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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의 소설 여자의 남자를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가. 이토록 처절하고 아름다우면서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나 빠져들게 적다니. 이 소설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그 여파로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다.


주인공 방송국 작가인 강찬우는 이대 불문과를 나온 대통령의 외동딸 김은영을 스키장에서 만나 밤을 불태운다. 그때 김은영은 첫 경험이었다. 이후 김은영은 아버지의 대권 때문에 한강 그룹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하지만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은영은 찬우를 찾아서 위험한 사랑을 하지만 두 사람은 청와대 경호실과 한강 그룹 비서진의 방해가 엄청나다. 김은영으로 김혜수가, 강찬우로 정보석이 열연했다. 대통령, 김은영의 아버지로 신성일이 특별출연했다. 김한길의 소설은 대단했다.


김한길이 최명길과 결혼하기 전에는 이민아의 남편이었다. 이민아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딸이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대드는 그런 스타일의 딸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줄 알았던 딸이 결혼을 한다며 남자를 데리고 왔는데 김한길이었다.


이민아의 아버지는 딸을 말렸다.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이민아는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며 두 사람은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고 했다. 이민아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이어령이었다. 이었다,로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민아는 김한길과 이혼 후 목사가 되었고 2012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령을 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문공부 장관까지 역임한 그였지만 이어령을 제일 잘 표현하는 수식어는 국문학자가 아닌가 싶다. 이어령은 국어를 정말 사랑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아마도) 국어를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서재에는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과 태블릿들이 이어령의 국어에 대한 열정을 충족시켰다.


이어령은 ‘무진기행’의 김승옥을 너무나 좋아했다. 광주 민주화 항쟁 후 김승옥이 절필을 선언했을 때 이어령은 김승옥을 잡아서 호텔에 던져놓고 신문에 연재하는 장편소설을 집필하기를 바랐다. 그때 김승옥이 집필하던 소설이 ‘서울의 달빛’이었다. 그러나 김승옥은 도저히 광주항쟁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었다. 호텔을 도망쳐 나간 뒤로 더 이상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다.


연작으로 이어져야 했던 서울의 달빛은 단편소설로 끝이 나서 ‘서울의 달빛 0장’이 되었다. 김승옥이 무진기행으로 모국어의 폭발을 알렸을 때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들썩들썩 했다. 잘하면 노벨 문학상 작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문학의 지평이 열린다, 굉장했다. 유명한 일화로 소설가 김훈,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 역시 1세대 소설가였는데 꼬꼬마 김훈에게 막걸리를 받아오게 해서 김광주는 후배 문인들과 모여 밤새 술을 마시며 김승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 꼬꼬마 김훈이 문밖에서 들어보니 김광주가 문인들에게 괴물 신인이 탄생했는데 읽어봤냐? 이제 우리는 뭐 먹고 사냐, 우리의 시대는 이제 갔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김승옥은 무진기행이 영화가 된 ‘안개’의 각본도 직접 썼다. 그때 한국 문예영화의 거장 김수용 감독이 옆에 붙어서 제발 각본을 쉽게 써달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 올해 1월에 세상을 떠난 윤정희의 10대 시절을 볼 수 있다. 윤정희는 인숙을 인숙답게 연기를 한다. 무진, 안개를 뜻하는 말로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 같은 것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아직 안개를 이만큼 표현한 한국문학이 없다.


김한길이 또 정치판에 나오니 이 모든 게 주마등처럼 생각이 나네. 김한길도 2017년에 폐암 말기로 지금까지 최명길의 간호를 받으며 건강을 챙기고 있는데, 정치를 멀리하고 소설이나 적었으면 했는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 더불어 딸을 먼저 보내고 내내 마음 한편이 안 좋았던 이어령 학자님 편히 쉬세요.


여자의 남자 https://youtu.be/E7Ga3JKhpSc?si=nc1f7lTXWxKt6V33


안개 https://youtu.be/nfYGPEjQ8-8?si=vMfAEiLU3a9J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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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루키 아저씨가 들려주는 크리스마스 송 한 곡을 선곡했습니다. 찰스 브라운 곡입니다. 노래를 들려준 다음 마지막 하루키 아저씨는 찰스브라운의 이 곡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거 꽤나 좋은 곡이죠? 이건 흑인 소울 싱어 찰스 브라운이 1960년에 녹음한 크리스마스 송입니다. 찰스 브라운은 레이 찰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전설적인 싱어입니다. 찰스 브라운 자신이 작곡하고 노래까지 해서 히트를 친 곡입니다. 이 곡은 이글스와 본 조비도 커버해서 부릅니다. 그다지 일반적으로 잘 듣지 않는 곡인 것 같은데 저는 이 곡을 개인적으로 꽤 좋아합니다. Please Come Home for Christmas,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돌아와’라는 곡입니다.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족끼리 축하하는 축제입니다. 평소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이 오랜만에 모이는 날입니다. 제목에 걸맞게 절절한 분위기가 있지요.]


라고 멘트를 합니다. 제가 알기론 원래 흑인 재즈는 브라스 밴드 형식이었습니다. 악기가 많이 등장해서 풍부한 음향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그러나 전쟁과 흑인 탄압과 노예제도 같은 것들로 흑인 재즈 연주가들이 흩어져 지하로 숨어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피아노, 색소폰, 가수 등 나눠지게 됩니다. 찰스 브라운은 40년대 후반에 베이스의 에디 윌리암스, 기타의 찰스 노리스와 함께 자신의 트리오를 결성해서 공연을 하고 트러블 블루로 빌보드 알엔비 차트에서 무려 15주 동안 1위를 유지합니다.


그 뒤로 60년대, 7, 80년대에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가 1999년 심부전으로 사망하고 잉글우드 공원묘지에 안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루키 아저씨는 좋아하는 재즈 아티스트들도 피츠제럴드처럼 말년의 죽음이 덮치는 그날까지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즐겁게 활동한 예술가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지구에서 가장 찬양받는 헤밍웨이는 자신이 패배했다고 느꼈을 때 총구를 자신의 입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죽음으로 가버린 예술가들보다 말이죠. 아무튼 찰스 브라운의 재즈 곡들도 들어보면 좋죠. 저는 재즈는 잘 모르지만 멍하게 여러 곡들을 듣는 것 같아요.


찰스 브라운의 1991년 콘서트를 보면 노래하는 말년의 그의 모습에서 세상의 여러 일들을 초탈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Charles Brown - PLEASE COME HOME FOR CHRISTMAS https://youtu.be/FWoKgG8u1k0?si=DazncqvXG7MyNr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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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길어지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호하게 된다. 전쟁에는 선과 악도 의미가 점점 빛을 잃어가고 그저 살아남거나 시키는 대로 테러를 하거나 테러를 하는 범인을 잡는 일에 하루, 한 달, 일 년 모든 날들을 보내게 된다.


미드 시리즈 홈랜드를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냉전이 지속되면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인가.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곳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소련의 전쟁도 오래 끌면서 젤린스키는 작년만큼 세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외면받고 있다. 반도에 투척해서 전쟁을 멈추라며 지원받았던 엄청난 양의 무기를 젤린스키가 원하는 곳에 다 써버리고 전쟁이 길어지는 발단이 되면서 작년 초에 젤린스키가 1조에 가까운 돈을 빼돌렸다는 영국 비비씨의 보도가 있었다. 이번에 선거를 다시 해야 하지만 젤린스키는 전쟁 중이라 선거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전쟁은 점점 길어지는데 죽어나고 고통을 받는 건 불쌍한 국민들뿐이다.


전쟁이란 길어지면 이제 어떤 식으로 끝맺음을 해야 하는 건지 결말의 답이 사라져 버린다. 길어지는 과정에서 믿었던 대통령이 이상하게 보이면서 점점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건 그저 전투력이 없는 일반인들뿐이다.


이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만 봐도 그렇다. 2차 대전 후 영국과 미국에 속아서 팔레스타인의 지역이 이스라엘로 넘어가면서 혹독한 탄압을 받아왔다. 참다 참다못한 팔레스타인이 1987년에 인티파타가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량학살을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아이들도 싹 다 죽였다. 잔혹하게 인종 청소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 여론이 생겨났다. 이스라엘은 가자, 서안 지구든 뭐든 다 쓸어버리고 이스라엘 정작촌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과 전기를 이스라엘이 통제를 하고 제대로 된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그런 탄압을 팔레스타인은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서안지구의 온건파, 가자지구의 강경파. 파타와 하마스. 팔레스타인의 지지는 하마스 쪽으로 기울었다. 강경파 쪽으로. 가자지구에 폭격하는 모습을 보며 축하하는 극장도 이스라엘에 있는데, 그 모습을 아이언맨에서 오마주 하기도 했다.


장벽을 세워 24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둬 버렸다. 가혹하게 봉쇄를 하고 인구 탄압을 했다. 만약 이스라엘 군인에게 돌 하나를 던지면 법으로 징역 20년을 살게 된다. 사람을 잡아서 임의 구금을 할 수 있는 시간도 400일로 법으로 정해놨다. 마음대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미성년자도 잡아서 구금했다가 세계에서 들고일어나서 미성년자는 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누가 누구 편을 드는지가 여론을 통해 나오고 있지만,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일반인들뿐이다. 아무 죄도 없는, 그저 하루를 보내고 싶은 그런 일반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를 보면 지금의 전쟁을 하는 국가들의 배경과 그들의 이유 같은 것들이 보인다. 영화 속에서 어째서 테러를 일으키는지, 자살폭탄이라는 것과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디카프리오의 모습에서 현재 전쟁의 실존하는 사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생각과 다르고 사실과도 다른 게 진실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로 아주 잘 만든 영화다. 명배우들의 현실 같은 액션과 연기를 볼 수 있다. 재래시장에서 터지는 폭탄은 실제 같고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는 건 언제나 짜릿하다.


디카프리오가 나온 셔터 아일랜드를 보면 정신이 이상해서 아내와 자신의 아이들을 무참히 죽인다. 정신이 돌아와서 보니 너무나 처참하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에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무의식에서 너무 고통스러운 사실을 기억에서 배제시켜 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형사가 되어 아내를 죽은 범인을 찾아다닌다. 무의식이 방어기제를 펼치는 것이다.


완다비전에서도 완다가 그렇게 완벽한 마을을 만들어 버린 이유도 무의식 속에서 방어기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비전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고 받아들일 수 없어서 완다는 완벽한 가정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 버렸다. 그것이 틀어졌을 때 닥터스트레인지와의 결투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김필영 박사에 의하면 인간은 무의식 세계 속에 수많은 성향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의식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에서 방어기제를 펼친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딸 역시 심리학 박사였는데 프로이튼지, 그의 딸인지 실험을 했다. 돌아가는 나무막대를 한 무리에게는 20달러를 주며 돌리라고 했고, 또 한 무리는 1달러를 주며 돌리라고 했다. 2시간 후에 20달러를 준 사람들에게 어땠었냐고 물어보니 괜히 했다, 재미없었다, 내가 왜 이걸 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반면, 1달러를 준 무리의 사람들은 재미있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같은 반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왜 이런 반응일까. 그건 바로 무의식의 방어기제 때문이다. 1달러를 받고 2시간 동안 나무 막대를 돌린 자신이 너무 한심한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은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괜찮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어. 그러니 형편없는 건 아니야. 같은 반응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실험은 흑백사진 시대 때부터 시도했는데, 어릴 때 놀이기구를 탄 기억이 없는데 어린 시절의 사진을 놀이기구와 합성을 해서 보여주면 자신도 모르게 기억이 심어지게 된다. 놀이기구를 탄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놀이 기구를 탔다고 기억을 만들고, 거기서 이야기까지 생성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후에 이건 합성이라고 해도 아니야,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고 한다.


평소에도 이런 사람을 경험하게 된다. 내 주위에 어르신들 중에 요즘이 원하는 꿈같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어르신 아들이 과학분야 쪽에서 박사 생활을 하는데 요즘 거기가 지원이 줄어들어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르신은 욕을 하면서도 나라는 이전보다 아주 잘 살게 되었다, 좋아졌다고 말한다. 미국은 너무 싫어해서 욕을 엄청하지만 디즈니랜드는 너무 좋아서 돈을 왕창 써버리는 꼴이다.


김필영 박사가 한 말과 유시민 작가의 말이 일맥상통하는데, 현재 지지율이 30%가 넘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지만 2번을 찍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찍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방어기제가 나타난다. 내가 찍은 사람이 그럴 리 없다고 믿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부정의 말을 한다. 지금 나라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일본이나 독도에 관련된 것은 가짜뉴스라고 해버린다. 방어기제가 단단하게 생겨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허트 로커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허트 로커는 전쟁에 중독되어서 전쟁의 현장에 서야만 살아있다고 느끼는 군인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모두가 충격 비슷한 것을 느꼈던 마지막 장면. 영화 두 시간 내내 마치 이라크의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던 허트 로커. 우리가 아침에 참새처럼 들리는 방앗간 같은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듯 이라크의 그곳에서는 폭발물을 제거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분대장으로 제임스가 오는데 긴장과 두려움의 폭탄보다 더 위험한 행동으로 대원들을 미치게 만든다.


사막에서 이라크 병들과 대치 중인 장면은 그야말로 하이퍼리얼이다. 사막에서 내리쬐는 태양열 때문에 입술은 말라가고 눈에서는 물이 흐르고 그러면서 1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이라크 병들에게서 총구를 대고 있어야 한다. 목과 피부는 타들어가고 파리는 얼굴에 날아와 들러붙는다. 아차 하는 순간 데드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기에 이 순간은 정말 군인들의 피를 말린다.


제대를 한 제임스는 부인과의 대화에서도 일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저 군대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우리는 제임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시리얼 앞에서 그 하나를 고르지 못하는 모습에서 명령 없이는 혼자서 시리얼 하나 선택 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전쟁이란, 전쟁중독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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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2005년에 ‘시나가와 원숭이’가 나오고 일인칭 단수에 그 후속 편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이 실렸다. 그동안 시나가와 원숭이도 나이가 들고 살고 있는 곳에서 쫓겨나서 허름한 여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시나가와에서는 대학교수 부부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잘 컸다. 그러면서 인간의 언어도 습득하게 되었지만 그 근처 원숭이들 틈에서 섞이지 못했다. 언어는 이상하고 행동도 원숭이들과 달라서 쫓겨나듯이 나오고 말았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사람의 이름을 훔쳤다. 특히 여자들의. 인간 여자들의 이름을 훔쳤다. 그러지 말아야 하지만 예쁜 여자를 보면 안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시나가와 원숭이는 암컷 원숭이에게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인간 여자에게 성욕을 느끼는 저주 같은 것에 한탄을 한다.


가끔 이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의 엄마나, 누구의 남편, 부장님, 208호 댁 등 이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이름을 훔쳐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고 시나가와 원숭이는 고백을 한다.


이 단편이 책자로 나오기 전 하루키는 뉴요커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2020년 6월 8일에 진행되었다. 요약을 해서 올려봄.


[원숭이가 시나가와 출신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발음할 때 좋은 울림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요컨대 브루클린 원숭이도 꽤나 좋게 들린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일본에서 이 이야기를 청중 앞에서 발표했었는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많이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원숭이는 그대로 원숭이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원숭이는 1편이 나온 후 지금은 늙고 외롭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나가와 원숭이입니다. 인간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고립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을 여러 번 들었기에 원숭이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좋아하는 것으로 집필을 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까요?라고 질문을 했고, 하루키는 – 매주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사랑: 시나가와 원숭이와 함께 저녁시간을? 인 공개 강의가 있다면 꼭 듣고 싶습니다.


원숭이의 이야기가 주제가 없다는 질문에, 제가 쓴 이야기들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제 작품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학생들은 항상 제 작품의 주제를 찾을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지는 않는 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뉴요커에서도 하루키의 인터뷰를 자주 했던 편집자이다. 마지막에 하루키가 한 말은 아무래도 소설은 문제를 제기할 뿐이지 수학처럼 답이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주제가 모호하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의 결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진과 비슷하다. 좋은 바닷가의 풍경을 담은 사진은 모두가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바닷가에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상상력의 시간이 된다. 그래서 감탄보다는 감동이 나올 수 있다. 하루키는 그런 말을 한다고 나는 믿는다.


Bruckner: Symphony No. 7 - Jochum https://youtu.be/BElSWqYvCIo?si=Lrhsb9k8qOHN0a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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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급한 나의 탓도 있지만 주위에 물어봐도 대부분 나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간 끌기 위해 반복된 장면을 너무나 싫어했다. 이 수박 씨발라먹을 것 같은 반복된 장면이 예전에는 세 번이었다. 그때에도 와 씨 너무 많이 반복하는 거 아니야! 젠장! 했는데 언젠가부터 반복된 장면이 여섯 번이나 나오는 것이다. 그 뒤로 예능은 바이바이다. 모든 예능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언젠가부터 보는 스릴러 드라마나 영화가 전부 답답하다. 답답한 전개에 개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갑갑한 캐릭터들이 보는 사람 속 터지게 한다.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갑갑한 경찰 캐릭터들은 답답하고 갑갑하다. 왜 여자 경찰 혼자서 전기충격기 하나 달랑 들고 사이코패스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가는지, 가서는 뭐 이렇다 할 방어나 공격 한 번 못하고 켁 기절해서 잡히기나 하고. 변호사는 왜 갑갑하게 아내를 겁탈하려는 점장의 말에 부들부들 떨기만 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발레리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해보자


발레리나는 정말 요즘 한국에서 나올 수 없는 굉장한 영화다. 아마 이런 엄청난 영화는 앞으로 한국에서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90년대 중경상림이 떠오르는 기기묘묘한 색감과 한국적이지 않은 한국의 공간이 전종서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 거기에 전종서 그 특유의 감정이 빠진 목소리가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카메라는 옥주의 눈동자, 전종서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한다. 카메라는 말한다. 영상을 통해서 이 영화는 말이야 전종서를 위한, 전종서를 위해, 전종서에만 어울리는 영화야.


한국영화에서 가장 미친년을 미친년답게 연기하는 전종서가 이번에 더욱 미쳤지만 이 미침에 전종서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잔뜩 색감과 카메라 움직임과 대사에 욱여넣었다.


김무열이 나오자마자 나불거리기도 전에 이마에 총구멍을 내며 죽이는 장면은 뭐야? 통쾌하잖아? 그리고 곧바로 전종서를 여자 존윅, 베아트릭스 키도, 졸트(포스터는 졸트를 따라한 것 같애) 화 시킨다. 얼굴에 튄 피 역시 마구잡이가 아닌 전종서의 얼굴이 드러나는 피튀김이다.


이 영화가 굉장한 이유는 감독이 여자 친구인 전종서를 위해 선물로 바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라이너의 말처럼 내가 감독인데 일반인들이 여친에게 해 줄 수 없는 기념일 서프라이즈로 너를 위한 영화를 만들게.


그동안 이런 굉장한 영화가 있었나? 생각해 봐도 없다. 여친을 위한 감독의 콘체르토. 헤어지더라도 이 영화의 잔상이 어디든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영화적으로 답답하지 않게, 여배우들 중에 절대 하지 못하는 무자비한 액션이 아름답게 나올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돋보이는 영화, 똘기 있는 연기자와 천재 소리를 듣는 감독 커플이 펼치는 커플 꽁냥꽁냥 피칠갑 영화 발레리나다.


나는 요즘 안철수가 너무 좋다. 안철수 전에는 김행, 김행 님 - ’김‘은 빼고 행님을 너무나 좋아했다. 왜냐하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려가기 때문이다. 전혀 주위를 보지 않는다. 오직 앞만 보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해야 하고자 하는 말만 한다. 이 험한 세상에 살아가는 방법을 안다. 작금의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전혀 마음에 걸리적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다. 그 어려운 걸 글쎄 행님이 하고 있었잖아. 너무 좋아. 근데 끝까지 앞만 보며 달려갈 줄 알았는데 사퇴하겠데. 와 씨, 너무 실망이다. 끝까지 밀고 나가서 장관이 되어야 그 이후의 일들이 흥미롭게 진행될 텐데. 사퇴문에 국민에 대한 이야기는 1도 없고 누군가에게만 미안하다고 하네.


그런데 안철수가 나타났지 모야. 안철수는 정치가가 아닐 때에는 너무나 총명하고 인물도 좋았는데 정치를 하고부터는 바보가 된 것 마냥 헤헤 얼굴이나 인상도 기기괴괴해지면서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 이준석을 걸고넘어지면서 이번 선거 도우미를 그렇게 대대적으로, 어울리지도 않는, 자기도 어색해하며 “지랄하다, 자빠졌다”를 해 놓고선 이준석이가 예언한 표 차이를 자신도 예상했데. 안철수는 착한 바보라서 거짓말을 하면 너무나 티가 난다. 그 정도 표차이가 나는 걸 예상했다면 거기 가서 그렇게 유세를 펼치진 않았겠지.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안철순데 페북에 쓴 글에 맞춤법이 그게 뭐야. 훼손을 회손이라니, 그 짤막한 문장에 이런 오탈자가 도대체 몇 개야. 정말 손가락 잘렸나. 늘 잠잠하다가 뭔가 선거 때만 나타나서 권력에 무릎 꿇고 배신당하고 어딘가 번지수 잘못짚어서 허당질 하고 있는 안철수 보는 재미가 예능프로그램보다 훨씬 재미있잖아. 제발 팽 당하지 말고, 행님처럼 자진해서 뒤로 물러가지 말고 끝까지 버텨서 자주 안철수 당신을 볼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안철수랑 발레리나는 무슨 상관인데?라고 묻는다면 상관은 없다. 꼭 상관이 있어야 하나 싶다. 발레리나라는 제목도 영화 내용과 전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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