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에 대한 이야기와 감독 박훈정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번에 했기에 언급하지 않고, 불안적 요소를 소거하고 보면 마녀는 빠져들기에 충분한 영화다. 대체로 마녀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액션이 신선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데 나는 이 장면, 닥터 백과 기억이 돌아온 자윤이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를 하는 장면이 가장 전율이 돋고 몰입하게 만들었다
.

뇌의 각성을 통해 닥터 백이 자신을 찾게 끔 지금까지 이 모든 걸 자윤이 계획한 것이고, 닥터 백은 자신이 그동안 자윤을 찾으려 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오류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다. 모니터로 지켜보던 귀공자 역시 이 전부가 자윤이 이렇게 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분노하게 된다
.

이 2분이 조금 넘는 대치 장면은 천천히 흘러가며 자윤과 닥터 백의 얼굴을 보여주고 서서히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진다. 여기서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모그의 음악이다. 지하세계의 하얀 어둠 속을 걷는 듯한, 진공의 세계 같은 모호하고 정의할 수 없는 음악
.

하얀 눈이 내려앉아 모든 세상을 덮어서 순백의 세계를 만들었다. 새도, 벌레도, 스널프도 보이지 않았다. 생명체의 움직임과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새하얀 백색의 설원만이 가득한 세계. 순수하지만 생명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펼쳐진다. 눈길에 발자국을 내고 걷다 보면 언젠가는 지쳐 눈밭에 무릎을 꿇고 지나온 발자국은 내리는 눈이 꼼꼼하게 덮어버린다. 무릎을 꿇어 버리고 나면 더 이상 일어서는 건 무리다. 그대로 쓰러져 내리는 눈의 무게에 깔려 고요하게 숨을 거두는 장소. 그 장소는 아름답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잔인한 세계의 느낌이 이 장면에 흐르는 모그의 음악이었다. 이 장면에서 모그의 음악을 듣고 떠올린 세계는 무섭도록 차갑고 뜨거운 세계의 교차가 느껴졌다
.

특히 자윤이 유리벽으로 다가가서 총으로 쏜 방탄유리 자국을 만진 후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 때 나오는 모그 음악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서스펜스를 극으로 올려준다. 다리가 수십 개인 이종의 존재가 천천히 유리바닥을 기는 것 같은 음악. 울림통으로 들리는 통주음의 긁는 음악은 온몸의 신경을 건드려 크고 깊은 긴장을 준다. 영화 음악이란 이런 것이라고 자신 있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돌려 화면을 보지 않고 음악만 들어도 이 부분의 장면과 자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함이 들지만, 여러 번 돌려 음악을 꺼버리고 화면만 보면 정말 이상하다
.

모그의 음악이 버닝에서처럼 마녀의 전체적인 흐름을 끌어갔으면 좋았겠지만 모그의 음악이 전반적으로 스크린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영화의 곁에서 영화를 떠받들어주는 것 역시 아쉽게도 못 미친다. 한스짐머가 영화음악을 맡는다고 해서 모든 영화에 한스짐머가 딱 맞는 음악을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렇지만 마녀에서 자윤과 닥터 백의 대치 장면은 모그의 음악과 함께 삼박자가 맞아졌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참 멋진 장면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