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이란, 이라크의 불편한 영화도 많이 봤다. 화면이 불편한 영화도 있지만 그 내용이 불편하여 음식을 먹으며 볼 수 없는 불편한 영화들을 그동안 많이도 봤다. 그래서 어지간한 불편한 영화가 아니면 나는 영화를 보면서 불편하지 않다. 사람을 토막 내는 고어물을 보면서 라면을 먹고 목을 잘라먹는 화면의 불편함으로는 내가 김밥을 먹는 것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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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 ‘레슬러’를 보는 내내 억지와 불편의 연속이 계속되어 눈물이 나올 뻔한 영화는 근래에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식 늙은이 영화다. 이런 영화가 지속적으로 나올수록 한국 영화는 발전과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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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과거 레슬링 선수였던 귀보는 아들을 국가대표로 만들고 싶어 하는 그런 내용이다. 그 사이에 아들인 성웅과 소꿉친구인 가영이가 성웅의 아버지 귀보, 유해진을 좋아하고 그런 가영을 성웅이 좋아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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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나 차이나는 친구의 아빠를 좋아한다는 건 판타지 일 수 있다. 비난은 아니지만 비판은 받을 만하다. 내 딸이 딸의 친구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그건 비판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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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영화가 가영이를 대하는 태도다. 비판받아야 하지만 귀보를 향한 가영의 사랑은 진심이다. 하지만 가영이가 귀보의 체육관에서 귀보와 훈련을 받는 장면에서 영화는 가영이의 엉덩이를 클로즈업한다. 영화의 세계관은 가영이의 육체는 사랑을 나눠도 되는 몸이지만 가영이의 정신은 어린아이로 대하고 있다. 역겨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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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내내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야 하고, 의사로 나온 황우슬혜는 처음 선 보는 자리에서 섹스를 하자고 한다. 영화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 가영의 철없는 사랑이 사회가 이루어 놓은, 늙은이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나쁜 것,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 옳은 것에서 반하는 것으로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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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은 물론 어리다. 그렇지만 내가 만나본 스무 살 중에서는 나보다 훨씬 현명하고 똑똑하며 용감한 스무 살들도 있었다. 모든 스무 살의 사랑이나 행동이 어리석고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현재의 나보다 못한 현재의 스무 살도 있겠지만 나보다 훨씬 나은 스무 살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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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의 시작도 스무 살이었던 이화여대 학생들이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어 싶어서 들고일어나면서 부터다. 현재 소녀상이 이렇게 전국, 여러 나라에 세워질 수 있었던 것도 스무 살이었던 대학생들이 추위에도 천막을 치고 그 속에서 잠을 자면서 지켜왔기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 어떤 꼰대들이, 늙은이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스무 살이기에 가능하다. 이런 영화는 나와서는 안 되는 영화이며 이 영화는 비난받아 마땅한 망작, 졸작, 괴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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