑한 채로 우걱우걱 먹는 게 좋다.


너는 왜 미역국을 그렇게 먹는데?라고 해 봤자 나도 모른다. 그렇게 먹는 게 좋단 말이다.


아무튼 미역국은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은 맛에서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떤 때에 먹어도 좋다는 말이다. 배가 고플 때에도, 머릿속에 라면이 막 생각났어도, 방금 어묵을 먹었어도 미역국이 있으면 먹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미역국을 끓여 먹고서는 미역을 덜 삶았는지 아다리 걸려서 고생고생했다. 토하고 싸고 약 먹고 또 약 먹고. 그렇게 하루이틀 고생을 하다가 제대로 미역국을 끓여서 미역국으로 망친 속 미역국으로 달래줬다. 그렇게 미역국을 먹고 있으니 예전에 미역국은 문학적인 맛이라고 한 것이 생각났다. 그래, 다른 음식들은 대체로 다큐적인데 미역국은 문학적이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24

브런치에서 미역국을 검색해서 죽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미역국도 감치만큼 집집마다 먹는 방법,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보통 미역국이라고 하면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떠올리고 나 역시 소고기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지만 집집마다 다양한 미역국을 끓여 먹고 있었다. 별거 아닌데 대단히 신기했다.


어떤 집은 들깨가 잔뜩 들어간 미역국을, 참치로 만든 미역국도 끓여 먹고, 성게알로 멋들어지게 끓여낸 미역국, 가자미 미역국, 전복 미역국 등 정말 맛나고 사연이 가득한 미역국들이 많았다. 어묵을 넣은 미역국, 새우를 넣은 미역국, 담치를 넣은 미역국 또 양파를 통째로 넣은 미역국도 있었다. 가자미는 가자미가 그대로 들어가는 미역국도 있고 가자미의 살을 다 발라내서 푹 삶아서 미역국을 떠먹으면 고소한 맛이 나는 가자미 미역국도 있었다.


미역국에 담긴 이야길 읽고 있으면 큭큭 거리는 사연도 있고, 오 하는 사연도 있고, 훌쩍하는 사연도 있었다. 미역국에 관한 글들을 보면서 관통하는 단어는 생명, 엄마, 슬픔, 눈물, 생일이었다. 미역국은 생명의 연장선에 놓인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랑이 있었다.


미역국은 생일에 먹는 음식이지만 생일에 미역국은 밥상 위에 놓이지만 정작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서 슬픔의 음식이기도 하다.


어떤 미역국 사연에는 강아지를 낳은 어미 개에게 미역국을 끓여서 먹이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집도 강아지를 여럿, 오래 키워서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 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서 새끼를 낳은 어미에게 고생했다며 먹였다. 나는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소설에 쓰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810

개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이야기를 읽으며 괜스레 움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생일의 대표적인 음식이라 미역국은 자신이 먹고 싶어서 잘 끓여 먹지는 않는다. 미역국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먹이고 싶은, 그래서 미역국을 끓이는 동안 만드는 이의 사랑이 그 안에 담긴다.


기쁘면서 슬픈 노래 조용필의 걷고 싶다 속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국이 미역국이 아닐까 싶다. 뮤직비디오 내용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너무너무 슬프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슬프게 다가올 것 같다. 조한선의 근래의 영화를 봤는데 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연기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미역국은 그렇게 사랑은 두배로, 슬픔은 반으로 나누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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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 녀석이 라딘과 라몽에게 자신의 이야기, 로자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 낼 때 모모 녀석에게 빨려 들어가 버렸다. 습자지에 물이 스며들 듯 그렇게 모모 녀석 감정에 속절없이 빠져 버렸다. 모모 녀석이 집으로 돌아와 똥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로자 아줌마를 안아 줄 때 그 장면이, 그 모습이, 그 풍경이 꿈처럼 피어오르고 모든 세상이 흐려졌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똥오줌을 싸긴 했지만 아줌만 아직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요. 살아 있는 사람들만 똥오줌을 싸잖아요”


세상의 많은 소설 속 미문이 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 또 있을까. 무라카미 류의 ‘69’에서 똥에는 사상이 없다고 했다. 적어도 로자 아줌마가 싼 똥을 모모는 더러워하지 않았다. 생명의 흔적이라 느꼈다. 모모는 그렇게 자연의 냄새에 익숙해져 갔다. 마치 엄마가 아기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소외된 자들이지만 사랑을 알아갔다.


유투는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 유투는 이제 슈퍼스타 그 위에 있는 록스타로 돈으로만 움직이는 밴드가 아니게 되었다. 명분, 명분이 있어야 움직였다. 기근과 전쟁이 있는 곳이면 유투는 그곳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노래의 힘이 총과 칼보다 강하다는 걸 알렸다. 소외된 자들은 그 끝이 한없이 허무하고 결락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 누구도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보노는 노래를 불렀다.


그건 어쩌면 유투가 아일랜드 출신 밴드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일랜드 출신 밴드로는 크렌베리스가 있고 중심에서 노래를 불렀던 돌로레스가 좀비를 부른 이유와 흡사할지도 모른다. 돌로레스는 2018년에 갑작스레 사망 소식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그렇게 세계에서 기근과 전쟁으로 소외된 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유투가 19년에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 유투를 좋아하는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역사적인 날이라고 했다. 유투가 왔어! 한국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유투가 말이야! 하며 좋아했다. 유투를 움직인 건 안타깝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라는 명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벌써 10년 전? 아마도 그만큼 오래전부터 유투를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공연을 하자고 접촉이 있었다.


유투가 올해 새 앨범 Songs of surrender를 발표했다. 40곡이나 곡을 넣었고 기존에 발표된 곡을 다시 어쿠스틱버전으로 리마스터했다. 예전처럼 강력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보노의 보컬에 원숙미, 완숙미, 이런 노련함으로 엣지의 반주에 의해서 40곡이 다시 작업이 되었다.

유투의 노래는 학창 시절에 음악감상실에서 단골 신청 음악이었다. 많이도 들었다. 유튜의 엄청난 노래들이 많은데 왜 그런지 기억에 많이 남는 노래는 뮤비 내내 엣지가 나오는 Numb가 생각난다. 엣지의 얼굴이 나오고 여성들이 엣지의 얼굴을 핥고 훑고, 입던 러닝셔츠를 자르고, 얼굴에 줄을 묶고, 담배연기를 뱉고 하는 멤버들이 나온다. 보노는 이때 너무 잘 생겼다. https://youtu.be/N4jR1RNypG0


보노는 눈에 문제가 있어서 해가 비치는 공연장에서는 항상 색이 진한 안경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모든 노래들이 좋지만 총을 들이밀고 딱 한 곡을 말하라고 하면 ‘원’이다. 이번 새 앨범 속의 ‘원’에서도 역시 보노의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돋보인다. 피아노 연주만으로 원을 부른다. https://youtu.be/b02QSIHuW0Y


유투의 원을 재해석하게 만든 버전은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함께 부른 ‘원’이다. 메리는 그동안 보노가 불렀던 원에 새로운 생명을 입혔다. 메리는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 보노도 질세라 침을 튀겨가며 부른다. 메리는 단 하나의 사랑만이 소외된 자들, 그들이 우리 모두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노래를 부른다. 메리 제이 블라이즈는 그저 인기 많은 여가수가 아닌 것이다. https://youtu.be/ZpDQJnI4OhU


현재 유투는 하나의 현상이다. 유투가 움직이면 빛처럼 굴절된 공기를 만날 수 있고 그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뭔지 알 수 없는 계시 같은 것을 받는 기분도 든다. 이런 기분은 지금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학창 시절에 들었던 그런 기묘한 기분을 가지게 만든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괜찮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다리가 아픈 내 아이가 발을 디디면 어디든 달려갈 거라는 희망 같은 것들. 지금은 희망금지 시대가 되어서 투기나 투자가 아니면 돈을 벌 수 없는 이상한 세상에 와 있어서 유투의 메시지가 담긴 노래들이 세상의 구석진 곳으로 퍼졌으면, 그러면 뷰티풀 데이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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