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왔을 때 건물 로비에 설치한 트리 가까이 어린 남매가 다가왔다. 어린 여동생이 오빠에게 뭔가를 부탁하니 오빠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면서 애틋하던지, 그리고 오빠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저 빛이 가득한 문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이 떠올랐다. 유진 스미스의 유명한 사진 시리즈가 많지만 그래도 유진 스미스 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진이 가장 따뜻하고 유명하지 싶다. 유진 스미스의 대부분의 사진은 처절하고 어둡고 짙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자신의 아이들의 뒷모습을 순간포착으로 담아냈다.


유진 스미스는 정신질환으로 힘들었다. 보도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취재 중에 일본군의 탄환이 머리에 박혀 죽을 뻔하기도 했다. 유진 스미스는 완벽한 사진을 출력하기 위해 히스테리가 갈수록 심해졌다. 전쟁 중에 담은 사진이 마음이 들지 않아서 군인들에게 포탄을 터트려 연출해서 사진을 촬영했다는 설도 있다.


유진 스미스는 위대한 사진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신 점점 정신질환이 심각해졌고 사진은 확고한 사실을 전달했다. 전쟁의 참상, 기근과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담았다. 유진 스미스의 조수들은 날로 심해지는 정신질환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한다. 히스테릭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손을 잡고 저 빛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셔터를 누른다. 순간 포착으로 담아낸 그 사진은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마치 벅찬 희망을 나타나는 것 같다.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은 많은 예술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줬다. 이번 영화 ‘괴물’로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영화[환상의 빛]에서도 주인공 유미코의 아이들이 동굴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 했다. 그 장면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돌려서 봤다.

이 장면은 유미코의 일상을 말하며, 이쿠오의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는 유미코는 알 수 없는 결락을 치유하는 것이 보잘것없는 일상이라는 걸, 아이들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또 한 영화에서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 했다. 피가 터지고 낭자했던 영화. 이 만큼 처참하고 격렬하게 피가 터지는 영화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킬러 본능의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도 오마주 했다.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인데 빛을 아주 잘 다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 황정민의 노을이 지는 장면이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다. 그 장면은 그래픽 없이 노을이 질 때 촬영을 해야 해서 만약 그날 원하는 장면을 담아내지 못하면 다음 날에 다시 촬영을 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장면들이 빛의 아름다움으로 잘 표현이 되었다.


 빛을 향해 인남(황정민)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유민의 뒷모습을 보며 희망을 품게 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빛의 한가운데 있는 유민의 모습을 먼 앵글로 보여주며 끝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은 미움이 가득한 것처럼 심술궂었다. 금방이라도 하늘은 뭔가를 토해낼 듯 우울한 회백색을 띤 구름들이 기묘한 형태를 이루는가 싶더니 이내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펑펑 내리기를 바랐지만 하늘은 그런 마음이 싫었던지 그저 흩날리는 눈이 나릴뿐이었다. 이런 눈은 기분을 적실뿐이다.


그러나 날은 차가웠다. 아마 온도가 조금 더 내려갔다면 눈은 흩날리지 않고 직선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머리에 앉아서 잠시 살아서 또 다른 풍경을 보였을 것이다. 흩날리는 눈은 애초에 내려앉지도 않고 이리저리 춤을 추다가 그림처럼 사라졌다.


전통시장의 내복 집 가판대 위에서 흩날리는 눈을 휘저으며 골라골라 박수를 치며 손님을 기가 막히게 끌어 모으는 사람이 있었다. 내복집주인아저씨였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다. 내복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눈이 흩날리고 있어서 아저씨의 골라 골라는 더 드라마틱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판대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아주머니들. 엄마들이었다. 아주머니들은 가판대 위에 쌓여 있는 겨울 내복을 들춰 아이들과 아이 아빠의 내복을 고르는데 전투력이 올라간다. 매의 눈으로 내복을 집어서 아이 아빠의 몸에 맞을지, 허리둘레와 길이를 자로 재는 듯이 쟀다. 아빠의 내복을 고르는데 컬러나 디자인 같은 건 무시다. 그저 노동을 하는데 따뜻하고 몸에 맞기만 하면 그만이다. 겨울에는 따뜻하면 된다.


수많은 내복 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은 어려웠지만 어려움 없이 아주머니들은 내복을 골랐다. 골라 골라 소리는 저 시장의 골목 끝까지 뻗어 나갔다. 그렇게 고른 내복은 바구니에 집어넣기 바빴다. 가판대 주위로 내복쟁탈전을 하는 용병 같은 아주머니들을 따라 나온 아이들은 엄마 뒤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내복 집골목은 먹자골목으로 엄마가 무사히 내복을 다 고르면 옆에서 순대를 사주었다.


내복집이 있는 먹자골목에는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리어카가 일렬로 죽 서 있다. 그곳에 서서 먹는 순대는 일품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집 근처 시장이 아니라 좀 더 먼 곳, 시내 중심가와 가까이 있는 전통시장에 오는 것이 좋았다. 엄마를 따라오면 순대를 사준다. 아이들은 그렇게 엄마들이 겨울 준비로 내복을 고르는 동안 얌전하게 기다렸다가 옆에서 순대를 먹었다.


순대는 자주 사 먹을 수 있는데 자주 사 먹지 못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순대는 시장에서 바로 사 먹는 게 맛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 아버지가 보온이 유지될까 순대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집에서 먹었던 경우가 있었지만 시장에서 바로 먹었을 때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시장에서 먹는 순대는 맛있었다. 붉은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겨울이 따뜻했다. 먹자골목에는 소규모의 진흥백화점이 붙어 있어서 시내에 나오면 엄마와 그 안을 구경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용품들이 가득했다. 특히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입제품과 장난감을 파는 코너가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용품들은 계단에 죽 진열을 해놔서 구경하기가 수월했다. 그 옆에는 아이와, 파나소닉, 소니제품의 워크맨을 판매하는 곳이 제일 좋았다. 겨울 음악이 잔뜩 흘러나오고 소년시대에서 나온 워크맨들이 일렬로 조용하게 누워있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백화점을 나오면 바로 먹자골목이다. 맛있는 냄새가 골목에 가득하다. 붉은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순대의 맛을 어릴 때부터 알게 되었다. 이상하지만 순대는 추운 겨울에 먹는 게 맛있었다. 순대 옆을 지켜주는 뜨거운 어묵 국물이 있기 때문이다. 날이 아무리 추워도 순대를 먹고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아무리 추운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날이 차갑기 때문에 먹다 보면 코가 발갛게 된다. 그때 뜨거운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속이 뜨거워졌다.


어묵 국물은 따뜻해서는 안 된다. 뜨거워야 한다. 아이들은 잘 먹지 못할 만큼 뜨거운 어묵 국물이어야 겨울의 순대와 어울렸다. 뜨거운 어묵 국물이 위로 뚝 떨어지고 나서야 세상이 맛있어지는 순간이었다. 겨울이 온 세상을 덮치고 내복이 얼굴을 내미는 시장은 활기로 가득했다. 전통시장은 그랬다. 그래서 시장에 가면 신이 났다.


겨울 방학이 다가오기 전 아이들과 수업이 끝나면 시장으로 우르르 가기도 했었다. 학교에서 먹자골목 시장까지는 좀 먼 거리였다. 걸어서 오면 30분은 넘게 걸렸다. 그 사이에 전통시장이 2곳이나 있다. 우리는 그 두 곳의 전통시장을 지나 먹자골목까지 왔다. 두툼한 스키장감 같은 장갑을 끼고 우리는 시장을 구경하며 다녔다. 아직 어린이였지만 4학년은 고학년에 속했다.


먹자골목의 시장까지 온 이유는 덕원이가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우르르 온 것이다. 덕원이 엄마는 시장에서 신발장사를 한다. 덕원이 심부름을 따라가면 덕원이 엄마가 우리들에게 순대를 사주었다. 친구들과 서서 먹으면 너무 맛있는 것이다. 할머니가 순대를 파는 곳에서 먹고 있으면 덕원이 엄마 덕분에 우리에게 순대를 더 썰어 주었다. 우리는 신나서 손뼉을 쳤다.


고기도 아닌 것이 소시지도 아니지만 설명하기는 애매하지만 붉은 소금에 살짝 찍은 먹는 순대는 맛있었다. 날이 차가운 겨울이었지만 곧 겨울방학이 온다. 그리고 옆에는 겨울 방학 내내 같이 뛰어놀 친구들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메탈그룹은 노래뿐 아니라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이 묘했다. 일단 머리가 길고 대부분 날씬했다. 머클리 크루, 포이즌 같은 그룹은 안 그래도 예쁘장한 얼굴인데 눈두덩에 화장까지 해서 마초가 파괴될 것 같지만 노래를 할 때에는 전부 씹어 먹어버릴 듯한 마초성이 강한 모습이라 여자들, 남자들이 전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메탈그룹의 멤버들은 근육도 좋았다. 그러나 근육이 요즘처럼 기구를 들어서 강력한 근육이 아니라 울끈불끈 하지는 않지만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어서 가죽바지와 가죽재킷을 입어도 잘 어울렸다.


70년대부터 활동하던 그룹들은 90년대 거의 슈퍼록스타가 되었다. 반 헤일런, 딥 퍼플, 롤링 스톤스, 에어로스미스 등 당시 록스타의 위상은 스포츠 스타 그 위에 있었다. 지금도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는 테일러 스위프트니까 큰 골자, 미국을 지나가는 강력한 줄기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 80년대 글램록이라는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다. 사운드도 신나고, 노래도 좋고, 따라 부르기에 편하고. 무엇보다 나온 메탈그룹들이 실력도 좋은 데다 잘 생기고 몸매가 좋았다. 이런 그룹들이 여기저기 막 나오기 시작했다.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고 답답함을 풀어버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공연장에서 가수들과 팬들이 한 몸처럼 미친것처럼 떼창을 하고 나면 꽉 막힌 속이 전부 뚫렸다.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록스타들에게 열광했다. 아마 90년대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엠티비가 본격적으로 돌입함으로 메탈밴드의 사운드가 보는 것으로 바뀌면서 야호였다. 남자밴드의 전성기였다.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글램록, 팝메틀 밴드가 나타났고 그들은 엠티비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가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외모, 의상, 스타일은 현실에서 잘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영화나 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밤새도록 공연을 하고 술을 마시고도 지치지 않고 다음 날에 그 날렵한 몸으로 또 무대 위에서 강력하게 노래를 불렀다. 스키드로우의 세바스찬 바(는 의외로 일찍 결혼을 해버린다)의 외모는 요즘 AI가 구현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남자들이 모든 판을 휩쓸어버리는 판 속에 여자들로만 구성된 메탈그룹이 나타나게 된다. 가장 강력한, 금녀의 영역인 헤비메탈 세계에 여성 4명이 등장했다. 밴드 이름은 ‘빅슨’ Vixen-암여우, 성질 더러운 여자를 내세워 강력하게 등장한다. 빅슨의 공연에서는 뒤에 여우를 프린트한 깃발을 걸어 놓기도 했다.

빅슨은 81년에 등장했지만 음반회사를 잘 만나지 못해 끙끙하다가 87년에 세계적인 음반회사 EMI를 만나면서 수면 위로 강력하게 오르게 된다. 빅슨의 등장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우리나라로 치면 투애니원이 처음 나왔을 때? 아니지 투애니원은 개성이 강한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투애니원보다는 블랙핑크가 등장했을 때? 암튼 빅슨의 멤버들의 비주얼이 마치 인형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저 남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얼굴이 예쁜 여자들을 급조해서 만든 그룹이구나. 왜냐하면 보면 안다. 마치 플레이보이지 표지에서나 볼 법한 외모와 얼굴이니까. 그러나 리드 잔 퀘네문드의 기타 연주와 자넷 가드너의 보컬은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폭파시켜 버렸다.


그러니까 빅슨의 음악은 듣는 것, 보는 것 모든 감각을 열어서 듣게 되는 음악이었다. 그녀들의 히트곡 '에이지 오브 어 브로큰 하트‘를 보면 와 이런 그룹은 현재도 없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뮤직비디오 속에 리처드 막스(프로듀서라서 등장한 모양이다)도 아주 잠시 등장한다. 좀 웃기네. ‘크라인’ 역시 빌보드 상위를 넘나들며 인기를 끈다. 그러나 하나의 현상이 되어 그대로 아이콘이 될 것 같았던 빅슨은 2집부터 주목을 끌지 못한다.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하락세를 걷다가 긴 공백기를 맞이한다. 91년에 해체하고 97년에 다시 뭉쳐 98년에 노래를 다시 내놓지만 전혀 반응을 얻지 못한다.


리드 기타였던 잔 퀘네문드(는 미스터 빅의 천재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와 같이 음악학교 동창이었다) 때문인지 천재여성밴드라는 수식어 덕분에 기타 회사 깁슨에서 시그니처 모델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잔 퀘네문트가 암으로 죽고 그대로 끝나는가 싶지만 이 누님들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현재의 원년 멤버는 보컬 자넷과 드럼 록시 밖에 남아있지만, 비록 나이가 많아서 거의 할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멋진 몸매에 가죽 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고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빅슨의 등장과 활동은 하나의 현상을 넘어 아이콘이 될 것 같았지만 흘러가는 수순, 현실이었다. 영화 야구소녀를 보면 주수인의 성장을 보여준다. 남성의 구장인 야구장에서 여자인 주수인이 공을 던진다는 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야구라는 건, 특히 프로 야구라는 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든 선수들에게 넘어야 할 벽이 크고 높다는 것이다. 그건 현실인 것이다.


빅슨은 비록 벽을 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견디고 있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빅슨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감동이 될 것이다.



가장 유명한 노래 Edge Of A Broken Heart https://youtu.be/mQOmDUnt8Hs?si=Eaeb0D4H0a0G8lkl


비주얼쇼크다


라이브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89년 엠티비 Edge Of A Broken Heart + Cryin' (MTV Big Bang '89) https://youtu.be/MoSNsdSjED4?si=8CS0zxVjGNeRvnd5



Vixen - Edge Of A Broken Heart, 5–7-2023 https://youtu.be/uJnH5LrojUk?si=82x_fqCqtIMDDos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토마토와 생선을 같이 구웠어


생선을 굽는데 토마토를 같이 넣어서 구웠다. 토마토는 기름에 튀겨지듯 구워졌다. 토마토를 한 입 먹으니 주욱 하고 토마토의 즙과 기름이 동시에 폭죽이 터지듯 터져 나온다. 쓰읍 할 만큼 즙이 나왔다. 그게 무슨 맛으로 먹냐? 같은 말을 하면 ‘내 맘이야’라고 말하겠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내 맘이야’ 가사가 떠오른다. [한숨을 크게 쉬면 날이 밝아와 치마를 둘러 입고 나가볼 거야, 난 신문을 보며 눈이 뒤로 돌아가 내가 이루려던 꿈에 네가 깔리진 마, 날 행복하게 만든 거라면 난 마당에 나가 잡초나 뽑아야지 말 시키지 마] 정말 멋진 가사라고 생각이 든다.




라면에는 토마토지


토마토를 뜨겁게 먹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라면에 풍덩풍덩 빠트려서 먹는 것이다. 라면에 빠진 토마토는 역시 맛있다. 이렇게 모양 그대로도 맛있지만 익은 토마토를 터트려 토마토의 신 맛이 라면국물에 스며들게 해서 먹어도 좋다.

이게 매운 라면인데 토마토의 신맛이 섞여 맛있다. 토마토가 매운 라면의 매운맛을 중화시킬 수 있어서 매운 고추와 고춧가루를 좀 넣었다. 냠냠냠 맛있게 호로록 먹다가 생각을 해본다. 토마토를 왕창, 더 넣고 싶은데 토마토 가격이 자꾸 오른다. 고기나 생선의 가격이 오르는 게 낫지 토마토의 가격이 자꾸 오르는 건,,,,




오성구를 찾아서


계란을 휘휘 저어서 물을 붓고 소금을 조금 넣고 찔 때 토마토도 같이 넣어서 쪘다. 계란찜에 빠진 토마토 역시 맛있다. 봐봐 보기에도 좋잖아. 노란색과 붉은색의 조화가 그릇의 컬러와도 어울린다. 계란찜에 들어간 토마토를 숟가락으로 푹 떠먹으면 행복하다.

학창 시절에도 계란찜을 자주 먹었다. 집에서 계란찜을 자주 먹을 수 있다는 건 어머니가 부엌에서 영차영차 가족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한다는 말이다. 계란찜, 어른이 되면 술안주로 먹거나 잘 먹게 되지 않지만 학창 시절에는 이만한 행복감을 주는 음식도 없다.

그때에도 계란찜을 먹고 낮부터 음악 감상실에 들어앉아서 음악을 듣곤 했었다. 자주 신청해서 들은 음악 중에는 시네이드 오코너도 있었다. [낫띵 컴페어스 투 유] 한 곡으로 중첩되지만 자주 신청해서 뮤직비디오를 보곤 했다. 시네이드 오코너는 그때에도 머리를 밀고 맨발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뮤직비디오뿐만 아니라 라이브 무대를 보면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시네이드 오코너의 라이브 무대를 자주 신청해서 보곤 했다. 한 마디로 ‘와 멋지다’였다.

시네이드 오코너 하면 저항이다. 여자로, 엄마로, 가수로, 예술가로 저항할 수 있는 곳에는 전부 저항을 했다. 이 노래는 원래 프린스 노래다. 프린스 버전의 노래도 있는데 시네이드 오코너보다 못하다. 시네이드 오코너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씹어 먹을 듯 노려보며 전위예술을 하듯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감탄을 넘어서 종교처럼 보이기도 한다.

프린스는 시네이드 오코너에게 이 노래를 준다며 불러서 한 번 건드렸다. 그래서 난리가 났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는 하찮은 음악 이야기에 해야 하나. 뭐 어때. 아무튼 시네이드 오코너도 작년에 55세가 되지도 않았는데 죽고 말았다. 몇 해 전에 돌로레스(크랜베리스)도 가버렸고, 그다음 해에는 마리에 프레드릭슨(록시트)도 가버리더니, 좋아하는 가수들이 전부 죽어 나갔다.

당연하지만 기분이 묘하다. 학창 시절부터 너무나 들었던 가수들이니까. 만약 몰랐다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내 주위의 어른들, 친구 어머니나 아버지의 죽음은 받아들인다. 그건 일정 수순 같다. 하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 소설가는 느낌이 다르다. 항상 그들은 나보다 하루 늦게 죽기를 바랐는데. 잘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이야기를 계란찜에 들어간 토마토를 먹으며 한다.





햄과 토마토


햄은 정말 신의 맛이다. 고기보다 더 맛있는 것 같다. 햄과 소시지는 가장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고 기사에서 그러던데 그런 음식일수록 맛은 최고다. 짜장면이 그렇고, 김치찌개도 그렇고, 젓갈도 그렇다. 몸에 안 좋다고 하는 음식은 다 맛있다. 햄을 먹을 때에도 토마토를 같이 구워서 먹으면 맛있다. 진한 커피와도 어울린다. 거의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진한 커피와 구운 햄과 구운 토마토는 잘 어울린다. 만고 나의 생각이다.

찌발 놈들 몸에 좋은 음식인데 신의 맛이 나는 음식은 없나.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몸에 좋은 것이 표가 나려면 아마 3톤은 먹어야 할걸. 우리 집이 바닷가 근처니까 바다에서 나는 갯것들은 전부 몸에 좋다고 한다. 김, 다시마 같은 해초류들. 먹어서 몸이 좋아지려면 트럭으로 한 트럭을 먹어야 할 텐데. 그 중간에 짬뽕 한 그릇 먹으면 전부 도로아미타불이고.




고기가 토마토를 만났을 때


이 돼지고기는 등급이 조금 낮은, 맛이 떨어지는 고기다. 삼겹살 같지 않다는 말이지. 그러니 이렇게 고추장을 넣고 토마토를 왕창 넣어서 다 같이 구우면 아주 맛있다. 촤아아아 아 하며 뜨겁게 익어가는 소리가 아주 듣기 좋다. 냉장고에 남은 땡초로 몇 개 썰어서 넣어준다. 뜨거우면서 매콤하면서 토마토의 맛까지 겸비한 고기를 먹으며 여기에 어울리는 노래는 주말(위캔드)씨의 '아이 필 잇 커밍'이다.

주말씨의 노래는 아무튼 너무 좋다. 주말씨의 '아웃 오브 타임'의 뮤직비디오는 오징어게임의 히로인 정호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나온다. 이번 오징어게임 시즌 2는 과연 재미있을까. 스윗한 홈은 시즌 2보다가 끝까지 보지 않았다. 워낙 똥망이었다. 저짝, 일본의 아리스 인 보더랜드도 시즌 2는 그다지.

블핑이의 제니가 미드에 출연했는데, 그때 주인공 릴리 로즈 뎁과 함께 주말씨의 집에서 거의 모든 촬영이 이루어졌다. 이 미드는 거의 포르노에 가까웠다. 한 마디로 더러웠다. 릴리 로즈 뎁은 아버지(조니 뎁)의 도움 없이 나 혼자 악착같이 이 세계에 발을 디뎠다는 식으로 트위터 같은 곳에 자신의 글을 올리는데, 할리우드의 금수저 자식들인데 정말 자기 실력으로 셀럽에 오른 사람들이 웃. 기. 지. 마. 같은 말을 한다고. 집이 정말 엄청난 금수저인데 실력으로 오른 셀럽이 많은데 그중에 한 명이 디카프리오와 가끔 가십에 뜨는 지지 하디드다. 지지 하디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너무 TMI가 될 것 같다.




토마토찌개


들어는 봤나 토마토 찌개다. 이게 무슨 맛?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토마토는 어떤 찌개에 들어가도 다 잘 스며든다. 마치 조미료와 같다. 나 한 동안은 마요네즈에 빠져서 6개월간 마요네즈를 몇 통이나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마요네즈를 여기저기 뿌려서 먹었는데, 매일 생으로 먹던 토마토를 뜨겁게 해서 먹으니 훨씬 맛이 좋아서 여기저기 풍덩풍덩 빠트려서 먹고 있다.

제발, 토마토 만은 물가상승에 동참하지 말았으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타쿠♡ 2024-01-1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건강해질 식단! 👍👍👍 다양한 토마토의 변신 짱이네요

교관 2024-01-12 11:17   좋아요 0 | URL
저짝 토마토의 나라에 가면 스튜에 고기에 전부 퐁당 넣어서 맛있게 먹더라고요 ㅋㅋ 우리나라 토마토는 뭔가 곱게 자란 도련님 같은 느낌이라면 저짝 토마토의 나라 토마토는 갓 청소년기를 넘긴 불끈불끈 막 자란 마초 같은 너낌! ㅋㅋ

stella.K 2024-01-1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린 프라이드 토마토란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저 토마토와 햄을 같이 먹으면 토마토가 왠지 나쁜 걸 중화시켜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
저도 토마토 사야겠어요.
참 다음엔 카레에도 넣어 보시죠. 적어도 카레 맛을 즐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겁니다.^^

교관 2024-01-12 11: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햄과 함께 먹으면 그런 생각에 몸에 조금 덜 미안해하며 먹을 의지, 용기, 같은 것들이 생겨요 ㅋㅋ 오늘 토마토를 밥상에 한 번 올려 보세요
 


#

오늘 오전에 꼬마 두 명이 손을 잡고 티격태격하며 어딘가 가고 있더라.

오빠는 한 8살 정도 여동생은 6살 정도로 보였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오빠가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가는 건 엄마가 동생의 손을 놓지 말고 꼭 잡고 가라고 오빠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짠하면서 예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

잠에서 깨면 불안하다.

도대체 불안하지 않을 때는 언제일까.

나의 불안은 고고하다.

높고 깊다.

그래서 쳐다보고 있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 강물과 같다.

나는 언제부터 불안했을까.

분명 불안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을 텐데.

늘 불안에 떠니까 어쩌다 불안하지 않으면 왜 불안하지 않지? 하며 불안하다.

불안이 바늘이 되어 여러 곳에서 찌른다.

불안해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한다.

몇 시간 못 자는 잠이지만 잠이 들어야 해.

#

초대 총장은 밤이 되면 장막 뒤에서 여자들의 치마폭에서 놀았지만 낮에는 학교 건립을 위해 직접 현장에 나와서 막걸리를 마시며 인부들과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덩치 크고 뚱뚱한 총장은 그런 가식조차 없다.

자신의 눈에 싫은 건 그냥 싫은 것이고 좋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수들도 자신이 싫으면 잘라 버린다.

뚱뚱한 총장이 술을 좋아하는 건 학교 학생들은 다 알지만 막강한 교수들과 함께 폭탄주 자리를 마련한 것을 경비로 처리했다는 의문을 사고 있어서 학총회에서 경비를 까 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그러나 학교의 기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술자리의 경비가 공개가 되면 학보사에 의해 64살의 그 덩치의 그 뚱뚱함 때문에 이만큼의 술을 마시게 되면 앞으로 어떤 종류의 질병이 오게 되며 어떤 위험이 온다는 게 다 나올 수 있다.

#

뉴스가 점점 유사종교가 되어 간다.

요즘 뉴스는 진실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진실을 만들어낸다.

진실이 아닌 진실.

뉴스 하나가 진실을 만들어 내면 다른 채널에서 같은 뉴스를 또 내보낸다.

그리고 파뿌리처럼 여러 채널에서 같은 뉴스를 뿌린다.

사람들은 뉴스가 만들어낸 진실을 진실이라 믿어버린다.

종교화되어서 그 믿음에 토를 달거나 의견을 달리하면 죄인 취급을 한다.

#

결핍이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핍이 없다면 행복이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면 결핍인 상태다.

그건 곧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

고통을 받으면 그대로 통증이 되는 사람이 있잖아.

통증이 가득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야기가 참으로 슬프네.

독도를 우리나라 지도에서 빼버린 우리나라 국방부장관을 보며 경성 크리처를 보고 있으니 존나 슬프고 또 슬프네.

#

어제저녁 조깅을 하다가 5월에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지금까지 전단지를 붙여가며 찾으러 다니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아지를 찾으러 다닌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몹시 슬퍼했다.

내일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며 어디서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걱정이 너무 된다고 했다.

나는 유기견 두 마리를 키웠다.

한 마리는 18년을 살았다.

또 한 마리는 뒷다리가 안으로 꼬였고 이전 주인인지 누가 그랬는지, 가위로 혀를 조금 잘라서 그런지 데리고 왔을 때 6개월을 짖지 않아서 수술을 했는지 알았다.

병원에 데려갔을 때 심장이 너무 안 좋아서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냥 키웠다.

7개월이 지나가면서 좀 친해져서 그런지 짖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를 주무르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되었다.

1, 2년 정도 살 거라던 강아지도 11년 정도 살았다.

두 마리를 키우면서 잃어버린 적은 없었지만 만약 잃어버렸다면 끔찍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점점 추워지는데 7개월째 매일 강아지를 찾으러 다니는 아주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

어제도 새해 계획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참 난처하다.

그놈의 계획이란 게 나는 없다.

계획 같은 거 짜봐야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다.

계획이라고 한다면 계획 없이 내년 오늘이 되었을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다.

새해가 되어서 살뜰하게 계획을 짜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듯이 새해 계획이 없다고 비난하지 말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새해 계획 따위 없는 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사강도 그랬잖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

사람이 싫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책만 쓰는 마루야마 겐지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책을 사줘서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싫다지만 사람과 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는 게 또 사람이다.

나는 여행을 가면 경치 좋은 곳을 가지 않고 늘 도시로 들어갔다.

도시 속으로 들어가 그 도시를 이루는 건물과 그 속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좋았다.

도시 속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거든.

#

얼마 전에 내가 사는 곳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서 일가족 4명 중 3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고레에다 감독의 괴물을 보면 첫 장면에 아파트에 불이 나잖아.

모두가 원하는 아파트에 산다는 건 사실 위험천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살기 싫다며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불을 피워 죽으려다 불이 나면 그 주위 모두가 위험하다.

편리하고 편해서 사람들은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그만큼 위험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아파트에 불이 나는 일이 점점 더 일어날 것 같다.

#

감정이 컨트롤이 안 될 때가 있다.

분명 내 마음은 이렇게 하기로 했는데 그 사람 앞에서는 감정이 먼저 앞선다.

분명 감정이라는 것도 나의 것이고 나인데, 감정은 마치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나와는 다른 기이한 존재 같기만 하다.

#

길목에 작은 카페가 생겨서 들어갔는데 공일오비에 ‘H에게’가 나오고 있었다.

그대로 앉아서 커피를 주문하고 노래를 들었다.

날은 흐릴 대로 흐려서 마치 사랑의 열병을 앓는 미술가가 심술궂게 그려 놓은 그림 같고, 난 수많았던 아픔밖엔 없지만 더 큰 아픔 주는 네가 되면 싫다는 가사가 나를 그림 속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갈비탕을 먹고 나면 바닥에 깔린 미미한 찌꺼기처럼 마음속에 늘 남아 있는 건 그리움일 테지.

#

하루 종일 흐리고 날이 차고 세하다.

여긴 비와 눈이 내리지 않아 건조할 대로 건조해서 누군가 성냥이라도 들고 확 그으면 대기 중에 불이 확 붙어 버릴 것만 같다.

코 안도 마를 대로 말라 푸석푸석한 냄새가 여기저기에서 밀려 들어온다.

사람들은 1월인데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리고 무표정으로 걸어 다니고 건물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권태도 함께 딸려 들어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