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악취가 나는 똥을 뿌렸는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깨끗한 채소가 자라는 것일까.


내 친구는 사람을 볼 때 똥이냐 아니냐로 구분했다. 넌 똥이냐?라고 물었을 때, 난 똥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좀 더 알려고 노력을 했다.


똥을 누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똥은 더럽다. 냄새도 더럽다. 떠올리기도 싫고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오려 하지만 똥을 안 쌀 수는 없다. 똥은 더럽지만 본질인 거야.


그 녀석은 독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지. 넌 똥이냐, 난 똥이다. 똥보다 더 나은 놈이냐? 똥보다 못한 놈들이 많지, 그런 놈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 가방을 풀었다가 다시 싸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하지, 누구나 쓰러지지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는 거지, 그래서 난 똥을 좋아하지, 인생은 소중하면서도 위태로운 거지.


그 녀석은 랩인지 노래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녀석은 스티븐 킹의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라는 단편집에 실린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에 나오는 시구를 좋아했다.


타코소스를 싸기 위해 변기에 주저앉다

힘을 주고 또 주노니 폭발할까 걱정일세


앙꼬 똥꼬 꼭꼭 따꼬


똥꾸깐에 주저앉아 배때기에 힘을 주니,

커지느니 불따귀요 나오느니 왕거니라

-스티븐 킹,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중에서


똥이라고 다 같을 수 없다. 죽는 순간 항문이 열려 그곳으로 똥이 나온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똥과 언제든지 쌀 수 있는 똥은 다르다.


흑백의 똥 속에서 진정 아름답게 피어나는 컬러의 청춘의 꽃이여. 똥과 꽃, 흑백과 컬러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세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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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를 3화까지 봤다. 내용이 뭔지 대충 다 알 거라고 생각한다. 60년대 빡친 중국의 한 과학자가 외계 종족에게 문자를 보내서 지구로 오라고 해서 인류멸망에 관한 뭐 그런 내용인 거 같은데.

원작이 중국 에스에프 판타지 소설이라 초반에 그렇게 진행된다. 아직 3화까지만 봤는데 가볍지 않고 잘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좀 지루하다.

물리학이나 나노 같은 것에 접근을 못하니 나 같은 인간은 3화까지는 지루하게 보인다. 영화 초반에 중국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중국 인민 심판으로 학생들에게 개 맞듯이 맞아서 죽는데

시간이 흘러 그 주동했던 여자 학생이 한쪽 팔이 괴사로 인해 잘려서 탄광 같은 곳에 노동을 하러 오는데 그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지내는데 잘 보면 전부 눈썹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항상 그런 점에서 몰입이 깨진다. 어째서 영화 속 환경이 아주 열악하고 노예나 인간 이하의 노동을 하는 곳에서 지내거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과거의 밀림이나 숲, 또는 전쟁터 같은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 역시 전부 눈썹이 21세기의 눈썹이다.

삼체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그런 점을 눈여겨보기 바람. 탄광 같은 곳에서 개고생을 하는데 눈썹 하나는 정리가 기가 막히게 되어 있다. 손톱은 때가 끼고 빠질 것 같은, 고증을 잘 했는데 전부 눈썹 정리는 2024년 3월 23일이야. 21세기다.

에이사 곤잘레스가 나오는데 이 배우가 나오면 늘 아드리아 아르호나와 비교하게 된다. 둘 다 나이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하고 국적도 제3국가이고 무엇보다 얼굴이 너무 비슷해.

소설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영화 보고 소설 읽어도 좋을까.



[다음 날]

이거 뭐 시즌제인가 뷔네. 벌레들은 절대 죽지 않아 하면서 시즌 2를 예고하네. 삼체가 흥미롭기는 하나 나에게는 재미가 없다. 뭔 말들이 이렇게 많이 하는지. 특히 주인공들의 시시콜콜하다면 시시콜콜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대사가 너무 많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데 대사하느라 다음 장면 전환이 이다지도 오래 걸리다니, 참 지루하다. 2100억은 도대체 어딧는데

중간에 나노로 배와 배 안에 사람들이 싹둑싹둑 잘리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장면이나 액션으로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볼거리가 없다. 이 이야기는 오백 프로 소설로 읽어야 그 상상이 곱으로, 배가 되어서 훨씬 재미있으리라 본다.

크리에이터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삼체와 크리에이터를 보면서 알게 된 건 제작진은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크리에이터에서 라디오 헤드의 노래가 그 영화를 관통하는 맹점 같은 것이었다. 삼체에서 카마 폴리스는 음 잘 모르겠다.

삼체를 보면서 이 시리즈와 비슷한 이야긴데 자본은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 정도 든 일본의 영화 ‘오컬트’가 훨씬 재미있다. 오컬트도 외계인, 다중우주, 외계인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그들을 신이라 부른다. 그리고 새 수백 마리(제작비가 많았다면 분명 몇 천 마리 였을 것이다)가 날아온다든가.

오컬트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이런 영화를 뭐라더라 파운드 뭐라던데. 아무튼 구로사와 기요시가 조연으로 나오며 아주 몰입하면서 보게 된다. 삼체는 흥미롭고 잘 만들었으나 지루하여 나는 몰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오컬트’는 그냥 몰입이다. 소자본으로 영화를 잘 만들었다.

삼체를 보면서 든 생각은 예고편이 떠들썩하면 그만큼 큰 재미는 없는 것 같다. 이번 스타워즈에 이정재가 나온다고 떠들썩한데 만달로리안 만 할까? 내 생각에는 반도 못 따라갈 것 같다. 예고편을 보면 빌런 제다이가 안 빌런 제다이들을 찾아다니며 쓸어 버리던데. 이정재는 어린 제다이들을 가르치는 스승 제다이 같은 인물인데 빌런 제다이에게 죽어서 나오는 분량도 시리즈 내내 나오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쇼비즈니스 차원으로 한국에서 영화나 오티티 반응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좋아서 이정재로 한 번 어떻게, 같은 느낌이다. 박서준이나 마동석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쓰임새를 보면 그렇다. 박서준은 그게 뭐냐, 마동석은 또 어떻고. 요즘 할리우드에서 이병헌이 받은 캐럭터 대우만큼 받는 한국 배우는 없는 것 같다. 그저 한 번 출연시켜 일단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같은 분위기 뿜뿜이다.

어떻든 흥미로운 삼체는 나는 별로였고 소설로 읽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예고편에 나오는 곡이 라디오 헤드의 편곡된 음악이다. 이 원곡 음악이 크레이에터에도 나온다. 이 편곡된 곡이 정말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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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전에 다 올렸던 사진들인데 다시 올려 보는 거야. 사진이라는 게 나는 노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사진은 그때 그 시간을 붙잡아두잖아. 현실에서 보는 비현실이 사진이야. 노래도 그래.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 같잖아. 시가 그렇지. 시에 음을 갖다 붙인 게 노래니까.


우리는 뭔가 기대할 존재 같은 게 필요해.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 애인, 의사, 종교인, 정치인. 우리는 늘 기대야 할 어떤 무언가를 찾아서 헤매곤 해. 그러나 대부분 배신을 당하고 말아. 거기에서 오는 배신의 고통은 파괴적이지. 그런데 가장 오랫동안 곁에서 배신하지 않는 게 ‘시’거든. 시는 사실 시인들의 고통으로 써낸 거야.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야. 시는 태어나는 순간, 시를 읽는 사람의 것이 되거든. 그래서 시는 배신하지 않고 나의 고통을 나눠갖기도 해.


이 사진은 나의 영국 친구가 아기를 낳았을 때 [손안에 피어난 작은 꽃]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담아 줬어. 아기의 이름은 찰리 로즈. 찰리 로즈의 엄마가 아주 좋아했지.



사진은 때때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내곤 해. 지구상 대부분의 생물체는 태어나자마자 일어나서 걸어 다녀. 어미가 새끼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해. 그런데 인간만이 태어나도 아무것도 할 줄 몰라. 그저 웅웅 거리기만 할 뿐이지. 그런데 엄마와 아기의 교감 같은 거 말이야. 엄마가 입술을 갖다 대면 뭘 아는지 웃는다고.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사진은 그걸 포착해 내지. 결정적인 순간. 앙리 카르티에 브레숑의 사진 철학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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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름이 모니


봄날에 비가 오는 건, 초봄에 내리는 비는 겨울에 내리는 비보다 잔인한 거 같아. 이른 봄에 쏟아지는 비는 추위를 몰고 오잖아. 까탈스러운 추위 말이야.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다고.


이런 비가 내리는 봄날에 우산 이외에 들어야 하는 짐이 많으면 그건 정말 낭패야. 어딘가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건 너무 귀찮아.


우산 드는 것이 너무 싫어서 우비를 입었던 적이 있었어. 우비는 우산이 필요 없지만 우비를 입고 많이 걸으면 더워서 땀이 빠져나가질 못해서 옷이 축축해지더라고. 우비는 옷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그래. 우비를 입고 다니다가 어딘가 들어갈 때 우비를 입고 벗고 하는 건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의 몇 배는 귀찮은 거 같아. 우비가 우산보다 나으면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이 우비를 우산보다 더 입고 다닐 텐데. 우비는 어린이들이나 입고 다닐 뿐이야.


느닷없는 말이지만 비가 온다고 우산을 들고 감독을 봤던 녀석이 클린스만 아냐. 클린스만 웃는 모습은 너무나 얄미워. 웃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을 수 있을까. 웃는 얼굴이 그렇게도 미워 보일 수 있나. 대단한 사람들은 참 많아.


무라카미 류도 무의식 중에 들리는 웃음소리는 폭력에 가깝다면서 부정적으로 말했지. 아주 듣기 싫은 웃음소리가 있어. 비웃는 소리처럼 들리는 웃음 말이야. 큭큭큭 하면서. 영화 버닝에서 아주 잘 나왔지. 종수가 벤에게 “씨발 나는 해미를 사랑한다구요”라고 애타게 말을 했음에도 벤은 그저 큭큭큭 웃으며 대마를 피우잖아.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 안 그런 척 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멸시당해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그런 웃음이 있어. 벤처럼 그렇게 웃는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 파고 들어오지. 내 얼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기어 들어온다구. 벌레처럼 말이야.


무라카미 류의 소설도 꽤나 읽었어, 교코부터 식스티나인, 단편소설집까지. 코인로커 베이비는 정말 빠져서 읽었었지.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은 너무 재미있는데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을 때 구매했는데 제목과 책표지만 달랐지 이전의 단편집을 그대로 재출간한 것이었어. 이게 한국 출판사의 계략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구입을 한 나의 잘못인지. 설령 나의 잘못이라고 해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이야.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나인’은 영화로도 나왔는데 감독이 이상일이야. 식스티나인 영화 정말 재미있었어. 몇 번이나 봐버렸는지 몰라.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몇 번이나 보게 되는 것 같아. 이상일 감독의 최근 작품도 무척 빠져서 봤어. 거기에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주인공이 나와. 이 사회에 섞여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러나 우리는, 사람은 사랑을 하게 돼. 방식은 다르지만 말이야. 여기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해. 사람들은 일본의 영화, 애니메이션이 죽었다고 하지만 이상일 같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와이 슌지,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감독들이 있어서 쉽게 망하고 그렇지 않을 거야. 아무튼 설레발에 혹 하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봄비가 내리는 날에도 방향제 냄새를 맡았어. 방향제 냄새는 봄을 알리는 향이야.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 목련 꽃에서 나는 향과 비슷하며 다른 계절에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반드시 봄이래야 이런 방향제 냄새가 나거든. 지나치다 방향제 냄새가 나면 그 자리에 서서 흠흠 하며 봄이구나, 잠시 서 있어. 며칠 전에도 그랬는데, 골목의 작은 나무에서 방향제 냄새가 나더라고, 한참을 맡았지. 내일 또 와야지 하며 어제 다시 그 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어제는 나지 않더라고. 분명 방향제 냄새, 봄의 향이 났는데 어제는 그저 풀 냄새, 그냥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지. 마치 나무가 그냥 오브제 같은 거야. 이상하더라고. 이건 무슨 나무일까.


초봄의 차가운 비는 땅에 닿아 시가 되는 것 같아. 시는 온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늘 보던 비에서 시를 느끼지 못해. 시는 가까이 있지만 보이지 않잖아. 어젠가 변상욱 대기자가 그랬지.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가고 공연장을 가고 어딘가를 악착같이 간다고. 그러나 아름다움은 주위에 널려 있대, 아름다움은 찾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고만 한대지. 아름다운 것보다 아름다움을 찾아야겠지. 시는 슬퍼서 몸이 차가워져. 초봄의 비는 슬픔을 안고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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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내는 하루는 라면 같은 것. 라면을 먹다가 질리면 고추장을 넣어서 먹는 정도가 우리가 보내는 하루다. 그런 하루들이 모여들어 한 인간의 역사를 이룬다. 역사라고 해봐야 거창 한 건 1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고추장 넣는 라면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매워 계속 기침이나 나오게 한다. 내가 평화롭게 보내는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치열하고 치밀하다.

우리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 이 영화는 홍상수, 완전 홍상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다. 진짜 자신을 까발리는 이야기.

시인으로 나오는 기주봉이 홍상수의 모습이다. 모든 시선을 시로 보고, 모든 의미를 시에 빗대지만 결국 나이 들어 심장에 문제가 와서 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술과 담배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대 차이가 나는 젊은 사람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답답할 땐 결국 술과 담배에 손을 댄다. 이 영화는 그간의 홍상수 영화에 비해서 대사가 지루하다. 늘 비슷해서 좋았는데 같은 이유로 이번에는 별로다.

홍상수 영화하면 리얼리즘이 좋아서 계속 보게 되는데 이 영화는 리얼하게 와닿지 않는 대사로 느껴진다.

소주와 치킨으로 출발한 하루는 먹다 남은 치킨과 양주로 하루가 채워진다. 어제보다 좀 더 진하고 짙게 물들어가는 우리의 하루. 그러나 한없이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우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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