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이 확 따뜻해졌다. 좀 덥다는 말이 어울리는 날이다. 오전 10시의 햇볕은 뜨거웠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뜨거움을 더 했다. 평일의 오전 10시에도 사람들은 강변을 거닐고 조깅을 하고 운동을 했다. 바람은 없고 아파트 단지 내 나무에서는 참새 소리가 들렸고 노인정에서 보살피는 길고양이 순이는 그늘에 늘어져 있었다. 평온한 날이다.


인간의 모든 관념이 수치로 확립되어서 숫자로 표기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희망이나 기쁨, 불안이나 공포는 수치 그 너머에 있다. 직관적으로 통계된 표기보다 더 수치가 크거나 축소된다. 전날까지 선거 때문에 복잡하고 시끄럽고 서로가 서로에게 비방과 공격을 하던 때를 벗어나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하니 불안하기까지 하다.

오늘은 출근하는데 늘 다니는 도로가 막혔다. 이러면 십중팔구는 사고 때문이다. 천천히 가면서 보니 사고가 나서 자동차의 앞부분이 완전히 짓이겨져서 수습 중이었다. 사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구급차가 와서 실어 갔는 모양이다.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저렇게 큰 교통사고를 당했을까. 요즘은 크게 다치면 큰일이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을 수 있다. 의료대란 때문이다. 평온한 이면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닌가 싶다.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듣고 있으면 한창 들었던 그때로 나를 확 데리고 간다. 라디오헤드와 함께 가장 기시감을 깊게 가지게 만든다. 봄이라는 계절도 다른 계절에 비해 기시감 백배다. 봄이 떨어져 흩날릴 때가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죽음의 계절인 봄에 핑크 플로이드를 듣고 있으면 몸이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몸이 조금씩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기분이다.

음악은 정말 그 시간을 옮겨다 준다. 마치 사진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든다. 사진도 음악처럼 그 시간을 붙잡아 둔다. 조급함이 들 때에는 기시감을 잔뜩 느낄 수 있는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듣는다. 가만히 멍하게 듣고 있으면 바보 같아지지만 바보 같아져서 좋다. 세상에는 바보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별로인 게 아닐까. 봄에 수영장에 들어와 있는 물처럼 느껴지는 무력감과 불안은 벚꽃의 만개와 동시에 떨어지는 봄처럼 흩어졌으면 좋겠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심장과 비슷하다. 태어나면서 한 번 뛰기 시작하는 심장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뛰는 것처럼 말이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것들이 천천히 변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완전히 변해있다. 시간은 그렇게 서서히 간섭을 하여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형태가 있건 없건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만다. 천천히 조금씩 확고한 변화를 준다.


추위가 물러갈 때도 조금씩 천천히 물러간다. 추위라는 건 한 번에 확 물러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뜸을 들여가며 물러간다. 아직 발밑에는 작은 스팀을 켜 놓고 있을 정도로 추위가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추위라는 건 성가시다. 이제 두꺼운 옷은 입을 수 없다. 그 틈을 파고들어 피부에 닿아 신경 쓰게 만든다. 밖으로 나가 5분만 걸어 다니면 후끈할 정도로 체온은 이미 추위를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해가 들지 않는 곳에 가만히 있으면 머물렀던 추위가 다시 몸에 달라붙어 질척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보면 완벽하게 추위는 물러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가 천천히 변한다. 마을도 천천히 모습이 변한다. 오래된 마을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철거가 되고 평지가 되고 새롭게 건물이 들어서는 것 역시 천천히 이뤄진다. 세상은 급변하는 거 같은데 대체로 변화는 천천히 이뤄진다. 지구도 아주 천천히, 몹시 천천히 오염이 되어 간다.

여기도 곧 천천히 변하겠지


그 감지를 인간의 리듬으로는 알 수가 없다. 인간의 변화 역시 천천히 이뤄진다. 천천히 변하지만 확실하게 변한다. 절대적이다. 이 세상에 절대라는 건 아주 소수에 적용되지만 인간의 확실한 변화는 그 소수에 해당된다. 인간이 변하는 건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인간은 분명하게 변해있다. 인간의 변화는 노화에 기인한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간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한 20년 후에 만나면 그 사람은 분명 변해있다. 어떻게든 변하는 게 인간이다.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면 하루하루는 평온하겠지.

어제는 조깅을 하고 오는데 저 먼 밤하늘에 눈썹달 떴다. 고즈넉하고 적막하고 적요하고. 그래서 몹시 평온한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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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사람이 이상해지니까 될 수 있는 한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해. 그래서 최대한 봄을 덜 느껴야 한다고. 봄을 마구마구 느끼게 되면 자꾸만 알 수 없는 구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구멍 하니까 영화 [존 앤드 더 홀]이 생각나네, 좀 남 다른? 아들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를 음식에 수면제를 타서 잠들어서 깨지 못하는 틈을 타서 집 근처 산에 있는 벙커에 넣어두고 지켜보는 이야기 말이야. 얼핏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영화였지. 감독은 파스쿠아 시스토라는 감독인데 요르고스의 분위기를 약간 맛본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정말 흥미롭게 봤거든. 기생수는 흥미 없게 보고 이런 기묘한 이야기는 또 흥미 있게 봤네. 이 영화에 배우들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주로 한 가족이 전부인데 유명한 배우들이 나와. 아빠로는 너무 재미있게 전 시리즈를 봤던 덱스터의 마이클 C 홀, 엄마 역의 제니퍼 엘은 여러 영화에 나왔지만 하정우가 나왔던 우리나라 영화 더 벙커(여기도 벙커네)에 나왔고, 누나로 나오는 배우는 아주 유명한 타이사 파미가야. 타이사 파미가는 사실 언니가 더 유명하지 베라 파미가로 베라 파미가는 역시 하정우와 꽁냥꽁냥 하는 영화 [두 번째 사랑]에도 나왔지. 그때의 베라 파미가의 미모는 하늘을 뚫고 나갈 것 같았어.


베라 파미가 하면 여러 수많은 히트 친 영화에 나왔지만 역시 총괄 제작자이자 주인공으로 나왔던 [베이츠 모텔] 시리즈가 최고였다. 노먼 베이츠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의 주인공 이름이며 거기에 나온 모텔의 또 다른 이야긴데 싸이코의 장면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많았지. 시리즈 전체가 이토록 재미있을 줄은 몰랐어.


[존 앤드 더 홀]에서 존은 좀 남달라. 질문이 아주 많은데 연결되는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 마구잡이로 질문을 하는 이상한 아이지. 벙커 속에서 깨어난 가족이 벙커 위에서 쳐다보는 존에게 꺼내 달라고 하지만 그저 무표정으로 계속 보기만 하는 존. 그리고 먹을 걸 던져줘. 그때 가족은 아들이 자신들을 벙커에 집어넣었다는 걸 알아. 그러면서 존은 혼자 집에서 자유롭게 지내. 엄마가 없다고, 아빠가 없다고 전혀 슬퍼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아. 하루에 한 번 정도 먹을 걸 던져주던 존이 가족에게 먹을 걸 던져주는 걸 잊어버리게 돼. 그러면 가족은 이틀이고 그냥 굶는 거야. 존은 왜 그러는 것일까. 아주 위태롭고 엉망처럼 보이지만 느긋하고 아무렇지 않은 존. 존은 엄마아빠를 찾아오는 엄마친구에게도 기괴한 질문을 해.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는데 아주 흥미로워. 도대체 13살짜리 소년이 마음을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뭐든지는 테러블 쪽으로 말이야. 아이가 무서워지면 정말 무서운 거 같아.


아무튼 봄날에 봄냄새를 맡으면 그런 이상한 구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상한 구멍으로 말이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토끼가 들어가는 그런 구멍이 아니야. 아주 호러블 하고 이상한 구멍이지. 봄날에 밖에 나가기만 하면 그런 기분에 휩싸이는 풍경에 들어갔거든. 그나마 다행인 건 봄이면 늘 다니면서 봄을 느끼던 곳들이 전부 바뀌어서 아파트단지가 되었다는 거지. 그래서 이전에 비해서 봄을 덜 느끼게 되는 거야. 예전의 봄날에 담아 놓은 사진들을 보면 매년 같은 곳을 찾아서 사진으로 담았는데 이제는 그런 곳들이 대부분 사라졌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빛과 어둠으로만 나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빛과 어둠 사이에는 그늘도 있고, 흐린 부분도 있고, 덜 밝은 부분, 짙은 어둠도 있잖아. 빛과 어둠 사이에도 다양한 빛이 존재하는데 지금 사람들은 빛과 어둠으로만 나누려고 하는 것 같아. 양극으로만 나뉘는 거지.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숨죽이며 지내야 하고 극과 극으로 나뉜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면 공격을 하고 말아. 강도가 높아.


영화 속처럼 만나서 치고받으면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댓글이나 sns를 통해서 공격을 하니까 그 수위는 더 높고 언제까지나 남아. 파란색과 빨간색이 대립을 해서 지금 세상에는 그 두 컬러만 있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는 수많은 색이 존재하잖아.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아.


나 말이야 굴을 좀 샀는데 이리 먹고 저리 먹어도 좀 남아서 샌드위치에 올려서도 먹었거든. 근대 색이 너무 예쁘지 않아? 보기 좋은 색이 먹기도 좋다고 말이야 이토록 색이 좋을 수 있을까. 굴을 올리니 더 멋진 컬러 같아. 굴은 생으로 먹는 것도 맛있지만 물에 살짝, 아주 살짝 데쳐서 먹으면 더 맛있는 것 같아. 라면을 먹을 때에도 넣어서 먹고, 밥을 안칠 때에 넣으면 밥맛도 좋아. 사실 밥이라는 게 맛이 늘 좋아. 밥맛이 좀 덜 좋아야 하는데 왜 모든 음식이 맛있을까.


어릴 때는 편식도 많이 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음식들까지 왜 맛있을까. 왜! 왜! 왜! 그래서 샌드위에 굴을 올려 먹어도 맛있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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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놈이 혜은이 음식 좋아하는 뚱뚱한 아줌마로 알고 있는데 혜은이가 티브이에 나오면 혜은이를 보기 위해 울 아부지들 기를 쓰고 전부 집으로 몽땅 일찍 들어왔었다고. 혜은이는 대한민국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 혜은이 보유국이지.

이때 봐봐, 이 당시 음향기기가 좋은 것도 아니야, 성형수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야, 메이크 업이 발달하지도 않았어, 그 흔한 인이어 같은 것도 없었어, 노래를 들어봐. 거기에 혜은이는 근처에서는 볼 수 없는 외모였지, 너무나 예쁘고 예쁘고 또 예뻐서 전 국민이 혜은이를 보기 위해 티브이 앞에 앉았지.

당신만을 사랑해도 길 슨생님의 곡으로 길옥윤의 노래들 가사를 보면 때 묻은 단어가 없다는 게 너무 신기한 일이야. 혜은이는 정말 국보급 가수였지, 6, 70년대가 한국 영화 전성기여서 영화가 엄청 나왔는데 극장이 서울에 몰려 있었어. 지방 사람들은 영화 속 배우들을 보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지.

근데 흑백 티브이가 각 가정에 보급이 되면서 티브이쇼를 볼 수 있게 된 거야. 그 안에 국민여동생 혜은이가 마음을 건드리는 노래를 부르는 거지. 사람들이 미쳐버리는 거야, 혜은이 팬 사인회가 서울의 어느 백화점에 열리면 지방에서 막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올라가는 그런 시초였을 걸.

당신만을 사랑해 에서 수평선 아득한 곳에~ 부를 때 이 부분이 혜은이를 함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는 거 같아. 눈빛, 표정, 제스처, 목소리가 한순간에 혜은이를 보여주는 것 같거든. 정말 당신만을 사랑할 것처럼 노래를 부르잖아.

그리고 이 노래는 간주에 길 슨생님의 색소폰과 혜은이가 연주와 노래로 티키타카를 하는데 그게 이후 잼 콘서트로 많은 무대에서 여러 가수들이 기타와 노래로 잼 형식으로 주고받으며 노래하는 시초 같지.

혜은이가 살아온 얘기는 하지 않을 게 대충 다 알 테니까. 혜은이가 국민여동생 같은 이미지가 굳건했던 건 단지 무대에서 노래만 부르지 않았지. 새벽비에서는 댄서들과 함께 각 잡고 춤도 추고. 혜은이는 쟁쟁한 선배들을 뒤로하고 가수왕도 차지하고 1년 만에 여러 곡을 히트시켜 버렸고 드라마에서 연기도 하면서 국민 사랑을 한 몸에 받았어. 요즘 트롯꿈나무들이 왜 악착같이 혜은이 노래를 부르는지 알겠지. 새벽비 같은 경우는 트롯다람쥐 강혜연이 또 너무 잘 부르더라고.


https://youtu.be/7twkmeXv0mA?si=urO46ND9QMA09V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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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를 넣고 김치도 넣고 이것저것 넣어서 라면을 끓여 먹었지. 오랜만에 끓여 먹는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고. 요즘 선거 유세 기간이라 말말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봤지. 정치인들의 말이라는 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말말말을 쏟아내고 있어. 듣다 보면 말과 함께 같이 하는 행동은 개그프로보다 더 웃기고 훨씬 재미있는 경우가 많아서 놀라곤 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어.


어쩌면 저들은 바보가 아니라 너무나 고단수 지능범이라 사람들을 웃겨 죽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리하여 기억에 자신을 남기게 하려는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거야. 그 정도로 전략을 짜려면 우리 일반인이 하는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 한 세대를 앞서가야 할 텐데, 보면서 막 웃다가 정말 그 정도로 고도 전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말말말을 쏟아내는 정치인 주위에는 여러 명의 전문 전략가들이 포진되어 있잖아. 그래서 어제 했던 말이 다음 날에는 완전 반대로 말이 나오기도 하잖아. 어떻게 보면 엉망진창이지. 엉망진창이라 재미있어.


우리 같은 일반인은 정치인에게 도덕적 범주를 많이 들이대는 거 같아. 그래서 정치인은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 하지만 대외적으로 정치를 잘하는 정치인은 비도덕적일지라도 자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외교를 잘한다면 비도덕적인 정치인이라도 또 칭찬을 받게 되는 것 같아. 도덕적으로 아무리 깨끗해도 자기 도민이나 자기 시민의 세금을 계속 깎아 먹고, 자본이 돌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공공사업을 한다면 아무리 도덕적으로 깨끗해도 그 정치인이 과연 사람들에게 다시 또 선택을 받을까 싶어. 국내 정치는 실적으로 보여주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설령 그 정치인이 도덕적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지라도 실적,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해.


요즘 말말말을 보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정치적으로 국민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말을 많이 하잖아. 프레임을 씌우는 거지.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치인을 뽑아야 합니다,라고 하지만 이번 여야 합쳐 전과자가 141명이나 되잖아. 어떤 정치인은 9번이나 전과를 가지고 있기도 해.


조금 빗나간 얘기로 혜민 스님이 풀소유 논란으로 자숙한 지 3년 만에 이번에 다시 나왔잖아. 뭐 어리어리한 집에, 맥북을 비롯한 애플 제품에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며 사람들에게 실망을 줬다고 하잖아. 사실 근데 그게 뭐? 뭐 어때서 그래? 미워할 수는 있겠지. 혜민 스님이 그런 재산에 대해서 배신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워할 수는 있을지라도 욕을 하는 건 좀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해.


한 번 생각해 봐. 조용기 목사는 혜민 스님의 몇 백배는 더 재산이 많잖아. 어마어마한 집에, 어마어마한 차에, 부동산에 아무튼 그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허경영을 한 번 봐. 도대체 허경영은 재산을 어떻게 끌어 모으는 거지?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잖아. 또 통일교 문선명을 한 번 생각해 봐. 나는 비록 가난할지라도 내가 믿는 종교인은 갑부여야 하거나, 갑부여도 괜찮은 거지. 만약 갑부가 아니면 그 교회나 절에 가지 않을지도 몰라.


혜민을 욕 하려면 다른 억대 갑부의 종교인도 욕을 해야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잖아. 종교도 비즈니스야. 그 비즈니스로 사람들을 모으고 그에 따라오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미워 보일 수는 있으나 우리가 늘 하는 말, 자본주의 사회니까 욕을 하지는 말자는 거지. 돈을 주고 종교인들이 하는 말말말을 우리는 사는 거지. 우리라기보다는 신도들은 그 종교인의 말을 구입하는 거야. 그 구입한 말씀으로 내 마음이 평안해진다는데 욕을 할 것까진 없다고 봐. 거기에 욕할 힘을 아껴 더 심한 놈들에게 욕을 하는 게 낫지 않아.


요즘 디즈니 플러스에서 새로 나온 시리즈 [레니게이드 넬]이라는 판타지 영화가 있어. 중세 영국이 배경으로 요정이 빛으로 변해서 주인공인 넬 속으로 들어가서 초인적인 힘을 내며 자신의 억울함을 풀려고 하는 이야기지. 영국 여왕을 끌어내리고 권력욕이 가득한 흑마술을 하는 귀족은 언론을 통해 사람들을 호도하지.


판타지 영화이고 그래픽이 가득하고 재미있는 시리즈인데 그 속에서도 언론이란 사람들을 사실에서 멀리 떨어진 진실을 사실이라 믿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나와. 언론이란 그런 것이야.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신문사에 내보자고 하지만 언론은 이미 권력에 넘어가 있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다고 말해. 프로파간다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들러붙을 수 있어. 프로파간다 책을 읽었는데 어려워서 기억나는 문구는 없어서 인용은 못하겠지만 광고 역시 대체로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해.


마치 이 약을 먹으면 전부 나을 것 같은 착각.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광고를 보다 보면 진짜 그럴까? 하다가 혹 하며 넘어가게 되잖아. 특히 내가 그 약이 필요한 질환이나 병이 걸리면 더 그렇게 되잖아. 그리고 그 약을 사용한 사람이 유튜브나 어딘가에 나와서 나는 그 약을 먹고 나았다고 광고를 하면 십중팔구는 그 약을 구입하게 되는 거지.


선거 유세기간이라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져. 정치인들의 말말말은 힘을 갖기도 하지만 그 힘 때문에 자신을 추락시키기도 해. 요즘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일은 조깅을 하다 보면 날이 따뜻해져서 초등생들도 아직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놀이터나 길거리에서 종종 보는데 대부분 밤양갱을 부르더라고. 그 밤양갱이 어려운 노래인데 초등생들은 음도 따박따박 맞춰서 어찌 그리 잘 부르는지. 또 초등생들이 싸울 때 너 윤석열 닮았어하니까 정말 화를 내며 아니야!!라고 하더라고.


그리하여 나는 오늘 대파를 넣고 김치 라면을 끓여 먹었지. 정치인과 종교인을 떠나 우리도 말말말 때문에 웃고 울고 하잖아. 특히 요즘은 선거 기간이라 그런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말말말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 거 같은데 사람들은 참 재미있게 사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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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지만 코스모스를 듣자. 모모에의 코스모스는 정말 좋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코스모스는 첫 소절부터 사람을 확 잡아끌어 버린다. 듣다 보면 마치 마법에 걸린 개구리처럼 이 노래를 듣게 된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코스모스 https://youtu.be/GORBafmIUXk?si=vr_EEz0rChfhowdJ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코스모스를 부르는데 이 노래의 가사가 정말 사람을 울린다. 모모에가 부르는 노래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나라 작곡가들 역시 빠져들었다는 거지. 하광훈이 만든 곡들을 들어보면 이 노래와 비슷한 전개가 많다.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같은 곡 말이다. 악마의 유혹을 어쩌지 못한 거지.


야마구치 모모에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일본인보다 한국 사람이 더 많이 올리는 것 같다. 게다가 2, 30대가 야마구치 모모에의 노래에 심취해서 올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모모에는 뭐랄까 깨끗한 크리스털 같은, 우아한데 그 속에 섹시하이 흐르는 것 같다. 매혹적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4년? 5년? 정도 활동을 했는데 노래들이 전부 다 좋다는 거다. 야마구치 모모에는 당시 일본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은 거 같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여성팬들이 꺄악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남녀노소 심지어는 동료들까지 그녀를 너무나 예뻐했다.


동료애가 오죽하면 모모에가 은퇴를 두고 마지막 노래를 부를 때 동료들이 전부 모모에 앞에서 그녀의 히트곡을 불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별의 저편’을 부를 때 동료들이 눈물을 흘린다.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두가 모모에의 은퇴를 슬퍼한다. 은퇴 당시 모모에는 22살이었다.


5년 정도 활동을 하다가 80년에 22살의 나이로 은퇴를 하고는 한 번도 방송가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방송가는 모모에의 몇 주년을 챙기면서 계속 모모에의 방송을 한다. 이토록 사랑을 받은 가수가 전무후무 할 것이다. 80년에 은퇴할 때 그해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가 마츠다 세이코다. 두 사람의 투샷 영상이 있는데 동경하는 눈빛을 막 발사하는 애기애기한 마츠다 세이코. 그 장면이 가요계를 인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블핑에서 베이비몬스터로 넘어가는 그런 느낌일까. 모모에의 코스모스를 마츠다 세이코가 부르기도 한다. 모모에가 부르는 분위기와는 다른 분위기다. 이 노래는 일본의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를 했고 유튜브에는 한국 아마추어 노래꾼들도 엄청 부르고 있다. 이 영상을 편집한 주인장은 정말 효과를 전부 넣어서 편집을 정성껏도 했다.


모모에 하면 사쿠라다 준코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꽃의 중 3인방이라 하여 모리 마사코, 준코, 모모에가 아이돌 시초여서 인기가 정말 많았다. 모리 마사코와 준코가 먼저 티브이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모모에가 용기를 내어서 노래를 불러 가요계에 들어갔다. 자세한 이야기는 전문가들이 많이 해 놨으니까 찾아서 보면 모모에의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죽 알 수 있다.

사쿠라다 준코


모모에, 마사코, 준코


꽃의 중3인방이지만 인기는 모모에와 준코로 양분화된 분위기였는데 모모에가 그 나이에 나올 수 없는 깊이로 노래를 불렀다면 준코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그야말로 발랄, 귀여움으로 인기가 있었는데 준코가 통일교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미 19살에 통일교에 심취해 버렸다.


그러다가 준코는 92년에 느닷없이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살아있을 적에 한국으로 와서 통일교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근데, 남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문선명이 그냥 무작위로 처음 보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하거라 해서, 넵! 하면서 그냥 결혼을 해 버린 것이다. 이 통일교 합동결혼식이 우리나라에서 하는데 사쿠라다 준코라고 일본의 인기톱스타가 온다고 관심이 많았다. 결혼 후에 서울 남산 아파트인가 거기서 그냥 평범한 주부로 살면서 통일교 행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냥저냥 이혼하지 않고 잘 산다고 하더라.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낳은 게 아니라 신이 낳은 거라 여기고 아들에게 극존칭을 쓰며 지낸다고. 오늘은 이 옷을 입어 주시겠습니까. 하면서 말이다.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살아서 결혼을 한 부부도 이혼을 많이 하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결혼생활이라는 게 참 말로 설명이 어렵다.


준코는 93년에 영화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연예계를 떠났다고 한다. 아무튼 인간의 삶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모모에를 영접한 마츠다 세이코 https://youtu.be/0JPdgbkIiXs?si=yIc4kej-mHJURPDi


두 번째에 세이코가 부르는 코스모스를 들을 수 있다 https://youtu.be/tOosQoScFfU?si=5pB-5VVJfEGgGFNb


사쿠라다 준코는 발랄하고 귀염의 대명사였다 https://youtu.be/8Q6F1BzkYq4?si=G9YchNgvt-zfwY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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