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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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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음악도 틀지 않고 내 주위의 소음을 제거하고 앉아 있으니 창밖으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대로 들었습니다. 리듬과 운율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얼마 만에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어본 것일까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매미 우는 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아직 좀 더 울어도 괜찮은데 벌써 사라졌다니 섭섭함이 드는 동시에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반가움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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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해도 그렇고 어느 날은 이렇게 한심한 인간이 있나 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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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숲에서 홀로 섬처럼 고립되어서 보내는 건 참으로 두렵습니다. 때때로 그런 기분에 강하게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오늘만 그렇게 느낄 뿐이지 매일 고립되어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만 한심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 사실 매일 한심한 인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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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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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맑은 흐린 날의 연속입니다. 미세먼지가 없기에 흐린 날에도 상쾌하다는 느낌입니다. 잿빛 하늘이 여러 날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비가 창문에 부딪힙니다. 곧 어두워지는군요. 어두운 하늘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대기가 침잠되어 있어서 우울했고 그 많던 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런 날이 싫어 담배연기를 만들어 대기의 틈을 벌려보지만 이내 잿빛의 대기는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그 틈을 메워버립니다

어제도 악몽을 꿨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전부 총을 들고 다니며 서로를 죽이는 겁니다. 그런데 저만 총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만 살아남고 모두가 죽습니다. 저는 죽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상태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꿈입니다. 고립 속에서 홀로 영영 살아가는 건 공포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실 어쩌다 죽고 우리는 어쩌다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다 살아가고 있기에 죽음을 불길하게 여겨선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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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진작가 중에 윤주영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그 사람 사진에는 삶과 죽음이 동시 존재합니다. 사진 속 그 선 하나에 죽음의 골이 있고 빛이 비치는 면에는 삶이 역력하게 보입니다. 사진이라는 게 별거 아니지만 사진 한 장의 힘은 실로 큽니다. 윤주영의 사진에는 시대의 흐름과 시간의 완고함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무서우면서도 콜라 맛을 처음 본 아이가 그 맛에 스며들듯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곳 하늘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특별한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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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편지24

#잿빛하늘의바다

#오늘바다는맑은흐림

#속을알수없는바다와

#속이드러나는하늘과

#날씨에속은것같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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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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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몹시 부는 바다를 보면 불꽃놀이가 꺼지듯 여름은 그렇게 불쑥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은 먼지와 바다의 미립자를 몰고 와서 사람들의 폐를 더럽히려고 합니다. 강하고 습한 바람 때문에 추억까지 바래지려고 합니다. 부예진 추억에는 깨진 유리에 베인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저는, 냉철하게 변해버린 가슴을 손으로 한 번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손으로 만져지는 상처가 너무 고통스러워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기에는 창피합니다. 계절을 여러 번 지나 마주한 당신의 눈동자를 봤을 때, 그때를 잊지 못합니다. 그때 끊겨버린 시간을 그대로 둬야 하는 순간을 동시에 알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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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오늘은 정말 계절의 경계가 보이는 날입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있어 일반적이지 않는 바다가 됩니다. 특수한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멋지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한, 그렇습니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니 당신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상대방에게 준 상처보다 자신이 받은 상처의 총량이 훨씬 크고, 많다고 느끼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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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내 내부의 자동 잠금장치는 스위치를 내려 방호벽을 만들어 버려 그 안쪽으로는 안전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진공관의 형태로 만들어 놓고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처럼 저는 그 안으로 들어가 몸을 말고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합니다. 방호벽 밖에서는 불꽃놀이처럼 만개와 무화가 반복되지만 나는 진공에 몸을 감싸인 채, 그저 일별할 뿐입니다. 잊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라는 건 이미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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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진실을 마주한다는 건 겁이 나기 때문에 내 내부의 어떤 장치는 작동하는 빈도가 더 늘어나고 방호벽은 더 거대해집니다. 적이라는 건 다름 아닌 내 내부의 방호벽을 만들어버린 나였던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제대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많이 드시고 잘 지내십시오.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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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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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닷가에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이것을 우리는 해풍이라 합니다. 해풍을 문학적으로 애이불비하며 지내온 바다를 어루만지는 바람이라 일컫습니다. 바다는 해풍으로 인해, 마치 사랑을 잃은 초현실 미술가가 그려 놓은 그림처럼 심하게 울고 있습니다. 주름을 수십 개 만들어서 출렁거립니다. 카페 안에서 보면 이 모든 게 그저 꿈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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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을 듣고 있으면 애이불비 한 바다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어느 날 박새별이 파릇한 이십 대 초반에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린 목소리에 그렇게 덤덤하게 부르는데 한없이 듣고 있던 나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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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류근 시인의 유언이었는데 김광석이 곡을 입힌 것이라 했습니다. 가끔 시라고 불리는 것을 적고 있으면 감성이 남다르네 같은 말을 듣습니다. 시는 감성이 아니라 고통으로 써내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감성으로 시를 적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고통 없이 시를 적어내는 것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에는 그 시인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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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기 바닷가에서 당신이 준 박정대 시집을 매일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슬라브식 사랑과 어딘지도 모를 어느 해의 연안, 그리고 춥고 뜨거운 하늘과 바다를 몇 번씩 건너곤 했습니다. 오늘의 해풍도 바다의 고통이 일으킨 바람이라 생각합니다. 해풍은 바다를 울게 만들고 덕분에 한 계절이 아프게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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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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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비가 많이 내립니다. 오늘은 어쩐지 우산의 선택이 실패입니다. 저의 우산은 파란색의 큰 우산인데 나오면서 현관의 아무 우산이나 들고 나온 것이 그만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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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쓰고 걷고 있으면 참 불편합니다. 우산을 접을 때 튀는 빗방울도 썩 불쾌하구요. 그래도 한 우산을 쓰고 저기 바닷가를 당신과 걸었던 기억이 내면의 세계를 차지하고 있어서 비가 오면 괜스레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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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이 궁금하여 우산의 역사와 처음 우산을 쓰게 된 것에 대해서 읽어보니 참 재미있었습니다. 비가 아무리 거세게 내려도 작은 우산 속에 있으면 보호받는다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우산 같은 사람이 되고픈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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