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축축한 세계에 마동이 들어간 후로 그녀의 빗소리 같은 신음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마동은 숨이 찼다. 그런 마동에 비해 사라 발렌 얀시엔은 고요하고 조용하게 신음을 뱉어낼 뿐이었다. 뱉어낸 신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혼란도 분명히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그녀도 마동을 만나서 낯선 곳에서 교접을 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동을 선택했다. 그 생각이 드니 마동은 안심이 되었다. 또 다른 감정을 느끼면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보송한 이불처럼 그녀의 피부는 부드러웠다. 비에 젖지도 않았고 땀도 흘리지 않았다. 땀에 절어 끈적끈적하고 비에 젖어 축축한 마동의 몸과는 비교가 되었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면도날이 되어 밤공기를 가르고 대기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마동은 그녀를 안고 있는 상태로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는 마동이 전혀 생각지 못한 세계가 있었다. 사람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이토록 신비스러운 일인가 할 정도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 속에는 마동이 알지 못하는 모습이 스며들어 있었다. 몇 십 배 확대되는 마이크로렌즈를 장착한 고화질카메라로 담은 수십만 개 파리 눈알의 아름다운 색채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 속에는 여러 가지 색과 빛의 조합이 보였다. 언뜻 알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스치기도 했다. 마동은 그 얼굴이 잠깐 보인 것에 몸을 떨었다.

 

그녀가 왜 갑자기 떠오른 것일까.

 

동시에 어둠도 보였다. 깊고 단단하고 축축한 어둠이다. 어둠은 한 번 빨려 들어가면 바로 앞의 모습도 보이지 않을 어둠이었다. 어떤 이물질도 가미되어 있지 않는 진정으로 순수한 어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는 희미한 녹색을 지니기도 했다가 옅은 회색의 빛을 발하기도 했고 갈색을 띠기도 했다. 색은 어딘가에 존속된 색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색을 나타내는 것은 하나의 세계였다. 마동은 미스터리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그 속으로, 그 안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몸으로 이동해온 흥분이 나른함으로 옮겨가려 했다. 몸의 질량이 사라져 공중으로 부유하여 둥둥 따라다니다가 바람에 날려 가버릴 것 같았다.

 

현기증이 심하게 났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여러 차례 허공을 갈랐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마동의 몸을 이미 다 적셨다. 머리가 비에 젖어 얼굴에 전부 들러붙어서 볼품없었다. 비는 벤치를 적시고 대나무를 적시고 가로등을 적셨다. 조깅코스의 모든 것을 비는 다 적시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옷과 몸은 전혀 비에 젖지 않았다. 그녀에게 비는 주어진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떠한 과학적 견해와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마동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느꼈다.

 

조깅을 하다가 지금 만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여자와 교접을 한다는 자체가 논리나 명제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축축한 눈 속에 마동은 빠져들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깊이를 알아내려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 깊숙이 점점 들어갔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입을 조금 더 크게 벌리고 마동의 몸을 끌어당겼다. 마동은 몸에 안긴 채 허리를 계속 흔들며 신음소리를 대기에 보냈다. 그녀의 축축한 양손은 마동의 딱딱하게 굳은 몸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마동은 오래된 곳에 묵혀두었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아하아.

 

“사라, 당신은 누구입니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두 손으로 마동의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은 너무나 부드러웠고 두 달된 고양이의 털처럼 보드라웠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다정하지 않았고 타협을 배제한 냉기가 손바닥에 감돌고 있었다.

 

“난 어떤 누구도 아니에요. 동시에 그 누구도 될 수 있어요. 당신일수도 있고 나 일수도 있어요.”

 

섹스를 하면서 달콤한 속삭임을 떠난 대화를 한다는 것이 낯선 곳에서 이른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그 시점에 보이는 세상처럼 무엇인가 명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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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렉트메시지: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다른 의식의 소리가 나에게 온 거야. 사람들 의식의 이명을 뚫고 이질적인 하나의 의식이 나에게 직접 전달되었어. 그 소리는 인간이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어. 물론 우리의 언어로 의식을 나에게 보냈지만, 뭐랄까 깊은 동굴에서 이제 갓 말을 배운 아이가 하는 말처럼 들렸어. 중요한 것은 그 의식이 직접 나에게 다가왔다는 거야. 이질적인 문법으로 또렷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어. 기이한 그 의식은 자신의 의식을 자의로 나에게 전달한 거야 소피.

 

다이렉트메시지: 그렇다는 건, 동양의 멋진 친구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이 되겠어. 변이하는 존재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야 그렇지?

 

다른 시간은 동시에 흐르는데 소피와 마동은 다른 공간에 있었고 두 사람은 비슷한 공감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당일]

“당신은 내일부터 시간의 묘한 뒤틀림 속에서 연속성을 거슬러 오를 수 있어요. 때로는 상대방의 무의식을 엿들을 수 있고요. 타인의 의식 세계에서 들어갈 수도 있어요. 그것이 원래 당신의 모습이에요. 당신은 이제 당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거예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한 여자가 마동에게 안겨서 속삭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무기질의 말처럼 들렸고 육체노동을 많이 한 것처럼 마동은 힘이 들었고 그럴수록 그녀의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사라, 그게 무슨 말이죠?” 마동은 숨을 참아가며 말했다. 하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온몸으로 마동을 안아주고 있을 뿐이다.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의 단어를 일렬로 죽 늘어트려 놓은 다음 하나씩 되짚어 보려고 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말을 제. 대. 로. 풀어서 해석해야 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전해주는 또 다른 세계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녀의 깊은 곳은 수많은 세대를 거쳐 만들어진 단단하고 신비스러운 문명의 템플 같았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일단 그곳에 닿아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닿아보면 된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녀에게서 건너온 흥분이 마동의 몸속에 남아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다하여 지금당장 해석을 해야 할 존재양식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마동에게 안겨서 그의 등을 정갈한 손톱으로 누르면서 알아듣기 힘든 말을 계속 했다.

 

“과거로 가게 돼요.”

 

“이봐요, 사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엉덩이를 마동에게 바짝 밀착시켜 시냅스와 시신경, 세포의 움직임과 유전자 그리고 무의식과 에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마동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마동이 일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말이기는 했지만 시신경과 시냅스 사이에 무의식이 지접하여 변이한다는 말은 생소했다. 무의식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가상공간으로 여기로 있었다. 마동이 해내고 있는, 망가진 꿈의 채취는 무의식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어딘가, 의식 속에 망가진 채로 숨어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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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당신의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너무 궁금해. 마치 영화 속을 걷는 느낌이 들어. 내 삶이 무료하고 허탈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럴까.

 

다이렉트메시지: 소피, 그건 아니야. 누구에게나 삶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건 아마도 우리는 뭐든 한 번 이상 경험을 하는데 딱 한 번 해보는 게 일생이라 그럴 거야. 쳇바퀴처럼 지겹고 아름답지만은 않을 거야. 반복되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들이 모를 뿐이야. 매일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많은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그 단순함이 모여서 결국엔 문명을 만들잖아. 하지만 소피는 반복되는 하루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보여.

 

다이렉트메시지: 오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다이렉트메시지: 그럼 당연하지. 소피.

 

다이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나 지금 너무 감동을 받았어.

 

다이렉트메시지: 삶이란 맛을 모르는 전어회와 같은 거야.

 

화면으로 전어회? 왓?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마동은 웃었다. 전어회에 대해서 마동은 소피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소피는 전어스시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는 듯했다. 샌드위치를 두 입 정도 먹을 시간이 흐르고 다이렉트메시지가 들어왔다. 소피는 자신이 스시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이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정말 고마워. 실은 조금 두려웠어. 지금보다 나이가 들면 이제 이 바닥을 떠나야해. 나이가 들어서 이 바닥을 떠난 선배배우들을 많이 봤어. 그들은 여기를 떠남과 동시에 타인보다 늙음도 두 배가 되어버려. 50살인데 60살처럼 보이고 60살이 되면 80살 노인처럼 변해서 흉측해져. 몇 번의 가슴수술을 받은 여자는 노인이 되면 여자의 가슴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무엇인가가 있어. 남자는 더 이상 만지려고 하지 않지. 몸은 늙고 피부는 쳐지는데 가슴은 봉긋하고 그대로야. 하지만 살갗은 쭈글쭈글하지. 비참한 모습이야. 피부재생능력은 일반인들에 비해서 월등히 떨어져서 다치지 않으려 더 노력을 해야 해.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게 두려웠어. 난 정말 삶에서 패배당하는 게 두려워. 난 이제 가슴수술을 받아야 해. 마냥 좋지만은 않아. 그럼에도 하루를 견뎌내고 살아가려면 해야 한다구. 사람들의 행복은 얼추 비슷하지만 불행은 전부 제각각의 크기이니 나도 가슴 저 밑에서 두려움이 올라오는 거야. 하지만 이젠 괜찮아. 이렇게 동양의 멋진 친구의 파이팅을 들으니 기운이 나는데(웃음). 이건 진심이야.

 

소피는 진심으로 기운을 했다. 휴대전화 바탕화면 안에 올라오는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텍스트지만 소피의 글에서는 힘이 있고 활기차보였다.

 

다이렉트메시지: 그래, 이후의 버라이어티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 난 동양의 멋진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큰 이야기가 아님에도 늘 빠져들었어. 하지만 이번에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이야기군. 빨리 당신과 함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 그렇지만 부탁해. 내 생각은 들여다보지 말아줘.

 

다이렉트메시지: 물론이지.

 

소피가 저쪽에서 웃었다.

 

다이렉트메시지: 나도 빨리 소피를 만나고 싶어.

 

마동은 물을 한잔 마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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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만약 뇌생리학이나 집단무의식에 관한 책을 본다면 집중해서 보도록 해봐. 꽤 흥미로운 내용이 많을 거야. 그리고 동양의 멋진 친구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에 대해서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받아들이기 쉬울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몸살은 좀 어때? 난 오늘 당신의 그 후일담 때문에 궁금해서 아마도 하루가 금방 지나갔는지 몰라.

 

다이렉트메시지: 비슷해. 몸살기운은 밤이 되면 아주 말짱해지지. 거짓말처럼 말이야. 낮 동안 병든 닭 같던 몸도 이상하지만 저녁이 되면 잠도 달아나고 몸이 생생해져. 그러니까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어. 소피는 아침을 먹었어? 난 지금 샌드위치를 만들었어. 먹어가면서 소피와 대화를 할 거야.

 

 

소피는 마동이 만든 샌드위치를 사진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마동은 사진 찍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식당을 가면 음식이 나오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먹은 음식이 이런 것이다, 나는 늘 이런 음식을 먹으며 이만큼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전투적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소피는 샌드위치 사진을 보내보라고 재촉했다. 마동이 어떤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마동은 사진을 찍어서 아무런 보정작업 없이 화면을 통해 소피에게 보여주었다. 샌드위치는 그다지 대단하다 할 만큼 맛있게 만들지는 않았다. 호밀식빵을 잘 데워서 그 사이에 토마토를 굵게 썰어 넣고 브리치즈를 넣고 아루굴라를 사이에 끼워 넣은 것이 고작이다. 소피는 아주 맛있게 보이며 신선하다고 했다.

 

정말 맛있게 보이는 것일까.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다이렉트메시지: 소피는 지금 이 시간에 바쁜 거 아닌가?

 

다이렉트메시지: 응, 맞아 동양의 멋진 친구. 오늘은 오후에 회사 스튜디오에서 파트너와 섹스신 촬영이 있어.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해. 스토리형식의 촬영이라 시나리오가 있어. 대사 같은 것을 숙지해야하는데 파트너역시 이 바닥에선 아주 거친 사람이라서 약간 걱정이 된다구. 영화는 아니고 웹사이트 업로드용이야.

 

당찬 그녀도 걱정하는 말을 마동에게 보냈다. 페니스가 말 같이 거친 남자와 섹스 신을 촬영하는 소피의 모습을 떠올렸다가 이내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소피는 자신과 타협점을 찾으며 지금까지 잘 해왔다. 마동은 자신이 소피를 걱정한다고 해서 소피를 도와줄 요량으로 웹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지는 않았다. 소피도 마동에게 회원가입을 권유한 것이 없다. 어떤 방식이든 소피는 자신과의 싸움을 매일 치열하게 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이 마동의 눈에 또렷하게 보였다. 이 세상 어느 부모도 자신의 딸이 포르노배우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 수많은 성인 영화배우가 활동을 하고 있고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루하루 치러내고 있다. 사람들은 겉으로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만 숨어서는 그들의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눈요기를 즐긴다. 마동은 어쩌다가 소피라는 여자를 알게 되어서 트워터에서나마 이야기를 하며 친숙하게 지내고 있지만 그녀의 삶에 대해서 간섭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마동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루굴라의 쌉사름한 맛을 마동은 좋아했다. 하지만 샌드위치는 마동의 입안에 그렇게 오래 머물러있지 못했다. 바로 쓰레기통에 뱉어냈다.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아루굴라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은 서글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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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이 모르는, 아니 마동이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속 어느 누군가의 그리움.

 

장군이의 눈을 통해서 교차하는 자신의 그리움을 마동은 투영하려 했다. 대학교시절에 동거했던 연상의 그녀를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 속에 연정을 가득 담고 있는 그리움은 없었다.

 

그녀는 피아노를 계속 하고 있는 걸까.

 

야트막하고 얇디얇은 마동의 메마른 그리움은 저 밑, 마음의 구석 어딘가에 눌러 붙어 있다가 장군이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순간 순식간에 밑바닥에서 떨어져 가슴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마동은 그 감정이 어떤 것에서 올라오는 감정인지 알 수는 없었다. 마음속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작은 마음, 그 마음이 궁금했다. 작은 마음은 필시 그리움이었다. 마동은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왼쪽가슴에 올렸다. 피가 혈관을 타고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낮 동안 메스꺼움이 심했지만 모든 것이 한 번에 뚫리는 기분이었다.

 

왜 그럴까. 어째서 피가 솟구친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저 그레이트데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마동은 장군이의 눈을 보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등대로 올랐다. 어제보다 더 빠르고 더 힘 있게 달렸다. 어딘가에 숨어서 길고양이들만 마동이 빠르게 달리는 것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여름밤의 후텁지근한 바람을 가르며 마동은 등대를 지나 항구 쪽으로 달렸다.

 

 

다이렉트메시지: 소피, 어제 하루는 잘 견뎌 낸 거야?

 

다이렉트메시지: 그래, 동양의 멋진 친구. 어제 하루를 나름대로 견뎠어. 여긴 아직 엄청나게 퍼부은 비 때문에 사후처리로 난리도 아니라구.

 

다이렉트메시지: 어제도 제대로 이을 하지 못한 거야?

 

다이렉트메시지: 예스. 아침에는 여기근처 공원에 조깅을 하러 다니지만 요 며칠 동안 어림도 없다구. 공원은 마치 쥬만지에서 동물들이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엄청난 모양새를 하고 있어. 보는 순간 오 마이 갓.

 

시계를 보니 여긴 밤 열한시쯤이었다. 소피는 아침 열 시에 놓여 있을 것이다. 천재지변이라는 것은 시간을 따지지 않고 장소도 묻지 않는다. 대도시를 기형적으로 변모시키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이렉트메시지: 세계에서 제일 큰 컴퓨터 같은 도시라지만 하늘에서 무참히 내린 비 때문에 몇 날 며칠을 이곳은 고생이야.

 

다이렉트메시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잘해놓고 그것에만 신경을 쓰는 건 어디를 가나 비슷한 모양이야. 사람들은 세상을 오직 사물로 보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어.

 

다이렉트메시지: 맞아 동양의 멋진 친구. 세상을 마음으로 보는 가치관이 필요한데 말이야.

 

 

소피의 말은 언제나 옳다. 편견이란 무섭다. 마동은 소피가 어덜트배우라는 수식어 때문에 생각마저 자신과 옳지 않게 다르다는 편견이 처음에 있었다. 소피와 대화를 하면 마동은 조금씩 작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피의 의식은 은하계처럼 거대하고 넓었다. 소피는 마동에게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마동은 조깅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샤워 후 샌드위치를 만들어 책을 보고 있다고 했다. 소피는 무슨 책이냐고 물어왔고 마동은 며칠 전부터 보고 있는 프로이드 뇌 생리학에 관한 서적이라고 했다. 소피는 오우,라고 했고 마동은 저스트 키딩이라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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