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척, 날 아는 척하면 곧바로 날이 서고, 그런 자신을 미워하지만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표출해야 하는지 어렵기만 하다. 남편이 남긴 부재는 무형태로 남아서 그 존재를 더욱 드러내고 리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서 더 파티를 열고 자신을 다그친다.

동생 쥴스는 깊은 알콜 중독으로 낙오자 같은 생활을 하다가 재활을 통해 겨우 엄마의 집으로 들어와 엄마의 짐에서 운동 강사로 일을 한다. 사람들을 너무 쉽게 믿고 친해지는 게 엄마에게 못마땅하지만 쥴스는 그게 쥴스니까. 그러나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알콜중독자였던 과거가 자신을 옭아매고 실수만 저지른다. 술을 끊으면 엉망진창인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지만 여전히 형편없는 자신의 모습에 허망하기만 하다.

엄마는 이혼 후 홀로 편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사위를 잃은 큰 딸과 알콜중독 치료가 끝날 둘째가 집으로 들어와서 제대로 된 가족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늘 따라다닌다.

엄마는 어느 날 심장이 아프고 한쪽 팔에 감각이 없어서 병원에 갔는데 심장에는 문제가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딸들을 신경 쓰느라 공황장애가 온 것이다. 이 드라마는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사회를 원망하며 지내는 리가 남편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 겪게 되는 인간관계,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부딪힘, 가족과 타인의 경계 같은 것들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위태롭게 버티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우울증이 있다. 우울증을 앓던 남편이 죽음으로 해서 극복하려는 리의 감정이 아주 섬세하게 연출되었다. 처음에는 미스터리 드라마인 줄 알았다. 그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나 혼자 잘 지내고 싶은데 사람들과 같이 지내야 할 때가 있다. 혼자서 돈을 벌 수 없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시선을 돌리고 싶은데, 안전한 틀에서 거기서 벗어나는 일들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계속 일어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면 리는 촉을 세우고 달려 들려고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인간관계는 너무나 어렵다. 남편은 깊고 깊은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지만 점점 내성이 생겨 강한 약으로 처방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벗어나는 일. 위배가 하는 일이 모순이 대신하는 이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는 페이스북에서 제작했다. 기대 없이 봤지만 인간관계는 거기나 여기나 북한도 어려울 것이라 아주 공감하면서 봤다.

이 설명할 수 없는 공허, 이 텅 빈 동공을 매일 느끼며 살아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를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쉽지 않은 인생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리는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열지만 후회한다. 그리고 친구와 싸우고. 파티가 끝난 후 설거지를 하는데 그릇마저 깨진다. 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을까. 울고 있을 때 엄마가 와서 그릇을 건네준다. 리는 그걸 깬다. 또 하나 건네준다. 확 깨버린다. 그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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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마녀 배달부 키키 누가 그렇게 깠어? ㅋㅋ 나는 재미있게 봤구만. 영화는 원작과는 내용이 좀 다르다. 각색을 해서 원작과 다른 재미가 있다. 원작은 이렇게 흘러가지만 영화는 저렇게 흘러간다. 감독도 원작을 그대로 따라 하면 끝이라는 걸 알기에 원작과는 다른 내용 전개다.

사람들은 빗자루 타고 하늘만 나는 마법을 할 줄 모르는 마녀인 키키를 우리와 다른, 저주를 퍼붓는 마녀로 몰이를 한다. 키키는 그렇지 않은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사람들은 전부 키키를 의심하고 멀리하고 따돌리려고 한다.

인간 사회가 그렇다는 걸 키키는 뼈저리게 느낀다. 키키가 배달한 모든 물건이 저주에 걸렸다며 빵집 앞에 다시 돌아온다. 그때 키키는 상처를 크게 받아 마법이 사라진다. 빗자루도 뽀사지고. 어렵게 배달을 했지만 배달비를 건네주는 게 아니라 땅바닥에 내팽개치듯 버리는 것에 키키는 자존감 상실.

하필 마법이 없을 때 톰보가 비행 자전거로 하늘을 나는데 바람이 역풍으로 불어서 위험하다. 키키는 날아갈 수 없어서 추락한 곳으로 달려간다. 톰보는 상처를 입고 쓰러져있을 때 키키는 엄마의 마법 약을 발라주고 가버린다.

마법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마녀사냥을 당한 키키는 어떻게 될까. 영화에는 우리가 잘 아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미야자와 리에, 요시다 요, 오노 마치코 등.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 성장하는 이야기다. 애착 인형과 대화를 하던 아이가 어느 날 애착 인형을 두고 친구와 사귀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을 한다.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혹독할지도 모른다.

키키 역시 지지와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되지만 대신 소중한 친구를 얻는다. 대화 상대가 지지에서 친구로 바뀐다. 그리고 사랑을 알아간다. 우리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러나 지금이 끝은 아니기에 보이지 않는 앞을 더 달려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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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에 개봉한 별들의 고향은 경아(안인숙)의 시신을 화장해서 강물에 문호(신성일)가 뿌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문호와 생기발랄한 경아는 위태로운 동거를 하며 경아의 나체를 무명화가인 문호가 그린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간다.

경아는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예뻤다. 직장에서 만난 첫 남자 영석(하용수)에게 배신을 당하고 아파하고, 두 번째 남자인 만준(윤일봉)은 부잣집에 잘나가는 대기업의 멋진 사람이지만 의처증이 심하고 집착이 강해서 과거 임신 중절 사실을 알고 경아를 폭행한다. 세 번째 남자 동혁(백일섭)은 건달로 경아를 늘 폭행하고 허벅지에 바늘로 ‘혁’이라는 문신까지 새겨서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결국 동혁 때문에 술집에서 일하는 신세가 된다. 술집에 손님으로 온 문호와 만나 그림을 그리며 재미있게 지내지만 백일섭이 찾아와서 결국 문호도 경아의 곁을 짜난다.

경아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이 사회에서 남자들에게 온통 장난감 취급당하고 배신당하고 폭행당하다가 결국 눈 내리는 얼어붙은 강가에서 수면제 같은 약을 눈과 함께 먹고 잠이 들어 그대로 하늘로 가고 만다. 경아의 나이 고작 26살. 이 당시 별들의 고향은 많은 사람들을 피카디리 극장으로 불러 모았고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음악은 천재 이장희가 맡았다. 이장희의 노래가 경아의 처연한 모습이 나올 때 흐른다. 경아는 너무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인데 그 뒤로 쓸쓸한 모습이 비친다. 경아의 모든 대사가 강압과 울분, 암울한 사회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엄혹한 때에 필요한 건 사랑이지만 남자들은 경아를 욕망의 대상으로만 본다.

최인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별들의 고향은 74년을 대표한다. 74년은 대한민국의 격동의 해였다. 광복절에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사건이 있었다. 서울에서 청량리 지하철이 개통되었고, 긴급조치 1호, 2호가 선포되었다. 이런 시대에 대항이라도 하듯 흑인 소울의 느낌을 한국 록으로 부르는 록밴드 데블스가 통금을 피해 모여든 고고클럽에서 공연하다가 청춘들이 참사를 당해 88명이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데블스의 이야기를 조승우가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가 [고고 70]이다.

74년은 너무나 아픔이 많은 시기였다. 그 해에 한대수가 나타나 [물 좀 주소]를 부르는 건 단지 어떠한 목마름으로만 부른 건 아니었다. 별들의 고향의 경아를 통해 그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설가 최인호는 집필 의도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서울을 그리고 싶었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정치적으로 암울한 유신 독재 사대에, 밤 11시 30분이면 통행금지를 피하려 광화문에서 신촌으로 택시 합승을 해야 하는 풍속을 그리고 싶었다. 도시산업화가 막 시작된 때에 청바지를 입은 통기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술 취한 아가씨가 이리저리 비틀대던 무교동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전원주는 이때에도 가정부로 나오며 경아의 대사 깊숙한 곳에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대사가 계속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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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27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원주 가정부! ㅎㅎ 육 여사 피살은 정말 충격이었죠. 70년대를 비교적 잘 알고 계시네요. 고고70 잘 만든 영화죠.

교관 2024-02-28 11:32   좋아요 0 | URL
역사잖아요 ㅎㅎ 관심있고 공부하면 조금은 잘 알 수 있는 것 같아요ㅎ

호시우행 2024-02-29 0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대학시절 초년엔 캠퍼스 친구들과 최인호의 소설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이 영화는 군입대시절에 개봉되어 정말로 많은 군인들에게 그 스토리가 회자되었었다. 안인숙 배우는 국군의 날 행사 때 손을 잡은 경험이 있어서 많이들 날 부러워하기도 했다. 당시엔 서울시내 퍼레이드가 있었는데 많은 연예인들도 동참, 헌병 지프차에 승차했었다. 뭐 그저 여성 아닌가.ㅎㅎ 옛 추억을 소환해줘서 고맙네요. 소설의 일독을 권하고 싶어요.

교관 2024-02-29 11:32   좋아요 0 | URL
시절이야기 감사합니다 ㅎㅎ 소설 꼭 읽어보겠습니다!

호시우행 2024-02-2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ㅎㅎ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쫓아서 가고만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오기만 했는데 앞으로는 점점 자신이 없다.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기분이다. 일주일째 비가 오고 날이 흐리다. 날씨가 흐린 건 참겠는데 이러다가 마음이 메말라 비틀어져 버릴 것만 같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가는 것 같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방에 들어와 버린 기분이다. 그 방에 들어가면 나오는 게 어렵다. 그런 방에서 출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하다가 숨이 막혀 죽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도 싫고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는 것도 싫은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마음의 여자는 남자를 찾아간다.

좋아하는 것을 서른두 살까지 찾아 헤매는 여자와 잘 하는 것을 놓으려 하는 남자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같아서 나란히 걸으려 하는 이야기. 하지만 같은 것을 잡으려는 사람과 놓으려는 사람은 사소한 것에서 균열이 간다.

그 균열의 발화는 남자의 옛 애인이자 여자의 친구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사실 어울릴 수 없다. 여자는 남자를 아주 싫어했기 때문에. 재수 없어서. 그러나 지금은 남자가 놓으려는 음악을 여자가 붙잡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같이 있다. 둘 사이에는 옛 애인이자 친구의 민경이의 부재가 형태를 띠고 있다.

두 사람은 만나면 한 번은 민경이의 부재가 몰고 온 존재를 확인한다. 두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를 너무 잘 부른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노래 가사를 들으며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두 사람은 바다를 보러 가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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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이라 불리는 김영미. 뻐드렁니라 목도리로 늘 입을 가리고 다니는 김영미. 세기말이라 불리는 이유는 얼굴이 못생겼기 때문이다. 김영미는 돈이 필요해서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물건을 받아와서 미싱 박음질을 한다. 때는 1999년. 말 그대로 세기말이다.

김영미는 소주 중독자인 할머니와 같이 산다. 부스스하고 화장도 안 하고 꼬질꼬질 못난 김영미는 고장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를 보기 위해 점심시간에 맞춰서 식당에 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세기말을 싫어하기 한다. 그런 세기말을 이유영이 해낸다.

세기말, 1999년 12월 31일에 같이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썰렁한 빈소. 카메라는 김영미의 최대 약점인 입을 자주 클로즈업한다. 김영미는 오늘 세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렇게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만 같다. 그러던 중 장례식장에 경찰이 김영미를 찾아온다. 횡령 방조죄에 해당한다며 잡아간다.

그 좋아하던 공장 직원 구 기사에게 속아서 그렇게 된 김영미. 결국 형을 살고 나오게 되는데 교도소 앞에 구도영(좋아하는 공장 기사)의 마누라가 찾아온다. 자동차를 몰고 와서 찾아와서 서울까지 태워준다고 하는데, 구도영의 아내는 사지마비 환자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녀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야 하는 김영미. 싸가지라고는 1도 없는 사지마비 구도영의 와이프는 이제 남편과 이혼하니까 너 가져라며 세기말 김영미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해서 김영미는 구도영의 사지마비 아내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동거가 시작된다. 이유영의 불안하면서 눈치 보는 연기가 좋다. 예쁜데 못생기게 나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이유영이 그걸 해내네.

김영미는 참 기묘한 존재다. 삐삐 같은 외모에 좋아하는데 안 좋아한다고 말하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 다 나아서 흉터가 되었다. 그러나 흉터를 볼 때마다 상처는 꽃처럼 다시 피어나고 그렇게 삶은 질척질척 치정 거리는 맨드라미다.

요즘 한국 상업 영화는 재미가 없는데 독립영화는 아주 재미있어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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