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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랑이 위로를 부를 때 그 첫 시작의 인트로 연주가 마음을 건드린다. 기타 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은 건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다. 우리는 흔히 기타에 기대를 하기 때문에 기타 연주가 흐르면 으레 기타의 선율이 하나의 노래가 된다는 것을 그동안 익혀왔다. 하지만 대체로 기타는 노래를 부르는데 옵서버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록 음악에서 우리는 기타 연주에 뼈져 들기도 한다. 그러나 김사랑의 위로 첫 부분의 기타는 흠칫 하기에 충분하다.


김사랑은 어쩌면 이 천재라는 타이틀이 더 날아오를 수 있는 발목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김사랑은 천재라는 수식어 때문인지 대중가수의 길보다는 아티스트의 길을 먼저 걸었다. 자신이 하고 싶고 담고 싶은 음악을 3집까지 작업을 했다. 하지만 '나는 18살이다'의 첫 앨범에 있는 노래들처럼 대중과 평단을 동시에 사로잡는 음악은 아니었다. 실험적인 음악이라는 건 예술가로서는 칭찬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대중의 마음은 움직이게 하기 어렵다.


가수를 30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 음악을, 그러니까 아티스트의 길보다는 대중가요를 먼저 히트를 시킨 다음 서서히 예술가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 싱어송라이터의 바람직한 가수의 길일지도 모른다. 그런 가수를 범대중적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범대중적 아티스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데 대중에 따라오는 것을 말한다. 대중가수는 이 반대로 철자하게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하는 가수다. 아이돌 소속사에 속한 가수들이나 대형 기획사의 가수들을 말한다. 김사랑이 그 당시에 ‘그래 결정했어!’처럼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해서 지금 서태지처럼 되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신승훈도, 김건모도 이승환도 대중가수의 길을 먼저 닦아 놓은 다음 자신의 원하는 음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니체가 말하는 가치 전환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3집의 위로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집의 음악은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여백의 소리가 채워졌다. 2집에 비해 차분하게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2집의 음악이 시끄럽다기보다 실험적인 음악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2집의 '무제'처럼 강렬한 음악이 좋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나에게는 히데의 zirch 앨범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모호하고 강하면서 랩 메틀의 매력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3집의 '히스테리'의 드럼 소리도 개인적으로는 몹시 좋다. 분명한 건 김사랑의 위로는 지금 들어도, 아니 지금 들으면 적잖은 위로가 되는 노래다. 밤꽃 냄새 같은 것이다. 밤꽃 냄새는 기묘하게도 여름이 되면 더 이상 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창인 오뉴월에도 낮에는 밤꽃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밤에만 냄새가 나지만 모든 밤에 다 나지는 않는다. 어쩐지 습기가 많고 공기의 밀도가 높은 밤에 밤꽃 냄새는 그 향이 짙어진다. 김사랑의 위로가 딱 그렇다. 매년 찾아와서 짧은 밤동안 냄새를 풍기듯이 김시랑의 위로는 세상에 나온 뒤로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 듣게 된다. 그리고 끝없이 그 추억의 끝을 잡고 한없이 들어가게 만든다. 떠난 것도 단 한번 남겨진 옛 추억도 너의 마지막 선물이라 날 위로해,라고 노래를 부른다.


https://youtu.be/Jjzu6739OoU <= 클릭


기억해 들뜬 밤을 지새우며

떠난 너와 나의 축제

그 밤 어두운 물결 위를 비추던

불빛만이 내게 남은 마지막 추억

나에게만 멈춰 있던 기억에

더는 보지 못할 니 모습들만

이별을 강요해

떠난 것도 단 한번 남겨진 옛 추억도

너의 마지막 선물이라

날 위로해


아직 난 늘 같은 시간 속에

머문 널 보내지 못해

그 밤 어두운 물결 위를 비추던

불빛만이 내게 남은 마지막 추억

나에게만 멈춰 있던 기억에

더는 보지 못할 니 모습들만

이별을 강요해

떠난 것도 단 한번 남겨진 옛 추억도

너의 마지막 선물이라

날 위로해


이미 널 닮아 버린 나

아직 니가 필요해

이렇게 기도해

너의 마음속엔 없는 바다에

넌 왜 넌 왜

이별을 강요해

떠난 것도 단 한번 남겨진 옛 추억도

너의 마지막 선물이라

날 위로해

너에게 난 편치 못할

병이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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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도 가을의 쓸쓸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꽁치의 맛에서 노년의 쓸쓸함과 남겨진 고독이 짙게 배어있다면 만추에서는 그에 비해 조금은 쓸쓸함이 덜 하다. 그리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꽁치의 맛이 초로에 남겨진 남자의 쓸쓸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만추는 중년에 남겨진 여자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친구의 장례식을 치른 후 중년의 친구들이 친구의 아내인 아키코의 딸, 아야코가 시집갈 나이가 찼다는 걸 알고 혼삿길을 알아본다. 하지만 아야코는 엄마를 홀로 두고는 결혼하는 것이 싫다. 그러는 와중에 친구들 중에 아내가 죽고 홀로인 대학교수 히라야마가 미망인 아키코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내비치면서 엄마와 딸의 혼례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남자들이 일을 벌인다. 남자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아키코의 재혼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에게 꺼내게 되면서 오해가 일어난다.


이 영화 만추에는 남성 중심의 일본 사회의 모습이 다른 오즈의 영화보다 많이 나온다. 정작 아키코에게는 말도 없이 친구들끼리 히라야마를 아키코의 남편감으로 정해 놓고 그 말이 소문처럼 떠돌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딸 아야코는 엄마와 싸움을 하며 갈등을 겪는다. 아야코는 엄마의 재혼 소식을 듣고 왜 말을 하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대들지만 정작 엄마는 전혀 들은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모녀는 그 일로 사이가 불편해진다.


그런데 시원시원한 강물의 흐름 같은 아야코의 친구가 등장해서 아버지들의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또박또박 걸고넘어진다. 왜 당사자에게는 말도 없이 너네들끼리 얼씨구 해서 지금 그 집의 엄마와 딸의 관계도 틀어지고, 라면서 혼구녕을 낸다.


야스지로의 영화 속 여성들을 보면 80년대의 일본의 국민 첫사랑 같은 마츠다 세이코가 떠오른다. 그녀의 외모와 말투, 목소리, 몸짓과 눈빛은 일본이 바라는, 일본의 우월주의가 바라는 여성상이다. 여성은 일본의 왕은 될 수 없으나 왕의 옆에서 늘 보좌하고 지켜주는, 그리고 보호받는 여성상이 일본이 바라는 그런 여성상이다. 그랬는데 마츠다 세이코는 무대 위에서 내려오면 거침없이 연애를 하고, 남성을 바꾸고, 담배를 피우고 섹스를 했다. 게다가 그걸 숨기지도 않았다.


유튜브 지식공장장의 지식공장에도 잘 나와 있지만,

일본 사회는 마츠다 세이코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네가 무대 위에서 하는 행동이나 몸짓 노래는 여성스러운데 실제와 다르지 않느냐.라고 하니, 그때 마츠다 세이코는 자신의 여성성, 그러니까 일본이 바라는 부릿코(내숭을 떠는 여자)는 그저 콘셉트이며 아이돌은 여성스러워야 하니까 무대 위에서 그렇게 하는 것뿐이라고 일본의 미디어에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사생활은 이것과는 별개다고 받아쳤다. 이런 발언을 한 마츠다 세이코는 일본 사회의 여성들에게는 뭔가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마츠다 세이코는 일본이라는 거대한 여성의 틀에 정면으로 대들고 반박하는 멋진 여성이었던 것이다.


근래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의 각키가 주연한 미쿠리는 일류 대학 출신에 석사학위도 있고 일도 잘하지만 회사의 정규직으로 취업이 되지 않는다. 미쿠리는 28살에 고학력이라는 것이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현재의 일본 현실이다.


그런데 야스지로의 영화 속 여성들의 모습은 그때부터 이런 벽에 깨질지라도 덤벼드는 달걀이었다. 그리고 하루키처럼 비록 시스템에 깨지는 달걀일지라도 달걀 편에 서겠다는 예술인들이 나타났다. 그 미미한 출발에 불을 붙인 사람이 위에서 말한 마츠다 세이코 같은 여성들이었다.


그래서 만추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쓸쓸한 가을이지만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다고 하는 오즈 야스지로 식의 결말로 끝이 난다. 아야코는 결혼을 하고 또 엄마 아키코는 딸을 축하하면서 끝이 난다. 늘 그렇듯이 오즈의 영화 속 여성들은 모두가 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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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읽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수집하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하루키는 잡지 브루투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일상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것 같지는 않지만) 생활의 리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잡지는 상, 하로 작년 11월에 출간이 되었다.


나는 이 잡지가 나온 지 한 달 후에 알아 버려서 구입하려고 했지만 절판이라 실패했다. 우리나라 교보문고에서도 이미 10월부터 잡지 ‘브루투스 하루키 특별판’으로 주문 예약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예스 24와 거래를 하고 있던 차라 거기에는 전혀 이런 소식이 없어서 어영부영 지나버린 것이다. 하루키 팬들은 그때 브루투스 상, 하를 구입하여 쾌재를 부르며 신나게 블로그에 올려 소식을 전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는데 그때는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또 괜찮아진 이유가 오늘 자(2022. 4. 26)로 브루투스 사이트에 하루키의 인터뷰와 새로운 소식이 실렸다.


잡지 상, 하로 나뉘어서 인터뷰를 했고 상, 하가 따로 출간되었는데 상 편에는 읽는 것이, 하 편에는 그 외의 것들이 실려있다. 하루키는 상 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51권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번에 나온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처럼 ‘나와 떨어질 수 없는 51권의 책들’ 같은 제목 따위로 또 나오지 않을까?


하루키의 인터뷰를 보면 하루키는 요즘 하는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신간에는 별로 눈이 가지 않고 지난 것, 읽었던 것이나 미스터리 작품을 읽고 있다고 했다. 흥미로운 건 ‘잭 리처’의 팬이라고 한다. 잭 리처는 꽤나 자주 읽는다고 한다. 나 역시 잭 리처의 팬이다. 190의 거구에 굉장한 근육,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는 무뚝뚝한 성격으로 모든 범죄자들의 코를 함몰시키는 그 엄청난 괴력의 존재 잭 리처. 이번에 아마존에서 잭 리처 시즌 1 ‘리처’를 했는데 정말, 너무, 아주, 몹시 재미있었다.


아마존에서 만든 리처가 이렇게나 재미있을 줄이야. 도대체 넷플이고 HBO고 디즈니까지, 아마존도 물론이고 만들어내는 시리즈가 이렇게나 재미있으면 정말 감사합니다. 리처는 잭 리처를 말하며 이미 톰 형님 버전으로 영화로 두 편이나 만들어졌다. 하지만 원작의 팬들은 195센티미터에 11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이 거구의 인간미 터지는 매력적인 리처를 톰 크루저가 한 것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액션이지만 아주 미스터리한 작품이다. 그래서 하루키 역시 좋아하는 것 같다. 보는 내내 아슬아슬 조마조마하면서 리처의 강력한 액션은 속이 시원하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버전 잭 리처가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고, 리처에서의 잭 리처는 인간미가 있다. 냉정하게 보이는 전투 병기이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오홋 하며 재미있다. 그에 비해 톰 크루저 버전의 잭 리처는 그냥 인간병기 그 자체다. 리처 시즌 1은 마치 소설을 보는 것 같다. 대사 하나하나가 놓칠 수 없다. 이 거구의 잭 리처가 컴퓨터처럼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에 접근하는 이야기에 미치게 빠져든다. 앞길을 막는 빌런들은 마블의 퍼니셔처럼 아작을 내 버린다. 그러면서 미궁의 사건으로 조금씩 다가간다. 리처와 러브러브 뿅뿅을 나누는 여자 경찰 로스코의 미국적인 제스처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특유의 미국식 표현, 요컨대 입을 조금 벌리고 미소를 짓는다던가. 리처의 걸음걸이가 아주 디테일하다. 딱 보면 리처의 위압감과 엄청난 근력을 지닌 인간 아닌 인간을 걸음걸이로 표현했다. 이런 건 너무 좋다. 잭 리처의 앨런 리치슨은 잭 블랙의 존잘 버전 같으며,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의 얼굴도 얼핏 보여서 좋다. 이번 리처 시즌 1은 정말 재미있다. 쓸데없이 잭 리처에 대한 TMI.


그리고 하루키는 자신의 책을 구하는 방식이나 번역에 관한 것도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예전처럼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번역을 하지 않고 역시 컴퓨터의 놀라운 힘을 살짝 빌린다고 은근슬쩍 우회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또 코로나 시대에 카뮈의 페스트나 앨런 포의 작품도 계속 읽고 싶다며 포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 딱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어쩐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으면 포의 어셔가의 몰락의 첫 부분의 그 쓸쓸함이 계속 맴돌았다.


다음에 역시 하루키 하면 레코드다. 잡지 하 편의 표지에는 모델로 직접 레코드판을 선택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또 4월 26일 자로 ‘드라이브 마이카’에 대한 기사도 실렸다. 감독인 하마구치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며, 하루키의 소설이 영화가 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잔뜩 있다. 거기에 이창동 감독의 버닝도 실려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고고.


또 마지막으로 하루키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사진을 보면 그간 하루키의 많은 소설 속에 나온 음식들이 실물로 나타난 것 같다. 요컨대 우측 하단의 샌드위치와 샌드위를 쓴 칼은 ‘댄스 댄스 댄스‘에 나온 유키의 엄마인 사진작가 메이의 외팔이 외국인 시인 남자 친구가 떠오른다.


아무튼 하루키의 소식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신난다. 하루키는 그런 신남을 자신의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기묘한 인물인 것 같다. 브루투스 기사는 26일 기사니까 얼른 가서 보도록 하세요.




brutus.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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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다가 한 부부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지요. 부부가 폰을 들여다보며 정답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어요. 우리는 거울을 통해 앞모습은 자주 보지만 자신의 뒷모습은 거의 보지 않잖아요. 그런데 부부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사랑’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오전에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초등학교 1학년 여동생과 3학년 오빠가 등교를 하는데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어요. 장난을 치느라 제대로 걷지도 않고 티격태격하는 거예요. 그런데 손을 놓지 않고 있었어요. 아마 엄마가 오빠에게 동생 손을 꼭 잡고 학교에 가야 한다,라고 한 것 같았어요. 그 뒷모습이 짠 하면서 아름답게 보이더라는 겁니다.


사진가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유진 스미스의 가장 유명한 사진 중에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진이 있어요. 유진 스미스는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했지요. 보도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취재 중에 일본군의 탄환이 머리에 박혀 죽을 뻔하기도 했어요. 그는 완벽한 사진을 출력하기 위해 히스테리가 갈수록 심해집니다. 그럴수록 사진은 엄청난 사실을 말하게 되었어요. 그랬던 그에게 아이들이 둘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손을 잡고 저 빛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셔터를 눌러요.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이 탄생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아름다움이 뭔가 벅찬 희망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이후 이 사진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줬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영화 ‘환상의 빛’에서도 주인공 유미코의 아이들이 동굴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 했어요. 그 장면은 실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돌려서 보게 되었어요.


그 장면은 유미코의 일상을 말하며, 이쿠오의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는 유미코는 알 수 없는 결락을 치유하는 것이 이 보잘것없는 일상이라는 걸, 아이들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피가 낭자했던 이정재와 황정민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도 잘 나와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인데 빛을 아주 잘 다룬 영화였어요. 초반 황정민의 노을이 지는 장면도 너무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지요. 그 장면은 그래픽 없이 노을이 질 때 촬영을 하니 만약 그날 원하는 프레임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다음 날로 넘어가야 하는 장면이에요. 그리고 멋진 장면들이,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장면들이 빛의 아름다움으로 잘 표현이 되었어요.


이 영화에서도 저 빛을 향해, 비록 어둠보다 작은 빛이지만 그곳으로 걸어가는 유민이의 뒷모습을 보며 희망을 품게 되는 거 같아요.


이는 일탈이 줄 수 없는 일상의 편안함과 재미는 없을지라도 그 안에 미미하나마 깔려 있는 사랑을 말하는 거 같아요. 미미하지만 흔들면 위로 떠올라 존재를 알려주는, 그래서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뒷모습을 보면 애틋하며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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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영화 휴일

이만희 감독의 영화로 휴일, 일요일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당시의 내몰리는 청춘들의 보이지 않는 휴일의 끝없는 결락과 우울 그리고 불안을 소설처럼 그리고 있다.

그래서 68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프랑스의 누벨바그 보다 더 모호하고 비극적이며 우울하여 영화는 상영 금지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는 내내 빛을 보지 못하다가 2000년대에 극장에서 상영을 하게 되었다.

서울의 복잡하고 문명의 건물들이 빼곡한 곳에서 돈이 없어 갈곳 없는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모습이 대비됨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거대한 서울의 한복판이지만 어디에도 갈 데가 없다. 그들이 갈 곳이라는 건 남산도서관 뒤의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공원이나 육교 같은 곳뿐이다.

영화는 임신을 한 여주인공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빈털터리 주인공이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리는 내용을 보여준다. 그런 장면들이 화면의 전환, 콘트라스트가 강한 흑백과 신시사이저의 기괴한 배경음악이 주인공이 처한 우울의 극치를 올려준다.

주인공들의 인물보다는 영화음악, 카메라의 클로즈업, 배경이 주는 압박감, 그리고 감정의 절제와 폭발이 주는 생과 사의 경계를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의사는 허욱과 지연에게 수술을 하지 않으면 지연이 위험하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도 성공하지 못하리라 말한다. 지연은 수술을 하고 허욱은 밖을 떠돌며 술을 마시다 아이엘싸롱 바에서 고독한 한 여자를 만난다. 고독은 고독을 알아보고 외로움이 가득한 휴일을 어떻게든 버티려는 두 사람은 새벽까지 술집을 찾아다니며 마시고 또 마시며 취하고 두 사람은 공사장으로 향한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세계가 미래인 허욱. 일요일은 오전에는 빨리 지나갔으면 하지만 밤이 올수록 초조해지는 이상한 날이다, 일요일마다 지연을 만나는 허욱은 일요일이 너무 기다려지지만 일요일이 오는 게 싫다. 빈털터리라 지연을 다방에도 데리고 갈 수 없는 신세다.

공사장에서 바에서 만난 여자와 몸을 섞은 뒤 새벽에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서야 수술대에 오른 지연이 생각이 난다. 갈 데가 있어 갔다가 오겠다고 하고, 여자는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이런 부분은 꼭 홍상수의 영화에서 종종 보는 장면이다). 일요일에 만났기 때문에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여자는 말한다.

허욱이 한달음에 달려 병원으로 지연의 수술 결과를 보러 오지만 결국 눈을 뜨지 못한 지연. 지연은 그렇게 낙태를 하다 비참하게 죽고 만다. 허욱은 휴일이면 지연과의 추억만을 잔뜩 끌어안고 암울하고 또 우울하게 보내게 된다. 영화는 지연과 행복했던 지난날을 보내는 허욱의 추억을 편집하며 보여준다. 추억이 가득한 서울의 이곳저곳을 허욱은 미친 듯이 다닌다. 그리고 전철을 타지만 목적지가 없어진 허욱. 추억 속 지연의 아름다운 미소가 잔뜩 나오며 영화는 끝이 난다.


허욱이 돈을 빌리는 동안 모래바람을 맞으며 허욱만을 기다리는 지연의 모습이 교차 되면서 보여주는데 묘하게 우울하고 아주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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