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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시대를 듣다
정윤수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6월
평점 :
막연히 음악을 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듣던 사람이나 들을 수 있는 것인지, 뭘 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헤매고 있었다. 안 하던 짓을 하는 건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만 둘까 하다가, 무턱대고 듣기로 했다. 뭘 들어야 할지 알고 들으면 그만큼 재미가 떨어질 거 같아서. 시행착오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줄여야겠기에 내키지 않는 걸 꾸역꾸역 듣고 앉아 있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하고서.
내가 그런다. 뭔가를 계획하면 종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진다. 그냥 즐길 수 있으면 좋은데, 다 알아야겠다는 허황된 욕심이 크다. 남들 다 듣는 것도 들어 알아야겠고 내 취향도 차별화시켜야겠다는, 이상스러운 성품을 지니고 있다. 편집증이기도 하겠고 완벽주의 기질이라고도 하겠는데, 무척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신이 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의지를 접어 두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될 터인데, 의지를 접어두면 들려오는 소리도 없고, 잘 듣지도 못하는 무신경이 되고 마니, 어쩌지.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몰취향을 낳게 되었는데, 딱히 취향이라는 게 없으니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긴 하다. 선택의 폭이 넓다는 건 좋은 일인데, 이 거대한 소리들의 조합 속을 헤매다가 길을 잃기 딱 좋게 생겨먹었다. 도서관을 미로에 비유하던데, 소리의 세계도 못지않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 접어놓고, 몇 개 찾아 들어보기도 했고, 나름 감상이라는 것도 해봤다. 좋기도 하고 따분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등등. 이런 반응이 이끌려 나온다는 게, 음악을 듣는 재미가 아닐까, 막연히 생각해 보면서.
그러다가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기도 했고. 손에는 『클래식 시대를 듣다』를 쥐고 읽기도 하면서. 근데 이 책, 클래식이라고는 겉멋 아니고선 듣는 귀가 열리지 않는 나 같은 문외한에겐 꽤 좋다. 정윤수의 문장도 좋고. ‘클래식’에 방점을 찍어놓고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음악가들의 흥미로운 스캔들 따위에 머물지 않고 ‘시대’라 불릴 만한 흐름을 차분하게 쫓아간다. 그 차분함이라는 게 조용한 것과 또 다른 게 ‘음악’이라는 소리에 대한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 음악이 자리하고 있는 ‘시대’라는 자리 또한 시끄러웠기 때문이리라.
클래식을 이야기하면서, 여타 문예 장르에 해당할 지식들을 곁들이고 있는데, 어쩌면 현학적으로 들릴 법도 하다. 다행인 건 내게는 클래식에 해당하는 분야가 가장 어려웠기에, 다른 문예 장르에 견주면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비교설명으로 읽히면서, 좀 알 듯도 한 그런 느낌.
개관은 이걸로 하고, 난 이제 얘들의 음악이라는 걸 좀 들어봐야겠다.