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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잠자, 그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중 ‘사랑하는 잠자’ 그 후의 이야기.

 

잠자는 집을 나서려고 했다. 오겠다던 시계공 꼽추 아가씨가 한 달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서 잠자는 시계공 아가씨를 찾아 나서려고 했다. 잠자는 아가씨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은 심장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사고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라고 말한 것이 잠자의 뇌의 한편에 곱게 쌓인 먼지처럼 머물러 있었다.

 

시계공 아가씨가 말한 세계의 난리가 더 깊어졌는지 크르르하는 소리가 등을 훑고 지나갔다. 잠자는 가운에서 벗어난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왔다. 매일 한 시간씩 계단을 오르고 내려갔다. 몸의 총체적 균형을 잡고 걷는 것에 집중을 한 덕분에 이제는 계단을 잘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몸이라는 것이 적응을 하니 이렇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고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잠자가 그녀를 만나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시계공 꼽추 아가씨와 헤어지면서 그녀가 굼실굼실 입체적으로 몸을 뒤틀며 브래지어를 바로잡는 동작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온 세상의 여러 계단을 둘이서 나란히 오르내리고 싶었다. 원하면 된다는 그녀의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머리에 새겨졌다.

 

어쩌면 누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또는 누군가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그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이겠지) 못으로 판자 몇 장으로 창문을 막아 놓은 방에서 모든 것을 치우고 그녀와 같이 잠이 들고 판자를 치운 창으로 들이치는 빈약한 햇살을 받으며 같이 일어나는 상상을 했다.

 

이봐 잠자, 지금 나가면 안 돼.

 

잠자는 자신에게 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삐걱거리는 복도의 저편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에게 말을 하는 건 누구지?

이 집에 나 말고 누가 또 있었어?

 

잠자는 소리 쪽으로 삐죽 나온 귀로 최대한 소리를 들으려고 확실하게 고개를 삐딱하게 돌렸다. 이제 처음 눈을 떠서 움직일 때처럼 관절과 근육의 사용이 미성숙하지 않았다. 만약 공격성을 띠고 새가 날아온다고 해도 지팡이와 쟁반 같은 것으로 방어를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봐 잠자, 잘 들어보라고. 나는 자네가 눈을 떴을 때부터 죽 자네를 지켜봐왔어. 자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도 알았지.라고 복도 어딘가에서 소리는 잠자를 보고 말했다.

 

사랑,라고 잠자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래, 사랑 말이야. 하지만 잠자 자네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확실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 내 말이 맞지?

 

소리는 음폭의 변화가 없었다. 반드시 잠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야 하겠다는 노력이 없어 보이는 동시에 소리는 반드시 잠자에게 소리를 전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누구십니까?

 

잠자는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류하고 복도를 걸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끼익 끼익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수리를 한다며 자물쇠를 들고 가버려 뻥 뚫린 문의 공백이 눈에 들어왔다.

 

잠자는 잠깐 만났던 그녀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브래지어라는 것을 움직여 가슴을 고정하는 굼실굼실한 동작을 떠올리니 바지의 앞섶이 부풀어 올랐다. 잠자는 다시 당황스러웠다.

 

당신, 머리가 좀 모자란 모양이네. 그래도 고추만은 여전히 씩씩하시고.라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이봐, 잠자. 그래 그녀와 퍽이 하고 싶은가?

복도 저 끝에서 소리는 말했다.

 

그녀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퍽이 뭔지 모릅니다. 당신도 퍽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 것 같군요.

 

잠자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금씩 걸으며 말했다. 오른손에는 인간 잠자로서 다시 걸음을 걸을 때 도움을 받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잠자는 지팡이를 꼭 쥐었다.

 

당연하지, 나는 퍽이 뭔지 알고 있지. 아마 잠자 자네만 빼고 어린아이라도 퍽이 뭔지 알고 있을 거야.

 

저기, 부탁이 있습니다.

잠자가 말했다.

부탁이 뭐냐고 소리는 되물었다.

 

제가 당신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당신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잠자는 소리를 만나서 시계공 아가씨를 만나는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잠자는 소리의 정체를 몰라 두려웠지만 시계공 아가씨를 만날 수 있다면 두려움 같은 건 상관없었다.

 

 

#삽화는 노버트슈완카우스키의 그림을 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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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짐 모리슨 아이 엠 데드

 

 

도로를 걷고 있었다. 차들은 끊임없이 지나갔고 바람은 뿌연 미세먼지를 잔뜩 실어 날랐다. 도로에 공사를 하고 있기에 도로에서 떨어진 외딴길을 걸었다. 도로의 사정이 신발바닥을 통해 바로 머리에 전달되는 그런 도로다. 도로에 신경을 쓰며 걷고 있는데 한 로컬 카페에서 모과이의 I’m Jim Morrison i’m Dead가 흘러나와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 카페로 슥 들어갔다.

 

 

모과이는 연주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묘한 록밴드다. 내가 좋아하는 앨범은 ‘버닝’으로 그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을 한없이 구멍을 내버린다. 그건 어쩐지 영화 버닝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속에는 하루키가 잔뜩 있었고 테이크와 테이크 사이는 온통 메타포로 이어져 있었다.

 

 

카페는 작고 해체주의나 플럭서스가 어울릴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틀에서 벗어난 실내장식과 암울하지만 희망이 섞여 있는 냄새가 났다. 무엇보다 앉아 있으니 모과이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계속 나왔다. 마침 책을 들고 있어서 책이나 좀 보면서 앉아 있다가 갈 요량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도 생명을 갓 부여받은 것처럼 신선한 맛이 났다.

 

 

책은 새로운 식품의 종류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인류에게 생기는 바이러스에 관한 상관관계를 적어 놓은 책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지만 내가 읽기에는 꽤 어려운 책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읽어보라며 건넸는데 어째서 이렇게 어려운 책을 빌려준건지 모를 일이다.

 

 

사실 카페에서 질 좋은 의자에 엉덩이를 파묻고 앉아서 편안하게 책을 읽어 본지는 몇 번 되지 않는다. 늘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서 책을 읽거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또는 계단에 잠시 앉아서 땀을 식히면서 몇 줄의 글을 읽었고 일하는 가운데 틈이 보이면 책장을 몇 페이지씩 넘길 뿐이었다. 요즘은 그 망할 놈의 아이패드 때문에 책장을 더럽히지 않고도 활자를 볼 수 있다.

 

 

지금은 책도, 글도 누워서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책상과 불빛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었던 시대라고 해봐야 고작 15년 정도 전인데 마치 백악기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제 정전이 도래해도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그놈의 아이패드 때문에.

 

 

망할 놈의 기기가 좋은 점은 있다. 책 속의 주인공이 듣는 음악이 있다면 바로 찾아서 들을 수 있다. 요컨대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베토벤의 황제가 나오면 바로 찾아서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병수에 대해 조금은 깊게 다가갈 수 있다. 확실히 활자가 머리로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몸으로 흡수된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대부분이 향기로운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에 반해 나는 편안 것에 익숙지 않았다. 오랜만에 비어있는 시간이 자산처럼 불어나서 카페로 들어와 책을 펼쳤지만 생각만큼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래된 습관 내지는 하나의 패턴에 길들여진 탓이다.

 

 

어쩐지 나는 책을 펼쳤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공사 현장에 시선을 두고 모과이의 음악에 빠져들어 생각은 고랑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밑으로 밑으로 흘러가기만 했다.

 

 

조금 웃긴 얘기지만 책이 가장 잘 읽힐 때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보호자가 할 것이 없었다. 하루에 두 번 있는 면회를 잠깐 하는 것이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중환자실이라는 곳에는 고도의 숙달자 들만이 그곳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어설픈 보호자의 손길은 오히려 독이 된다.

 

 

한 치수 작은 운동화를 신고 한 시간 동안 달린 것 같은 불편함때문에 잠은 오지 않아 대기실에서 책을 읽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것, 그것뿐이다. 자정이 넘어가면 병원의 병실은 대부분 숨을 죽이고 밤의 D 세계에 녹아든다.

 

 

병원 복도의 저 끝은 죽어버린 시간이 활동을 한다. 실체나 감각이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곧 나는 히틀러를 피해 크렘린의 미궁 속으로 기어 들어간 스탈린을 생각한다. 스탈린을 생각할수록 그는 뒷짐을 지고 수행원을 대동하여 더 깊은 궁속으로 가버리고 만다.

 

 

나는 크렘린에서 헤매다가 사립탐정인 레미를 만난다. 레미는 나에게 말한다.

 

 

여긴 알파빌이야, 감정을 가지는 일은 용납되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은 체포되어 공개처형되는 도시지. 알파빌에서는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전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 말에 레미는 또 말한다.

 

 

재미있는 건 말이야, 알파빌에서도 섹스는 존재한다는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너에게서 알파빌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이 되었고 복도에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모과이의 I’m Jim Morrison i’m Dead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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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두통이 심하다. 두통이 올 땐 서서히 다가와서는 한순간에 대검이 되어 뇌의 여러 곳을 찔렀다. 그리고 두통은 썩은 호수의 검은 밑바닥에 깔린 사구처럼 머물러 있으면서 조여 왔다. 두통의 고통이 이토록 심할 줄은 몰랐다. 처음 두통이 시작될 때는 주기적으로 왔지만 지금은 산발적이다.

 

일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심지어는 운전 중에 오는 두통은 눈앞을 검은 커튼으로 가렸다. 두통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조여 오는 느낌은 복통이 말려오는 것보다 심했고 치조골을 건드리는 고통을 넘어섰다. 두통의 전조가 보이면 이미 두려웠다. 두통이 시작되면 내 몸은 외부의 모든 자극에 대한 방호막을 치고 돌처럼 굳어 버리는 것이다.

 

이곳에는 모든 약이 다 있네. 키를 크게 하는 약, 꿈을 꾸게 하는 약, 심지어는 모든 걸 볼 수 있게 해주는 약도 있다네. 자네가 모르는 약이 더 있지. 세상에 나와 있는 약의 종류는 음식의 종류보다 더 많네. 하지만 말이네 자네의 그 두통을 없앨 수 있는 약은 없다네.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는 불행한 얼굴을 한 노인이 불행하게도 등이 굽어서 불행하게 앉아있었다. 머리는 새 하얗고 머리카락은 몇 가닥 없었으며 길게 흘러 내려와 있었다. 말을 하는데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덕분에 두통이 더 심해졌다. 얼굴에는 손톱만한 검은 사마귀가 3개나 나 있었는데 한 개당 4가닥 이상의 세기의 원흉 같은 긴 털이 불행하게 달려 있었다.

 

노인은 약병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물굽이에 드리운 세계의 다사로움이라고 누가 한 말인지 아나?

나는 머리를 감싸고 모른다고 했다.

카뮈가 저녁을 가리켜 그렇게 표현했네. 아주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의 모습이지. 그렇지 않나. 그렇지만 모든 이에게 저녁이 고즈넉하고 다사롭게 와 닿지는 않을 걸세. 그렇지 않나?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 했다.

나는 지금 두통으로 인해 고통이 너무 심하다.

5분 전보다 두통이 심했다.

 

저녁은 한꺼번에 모든 이에게 다가오지만 받아들이는 이들에 따라 저녁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지. 누군가의 저녁은 행복으로, 어떤 이의 저녁은 아픔으로, 또 다른 이의 저녁은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네. 발자크는 불면으로 보내는 밤을 고통에 비유했지. 하긴 하루에 블랙커피를 60잔씩 마셨지. 50잔인가. 발자크는 이렇게 외쳤지. 나는 사는 게 아니다. 끔찍하게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 하지만 일을 하다 죽든 다른 짓을 하다 죽든 나에게는 다를 바 없다. 어떤가?

 

지금 이 노인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머리가 너무 아프니 약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노인은 내말을 무시했다.

자네가 신혼여행 중에 저녁을 맞이했다고 해보게. 그것은 행복이자 ‘사실’이라고 믿지. 정말 그것이 ‘진실’일까. 그것이 진실이라고 누가 단정 짓겠는가.

나는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알아 들을 수 가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네의 두통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은 없네. 헌데 말이네 고통스러워하는 자네처럼 사람들에게 똑같은 두통을 겪게 할 수는 있다네. 어떤가, 다른 이들에게도 자네와 같이 두통을 겪게 해보는데 동의 하겠나?

늙수그레한 그는 논두렁의 색과 같은 이를 드러내고 나의 얼굴 앞으로 와서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런 악행을 저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두통이 심했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노인에게 말을 했다.

 

이봐, 그건 악이 아니야. 자네는 아직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을 할 수는 없어. 나 역시도 마찬가지겠지만 무엇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겠는가. 자네의 두통은 병원에서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잖은가. 자네는 검사를 아무리 받아봤지만 그저 이상이 없을 뿐이야. 병원에서는 원인규명도 모를뿐더러 자네의 두통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지. 그것은 그저 두통일 뿐이니까 말이네. 병원에서는 두통보다 더 하고 고통스럽고 무서운 병마의 원인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어있다네. 자네 같은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아진다면 자네의 두통을 낫게 하기 위해서 병원의 움직임을 바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뭐가 선이고 어떤 게 악이란 말인가. 타인에게 두통을 안겨주는 일이 과연 악이란 말인가. 곧 자네와 같은 두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네. 그때가 되면 이미 걷잡을 수 없지. 동기가 선하다면 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 않겠나.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머리가 너무 아팠다. 조금씩 강도가 강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렇게 머리를 철사로 묶어서 조여 오는 두통이 있으리라고는 그동안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의 획일화에 그 몸을 맞춰 가야하는 거라네. 이 사회에서는 결국 옷에 몸을 맞춰가는 이들이 살아남는 것이야. 자네가 획일화의 구심점이 된다면 사회는, 그러니까 병원이나 그 동안 자네의 두통에 상당히 관대했던 곳에서 달려들 걸세. 이 사회는 그런 곳이야.

 

나는 노인이 하는 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두통이 지금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걱정할 것 없네. 자네는 이미 이틀 전에 죽었으니까 말이네. 싸늘하게 죽은 채로 발견되었네. 지금의 두통은 그저 자네가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것이야. 두통의 잔존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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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고 불리는 녀석이 한 명 있다. 이 녀석 융통성과 눈치가 없어서 친구들 틈에도 잘 끼지 못하고 술도 마시지 못해서(한 잔만 마시면 붉은 태양처럼) 수많은 술자리에는 거의 끼지 않았다. 이야기에서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직선적이고 공부도 못했다.

공부는 우리도 못했기에 별 무리가 없었지만 그 외에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어떤 매개가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에는 와아 하며 그저 같이 몰려다녔다. 그래도 그 녀석 잘하는 게 있었는데 태권도였다. 선수를 했고 공부는 못했지만 졸업하기 전부터 사범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X사범이라 불렀다.

하지만 운동은 태권도만 잘했다. 축구도 농구도 탁구도, 태권도 이외에는 잘 하는 운동이 아니라 할 줄 아는 운동이 없었다. 잘 나가는 박찬호가 야구 빼고는 운동이 전부 꽝인 것과 비슷했다.

태권도도 뭐랄까 어쩐지 그 녀석이 가르치면 지루해지고 재미가 떨어지는 시간이 된다. 나도 몇 개월 그 녀석 밑에서 태권도를 배웠는데 이렇게 재미없는 운동이 있을 수 있다니 하며 태권도에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몸을 푸는 데만 3,40분 정도 시키는데 그것이 끝나면 기진맥진해지는 것이다.

내가 입대할 때 먼저 입대를 한 그 녀석이 휴가를 맞춰 나와서 나를 육군 50사까지 배웅해줬다. 모두가 제대를 하고 하나둘씩 장가를 갔다. 어느 날 그 녀석이 만나는 여자가 있는데 같이 만나줬으면 했다. 친구들 모임 할 때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그것은 좀 그렇다는 것이다

그 녀석 그때까지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만나본 적이 없다. 친구들 몰래 만났다면 모를까 그랬다면 늘 활동 반경이 손바닥이어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녀석이 여자를 데리고 온 날 술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여자는 우리보다 10살이 많았고 남자아이가 있었고 남자아이는 8살이라고 했다.

친구들에게서 이미 비난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건 안 될 일이다며. 녀석은 그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녀석 주위에서는 모두 그 녀석을 걱정하며 그것을 말렸다. 그러다 보니 애처에 눈치가 없고 술을 마시지 못해서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는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욱 친구들 자리에는 나오지 못했다.

그 녀석은 어쩐 일인지 여자를 만날 때에는 나를 불렀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우리보다 삶의 경험이 많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그때에도 습작으로 말도 안 되는 글을 적고 있었기에 내가 접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꽤 소중한 것이었다.

술이 들어가면 그 여자는 그 녀석보다 앞일을 더 걱정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새장 속 새가 불쌍해 새장의 문을 열어 놔도 밖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새를 보는 것 같았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지는 못한다. 아직 어린 아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편하지만 길게 이어지고 다음 날 꼭 타격을 입힌다.

그 녀석은 일 년이 넘게 여자와의 만남 속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곳에도 여자를 데리고 왔고, 나는 두 사람의 사진 작업을 해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같이 있으면 행복해 보였다. 그러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편견은 무서운 것이고 겁이 나고 공격적이지만 두 사람만 같이 있는 공간에서는 행복한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그 녀석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여 애 둘을 낳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에 허덕이며 삶의 고통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때 주위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먼저 부모님의 공격과 형제들의 공격, 그리고 회사 사람들과 친구들의 공격. 융통성이 없는 너라는 공격의 시작은 슬슬 도를 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이 행복한 것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결국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만약 두 사람이 그것을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했다면 지금이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인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네가 낳은 아들, 네가 낳은 아들 같은 말은 친척이나 가족에게서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래에 몇 년 만에 그녀석이 한껏 나이든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재미없는 것도 여전하고 융통성 없는 것도 여전해 보였지만 얼굴에 고생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아내에게 준다며 내 책을 한 권 받아 갔고 그동안의 이야기보다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갔다.

우리는 보통 어떤 선택의 앞에서 늘 고민을 하고 그 결과 때문에 좌절을 맛보며 많이 힘들어하고 울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한 번뿐인 삶, 일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뭐든 처음 하면 잘 할 수 없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도 없다. 하물며 일생을 살아가는 인생이 늘 행복하게만 잘 지낼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여러 번 쓰러지지만 주저앉지는 말자. 그러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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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에 앉았다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타서 1층의 아파트 현관문을 지나 자동차 문을 열고 닫아서 아침에 들리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보내면서 열고 닫아야 하는 문에 도대체 몇 개인지, 비슷비슷한 문을 열었다 닿으며 매일 수십 번 공간이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아주 많은 문이 존재해있다. 매일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간다. 저 문을 통과하면 오늘은 어떤 변화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은 없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 문을 통과하면 작은 설렘과 조바심이 내 마음 옅은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거실과 복도 사이에 있는 둔탁한, 유리가 없는 아파트 복도 문을 지나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리로 되어있는 아파트 현관문을 거쳐, 썩 내키지 않는 색의 자동차문을 열고 닫으며 건물의 두꺼운(1센티미터가 넘는) 2중 유리 문을 두 개나 지나 통과하여 사무실의 철제 플라스틱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에서 일을 하기까지 매일매일 온도와 환경이 다른 두 공간을 지나친가는 알 수 없는 작은 기대가 인간의 삶의 조그마한 부분을 차지한다

 

문이라는 건 특수성을 띠고 있다. 내가 뇌 생리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뇌 생리학적으로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하면 분명 인간은 불안함에 몸이 떨릴 것이다. 심장이 뛰고 잘 걷지도 못할 것이다. 문은 그런 특수성을 지닌다. 우리는 보통 문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물체에 대해서 조금은 성의 있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인간은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문이라는 관념 속에 갇혀서 상주하기를 늘 원하고 있다. 만약 자동차의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끔찍하다. 문이 없는 자동차 안에서 그렇게 마음 놓고 담배를 피워 대며 운전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은행 밖으로 나올 때 이 문으로 나갈까 저 문으로 나갈까 하며 고민하는 부분은 한가한 일요일에 마트에서 녹차가루를 고르는데 이 물품을 고를까, 저 물품을 고를까 하는 식의 고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는 것이다. 어떤 문으로 통과할까? 하는 고민은 마트에서의 고민처럼 혼란스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 문이라는 것이 통과를 하면 마음이 놓이는 문과 기이하지만 그렇지 못한 문이 있다. 그래서 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밋밋한 그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존재해있다

 

어떨 땐 열었다가 닫히는 문을, 그러니까 반드시 닫아야 하는 문을 열어놓고 그냥 지나친 것에 작은 희열과 묘한 뿌듯함마저 들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문을 만드는 여러 공장에서는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그리고 눈을 사로잡아 끌만한 문형으로 만들어진 문을 만들어내느라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을 것이다. 모르는 이들이지만 새삼 그들에게 감사합니다 꾸뻑, 말하고 싶다

 

우리가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문은 앞으로는 좀 더 특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지금부터 내가 통과하려는 문은 지금까지 내가 말한 문과는 전혀 다른 문이다. 안과 밖의 개념적인 문이 아니다

 

지금 통과하려는 문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이다. 저 문을 통과하고서 아, 여기가 아니군, 하며 다시 돌아 나올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문이 아니다. 은행의 문도 아니고 마트의 문도 아니다. 내가 지금 통과하려는 문은 의식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체재를 이루고 있는 문이다

 

마치 살아있는 고래의 입처럼 꿈틀거리는 문이다. 저 문으로 들어가고 나면 문은 자의식이 강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또 다른 통로의 문을 만들어 버릴 것이다. 실제로 문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색한 그런 곳을 지금 나는 통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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