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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열 번 정도 그와 그녀는 만남을 가졌다. 늘 같은 카페에서 만났고, 굴 요리 집에서 밥을 먹고 말없이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시간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슬픔이 더 차오른다는 것을.

 

서서히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만나는 터울이 좁아질수록, 만나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는 그녀가 그 슬픔을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녀는 자신 밖으로 던져내지 못한 슬픔을 잔뜩 지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의 감당해내지 못하는 슬픔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그는 기이했다.

 

그 슬픔이라는 것이 그녀의 눈으로 코로 귓구멍으로 마구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홍수에 터져버린 둑처럼 그 슬픔은 정말이지 멈출 수 없게 흘러나왔다. 그는 그녀의 슬픔을 멈추게 해야겠다고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을 먹었지만 막지 못한 죄책감을 지금 가위를 손에 들고 통감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녀가 잔뜩 지니고 있는 슬픔이 안개처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만나고 몇 개월 만에 그녀의 몸 모든 구멍은 기능을 상실하고 슬픔을 마구 쏟아냈다.

 

그 역시 그녀의 흐르는 슬픔을 볼 때마다 주저앉아서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벽으로 자신의 몸을 에둘러 놓고 벽이 그 기능을 확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그동안 잘도 지내왔다. 그 벽도 권태와 굴레 속에 살고 있는 타인의 질타 어린 시선 속에서 허물어져 갔다는 것을,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가위는 그녀에게 있어서 해방구이자 카타스트로프였음을 말이다. 어나힐레이션의 도구였다.

 

그는 가위를 손에 들고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니 망각했던 시간들이 사금을 걷히고 서서히 돌아왔다. 이제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가서 침울하고 고요한 면모를 지니고 가위를 사용해야 한다.

진실의 가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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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석 달 전 그 일을 계기로 그녀는 그와 만나게 되었다. 경찰서에 조서를 받는 것부터 뒤 일처리까지 그가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는 과일을 차에 싣고 다니며 지정된 곳을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며 팔았다.

 

가끔씩 그녀를 보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말이 없다는 것이다.

 

들리지 않아서 말을 못 하는 이와 날 때부터 어눌하게 말을 하는 이는 서로 마주 보며 앉아서 커피 잔을 움켜쥐었다가 커피를 마셨다.

 

그의 머릿속 생각을 조금만 길게 구어체로 풀어내면 모든 것은 어눌하게 튀어나와 버렸다.

“저도 벽은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가위는 잘 알지 못해요”라도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고개를 조금 숙였다.

 

“조금 더 집 밖으로 나오는 건 어떨까요? 그러니까....” 남자가 어눌하게 말했다.

“저 이제 더 그럴 수 없을 거 같아요.” 여자가 억양 없이 대답했다.

“그렇군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도 그녀를 따라서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겨울의 모습이 펼쳐진 카페의 밖은 휑한 모습이었다. 가끔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 버린 듯 보였다.

 

“저기 바람이 은행나무의 잎을 흔들고 있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카페 밖의 풍경 속에는 바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복감에 허기가 밀려와요.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요”라고 그녀가 말을 했고, 그는 알았다며 일어났다.

 

“오늘 아침에도 먹지 못해서 몸에 힘이 없어요. 좀 잡아 주세요”라는 그녀의 말에 그는 망설였지만 이내 그녀의 옆으로 가서 팔짱을 끼었다. 그녀의 굽은 팔은 그의 팔을 감쌌다.

그들은 가까운 굴 요리 집으로 들어가서 굴 소스가 발린 스파게티를 막고, 굴국을 먹고, 굴튀김을 먹었다. 그는 그녀에게 술을 권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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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눈으로 보이는 사물의 움직임과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일체화되지 않는다는 건 미묘한 사고의 혼란을 초래한다. 귀를 통해서 인간사의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을 때, 이명조차 들리지 않을 때 그녀는 한동안 서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20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금 걷다가 멈추어서 전봇대나 벽에 기대어 서서 한동안 서 있어야 했다.

 

눈으로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이 손으로 뻗으면 저만치 달아날 것만 같았다. 타인의 시선은 그녀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타인들은 자신보다 늦게 걸어가는 사람에게마저 질타의 시산을 보냈다.

 

그녀는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여름이 끝나가는 계절은 아름답다. 햇살은 따뜻했고 손지갑을 꼭 쥐고 굽어진 팔을 몸에 밀착하여 조심조심 걸어가면 되었다.

 

건강함이 흘러넘치고 사람들은 가을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며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었다.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았다. 이어폰에서 음악 따위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강아지는 코를 땅에 대고 킁킁거리며 요리조리 다니다가 뒷다리를 들어서 방뇨를 했도 곧이어 묽은 배설을 했다. 어디선가 주인이 뛰어와서 휴지로 배설물을 닦다가 강아지에게 뭐라 뭐라 했다.

 

그녀는 이런 광경을 보면서 이명을 참아가며 천천히 걸었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 앞에서 그녀가 건널목을 건너려고 한 발을 내디뎠고. 우회전을 하는 차량이 경적을 심하게 울리며 핸들을 꺾고 있었다.

 

그녀는 이명밖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경적소리는 그녀의 달팽이관에 와서 닿지 않았다. 인간의 시야각이 180도라 그 시야각에서 벗어난 차량은 그녀에게 보이지 않았다. 차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녀는 살짝 부딪혔지만 건널목에 꼬꾸라졌다.

 

검은 세단에서 몸에 금을 두른 사내가 내려서 경적소리를 듣지 못했냐며 큰소리로 그녀를 몰아세웠다. 건널목을 건네는데 왜 음악을 크게 듣고 있느냐며 남자는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남자의 입모양을 보니 욕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레 불어닥친 상황을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다. 넘어진 건널목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남자는 아주 천천히 와서 살짝 부딪혔는데 왜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냐며 더욱 거세게 그녀를 닦달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남자는 성난 들개 같았고 그녀의 귀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눈물이 건널목의 노란 부분에 떨어졌다. 눈물을 흘리자 남자는 더욱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달려들 때, 그가 나타나서 그 남자의 얼굴을 때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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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세 손등은 한줄기 피로 번졌고 고통이 밀려왔다. 그녀는 자신의 비명을 듣고 싶었다. 고통에 의해 내뱉는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알고 싶었다.

어떤 소리일까.

어떤 이명으로 다가올까.

소통에 대한 그녀의 지향성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신경 쓰지 마, 우리들은 우리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요.”

그녀는 석 달 전에 여름이 끝나가는 어느 날, 가윗날을 갈아주는 것에 맡겨놓은 가위를 찾으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미약하게 들리던 소리가 하나의 윙윙거리는 덩어리의 형태를 띠고 이명으로 치달았다. 그녀에게 외출은 사자 무리가 있는 정글에 뛰어든 톰슨가젤 같은 것이다. 죽자 사자 도망을 가면 살 수는 있지만 언제든지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그녀는 무엇이든지 네트로 주문을 하고 해결했다. 그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은 인터넷을 통해서 판매가 이루어졌다. 그녀의 작품은 인터넷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녀의 작품을 칭찬하고 찾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공예 학원이라든가 공예작가들의 오더를 받아서 가위질을 하여 납품을 했다.

 

그때마다 의뢰인이 그녀의 집으로 와서 물품을 들고 갔다. 그녀는 외출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외출을 하는 경우는 가위의 날을 갈 때와 갈아놓은 가위를 가지러 갈 때뿐이다.

 

가위는 뭐랄까.

아주 기이한 물품이라 새것보다는 오랫동안 써 오던 가위가 질적으로 흡족함을 보여주었다. 가위의 날을 갈아주는 곳은 대부분 사라지고 남아있는 몇 군데밖에 없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곳은 없었다. 딱 한 군데가 있었지만 거리가 애매하여 걸어가야만 했다.

 

그녀는 그 수고스러움을 감내하면서도 그곳에서 가위를 맡기고 다음날에 찾으러 가곤 했다. 버스를 탈 필요는 없다. 버스가 정차하지 않은 곳이며 마을버스를 타면 더 돌아가야 하는데 귀가 들리지 않는 그녀로서는 걷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녀의 보폭으로 걸어서 20분 정도만 가면 되는 곳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걸어가는 20분은 200분보다 길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움직이고 과일을 팔고 청소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벌레를 죽이고, 은행을 들락거렸지만 그녀의 귀에는 그 모든 소리가 하나의 이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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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래전 언제인가부터 그녀의 청각은 조금씩 배추벌레에게 잎이 먹히듯이 소멸되어갔다. 청각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 연관성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오른팔은 거짓말처럼 굽어져 펴지지 않았다. 작고 조그마했던 어린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해야만 했다.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매몰차게 대했다.

 

그녀는 슬픔을 고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이겨냈다. 벽을 하나씩 쌓아올렸고 뒤에서의 수군거림과 간섭은 귀로 들리지 않는 대신 몸으로 타고 들었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돌파구는 고독을 같이 지낼 수 있는 가위였다. 가위를 들고 종이를 오리고, 천 조각을 오리고 이어붙이고 무늬를 만들고 형태를 만들어가며 그녀는 칼날 같은 시간을 견뎌 왔다.

 

시간 속에서 묵묵히 가위질을 하며 시간을 견뎌왔다. 가위는 그녀에게 또 하나의 생명이자 절정이었다. 손으로 가위를 쥐었을 때 비로소 그녀는 생명수가 몸 안을 휘휘 돌아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가위는 손잡이와 자르는 부위가 붙어있는 세라믹 재질의 일체형이었다. 겨울에 차가운 가위를 움켜쥐었을 때 전해지는 서늘한 기운은 그녀를 깨워주었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가위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막이자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가위는 자애와 믿음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가학과 자해도 지니고 있었다.

 

굽어있는 오른팔로 가위를 들고 오랜 시간 동안 가위질을 했다. 팔이 불편해서 처음에 가위질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겨울의 가위질은 조금만 손에서 멀어지면 가위는 금세 서늘하고 차갑게 변해있었다. 도화지를 오리고, 색동이를 오려서 붙였다. 그리고 좀 더 두꺼운 마분지를 오린다.

 

양면성의 시간이 흘러갈수록 가위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종이를 마음껏 오려주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의 무릎에 햇살이 내려와서 가위를 비추고 있으면 그녀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가 청각의 기능이 완전하게 잃어버리기 전에 미약하게 들리지만 사라 맥라클락의 엔젤을 언제나 들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또 다른 공명과의 싸움이다. 고요한 그녀의 마음에 이명이 일 때면 그녀의 마음이 부서졌다.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를 그녀는 들리지 않는 귀로 똑똑히 들었다. 가위를 뺨에 대어 보았다. 차디찬 그 기운이 뺨을 통해서 핏빛 가득한 혈관에 전해져 왔다.

 

가위는 새 탈의 날처럼 날카롭게 아주 잘 갈려져 있었다. 날카롭게, 아주 날카롭게. 차디차게 날카로웠다. 청각이 거의 소멸될 때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옆에 가위만 있어주면 돼. 다 내려놓고 나니 감금에서 더 이상 소통할 필요가 없어졌다. 고통은 순간으로 끝이 날것이다. 가위를 들고 가위의 날을 세워 손등을 잘라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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